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12화
그 후 각국 대표들이 독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또한 그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세계인들이 운집했고, 독일 전역이 흥분으로 가득 찼다.
파아앙!
철썩!
“나이스 패스!”
그러나 이곳 쾰른의 한 연습장에는 그러한 기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 선수단이 토고전을 앞두고 비공개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솔과 안태환의 컨디션이 괜찮군요. 박해진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핌 베어벡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토고전은 3백으로 시작하지.”
아드보카트 감독은 토고의 포메이션을 4-4-2로 예상했다. 키가 큰 아데바요르와 발이 빠른 쿠파자가 빅&스몰 조합을 이룰 것으로 본 것이다.
“토고의 수비진도 조직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이청운과 박해진의 빠른 발을 이용한다면 상대를 충분히 흔들 수 있을 겁니다.”
토고도 한국처럼 수비 불안이 약점이었다.
“음. 좋아. 그럼 3-4-3으로 나서면 되겠군.”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시작한 토고전.
삐이익!
[아…… 선취골을 내주는 대한민국입니다.]
아쉽게도 한국은 상대에게 먼저 골을 내주고 말았다. 토고가 아데바요르를 원톱으로 세우는 4-5-1로 나왔고 그에게 가짜 9번의 역할을 맡겼기 때문이다.
세 명의 수비수가 아데바요르 한 사람만 상대하는 것도 비효율적인데 심지어 공격수가 수시로 중원으로 내려가니 중원 싸움에서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늦었지만 전술에 변화를 줬다. 중앙 수비수로 있던 여민국을 중원으로 올려서 4백에 더블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 형태로 바꾼 것이다.
덕분에 한국은 중반부터 경기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후반전에 이청운의 프리킥 골과 안태환의 중거리 슛으로 역전을 일궜고,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는 오솔이 헤딩골까지 넣으며 선취골의 악몽을 고스란히 갚아주었다.
[국민 여러분! 보이십니까, 우리의 태극전사들이 사상 첫 월드컵 원정승을 기록합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호의적인 반응이 쏟아졌고, 16강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대표팀은 좋아할 겨를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상대는 아트 사커로 유명한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오늘 4-2-3-1 진형으로 나왔습니다. 파비앵 바르테즈 골키퍼, 윌리 사뇰, 릴리앙 튀랑, 윌리암 갈라스…… 그리고 지네딘 지단과 원톱에는 티에리 앙리입니다.]
[선수들 면면이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반면 한국은 오늘 4백을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 토고전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 같습니다. 그때 3백의 측면 커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결국에 실점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보는 사람까지 불안해지는 수비 조직력이었습니다. 오늘은 제발 탄탄한 수비를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사실 이건 수비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드필더진이나 공격진에서 그만큼 수비에 빠르게 가담해줘야 하는데 토고전에서는 그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이었죠.]
[상대는 프랑스니 더욱더 조심해야겠습니다.]
삐이익!
프랑스와의 일전이 시작되었다.
오솔은 지단과 마켈렐레, 비에이라를 지나쳐 갈라스와 튀랑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이름값 하나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은 존재들이긴 한데…….’
그러나 지단과 마켈렐레 그리고 튀랑은 한 번 국가대표를 은퇴했다가 작년에 복귀한 선수들이었다.
클래스는 여전했지만 체력과 운동능력은 한창때에 비해 반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 기억에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별로 좋지도 않았어.’
전생에 프랑스는 결국 결승전까지 올라갔었지만 조별리그 단계에서는 상당히 허술한 모습을 보였다. 공격진은 무뎠고, 수비진은 헐거워서 한국과 무승부를 기록했었다.
‘체력에 문제가 생기면 그 틈은 더 벌어지겠지.’
오솔은 자신의 체력을 믿고 활발하게 뛰어다니며 수비진은 물론, 골키퍼까지 강하게 압박했다.
[바르테즈가 공을 줄 곳을 찾지 못하고 멀리 차냅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먹혀들었는지 아니면 프랑스 선수들의 폼이 아직 덜 올라왔는지 경기는 한국의 우세로 진행되었다. 덕분에 선수들은 어쩌면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거 프랑스 맞아?’
‘할 만 한데?’
시간이 갈수록 선수들의 움직임에 자신감이 붙었고, 돌파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의 선취골로 이어졌다.
[고오오올! 골입니다! 오솔의 스루패스를 박해진 선수가 멋진 마무리로 연결합니다!]
오솔이 중앙 수비수의 시선을 끌면서 생긴 공간으로 박해진이 파고들었다. 그는 사뇰의 몸싸움을 버텨내며 페널티 에어리어 앞까지 전진하더니 침착한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2002년에 프랑스와의 친선전에서 박해진 선수가 넣은 골 장면이 연상되네요.]
[과연 중요한 경기에 강해지는 박해진 선수답습니다!]
[이로서 한국이 1 대 0으로 앞서갑니다!]
한국은 후반전에 다시 더블 볼란치 형태로 전환하며 수비적인 운영에 나섰고, 지친 오솔을 대신해 안태환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실책이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교체로 들어온 프랑크 리베리의 돌파와 앙리의 슈팅으로 동점골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이후 아드보카트 감독은 공을 뒤로 돌리며 수비에 치중했다. 그는 오솔이 빠진 공격진으로 무리하게 공격하기보다는 무승부를 챙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번에도 스위스전이 제일 중요한 일전이 되겠구나.’
문제는 열흘 사이에 연달아 세 경기를 뛰느라 고참 선수들의 컨디션이 많이 하락했다는 데 있었다. 안태환처럼 교체로만 출전한 경우에는 아직까지 여유가 있었으나 이은령이나 김남준 같은 미드필더들은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차이는 스위스를 만나자 더 확연히 드러났다. 4-3-1-2로 중원에 힘을 바짝 준 스위스가 경기를 리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거 프랑스전에서 힘을 너무 많이 뺐나? 나도 좀 피곤하네.’
그나마 여민국이 중원에서 버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 없었다면 벌써 골문이 열려도 두어 번은 열렸을 거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아. 중요한 것은 선취점을 내주지 않는 거야.’
오솔의 시선이 센데로스에게 닿았다. 청소년 세계 선수권에서도 만났던 상대 센데로스. 그는 지난 1년간 아스날에서 주전으로 뛰며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센데로스가 1년 사이에 1의 성장을 보였다면, 오솔은 적어도 5 아니, 10 이상 성장했다. 게다가 포인트를 주로 투자한 분야도 제공권 쪽이었다.
오솔은 그를 막을 자신이 있었다.
[바르네타의 코너킥입니다!]
그리고 운명의 코너킥이 다가왔다. 오솔은 센데로스를 밀착 마크했고, 공이 넘어오는 순간 높이 뛰어올라 공을 걷어내는 데 성공했다.
퍽!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센데로스의 얼굴에 피가 났다는 점이다. 오솔과 머리를 부딪친 그는 미간이 길게 찢어지고 말았다.
어쨌든 오솔이 선취점을 막은 효과는 굉장했다.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고참 선수들이 남은 체력과 정신력을 쥐어짜 후반전까지 버티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경기는 2 대 1, 한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와아아!
교민들, 그리고 붉은 악마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2승 1무. 승점 7점.]
한국이 월드컵 사상 최초로 조 1위로 16강에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2위는 1승 2무로 승점 5점을 기록한 프랑스였고, 스위스는 승점 4점으로 분루(憤淚)를 삼키며 짐을 싸야 했다. 전생에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던 스위스로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물론 국내 언론사는 패배자들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사를 올렸다.
[월드컵 최대 이변! 아시아의 맹주 한국이 G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다!]
[16강 상대는 동유럽의 강호, 우크라이나!]
[2골을 기록 중인 셰브첸코와 오솔의 진검승부!]
심지어 이제 막 국제무대에 발을 내민 오솔과 2004년 발롱도르 수상에 빛나는 안드리 셰브첸코를 비교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작년에 있었던 성지훈과 메시를 비교하는 기사가 떠올렸으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때와 많이 달랐다.
[성지훈 때는 진짜 쪽팔렸는데, 오솔은 조금 덜하네.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가?]
[ㅇㅇ. 막말로 셰바는 지는 해고, 오솔은 뜨는 해잖아. 10년 뒤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이쯤 되면 오솔 하나만이라도 군 면제를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냐?]
[후우. 내가 대신 가주고 싶다. 한 10억이면 대신 가줄 수 있는데.]
오솔은 스위스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벌써부터 군 면제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애국심에 오솔을 너무 고평가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유럽 유수(有數)의 구단들도 오솔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빅클럽들은 오솔이 단순히 분데스리가에서만 통하는 공격수가 아님을 알게 되자 이전보다 더 몸이 달아서 함부르크에 오퍼를 넣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아스날의 아르센 뱅거 감독이었다.
“월드컵 못 보셨습니까? 윌리엄 갈라스나 릴리앙 튀랑이 그를 막기 위해 얼마나 쩔쩔맸는지 보셨잖아요. 활동량과 제공권, 그리고 결정력까지 그는 완벽한 타깃형 스트라이커예요! 심지어 아직 10대고!”
“무리입니다. 함부르크 놈들이 미쳤는지 2천5백만 파운드(약 360억 원) 밑으로는 협상조차 안 하겠다며 뻗대고 있어요. 안타깝지만 이번 시즌에는 임대 선수를 알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아스날 운영진이 내민 카드는 이것이었다.
[줄리우 바프티스타]
“빼애액! 싫어! 오솔 사줘!”
“안 돼! 너무 비싸!”
“시이러!!! 오솔 살 거야! 오솔! 빼애애액!”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 네가 사고 싶다고 해서 이미 로시츠키도 사줬잖아!”
뱅거 감독은 오솔을 사고 싶어서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고, 아스날 운영진은 그를 진정시키느라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오솔의 몸값이 기하급수적으로 뛰자 함부르크 수뇌진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월드컵 특수가 빠지기 전에 오솔을 팔아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건 몸값이 2천5백만 파운드였다. 계약 기간이 3년이나 남았고, 오솔이 아직 19살의 어린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고 정한 값이었다.
*참고로 2006년 5월에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한 베르바토프의 몸값이 1천9십만 유로(약 140억 원)이었다. 함부르크가 내건 가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쨌든 로시츠키를 사느라 이적료가 부족한 아스날이나 마이클 캐릭을 데려오면서 1800만 파운드(약 260억 원)를 써버린 맨유로서는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레알이나 바르셀로나는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흩어지는 유벤투스 선수들을 쓸어 담느라 오솔에게 관심이 없었고, AC밀란은 이미 질라르디노가 있는 상태에서 오솔에게 그처럼 많은 돈을 쓸 수 없다며 포기했다.
그러나 여기, 이적 의사를 내보인 구단도 존재했다.
그 주인공은 7, 80년대 세계 최고의 구단이었던 ‘The Reds’ 리버풀이었다.
그들은 디르크 카위트와 크레이그 밸러미에게 접근하는 걸 멈추더니 남은 이적 자금 2천2백만 파운드를 모조리 끌어 모아 함부르크에게 제안했다.
“2천2백만 파운드라니! 이걸 어떻게 하지? 지금 팔아야 하나?”
상상을 초월하는 빅딜에 구단주, 베른트 호프만의 호흡이 격해졌다. 그는 당장이라도 사인할 것처럼 펜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구단주를 막은 건 토마스 돌 감독이었다. 다음 시즌에 챔스에 도전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 오솔처럼 대체할 수 없는 선수를 파는 건 미친 짓이었다. 하물며 그는 계약기간도 많이 남아서 적어도 1년은 아무 문제없이 쓸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2천2백만 파운드야! 2천5백만 유로라고! 이게 얼마나 큰돈인지 모르겠나?”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마이클 오웬을 사면서 지급한 금액이죠.”
“그걸 아는 사람이 팔지 말라고 하는 건가?”
“네, 두고 보십시오. 내년에도 오솔의 몸값은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보다 더 뛸 게 분명합니다.”
돌 감독의 호언장담에 호프만 구단주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침 바이어스도르퍼 단장이 감독의 발언에 힘을 보탰다.
“아직 월드컵이 다 끝난 것도 아니잖습니까. 16강전까지 보고 결정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도 개인적으로는 돌 감독의 판단에 동의합니다. 오솔은 내년에 챔피언스 리그 성적에 따라 몸값이 더 오를 수도 있어요.”
호프만 구단주는 두 사람의 끊임없는 설득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오솔의 이름 앞에 NFS(Not For Sale) 딱지가 붙고 있을 때, 한국의 16강전이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