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42화
‘어우, 시원한데?’
실수를 가장하여 욕을 시원하게 뱉었더니 답답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
오솔은 어쩔 줄 모르는 아나운서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터뷰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뒤로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애처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조금 미안하네.’
어쩌면 오늘을 끝으로 인터뷰가 금지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만약에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그걸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통로에 들어섰을 때였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통로에 있던 사람은 홍명문 코치였다. 그는 과거 네덜란드에게 5 대 0으로 졌을 때의 얼굴로 오솔을 노려봤다. 대단한 기백이 느껴졌다.
‘저건 완전히 발모가지를 작살내겠다는 표정인데?’
꽈악!
홍명문은 오솔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갔다.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다. 하긴, 팀 케미를 박살 낼 수도 있는 인터뷰를 하고 왔으니, 수석코치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오솔은 어차피 가는 길이라 생각하고 순순히 따라갔다.
‘그러니까 대처를 잘 했었어야지. 그게 대충 덮는다고 되는 일인가?’
선수들의 무단이탈과 음주가무는 실제로 나중에 가면 다 기사화된다. 이번에는 대회 중에, 팀에 속한 선수가 먼저 터트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홍명문의 생각을 달랐던 모양이다.
“그 뻔뻔한 표정은 뭐냐? 뭘 잘했다고 그렇게 당당해?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알고 있습니다. 곪은 부위를 만천하에 드러낸 거죠. 고름이 더 퍼지기 전에 말이죠.”
“이런 멍청한 녀석! 네놈의 그 알량한 영웅심 때문에 팀은 사분오열되고, 언론은 안팎에서 우리를 흔들 거다.”
“그걸 원해서 한 일입니다.”
“뭐?”
홍명문은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오솔의 반응에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보통 이 정도로 화를 내면 직속 후배들조차 쩔쩔매기 마련이었는데, 까마득하단 말로도 부족한 후배 놈이 사고를 쳐놓고 너무 당당했다.
“원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 그걸 원했다고요.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뭐요? 팀의 분열이요? 제가 봤을 땐, 먼저 목적의식의 실종부터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그게 뭘 뜻하는지 알고 하는 말이냐? 네놈 때문에 이제 언론의 관심이 미친 듯이 쏠릴 거다. 그렇지 않아도 4강전은 망할 한일전인데, 이런 상황에서 부담감 때문에 제대로 플레이가 되겠어?”
“지금까지는 뭐 제대로 플레이했나요? 선배들은 숙취로 고생한다고 퍼질러 앉아있고, 후배들은 중요하지 않은 대회라는 생각에 승부욕은커녕 의욕도 없는데…….”
“네가 한일전의 분위기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한일전은 아무런 이슈가 없어도 목숨이 걸린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단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를 만들어 버리면 작은 실수 하나하나에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어!”
“계속 이딴 식으로 하느니 차라리 살얼음판을 걷는 게 낫습니다. 좋네요. 이번에 제대로 못하면 몰래 나가서 술 퍼마신 거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질 것 아닙니까. 코치님 말씀대로 목숨을 걸고 뛰겠는데요?”
홍명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오솔의 생각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잘 알겠으나 방법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그렇다고 인터뷰 자리에서 대놓고 사고를 친다는 게 말이 돼? 네가 생각이 있으면 따로 이야기를 했어야지.”
“흐흐흐. 다 선배들을 위해서 한 일입니다. 제가 겪어 보니까 사람은 충격이 클수록 제대로 변하더라고요. 그 왜 있잖습니까. 충격과 공포라고.”
“이런 미친놈.”
홍명문은 오솔을 밀쳐내듯이 멱살을 놓고 머리를 크게 쓸어 올렸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듯했다.
“고민할 것 없습니다. 축구 선수는 축구로 보여주면 되는 거예요.”
“건방진 새끼. 계속 그따위로 행동하다가는 언젠가 큰코다칠 거다.”
“주의하죠. 참, 코치님도 조심하세요. 월드컵 영웅 그거, 오래 못 갑니다.”
오솔의 ‘진심 어린 충고’에 홍명문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오솔은 충고라고 했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선 달리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 *
“특종이야!”
오솔 덕분에 자카르타에서 쉬고 있던 기자들이 바빠졌다.
“어떻게 할까요, 선배님?”
“일단 논란이 되는 부분 먼저 올리고, 이어서 인터뷰 전문 올려! 그리고 바로 나가자!”
“나가요? 어딜요?”
“어디긴 어디야, 넌 소문도 못 들었어?”
대표팀 선수들이 숙소를 무단이탈해서 술집을 갔다는 사실은 이미 기자들 사이에서는 파다한 이야기였다. 다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조용히 있었던 것뿐이다.
‘물론 그것도 이제 끝이지. 이미 방아쇠는 당겨졌으니까.’
이제는 누구보다 빨리 해당 술집을 찾아서 기사를 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아니지. 외투는 필요 없지.’
그는 외투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한여름의 자카르타는 평균 최저기온이 25도에 육박했다. 지금도 가만히 있으면 땀이 줄줄 흘렀다.
‘망할 살 좀 빠지겠구나.’
그는 술집의 이름도, 위치도 몰랐으나 걱정은 없었다. 무려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얼굴이 알려진 만큼 비싸고 고급스러운 곳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렇게 기자들이 특종을 쫓아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을 때,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 또한 한바탕 불타올랐다.
[저거 인터뷰 진짜냐?]
[족같이 ㅋㅋㅋ. 저 새끼 캐릭터 보소?]
[답답할만하지 경기 본 사람은 공감할 거다. 진짜 오솔 빼면 제 몫을 하는 놈이 거의 없잖아.]
[맞아. 특히 수비진은 처참하더라. 당장 우즈벡전도 김진원 저 새끼 때문에 두 골이나 먹혔잖아.]
[그럼 김진원을 저격해서 한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선배들한테 저러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냐? 쟤, 대표팀에서 제일 막내잖아. 유럽에서 잘 나간다고 너무 막 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ㅇㅇ. 돈 좀 만지더니 애가 건방져졌어. 이제는 선배가 선배로 안 보인다 이거지.]
[거지 같네, 진짜. 조금 띄워줬더니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선수단 분위기 개판 만들어 놓네.]
[다음 경기가 한일전인데 어쩌냐…….]
[지면 죄다 저 새끼 때문이다, 이건.]
처음에는 이처럼 오솔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짙었다. 아직 무단이탈 사건이 기사화되기 전이라, 오솔의 말이 단순히 못 뛰는 선수들을 욕한 것으로 생각한 탓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자들의 발 빠른 취재 덕분에 사건의 전말이 빠르게 드러났다.
[두 번의 무단이탈, 대표팀 선수들은 그날 무엇을 했나?]
특종을 잡은 것은 동선일보였다. 그들은 직접 술집 사진까지 실으며 기사의 신빙성을 높였다. 여기서 드러난 인물들은 김진원을 비롯한 고참 선수들이었다.
팬들은 경악과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미친, 경기력 개판인 이유가 있었네. 축구하라고 보내 놨더니 황제관광을 하고 있었던 거야?]
[대회 중 무단이탈과 술판, 2차까지…… 이거 완전히 대환장 파티인데?]
[고맙다, 새끼들아. 덕분에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다.]
[이제 보니 오솔이 화낼만했네. 자기는 어떻게든 올라가 보겠다고 죽어라고 뛰는데, 선배라는 새끼들이 술 퍼먹고 여자 끼고 놀아댔으니…… 이건 나 같아도 야마가 돌겠다.]
[그러니까 ㅋㅋㅋ 알고 보니까 오솔, 존나 인내심 쩌는 거였음.]
[개 웃기네. 더 웃긴 거는 이놈들이 팀 내 최고참들이자 유부남이라는 거임.]
[이거 퇴출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맞아요. 이건 징계 먹여야 함.]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해당 선수들을 욕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여전히 오솔도 잘한 건 아니라는 의견도 적게 남아 있었다. 주로 일을 너무 키웠다는 내용이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시들시들했던 아시안컵에 대한 관심이 유례없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다음 경기가 한일전이었다.
팬들과 언론은 과연 대표팀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은 장면이 나온다면 프로메테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상대를 두고두고 괴롭힐 작정이었다.
* * *
“괜찮냐?”
여민국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고, 우주원도 어느새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에 오솔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저는 괜찮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요.”
오솔은 가만히 서서 훈련장을 둘러봤다. 곳곳에서 원망 섞인 시선들이 날아와 박혔다.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그렇지 내부고발이나 다름없는 짓을 해서 팀 분위기를 박살 내버렸으니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흔히 말하는 동업자 정신이 없다 이건가? 흐흐흐. 이거 오랜만에 받는 시선이네.’
짜증과 분노가 반쯤 섞인 눈빛. 보통의 스무 살이라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내가 괜히 나섰나?’라고 생각하며 후회할 수도 있을 만큼…… 하나 오솔은 이미 전생에 이와 비슷한 대우를 질리도록 받았던 사람이었다. 움츠러들 이유가 없었다.
“감독님이랑 코치님은 물론이고 선수들도 다 저런데 정말 괜찮겠어?”
“왜요? 좋잖아요. 흐흐흐. 이러면 욕먹기 싫어서라도 한일전에서 이를 악물고 뛸 거 아니에요. 그럼 적어도 이전보다는 낫겠죠.”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 넌 진짜 돌아이다. 겁도 안 나?”
“겁날 게 뭐가 있어요. 어차피 전 병역 문제도 해결했고, 아쉬울 것 하나 없는데, 대표팀에서 안 뽑으면 지들만 손해죠.”
지금까지는 그만한 명성과 실력이 안 돼서 참았던 거지. 이제는 명백히 오솔이 갑인 상황이었다. 어설픈 실력이라면 모를까 오솔처럼 대체 불가한 존재는 홍명문은커녕, 축구협회장이라고 해도 어찌할 수 없었다.
막 나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위상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명분 또한 그가 쥐고 있지 않은가.
[축구협회, 해당 선수들을 징계하기로 결정!]
축구협회는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을 선보였다. 4강을 치르기도 전에 결정을 내렸으니, 거의 하루 만에 대책을 마련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해당 선수들에게 떨어진 징계는 2009년 여름까지 약 2년간 국가대표 소집 제외였다.
가혹한 징계였다. 이 징계가 가혹한 이유는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을 경험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이는 사실상 월드컵을 포기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한국 축구의 위상을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가중 처벌이 가해진 듯했다.
여기에 오솔에게도 징계가 떨어졌는데, 심각한 건 아니었고 약간의 벌금에 그쳤다. 물론 오솔은 그마저도 따를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라이올라. 지금은 안 되고, 나중에 소집이 해제되면 못 내겠다고 전해줘.”
“뭐? 그러다가 불이익이라도 받으면 어쩌려고?”
“불이익? 뭐, 출전 금지라도 시키려나? 글쎄, 그러면 누가 불이익일까?”
“그냥 내는 게 어때? 너도 알겠지만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싸움이잖아. 협회 입장에서는 네가 사고 친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를 어떻게든 하고 싶을 거야. 여기에 반발했다간 더 크게 돌아올 수 있으니까 대충 넘어가자.”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라이올라의 말이 맞았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고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혹여나 싸우다가 똥물이라도 튀면 기분이 더러우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징계를 받을 건은 아니었잖아.”
“글쎄, 여론전으로 끌고 가면 이번에는 네가 이길 수도 있지만, 이 일을 계기로 괜히 사사건건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어.”
“쳇! 꼬우면 나도 2009년까지 출장 정지시키라고 해!”
“얌마!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누군 목청 없는 줄 알아?”
“몰라, 아무튼 협회에 낼 돈은 한 푼도 없어.”
“새끼, 성질머리 하고는…….”
사실 돈이야 많았으나 협회가 자존심을 챙기려는 것처럼 오솔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 이제는 자신의 덩치가 이렇게까지 커졌음을 협회에 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후우. 알았어. 대신, 윽박지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너는 대외적으로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있다고 말해. 내가 하는 발언들은 들은 바 없다고 하고.”
“오케이! 제대로 겁줘. 여차하면 국가대표 은퇴하겠다고 말하라고.”
“미친 새끼. 이거 완전히 막 나가네.”
“흐흐흐. 요즘에 그런 말 많이 듣는다. 그런데 그게 뭐? 이젠 이렇게 해도 되잖아?
”나보고 적당히 하라던 놈이랑 동일인물 맞냐?“
라이올라의 목소리가 황당함으로 가득 찼다. 처음에 봤을 때만 하더라도 꽤나 냉철한 모습을 보였던 놈이 한번 날뛰기 시작하니 브레이크가 풀린 스포츠카처럼 한도 끝도 없이 달리려 하고 있었다.
“적당히가 아니라 정확히는 상대를 봐가면서 싸우라고 했지.”
“그럼 이번 상대는?”
“물어뜯어도 돼.”
“협횐데?”
“어쩔건데, 나는 벌꿀오소린데?”
“……내가 알아서 적당히 조절할 테니까, 넌 한마디도 하지 마.
라이올라는 자신이라도 이성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의도치 않게 오솔이 그에게 자제하는 법을 알려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