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25화
24장 인생을 낭비하며 깨달은 것
벤투 감독의 스포르팅 CP는 국내에서 흔히 스포르팅 리스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팀이다.
그 유명한 호날두를 키워낸 팀이었고 이전에는 피구를 배출한 역사가 있었다.
스포르팅 CP는 이들 외에도 시망 사브로자, 콰레스마, 나니 등 A급 측면 자원을 많이 육성하면서 포르투갈을 측면 자원의 나라로 불리는데 일조했다.
올 시즌에 눈여겨볼 선수라면 단연 포스트 호날두라고 불리는 루이스 나니였다. 물론 그 외에도 주앙 무티뉴나, 미겔 벨로주 같은 선수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날은 맨유의 스카우트도 경기를 보러 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빅 클럽의 스카우트들은 다 모였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한 사람의 등판에만 꽂혀있었다. 상기(上記)한 나니가 아니라 새롭게 유망주 랭킹 1위에 올라선 함부르크의 스트라이커, 오솔이었다.
“3천만 유로(약 390억 원)의 사나이라 이건가?”
이는 그들이 매긴 값이 아니었다. 인테르 밀란과의 일전에서 두 골을 기록한 다음날, 오솔의 에이전트인 미노 라이올라가 언론을 만나 떠든 말이었다.
“3천만 유로가 많다고? 천만에! 오솔이 지난 1년간 펼친 활약과 현재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결코 과한 액수가 아니지. 실제로 유럽 전역이 그를 원하고 있고, 몇몇 팀은 상당히 의욕적이야. 덕분에 나는 매일같이 비행기를 타야 하지. 당장 내일은 밀라노를 거쳐 런던으로 가야 한다고!”
몸값을 올리려는 수작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첼시의 구단주는 3천만 유로라는 가격을 상당히 합리적인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른 살의 셰브첸코를 5천 1백만 유로에 샀으니, 열아홉 살에 3천만 유로면 싸 보이겠지.”
스카우트의 목소리에는 비아냥거림이 반, 걱정이 반이었다.
EPL의 중계권 수입이 늘어나면서 리그에 속한 대부분의 구단에 재정적인 여유가 생겼으나, 그 때문인지 구단 간 출혈경쟁은 점점 더 심해졌다. 여기에 첼시 구단주의 돈지랄까지 더해지자 선수 이적료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19살짜리 꼬마의 이적료가 베컴의 것보다 높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야?”
더 화가 나는 건 그 돈을 내고서라도 오솔을 사려는 구단이 있다는 것이다. 당장 그의 구단부터 그런 상황이었고 말이다.
“경쟁이 붙으면 가격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고, 그럼 예정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하겠지. 결국 몇몇 선수는 포기해야 할지도 몰라.”
맨유의 포르투갈 지역 스카우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놓쳐야 한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나 그가 직접 관찰했던 선수들인 탓에 아쉬움이 더 컸다. 조금 과장하면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나니랑 안데르손은 꼭 데려와야 하는데…….’
다음 시즌 맨유가 목표로 하는 선수들 몸값을 다 합치면 약 5천만 파운드(약 720억 원)에 달했다. 그런데 여기에 오솔까지 산다? 그러면 한해 이적료가 무려 7천 6백만 파운드(약 1,100억 원)까지 치솟게 된다.
아무리 맨유가 예전부터 돈을 펑펑 쓰기로 유명한 구단이었다고 해도 이 정도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지금껏 첼시를 욕하며 해왔던 ‘역사와 영광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한순간에 무색해지는 것이다.
‘호날두는 2, 3년 안에 반드시 떠나. 그의 대체자로는 나니가 딱이야.’
그러니 나니는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안데르손도 반드시 필요했다. 장기적으로 스콜스를 대체할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원에 힘을 보태줄 오언 하그리브스도 데려와야 하고, 반 니스텔로이가 빠져나간 빈자리도 메꿀 필요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루이 사아가 잘해주고 있지만 그는 언제 다쳐도 이상할 게 없는 Mr. Glass 아닌가.
그런 면에서 확실한 골 결정력에 튼튼한 몸을 가진 오솔은 최적의 카드였다. 몸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차라리 엘 니뇨쪽을 노리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는데…….’
다가올 이적 시장에는 오솔 외에도 대어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제2의 라울이자 ‘엘 니뇨(소년)’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페르난도 토레스였다.
‘오래간만에 특급 매물이 둘이나 나왔는데, 가격은 떨어질 기미가 없구나.’
시장에는 여전히 특급 공격수를 원하는 팀들로 즐비했다.
와아아!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골이 들어갔다. 오솔이 넣었는지 관중석에서 그의 이름이 들려왔다. 자꾸 보면 정든다고 이제 오솔을 좋아하는 팬들도 꽤나 많았다.
“3천만 유로라…….”
득점 장면을 확인하던 스카우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비싸니 뭐니 불평해도 저렇게 쉽게 골을 넣는 걸 보면 탐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 * *
“한 골 더 넣죠.”
오솔은 1 대 0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 콧김을 뿜어냈다.
“당연하지.”
투지가 넘치는 건 반 더 바르트나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의 최소 조건은 3승이었다. 물론 가끔씩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면서 3승을 하고서도 탈락하는 팀이 발생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승점 9점이면 안정권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함부르크는 이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게 이기며 승점 3점을 땄고, 인테르와 비기면서 승점 1점을 더했으니 벌써 4점이나 모았다. 오늘 경기를 포함해서 남은 네 경기 중 두 경기만 이겨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라파엘이 언제 또 다칠지 모르니까, 멀쩡할 때 최대한 많이 이겨놔야지.’
게다가 리그까지 생각한다면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되면 남은 경기에서 체력 안배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함부르크 선수들은 챔스 16강에 대한 열망으로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이는 곧 두 번째, 세 번째 골로 이어졌다.
‘벤투 감독에게는 조금 미안하네.’
오솔은 오늘 경기 두 번째 골이자 챔피언스 리그 통산 다섯 번째 골을 넣고는 스포르팅 벤치를 힐끗 훔쳐봤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선수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경기가 마음 같지 않은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안면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솔직히 날 부른 적도 없는 사람이잖아.’
2018년에는 이미 오솔의 평소 행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라서 국가대표에서조차 소집하기 꺼려했다. 들어왔다간 백 퍼센트 확률로 불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오솔은 골 넣는 재주 외에는 좋게 봐줄 만한 구석이 없었다.
‘내가 자초한 면이 있었지만, 어쨌든 국대에 안 부른 것도 사실이잖아?’
덕분에 벤투 감독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즉, 상대를 농락하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네 골, 다섯 골…… 경기가 90분에 가까워질수록 전광판의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세 골인가…… 아쉽지만 이쯤에서 만족하자.’
오솔은 해트트릭을 기록해놓고선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벤투 감독이 봤다면 뒷목을 잡았을 법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순조로운 챔피언스 리그 나들이가 이어지는 동안, 리그에서는 몇 차례 패배를 기록해야 했다. 주전 선수들의 컨디션에 문제가 생기면서 찾아온 결과였다.
그럼에도 함부르크는 여전히 리그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 최근에 바이에른 뮌헨이 침몰하기 시작하면서 함부르크를 견제할 팀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함부르크의 팬들은 파죽지세로 나아가는 팀의 모습에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이런 기세라면 챔피언스 리그와 리그 트로피를 동시에 들어 올리는, 진정한 의미의 더블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들은 이런 활약이 1, 2년만 반짝할게 아니라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이어지길 바랐다. 그러려면 팀의 핵심인 오솔과 반 더 바르트가 반드시 팀에 남아야 했다.
[슬슬 오솔이나 라파엘에게 재계약을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니야?]
[동감이야. 우물쭈물하다간 두 선수 다 잃는 수가 있다고.]
[과연 재계약에 응해줄까? 오솔의 에이전트는 지금도 사흘이 멀다 하고 이적할 곳을 알아본다잖아. 듣기로는 라파엘도 사석에서 스페인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던데…….]
[제바알! 남아줘!]
시즌이 시작한 지 고작 3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팬들은 벌써부터 두 사람의 재계약을 애원했다. 그들은 함부르크 운영진의 생각과 재정 상태 등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만큼 더 불안해했다.
그러던 차에 함부르크 팬들을 한층 더 애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10월 중순, 숨 가쁘게 달려오던 일정이 잠시 멈추고 다시금 A매치 일정이 진행되던 어느 날이었다.
[베어벡호, 시리아와의 실망스러운 1대1 무승부. 해외파까지 총동원한 결과가 겨우 이것?]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베어벡호가 가나전 3 대 1 패배에 이어 약팀 시리아와의 경기에서도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함부르크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소식은 이게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경기 후 이어진 핌 베어벡 감독의 인터뷰였다.
[오솔의 출전 금지가 풀리는 순간 바로 아시안게임 명단에 포함할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전방의 공격 문제는 한순간에 해결할 수 있다. 마침 오솔은 연령 제한에도 걸리지 않는다. 소속팀에서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오솔을 도하로 데려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던 함부르크 팬들은 가만히 아시안게임 일정을 살펴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첫 경기가 12월 2일이었던 것이다.
선수들을 적어도 보름 전에 소집한다는 걸 생각한다면 오솔이 11월 중순에 팀을 이탈한다는 결론이 나오고, 이렇게 되면 적어도 챔스 두 경기는 오솔 없이 치러야 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아시안게임이라니! 오솔이 없으면 전방이 너무 불안한데…….]
[그냥 소집 거부하면 안 되나? 오솔의 주급은 우리가 주고 있는데 왜 지들이 마음대로 데려가려 하냐고? 챔스에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혹시나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맞아. 오솔은 이번에 월드컵까지 치르면서 제대로 휴식 시간도 없었잖아. 이제 겨우 19살인데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니야?]
[그러게…… 이러다가 내년에 갑자기 컨디션이 뚝 떨어진다거나 하면 진짜 큰일인데.]
이러한 걱정은 구단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토마스 돌 감독은 강경한 태도로 소집을 거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별 리그 마지막 두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사실상 이 경기에서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갈린다고요.”
하필이면 네 번째 경기에 인테르와 붙게 되었고, 아시안게임과 시기에 나머지 팀들이랑 붙게 생겼다. 돌 감독은 그 두 경기에 사활을 걸 생각이었기에 이처럼 분개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약팀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닙니다. 12월에 모스크바까지 원정을 가야 합니다. 경기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게다가 11월 중순에 소집하면 리그 경기도 거의 4경기나 빠져야 하는데 이건 또 어떻게 감당하란 말입니까.”
“진정해요, 감독.”
바이어스도르퍼 단장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최대한 소집을 거부하는 쪽으로 협상할 것을 약속했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최대한 합류를 늦출 수 있게 노력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사실 아시안게임은 FIFA에서 지정한 A매치가 아니기에 차출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또한 오솔은 어차피 지난 월드컵으로 이미 군 면제 혜택까지 받은 상태였다. 굳이 아시안게임에 목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2002년, 박해진이 교토 퍼플상가에 있을 때는 소속팀과의 협의 끝에 8강전부터 합류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도 금메달은 얻지 못했지만 어쨌든 선례가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만일 같은 방식을 오솔에게도 적용한다면 챔스 조별 리그를 다섯 번째 경기까지 소화한 다음 아시안게임이 시작할 때에 맞춰 현지에 합류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렇게 되면 양쪽 다 한 걸음씩 양보한 모양새가 나와서 보기에도 좋고, 오솔도 최대한 경험치를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맞이한 상황은 전혀 달랐다.
“예? 지금 25일이라고 했습니까?”
함부르크 관계자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되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맞습니다. 적어도 25일까지는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최소한 일주일은 발을 맞춰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26일에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있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까, 지금?”
“저희 사정도 이해해주십시오. 오솔 선수는 감독이 바뀌고 나서 아직 한 번도 소집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출전 금지였으니까 당연한 것 아니오!”
그러나 협회 관계자는 막무가내였다.
“어쨌든 저희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