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16화
한국과 이탈리아의 8강전 이후에도 월드컵은 계속 진행되었다.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이 붙어서 연장전 끝에 포르투갈이 4강에 올라갔고,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의 악동, 루니도 오솔처럼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호날두의 윙크가 유독 기억에 남는 밤이었다.
같은 날 있었던 브라질 대 프랑스의 경기에서는 지단이 중원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제대로 증명했다. 경기는 1 대 0 프랑스의 승리로 끝이 났고, 최우수 선수는 당연히 지단이었다.
오솔의 징계는 4강을 하루 앞두고 결정되었다.
[오솔 - 국제대회 다섯 경기 출전 금지, 벌금 8천 유로(약 1천만 원).]
징계 수위는 마테라치 역시 오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벌금이 오솔의 약 2배 정도 된다는 점만 조금 달랐다.
이후에는 원래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각각 독일과 포르투갈을 꺾고 결승에서 만났고, 약 7만 관중이 몰려든 베를린의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결전을 치렀다.
아! 다른 점은 이 경기에서 마테라치 대신 바르찰리가 나왔다는 점이다. 이 작은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는 생각보다 컸다.
원래라면 만회골을 넣고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가서, 마침내 지단의 박치기까지 끌어냈어야 할 마테라치가 없는 것이다.
승부는 90분 만에 끝이 났다. 스코어는 1 대 0. 지단의 페널티킥은 그대로 결승골이 되어 프랑스에게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아마 마테라치는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대회 최우수 선수로는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이, 득점왕으로는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뽑혔다. 그리고 이곳에는 오솔의 이름도 있었다.
[최우수 신인 선수 ? 오솔(대한민국)]
오솔이 포돌스키를 꺾고 대회 최우수 유망주로 선정되었다. 거기에 득점 순위 단독 2위로 실버 부츠까지 수상하면서 레벨이 총 세 단계나 올랐다. 이 정도면 개인의 목표를 거의 다 충족했다고 할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태극 전사들. 아쉽지만 잘 싸웠다!]
[대한민국 대표팀, 목표했던 16강을 가볍게 뛰어넘다!]
[대한민국.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으로 우뚝 서다.]
경기 다음날 쏟아진 기사들은 대부분 한국의 선전과 기대 이상의 성과를 칭찬하는 내용들이었다. 오솔에게도 아쉽다는 말은 있을지언정 노골적인 비난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8강이라는 결코 낮지 않은 순위와 대회 내내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4년 뒤, 8년 뒤를 더 기대하게 만든 유망주를 욕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류는 국가대표팀의 병역 문제가 대두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축구대표팀, 월드컵 8강으로 또다시 군 면제?]
[국가대표팀의 금의환향을 환영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
[벌써 세 번째. 억울하면 인기 종목을 하든지?]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주제는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하고, 이는 곧 기자와 신문사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몇몇 이들은 비난의 표적으로 오솔을 세웠다.
[폭행으로 오명을 떨친 이에게도 군 혜택을 줘야 하는가?]
[오솔의 인터뷰 태도 논란 가속!]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러나 반성 없이는 개선도 없다.]
오솔의 인터뷰에 시원함을 느꼈던 이들이 그를 옹호하려 했으나, 4강 진출을 놓쳤다는 사실에 분노한 네티즌들의 비난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직은 유명인들이 네티즌을 고소하는 일이 드문 시기라 그런지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쩔 수 없다. 시즌 내내 잘했더라도 중요한 경기에서 못하면 욕먹는 게 축구 선수란 직업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대표팀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는 12시간 사이에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오솔은 차세대 국가대표 스트라이커이자 이미 월드 클래스 선수다.
시작은 안태환의 인터뷰 기사였다. 그는 오솔의 실력에 대해 언급하며 그가 없었다면 어쩌면 8강은커녕 16강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오솔의 조언 덕분에 윙백으로 전환하길 결심했다. 오솔은 축구를 보는 눈도 뛰어나고, 선배들에게도 싹싹한 친구다.
이어지는 칭찬은 차태민의 것이었다. 오솔 덕분에 빠른 포지션 전향을 이루었고, 원래라면 불가능했을 월드컵 승선까지 했으니 그의 입에서 칭찬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건방진 놈이지만 녀석의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축구 실력으로는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오솔을 깔 수 없다.
이건 누굴까? 놀랍게도 패스가 없다며 매번 투덜거렸던 이청운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도 오솔의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솔은 EPL이나 다른 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같이 훈련해보면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재능이 아니라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져서 지금의 그가 있다는 사실을…….
이것은 연습과 훈련 그리고 노력에 한해선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박해진의 평가였다.
오솔과 같이한 선수들의 말·말·말이 끝나고 ‘단독 인터뷰’라는 꼭지가 달린 기사가 KBC 스포츠에서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오솔의 든든한 우군, 이유리 기자의 기사였다.
덕분에 사람들의 비난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오솔은 아직 어린 선수였고, 그럼에도 4골을 넣으면 팀이 8강 진출을 견인한 한국 축구의 희망이었다.
[하긴, 오솔이 없었으면 8강까지 선전하기도 힘들었을 거야.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남은 시간도 10대 10으로 싸워서 진 거잖아. 오솔의 비중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지.]
[나도 동감이야. 그런 의미에서 오솔의 병역 혜택을 지지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병역 면제는 아니지!]
[왜 안돼? 솔직히 이번 대회에서 오솔이 한 일을 생각하면 면제 두 번은 줘도 되는 수준인데? 나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번에 면제해줘서 오솔이 유럽에서 훨훨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아시안 게임도 있고, 올림픽도 있는데 뭐 하러 월드컵까지 면제 혜택을 주냐. 그렇게 잘하면 나중에 메달 따면 되잖아.]
[맞아. 지금 병역 혜택 줬다가 나중에 올림픽이랑 안 나오면 어떻게 해? 당장 연말에 도하 아시안 게임도 있는데.]
[바보들아 오솔은 나이도 어려서 와일드카드로 쓰는 것도 아니고, 소속팀에서 거부하지만 않으면 차출 가능하다. 그리고 군대 면제해줬으면 당연히 나라를 위해서 뛰어야지.]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하는 소리 아니냐. 나중에 아프다는 핑계로 빠질지 어떻게 알아? 솔직히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들고, 시즌 중에 아시안 게임으로 빠지는 게 얼마나 눈치 보이겠어?]
[그래도 애가 하는 짓이 됐잖아. 한번 믿어 봐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여론이 뒤집혔을 때, 국가대표 선수들이 귀국했다.
인천 공항에는 엄청나게 많은 환영 인파들이 모여들었다.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수준급이었고, 이룬 성과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솔에게 악의를 품은 이도 있었다. 여기 토마토를 들고 있는 사내가 그런 부류의 인물이었다.
“너 때문에 다 망했어!”
남자는 고함과 함께 물러터진 토마토를 집어던졌다. 그러나 남자는 송구(送球)를 할 줄 모르는지 토마토는 오솔의 발치로 향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토마토가 멈췄다. 오솔이 들어 올린 발, 정확히는 구두 위에서 말이다.
‘뭐야?’
‘볼터치 한 거야, 지금? 토마토를?’
오솔의 구두 위에 멈춘 토마토는 어디로도 튕겨나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게다가 밑이 조금 뭉개지긴 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아무런 손상 없이 깨끗했다.
동료 축구 선수들은 물론이고 지켜보고 있던 일반인들도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는 가운데 오솔 혼자 아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밑이 조금 터졌네. 볼터치가 95에 도달했는데도 아직 부족한가?’
오솔은 비행 중에 12개의 포인트 중 7개를 볼터치에 찍었고, 나머지 5개는 순간속도에 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볼터치는 현재 90(+5)에, 순간속도는 79에 도달했다.
‘마라도나의 귤 트래핑을 재현해볼까 했는데, 토마토가 너무 물러서 그런지 안 되네.’
오솔이 태평하게 토마토를 튕기려 하자 안태환이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야. 좀 가만히 있어라. 카메라도 있는데…….”
“본능적으로 발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해요. 이게 다 축구 선수의 직업병인데.”
“하여튼 말로는 한 마디도 안 져요.”
공항에서의 작은 해프닝은 그렇게 지나갔다. 사람들은 대표팀에게 토마토를 던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오솔이 그 토마토를 받아내고 트래핑까지 하려 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가졌다.
[난 놈은 난 놈이네.]
모두가 동의하는 한 마디였다.
* * *
오솔은 14일까지 복귀해야 하건만 13일까지도 짐을 싸지 않았다. 2006년 월드컵 8강의 업적을 높이 평가받아 4주의 기초 군사훈련과 체육 분야 대체복무를 내용으로 하는 병역 특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솔은 14일부터 4주간 훈련을 받으러 들어가야 했다. 공교롭게도 개막전 1주일 전까지 한국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잘 다녀올게. 몸조리 잘해.”
“응, 자기도 조심해.”
오솔은 여민주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이어서 쌍둥이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이제 그녀의 배는 만삭에 가까웠다. 8월 중순이 출산 예정일이었으니, 아마 그가 훈련을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산고(産苦)가 시작될 것이다.
“응애애!”
“응애애! 응애!”
타이밍이 좋게도 출산은 오솔이 훈련을 마치고 나온 다음날 이루어졌다.
“하하하! 안녕! 대한아, 주희야! 아빠야!”
오솔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아빠’라는 말이 나왔다. 이전 같았으면 질색했을 단어가 그의 입에서 너무도 쉽고 홀가분하게 튀어나온 것이다. 작은 천사들이 가져온 기적에 가족 모두가 활짝 웃음 지었다.
그러나 오솔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여유가 많지 않았다. 겨우 이틀만 아이들과 함께 하고, 곧바로 독일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리그 개막전은 23일로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16일에 UEFA 슈퍼컵 일정이 잡혀있었다.
상대는 작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인 FC 바르셀로나였다.
‘한번 붙어보자 메시!’
-오솔(Lv 53. 오른발잡이, 왼발 숙련도 47%)
-신체 : 균형감각 73/ 힘 90(+5)/ 반응속도 72/ 순간속도 79/ 주력 91/ 점프력 90(+5)/ 지구력 92/ 강인함 92(+5)
-기술 : 개인기 65/ 드리블 68/ 볼터치 90(+5)/ 슈팅 90/ 패스 76(+1)/ 헤딩 90(+5)/ 스로인 13/ 태클 54/ 일대일 마크 52
오솔은 10% 상승한 상태창을 확인하며 각오를 다졌다. 이 정도라면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진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쏜살같이 다가온 8월 15일, 오솔과 함부르크 선수들은 모나코에 위치한 스타드 루이 II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UEFA 슈퍼컵은 비교적 중요도가 적은 단판 승부였으나 그 상금만은 UEFA컵의 우승 상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함부르크는 베스트 멤버를 모두 기용했다. 최전방에는 만주키치와 오솔을, 그 바로 밑으로는 반 더 바르트가 섰다. 중앙 수비수는 새로 영입한 빈센트 콤파니와 요리스 마티센으로 꾸렸다.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바르셀로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데스 골키퍼는 물론이고 벨레티, 모타, 마르케스, 푸욜의 4백과 싸비와 데쿠, 실비뇨의 중원, 그리고 호나우지뉴와 에투, 메시의 트로이카까지 총출동했다.
‘재밌겠네.’
오솔은 메시의 옆모습을 보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메시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러곤 훗! 하고 그도 마주 웃었다. 그 모습이 꼭 산 정상에서 이제 막 올라온 친구를 바라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