# 144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44화
오솔을 둘러싸고 있었던 세 명의 수비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로서는 미처 반응하기도 힘들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고, 설사 반응했다 하더라도 누구도 저렇게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는 없었다.
파앙!
오솔은 마치 공중에 서 있는 듯한 안정적인 자세로 공을 들이받았다. 아니, 공이 워낙에 빨리 튕겨 나왔기 때문인지 역으로 공에 얻어맞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확실한 건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와아아아!
붉은 악마의 함성에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이 뒤집혔다.
오솔은 공을 안고 센터 서클로 뛰었다. 옆에서 이청운이 손뼉을 부딪혔다. 완벽한 찬스를 놓쳤다는 사실에 식겁했던 듯, 평소처럼 골을 못 넣어서 아쉽다는 말도 없었다.
오솔을 중심으로 하나둘 선수들이 모여들었다. 둘에서 셋으로, 다시 넷으로, 붉은색 덩어리는 어느새 덩치가 꽤 커졌다. 지금 모습만 본다면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이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한편 한국 선수들과는 달리 일본 선수들은 각자 떨어져서 좌절감을 삼키고 있었다. 특히 오솔을 막아야 했던 세 선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셋이나 있으면 뭐하냐, 결정적인 순간에 다 반응이 늦는데.’
돌이켜보면 차라리 말디니의 마크가 더 까다로웠다. 체력적으로는 부족할지언정 그는 끝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집중력이 월드 클래스와 그렇지 않은 선수를 가르는 기준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잊었던 알람이 다시 울렸다.
-‘에이스님이 다 해주실 거야.(Lv 2)’가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2씩 상승합니다.
골을 넣은 덕분인지 동료의 신뢰가 순식간에 돌아왔다. 더불어…….
-조건부 스킬, ‘막을 수 없는.(Lv 1)’을 습득합니다.
-상대편 선수의 과반이 경외감을 느낄 경우 활성화되고, 경기가 재개되는 순간부터 5분 동안 모든 능력치가 1씩 상승합니다.
-효과가 유지되는 동안 골을 넣으면 승급 조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다음 레벨이 되는 데 필요한 골은 세 골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 특이하게도 상대편의 감정에 따라 발동하는 스킬이었다. 제한 시간도 5분으로 상당히 짧은 편이었다.
‘레벨이 오르면 늘어나지 않을까 싶지만, 확실한 건 가봐야 알겠지.’
안타깝게도 여유롭게 분석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6분 정도밖에 없었다.
오솔은 버프 스킬을 빠르게 점검했다. ‘에이스’ 스킬로 모든 능력치가 두 개씩 오르고, 새로운 스킬로 하나가 더 올랐다. 여기에 1분만 더 지나면 ‘극장골’까지 발동해서 다섯이 더 오른다.
복합적인 조건이 모두 충족되며 순식간에 능력치가 8이나 오른 것이다. 이로써 아주 잠깐이지만 드리블이 90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강성일의 태클! 다행히 반칙이 아닙니다.]
[강성일 선수 카드가 있는 상황인데도 대담하게 달려들었네요. 다카하라 선수가 잠시 멈칫한 틈을 제대로 노렸습니다.]
공은 그대로 오솔에게 닿았다.
‘수비가 생각보다 헐겁다.’
일본이 실점 이후로 수비 일변도를 포기한 결과였다. 그대로 역습을 시도해도 괜찮은 상황. 역시나 오솔은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드리블에 어색함이 없네.’
오솔은 공이 발에 착 달라붙는 느낌에 입가를 씰룩거렸다. 잠시나마 전생의 능력을 회복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5년 만인가?’
버프가 사라지면 다시 떨어질 능력이었으나, 당장은 이전의 감각들이 돌아왔다는 생각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때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 나카무라 슌스케였다. 일본팀의 에이스는 질 수 없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지나갈 수 없다!”
“네가 무슨 간달프냐?”
오솔은 코웃음과 함께 공을 잡고 속도를 줄였다. 그러곤 순간적인 감속으로 몸이 완전히 멈췄다가 급격히 속도를 끌어올리며 툭 하고 상대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집어넣었다. 일명 알까기였다.
‘이, 이게 대체!’
나카무라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알까기도 치욕적이었으나,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급정지와 급가속이 아무런 전조(前兆) 없이 갑자기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 알까기로 시선까지 돌아가자 나카무라는 순간적으로 오솔의 몸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오솔, 빠릅니다! 고영주와 이청운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공을 빼면서 일부러 수비수가 없는 지역으로 찼기 때문에 상대 수비수보다 오솔이 먼저 공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에는 다시 전진, 또 전진이었다.
[중앙에 몰리기보다는 넓게 퍼지면서 상대의 관심을 흘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정도는 두 사람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오솔을 쫓아가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데 있었다. 놀랍게도 오솔이 공을 몰고 달리는 속도가 이청운 등이 맨몸으로 달리는 것보다 더 빨랐다.
덕분에 오솔은 동료들이 옆에 서기도 전에 두 번째 수비수를 만나게 되었다. 노랑머리에 수염을 잔뜩 기른 아베 유키였다.
‘알까기 같은 건 이제 안 통한다!’
아베는 옆으로 비스듬히 서는 걸 잊지 않았다. 또 결코 섣불리 달려들지도 않았다. 그저 이렇게 시간만 끌어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오솔의 돌파는 고작 이 정도 대비로는 막을 수 없었다.
타다닷!
얼핏 카카가 연상되는 빠르고 위력적인 치고 달리기가 펼쳐졌다. 물론 정직한 돌파는 아니고, 직전에 페인팅을 넣고 상대의 등 뒤로 돌파하는 식의 돌파였다.
아베는 오솔이 자신의 등 뒤로 돌아가는 걸 보고 급히 몸을 반전했으나,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오솔의 뒷모습만 보였다.
‘젠장, 반칙해야 하나?’
수비수의 본능이랄까, 돌파당했다고 느낀 순간 손이 먼저 올라왔다. 아베는 본능처럼 유니폼을 잡아채려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현듯 다카하라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25미터에서 30미터 사이에서 반칙을 내주면 절대로 못 막아. 녀석의 프리킥은 벽을 아무리 가까이 세워도 소용없어. 과장이 심하다고? 천만에! 난 오솔이 연습하는 걸 수십·수백 번도 넘게 지켜봤어. 그건 아무도 못 막아.’
하필 이곳이 딱 30미터 지점이었다. 게다가 여기서 반칙하면 최소 옐로카드에 심하면 레드카드였다.
경고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만약 퇴장이라도 당한다면 설사 프리킥이 골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연장전에서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반칙은 안 돼.’
아베는 간신히 손을 멈출 수 있었다. 이런 판단에는 오솔의 돌파 방향이 측면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중앙은 세 명의 수비수가 잘 막고 있었으니, 여기서 오솔을 놓치더라도 다른 공격수를 마크하는 데 성공한다면 수적 우위는 여전히 그들에게 있었다.
[오솔, 두 명째 돌파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오솔은 좌중간을 따라 달렸다. 왼발이 주발이 아니라서 크로스를 올리거나 패스를 하는 게 쉽지 않은 위치였다.
다만 그사이에 고영주와 이청운이 동일 선상까지 따라붙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이제 수비수의 관심도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의 공격수가 나란히 달리자 이내 세 번째 수비수가 오솔의 앞을 막아섰다. 오른쪽 수비수인 고마노 유이치였다.
고마노는 수비력은 뛰어나지 않았으나 달리기 속도 하나만은 웬만한 공격수들 못지않았다. 실제로 예상하고 막아내는 건 힘들어도 상대를 놓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따라붙기만 하면 어디로 가든 2 대 1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럼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골을 넣을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웬일인지 오솔 앞에 서자 자꾸만 몸이 움츠러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파죽지세로 돌파하는 오솔을 보며 저도 모르게 기가 눌린 것이다.
‘제기랄. 속도에서는 지지 않아. 속도에서는…….’
과연 속도에서는 지지 않을까? 확신할 수 있나, 앞선 돌파를 보고서도?
고마노는 자꾸만 이전의 장면이 떠올렸다. 순간 가속에 의한 직선 돌파에 나카무라 슌스케와 아베 유키가 손쓸 틈도 없이 당해버렸다. 똑같은 상황을 그보고 재현하라고 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돼. 이런 덩치가 나보다 빠르다고?’
고마노의 눈이 흔들린다, 싶을 때 오솔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직선이 아니라 직각이었다.
고마노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오로지 직선 돌파만을 대비한 탓이었다.
오솔이 움직임을 확인하지도 않고 뒷걸음질부터 치는 모습이 이를 증명했다.
오솔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횡에서 종으로의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 당연히 상대의 심리를 계산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내가 괜히 왼쪽 측면으로 왔겠냐?’
오솔은 반대편 골대를 노리고 공을 감아 찼다. 그렇게 강할 필요도 없이, 그저 골대 모서리를 향해 크로스를 올린다는 느낌으로 차면 되는 일이었다.
파앙! 철썩!
무슨 슈팅 연습하듯 너무도 쉽게 골이 들어갔다.
-경외감이 지속되는 사이에 골을 넣어 ‘막을 수 없는.(Lv 1)’의 승급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이제 레벨 업을 위해 필요한 골은 두 골입니다.
-상대 선수의 과반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막을 수 없는.(Lv 1)’의 지속 시간이 5분 더 연장됩니다.
절망. 말 그대로 상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쐐기골이었다.
오솔은 산책하듯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박해진이 2010년에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선보였던 산책 세리머니였다.
‘흐흐흐. 이제 이 세리머니는 제겁니다.’
일본 측 홈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오솔은 아쉬운 대로 상대의 원정 팬 앞에서 산책을 선보였다. 너희와는 클래스가 다르다고 말하는 듯한 오연한 시선에 일본 팬들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고, 한국 팬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꼈다.
‘크으! 이거야, 이 세리머니를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고!’
세리머니를 마치며 힐끗 벤치를 보자 환호하는 홍명문 코치의 얼굴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성질을 내더니 막상 오솔이 골을 넣자 좋아 죽는다.
‘거봐요. 내 말 듣길 잘했죠? 나 아니었으면 결승도 못 갔습니다.’
삑, 삑, 삐이익!
이후 합심하여 수비하다 보니 금방 휘슬이 울렸다.
이겼다. 이제 결승이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필드 위로 쏟아졌고, 감독과 코치도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한일전이 끝났다는 생각에 모두가 환히 웃었다.
오솔은 기쁨을 나누는 것도 잠시, 이내 시선을 일본 진영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거나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들, 혹은 그마저도 못해서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책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크게 상심한 모습에서 이들도 한일전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괜찮아?”
오솔은 다카하라에게 손을 뻗었다. 다카하라는 맥없이 앉아 있다가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일어나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카하라는 오솔이 아직 독일어에 서툴렀을 때 팀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줬고, 오솔은 그가 자신감을 잃고 헤맬 때 응원을 해준 일이 있었다.
양 국가의 분위기 탓에 경기 전에는 따로 사담을 나눌 수 없었으나, 이제는 다 끝났으니 마음 편히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오늘은 완패야. 마지막에 정말 대단한 돌파였어.”
“뭘, 그보다 이번에 프랑크푸르트로 가게 되었다면서? 공교롭게 우리 둘 다 같은 시점에 팀을 나가게 되었네. 그곳에 가서도 잘해.”
“나야 어차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거라 딱히 적응에 문제는 없을 거야. 역할이 특별히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그냥 팀원들이랑 호흡을 맞추는 것만 집중하면 되겠지.”
“그럼 다행이고.”
“나는 오히려 네가 더 걱정이다. 너, 잉글랜드 무대는 처음이잖아. 영국 놈들 보통 살벌한 게 아니라던데, 언제나 부상 조심해.”
다카하라는 어찌나 속이 좋은지 이 상황에서도 오히려 오솔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살짝 감동받으려는 찰나, 본론을 꺼내 들었다.
“참, 유니폼 나랑 바꾸자.”
“또? 저번에 달라고 해서 하나 줬잖아.”
“그건 함부르크 유니폼이고, 국가대표 유니폼은 아직 없단 말이야.”
“…….”
경기에서 진 건 그새 잊었는지 유니폼에 눈이 돌아갔다. 이 정도면 속이 좋다는 말로도 부족해, 아예 속이 없는 수준이었다.
“동료들이 뭐라고 안 해?”
“뭐라고 해도 이건 포기할 수 없어.”
오솔은 헛웃음을 지으며 옷을 넘겼다. 친분이 있는 녀석이 저렇게까지 조르는데 어떻게 거부하겠는가. 그러나 곧 나카무라 슌스케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오솔의 유니폼을 갖고 싶다고 몰려드는 바람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난리도 아니네. 다카하라, 라커룸에 가서 여분을 가져오겠다고 말 좀 전해줘.”
“알았어.”
여분은 많지 않았다. 아직 결승이 남아서 기껏해야 줄 수 있는 건 고작 세 장이었다.
세 장을 모두 건네주자, 그들은 일본인 특유의 몸짓으로 감사를 표하더니 각자의 유니폼을 놓고 떠났다. 졸지에 오솔은 일본 국가대표 유니폼을 여섯 장이나 갖게 되었다.
“딱 과반이네. 어우, 그나저나 땀 냄새 쩐다.”
* * *
아시안컵 결승전은 한국의 일방적인 공격 끝에 2 대 0의 무난한 승리로 끝이 났다. 대회 우승은 대한민국이고, 이번에도 득점왕은 오솔이었다. 이로써 오솔은 독일 컵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는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우승에 득점왕까지…… 아시안컵은 짭짤한 경험치를 선물로 안겨줬다.
오솔은 레벨을 두 단계나 더 올릴 수 있었다. 이번에 얻은 포인트는 고스란히 드리블로 향했다.
-오솔(Lv 64. 오른발잡이, 왼발 숙련도 58%)
-신체 : 균형감각 77/ 힘 90(+5)/ 반응속도 75/ 순간속도 90(+5)/ 주력 91/ 점프력 90(+5)/ 지구력 92/ 강인함 92(+5)
-기술 : 개인기 76(+1)/ 드리블 88/ 볼터치 90(+5)/ 슈팅 90/ 패스 90(+1)/ 헤딩 90(+5)/ 스로인 8/ 태클 63/ 일대일 마크 65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그쳤던 아쉬움이 조금은 가시는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