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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38화 (13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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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38화

27장 새로운 시작

챔피언스 리그가 함부르크에게 남긴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오솔에게는 16강 경기의 막대한 경험치와 해트트릭에 따른 추가 경험치가 있었다. 덕분에 오솔은 올 시즌이 지나기 전에 60레벨에 도달할 수 있었다.

‘포인트는 당분간 아껴두자. 당장 급한 대회도 없으니까.’

슬슬 레벨 업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포인트는 아낄 수 있을 때 최대한 아껴야했다. 그는 훈련으로 능력치를 80까지 올린 다음 투자할 생각이었다.

이처럼 그나마 얻은 게 있는 오솔과 달리 나머지 선수들은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워낙에 경기가 체력전이었던 탓에 극심한 체력 저하와 그에 따른 자잘한 부상이 따라왔고, 이기다가 경기 막판에 역전패를 당한 여파로 정신적인 상실감도 컸다.

거기에 팀의 에이스인 반 더 바르트까지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었으니, 생각보다 상처가 깊었다고 할 수 있다.

‘라파엘은 두 달 후에야 돌아온다고 했지?’

두 달이면 5월 중순이었다. 한마디로 시즌 아웃이다. 지난 AC 밀란 2차전이 그의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된 것이다.

[또다시 무승부를 기록한 함부르크. 우승 가능성은 고작 13%?]

덕분에 함부르크의 경기력은 꾸준히 하락곡선을 그렸다. 이제는 우승은커녕 3위와 4위를 쉼 없이 오가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위태로울 지경에 처했다.

4월 말, 분데스리가 선두로 올라선 것은 함부르크도 바이에른 뮌헨도 아닌, 슈투트가르트였다. 2위는 함부르크와 샬케04, 베르더 브레멘이 공동으로 차지하며,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놓고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리하여 5월 중순, 마침내 모든 경기가 끝이 났다.

-2006-07시즌. 함부르크. 20승. 7무. 7패. 승점 67. 최종 순위 3위.

그들은 간신히…… 정말 간신히 3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모두 오솔이 30골 9도움이라는 미친 활약을 벌인 덕분이었다.

당연히 오솔을 향한 팬들의 열망은 커져만 갔다. 그들은 매일같이 오솔의 집에 찾아와 ‘제발 남아줘, 오솔.’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올렸다. 비록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그래도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확정됐으니 오솔이 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5월 말, 바다 건너 영국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아랍계 왕자에게 인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맨체스터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겁니다.”

맨시티의 새 구단주, 만수르는 기자들 앞에서 구단의 첫 번째 영입 목표를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그 대상은 2년 연속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오른 공격수이자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오솔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축구를 모르는 졸부의 만용으로 여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오솔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팀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리버풀 등 자금과 명성,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모두 충족하고 있었다.

[부자들의 모노폴리가 된 EPL 구단들.]

*모노폴리: 부루마블의 원조격인 보드게임.

잉글랜드 축구 기자들은 정상적인 선수라면 돈밖에 없는 구단에 갈 리 없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비난조 기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는 만수르의 손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하는 생각이었다.

맨시티가 오솔의 영입자금으로 꺼낸 액수는 자그마치 3천만 파운드(약 440억 원)였다. 이는 ‘엘 니뇨’ 페르난도 토레스의 몸값과 동일한 금액이었다.

리버풀조차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몇몇 주전 선수들을 팔아야했는데, 놀랍게도 맨시티는…… 아니, 만수르는 오솔 외에 추가 선수 영입을 위해 주머니를 하나 더 뒤집었다.

[만수르 총 이적자금으로 ‘8천만 파운드’ 동원!]

순식간에 이적자금이 5천만 파운드나 더해졌다. 이 정도면 A급 선수 두셋은 더 사올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당장은 추가적인 선수 영입이 없었다.

당연했다. 지난 시즌 팀을 강등의 위기로 몰고 간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이 떠나면서 맨시티의 감독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어때? 내가 팬이라고 했지? 감독도 임명하기 전에 널 먼저 영입했잖아. 하하하!”

라이올라가 두둑한 배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손에 든 콜라가 극상의 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아하게 입에 갖다 댔다.

“내 앞에서 탄산 금지인거 몰라?”

“고개 돌리면 되잖아.”

“지금 대화 중이잖아.”

“짜증내기는…… 기껏 몸값을 한껏 부풀려놨더니, 콜라도 못 마시게 하네.”

“쳇! 됐고, 계약서는 어떻게 됐어? 전이랑 같아?”

“네가 원하던 대로 EPL 최고의 대우에 맞춰왔지. 여기! 주급 13만 파운드다.”

오솔은 계약서를 확인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13만 파운드(약 1억 9천만 원)라고 적혀있었다. 게다가 계약서는 주급만 적혀있는 게 아니었다.

-출장 보너스 1만 파운드(약 1천5백만 원)

-득점 보너스 2천 파운드(약 3백만 원)

-승리 보너스 2만 파운드(약 3천만 원)

만약 오솔이 경기에 출전에서 해트트릭을 터트리고 팀이 승리하게 된다면 그가 한 주에 벌어들이는 돈은 거의 16만 6천 파운드(2억 4천만 원)에 달하게 된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집을 일주일에 한 채씩 살수 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이제는 초상권 수입도 반은 네 거야. 축구 용품 스폰서도 미리 생각해 두라고, 아시아 시장에서는 네가 그래도 제일 몸값이 높으니까 대우도 좋을 거야.”

“하하. 이제 매년 게임이 만들어질 때마다 돈을 벌겠군.”

“게임? 아아, 비디오 게임?”

오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근에 박해진에게 받은 문자를 떠올렸다. 그가 자주하는 게임 속에서 오솔의 능력치 총합이 고작 83이라고 했던가?

‘물론 박해진 선배는 그것도 높은 편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능력치가 90이 안 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실제 능력도 거의 90인데.’

오솔은 별 시답잖은 생각을 이어가다가 계약금으로 300만 파운드를 받았다는데 생각이 도달했다.

‘300만 파운드면 거의 44억 원이잖아? 흐흐. 이걸 어떻게 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메이플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당장 마이폰 출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해서 주가가 오르고 있었다. 아마 본격적으로 판매가 시작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좋아. 일단 메이플에 투자부터…… 아! 아카데미도 준비하려고 했었지?’

오솔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움직임을 멈췄다. 생각해보니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 바빠서 한국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잊고 있었다. 그는 생각난 김에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기자님 죄송해요. 늦은 시간에… 아니, 지금 한국이 몇 시지? 아무튼 갑자기 연락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아직 초저녁인데 뭘.”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그 사건이 어떻게 되었나 싶어서요.”

“그 사건? 아~ 넌 아직 모르고 있었구나. 벌써 저번 달에 관련자들 체포와 소환이 시작됐어.”

석 달 사이에 조사가 다 끝난 모양이다. 듣기로는 최상욱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니까 금방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들이야 재판도 치르고 죗값을 감당한다고 앞으로 몇 년간 고생해야하겠지만, 그거야 그네들 사정이고 오솔은 관심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태곤이가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거니까.’

오솔은 아카데미 설립에 대한 계획은 차근차근히 세우기로 했다. 섣불리 돈을 투자하는 대신 일단 견적부터 뽑는 것이다. 그렇게 아카데미 건은 천천히 진행하기로 하고, 일단은 가진 돈을 모두 메이플에 투자했다.

현제 메이플사의 주가는 100달러 선. 지금 사면 당장 올해에만 두 배는 오를 것이다. 이런 대박 기회를 놓치는 건 너무도 바보 같은 일이었다.

‘투자는 일단 그렇게 하고, 이제는 아카데미 설립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봐야겠는데?’

만약 오솔이 전생의 기억이 없는 그저 스무 살의 축구 선수였다면 벌써부터 아카데미와 같은 축구 외적인 문제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어떻게든 기량을 올리고, 더 나은 팀에서 뛰기 위해 최선을 다했겠지.’

하지만 그는 이미 은퇴 직전까지 갔다 온 사람이었다. 축구를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할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는 시간은 차고 넘쳤다.

‘그때야 허황된 망상에 그쳤지만, 이제는 아니지. 이제는 애들한테 떳떳한 아버지가 되고 싶거든.’

띠리리리!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오솔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침 찾던 사람이라 그런지 액정에 뜬 별명이 오늘따라 더 반가웠다.

[차미네이터.]

“또 같이 귀국하자는 걸까?”

오솔은 일사천리로 풀려나가는 일들에 함박웃음을 흘렸다. 차태민의 아버지가 바로 분데스리가의 갈색폭격기 차호진 아닌가. 또 차호진하면 국내에서 최초로 유소년 축구교실을 만든 인물로 유명했다.

‘잘하면 맨입으로 아카데미 설립 노하우를 배울 수 있겠는데? 아니지. 맨입은 좀 그러니까 대신에 립서비스를 잔뜩 해줘야겠다.’

오솔은 바닥난 잔고를 생각하며 차태민과 같이 차호진을 만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 * *

그렇게 오솔의 이적이 완전히 결정 났을 때였다. 함부르크 팬들의 심장을 또 한 번 아프게 할 소식이 전해졌다.

[레알 마드리드, 반 더 바르트를 노리고 2천만 유로(약 260억 원) 장전.]

[함부르크는 과연 반 더 바르트는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들고 사진을 찍은 반 더 바르트, 계약 임박?]

[반 더 바르트의 에이전트 曰 “최근에 레알 마드리드와의 계약에 합의했고, 이제 세부 사항을 조정하는 일만 남았다.”]

원래대로였다면 내년에야 느지막이 떠났을 반 더 바르트가 1년이나 더 빨리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맨시티는 관심 없어요?”

오솔의 질문에 반 더 바르트가 스트레칭을 멈추고 일어선다. 아직 회복이 완전치 않은 모양인지 움직일 때마다 인상을 쓰는 모습이 힘들어보였다.

“잉글랜드에는 뜻이 없어.”

“대우는 맨시티 쪽이 더 좋을 걸요?”

“그렇겠지. 하지만 프리메라 리가 무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내 꿈꿔왔던 곳이야. 게다가 다른 팀도 아니고 레알 마드리드에 들어갈 수 있는데 거부할 수는 없었어.”

레알 마드리드는 프리메라 리가 최다 우승(31회)과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9회) 기록을 동시에 갖고 있는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팀이었다.

게다가 페레스 회장의 갈락티코 정책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최고의 구단이라는 걸 증명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하긴 지금의 맨시티는 레알에 비하면 보름달 아래 반딧불 수준이죠.”

“지금의? 네가 가서 바꿔놓겠다는 거야?”

“바꾸는 거야 새로운 구단주가 알아서 하겠죠. 다만 저는 그 시기를 앞당길 뿐이고.”

오솔은 알 듯 말 듯한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지만 이제는 갈 시간이었다.

“내년…… 아, 내년에는 안 되는구나. 내후년에 챔스에서 보죠.”

“후후. 1년으로 되겠어?”

“라파엘이야말로 주전 경쟁에서 지지 마요. 알고 있죠? 최근에 스네이더도 레알로 이적했다는 거.”

“걱정 붙들어 매. 아약스 시절의 상하관계를 되살릴 생각이니까.”

“힘내요.”

“너도.”

오솔과 반 더 바르트가 손을 맞잡았다. 이번 악수는 조금 길었다. 오늘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함부르크의 역사를 새로 써나갔던 두 사람이 이제는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겨우 2년 사이에 별 일이 다 있었구나.’

오솔은 훈련장을 훑어보며 추억에 젖어들었다. 처음 반 바이텐을 상대로 몸싸움을 걸었던 순간부터 최근에 AC 밀란전을 준비하며 구슬땀을 흘렸던 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이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잘 있어라. 하에스파우(HSV).”

오솔은 그렇게 함부르크에서의 시간을 끝마쳤다. 함부르크에서의 2년을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분데스리가 1회 우승. 두 시즌 연속 득점왕. 총 성적 56골 19도움.

UEFA컵 우승. 10골로 득점왕 등극.

챔피언스 리그 16강. 11골. 득점왕.

* * *

6월 2일. 한국에서 네덜란드와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네덜란드하면 반 더 바르트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아쉽게도 그를 볼 수는 없었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멤버가 1.5군에 가까웠던 데다가 반 더 바르트가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장거리 비행을 피했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에서 핌 베어백 감독은 신인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다.

쓸 만한 자원을 찾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는데, 최근에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지면서 최상욱을 비롯한 선수들이 제외된 여파가 국가대표에까지 미친 것이었다.

“흐아암.”

오솔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신인 위주로 경기를 꾸려나간 덕분에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쩌면 장시간 비행으로 피로가 남았을 유럽파를 배려하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박해진 선배랑 이영신 선배는 부상이랬지?’

그 외에도 부상 때문에 많은 유럽파가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베어백 호는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준비하는 대회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아시안컵이었다.

아시안컵은 아시안 게임에 비해 주목도도 떨어지고 그다지 인기도 없는데다가 심지어는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상금도 없었다. 아시아만의 잔치도 안 되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그런 애매한 대회였음에도 일단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규정한 대륙 간 대회였다. 소속팀에서도 차출 거부가 불가능한 대회고, 그건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여름에는 좀 쉬나 했는데…….’

규정에 따르면 대회 시작 2주전부터 소집할 수 있지만 베어백호는 대회 3주전부터 선수들을 소집하기로 했다.

베트남이나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대회 3개월 전부터 선수를 소집해서 합숙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번에도 오솔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결승까지 진출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시안컵이 끝나는 건 7월 29일이었다.

유럽은 리그가 8월 둘째 주부터 시작하니, 대회가 끝나자마자 영국으로 날아가야 겨우 합을 맞춰볼 수 있었다.

‘바쁘구나 바빠.’

오솔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당장 내일부터 차호진 감독을 만나러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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