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11화
찰칵! 찰칵, 찰칵!
세 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동시에 입국하자 플래시가 쏟아졌다. 농담이 아니라 전방 180도 어디를 보아도 번쩍이는 빛으로 가득했다.
하긴, 4강의 주역 두 사람과 올 시즌 역사에 남을 활약을 선보인 특급 유망주의 귀환이었다. 기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것이 당연했다.
“후. 진짜 많네요.”
“요즘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다더니…….”
“듣기로는 올해 초부터 기사가 쏟아졌다는데요?”
어디 기사뿐인가. 100일 전에는 월드컵 D-100이라고 해서 특집 방송까지 만들 정도였다. 모두 2002년 4강의 기대가 2006년 대회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보다 우리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
“나라 망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하하. 그런가? 아무튼 국민들의 기대가 크니까 우리가 잘 해야 돼.”
바야흐로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로 이른 시기였다. 이 흐름이 앞으로 4년만 더 간다면 한국 축구의 체질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우리의 등에 국민들의 기대와 한국 축구의 미래가 달려있어.”
안태환이 느끼는 책임감은 생각보다 컸다. 오솔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숭고한 의지는 알겠으나,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공항에서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세 사람은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오솔은 어머니와 동생, 이탁수와 임신한 사모님까지 만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으음…….”
침대에 몸을 누이자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반나절의 자유시간이 고작일 정도로 바쁜 일정에 오솔도 한계에 부딪혔다.
“후우. 돌아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월드컵이네.”
전생에서는 2010년 월드컵이 그의 첫 월드컵이었다. 그때도 적지 않는 성과를 내긴 했으나 지금처럼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았다.
아니, 불편했다는 쪽에 가까웠다. 대표팀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성지훈이나 여민국 같은 선수들은 그를 혐오하다시피 했다.
“이제 성지훈은 사라졌고, 형님은 내 가장 큰 아군이지.”
우주원이 뽑히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그들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도 있으니 병역특례의 길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뭐, 내가 없더라도 아시안 게임 우승은 충분히 가능하니까.’
오솔은 연말에 죽어라 뛸 우주원에게 애도를 표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네? 병역 특혜를 못 받을 수도 있다고요?”
여민국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 왜요?”
“지금 한국의 분위기가 그래. 지난번에 야구 대표팀이 WBC 4강에 오르면서 ‘병역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아니다.’로 시끄러웠거든.”
“그런데요?”
“200개 나라가 참여하는 월드컵이랑 16개 나라가 참여한 WBC의 4강을 같은 급으로 볼 수 있겠냐며 논쟁에 불이 붙은 거지.”
월드컵은 지역 예선까지 치면 198개 국가가 참여하는, 말 그대로 지구촌 큰 잔치였다. 본선만 계산해도 32개국 참여로 WBC보다 많았다.
“뭐, 결과적으로는 그쪽도 병역 특혜를 받게 되었지만 그 불씨가 남아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 이제는 어째서 축구와 야구 같은 인기 종목만 혜택을 주느냐는 쪽으로 바뀐 게 문제지만 말이야.”
WBC 병역 특혜로 촉발된 논쟁은 이제 예외적인 병역특례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이어졌다. 논쟁에 끼지도 못한 비인기 종목 종사자들과 불공정한 병역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논의 중이라고 하니까 기대를 해보자. 아무리 빨라도 특별법 개정에는 몇 년이 걸릴 거야. 즉, 이번 월드컵까지는 적용된다는 소리지.”
여민국도 은근히 병역 혜택을 바라고 있었다. 아마 그런 마음은 아직 병역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모두가 갖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여론이겠네요. 국민들의 입에서 먼저 병역 특혜를 줘야 한다는 말이 나오면 되는 거잖아요.”
“말은 쉽지만 그게 쉽게 되겠어? 게다가 지금 분위기로 봐선 16강에 오른다고 해도 찬반이 갈릴 것 같은데?”
“…….”
4강 이후 사람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졌다. 16강이 굉장히 쉬운 목표로 인식되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참, 너 보너스 좀 나왔겠다? 더블 달성에 두 대회 다 득점왕에 올랐잖아.”
“아쉽게도 연봉에서 비례해서 주는 거라 크진 않아요. 그래도 구단에서 더 챙겨줘서 5억 원 정도는 되는데…… 솔직히 성에 안 차죠.”
반 더 바르트가 받은 보너스가 10억 원 정도였으니, 딱 절반만 받은 셈이었다.
올 시즌 오솔이 누구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는 걸 생각하면 턱도 없이 적은 액수였다.
“와, 짜다 짜. 우승의 주역인데 고작 5억이야? 세금 떼면 얼마 되지도 않겠는데?”
“함부르크가 원래 좀 그래요.”
“널 잡을 생각이 없나 보네. 요즘에 이적 제의가 쏟아진다더니…….”
“이적 제의요?”
“어? 몰랐어?”
여민국은 자신이 확인한 기사 내용들을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랑 AC밀란, 아스날, 리버풀 등에서 널 원하고 있다고 하더라. 확실한 내용은 아니고 반쯤은 추측성이지만, 외국에서는 꽤나 신뢰도가 높은 모양이야.”
“흠…….”
오솔은 턱을 감싸 쥐었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에이전트가 왜 말해주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아직은 구단에게 이적 선택권이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적 요청이 쏟아지는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면 선수도 많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잠시만 에이전트랑 통화를 좀 해봐야겠어요.”
오솔은 그 길로 쇠렌 레르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과연 이적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지켜봤다.
“……월드컵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함부르크의 소집일은 7월 14일입니다. 그때부터 약 2주간 캠프를 운영하니까 적어도 13일까지는 복귀해야 합니다.”
쇠렌 레르비는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이적설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국 오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에 저에 대한 이적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던데…… 사실이에요?”
“어…….”
쇠렌 레르비는 잠시 말을 주저하더니 이내 사실을 털어놓았다.
“맞습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몇몇 팀에서 아주 강하게 원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밀란 같은 팀은 물론이고 아스날이나 리버풀도 만만치 않게 적극적이랍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경우는 최근에 뤼트 반 니스텔로이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파괴력이 있는 공격수를 찾고 있었고, AC밀란은 안드레이 셰브첸코를 첼시에 팔아치우고 그의 대체자를 수소문 중이었다.
아스날은 니클라스 벤트너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탓에 앙리를 뒷받침할 새로운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구하고 있었는데, 아르센 뱅거 감독의 유망주 수집벽이 발동하면서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 오솔을 겨냥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리버풀은 9백만 파운드(약 130억 원)를 들여 야심차게 영입한 모리엔테스의 이름에 ‘실패’라는 딱지를 달아 발렌시아에 팔았고, 7백만 파운드(약 100억 원)에 사들인 피터 크라우치에게도 그 딱지를 달기 직전이었다.
“왜 말을 안 했어요?”
“어차피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습니다. 함부르크 운영진은 적어도 내년까지는 오솔 선수를 붙잡아둘 생각이에요. 이번에 월드컵도 있고, 내년에는 챔피언스 리그도 나가니까 몸값이 계속 오를 거라고 보고 있는 거죠.”
“그건 알고 있어요. 제가 궁금한 건…… 저한테 이런 사실들을 왜 말하지 않았냐 하는 겁니다.”
“죄송합니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계약이라면 굳이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오솔 선수도 내년에 챔피언스 리그를 거치고 나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이적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 내년까지 구단에 남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정보들을 미리 알려주세요. 참, 계획은 세우셨죠?”
“계획…… 이요?”
“레르비 씨, 설마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계신 겁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당혹감 묻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오솔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그가 해야 할 일들을 설명했다.
“올 시즌 제 활약과 몸값, 쏟아지는 이적 제의를 갖고 재계약에 나서 주세요.”
“재계약이요? 이 시기에는 안 받으려 할 텐데요?”
“그들도 생각이 있다면 이 정도 요구는 들어줄 겁니다. 지금은 그들이 힘을 갖고 있지만 서서히 그 힘이 제게로 넘어올 테니까요.”
“하지만 계약기간이 늘어나면 이적이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슨 소리세요? 당연히 계약 기간은 유지하면서 주급과 계약금만 올려 받아야죠!”
주급 조금 올리자고 계약 기간을 늘리는 건 너무도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건…… 그랬다가 괜히 구단과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걸 방지하는 게 에이전트의 일이잖아요? 자, 어서 가서 제 대신 욕을 먹어주시죠.”
“음…….”
“만족할만한 협상을 이끌어내 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제가 많이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오솔은 영 못 미덥다는 듯이 전화기를 바라봤다.
‘돈 욕심이 없는 건지, 싸우길 싫어하는 건지…….’
에이전트는 선수의 대리인으로서 선수들이 하지 못할 일들을 대신하는 존재들이었다.
때로는 구단과 날을 세워야 하고, 그러면서도 상대가 돌아서지 못하게 절묘한 줄타기를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쇠렌 레르비는 뛰어난 협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구단에게 날을 세우는 법을 몰랐고, 지금도 최대한 뜯어먹을 생각을 하는 오솔과는 달리 장기적으로 구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분란을 막으면서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게 에이전트의 능력이지.’
오솔은 과연 그가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지 기대했다.
“제발 날 실망시키지 마세요. 제게서 호마리우를 봤다면 그만한 선수를 잡을 능력은 있어야죠.”
* * *
5월 23일에 펼쳐진 세네갈 전에는 유럽파들이 대거 휴식을 취했다. 덕분에 조형진이 원톱으로 나설 수 있었다.
조형진은 제법 준수한 활약을 펼쳐 보였으나 이미 오솔의 몸놀림을 확인한 한국인들에게는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26일에는 드디어 오솔이 출전했다. 상대는 바바레즈의 모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였다.
오솔은 경기를 시작하기 전, 바바레즈와 악수를 나누며 밝게 웃었다. 바바레즈도 마찬가지로 흐뭇하게 웃으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삐이익!
그러나 실전에 들어가자 두 선수 모두 승리를 위해서 뛰었다. 오솔은 상대의 수비진을 파괴하며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바바레즈는 한국의 수비 조직력을 허무는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도움을 하나 기록했다.
최종 스코어는 3 대 1. 한국의 승리였다.
“확실히 적으로 만나니까 더 무섭네.”
“에이. 연습 때 많이 겪어봤잖아요.”
“그게 실전이랑 같아? 후후. 아무튼 정말 잘하더라. 훌륭해.”
“세르게이도 멋진 패스였어요. 역시 클래스는 어디 안 가네요.”
두 사람은 유니폼을 교환했다. 바바레즈는 자신의 마지막 국가대표 유니폼을 건네주며 말했다.
“오늘이 내가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경기야. 나는 아쉽게도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지만 네가 내 몫까지 뛰어줬으면 좋겠다.”
“국적을 헷갈리신 건 아니죠?”
오솔은 괜히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바바레즈의 악수와 포옹을 거부하진 않았다. 바바레즈는 오솔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너에겐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어.”
“…….”
“계속 지켜볼 테니 힘내라.”
오솔이 뜨끔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였다.
-팀 동료의 의지를 이어받았습니다. 이는 동료의 신뢰도가 일정 수준 이상 되어야 가능합니다.
-세르게이 바바레즈의 능력치 중 가장 높은 ‘패스’를 배우게 됩니다. 만일 상대의 능력치가 사용자보다 낮을 경우 능력치 상승효과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현재 세르게이의 패스 수치는 82입니다. 사용자와 10 이상 차이가 납니다. 추가 상승효과가 적용됩니다.
-패스 71…… 74!
-패스에 +1 가중치가 붙습니다.
-패스 74(+1)
“후우.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잘 배웠습니다.”
오솔은 라커룸으로 향하는 바바레즈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친선전이 모두 끝나고, 대표팀은 다음날 스코틀랜드로 이동했다.
‘대회는 독일에서 치르는데 왜 훈련을 스코틀랜드에서 하는 거야?’
캠프 장소는 단순히 아드보카트 감독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나마 쾰른까지는 2시간 남짓만 날아가면 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독일 현지에서 적응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현지 아닌, 현지 적응?’
오솔은 그곳에서 노르웨이, 가나 등과 친선전을 치렀다. 그로인해 레벨을 하나 더 올릴 수 있었다. 이로써 월드컵을 앞두고 포인트 20개를 모으게 되었다.
‘좋아. 이제 70짜리를 단번에 90으로 만들 수 있다.’
오솔은 상태창을 띄웠다. 애석하게도 그가 올리고자 했던 슈팅 수치는 아직 68에 불과했다.
‘으으. 이걸 써, 말아?’
고작 2점이었지만 훈련으로 올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이제 일주일 후에는 토고전이 있다. 더는 시간이 없었다.
“에이. 아끼다 똥 된다고 그냥 쓰자!”
그렇게 오솔이 뜻을 정하자 슈팅 수치가 빠르게 올라 순식간에 88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