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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9화 (10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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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9화

21장 수확의 계절

오솔이 나바로에게 다가가자 세비야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함부르크의 선수들 역시 오솔을 감싸 안으며 상대와 대치했다. 2차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그만! 다들 물러서!”

심판은 굶주린 악어떼 한가운데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수들의 반응은 그만큼 격렬했다.

‘이런…….’

나바로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게다가 코에서 피가 철철 나는데도 발부터 잡는 걸로 보아 발은 더 심할 것이다.

“의료진!”

심판은 의료진을 부르고, 오솔을 불러 세웠다. 그리곤 판정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아까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한 행동 같은데…….’

만약 사실이라면 이건 보복행위였다. FIFA에서는 고의적인 반칙과 보복행위를 금기시하고 있었다. 실제로 원인 제공자보다 보복행위를 저지를 선수에 대한 처벌이 더 큰 편이었다.

문제는 명확히 고의인가 아니면 슈팅 과정에서 일어난 우연한 사고인가를 판단하는 일이었다.

1대1의 상황에서 맞이한 절호의 골 찬스에서 과연 상대에 대한 보복을 생각할 수 있을까?

‘젠장. 이럴 때마다 비디오 판독이 있었으면 한다니까.’

앞서서 나바로의 반칙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문제였다. 만약 이번에 오솔에게 과한 판정을 내린다면 분명 편파판정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게다가 오솔은 동양인이다. 자칫하면 편파판정에 인종차별까지 번질 수 있었다.

‘이를 어떻게 하지?’

그렇게 심판이 고심하고 있을 때, 오솔은 지난 10년간 갈고닦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억울함이 가득 담긴 표정과 미안한 마음이 가득 느껴지는 손동작까지 완벽했다. 물론 속마음은 영 딴판이었지만 말이다.

‘자, 포청천 나으리께서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 지켜볼까? 흐흐흐.’

심판 입장에서는 오솔이 적대심을 감추지 않았으면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자신의 판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고의성을 의심하기 어려운 순간을 고르고 골라 보복한 오솔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리 없었다.

결국 심판은 오솔의 계획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아, 옐로카드가 나오네요. 이렇게 되면 득점이 취소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아쉽네요. 저는 슈팅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봤는데요.]

[고의성이 있었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건 아니고, 조금 부주의했다는 점에서 반칙을 선언한 것 같습니다. 만약 보복행위로 판단했다면 바로 레드카드가 나왔을 겁니다.]

단호하고 공정한 판정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정치적인 판정이었다. 당연히 세비야의 팬들과 선수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

경기는 재개되었지만 야유는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오솔이 공을 잡을 때마다 더 심해졌다. 물론 오솔은 그런 반응에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왜들 이렇게 난리지? 설마 이런 판정이 나올 줄 몰랐나?’

심판이 본인 입으로 ‘위험도’와 ‘고의성’은 별개라고 말한 순간, 일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말 자체는 원론적이고 옳은 말이었으나, 문제는 그가 나바로의 고의성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솔이 비슷한 상황을 만들었을 때 어떻게 판정을 해야할지 망설이게 되었다. 심정적으론 보복행위였으나 비슷한 상황에서 이미 고의성이 없다고 판정을 해놨기 때문에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후후. 이미 한번 우연의 손을 들어준 이상, 판정을 뒤집을 수는 없겠지.’

옐로카드를 받은 후에도 오솔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대를 더욱더 거세게 몰아붙였다.

마침 하비 나바로라는 미친개를 물어뜯은 덕분에 상대 수비진은 오솔에게 은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비차 드라구티노비치의 태클!]

[세비야 선수들이 몸을 사리지 않네요.]

그러나 추가 득점은 쉽지 않았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펼쳐진 함부르크의 파상공세에 세비야 선수들이 과격한 태클로 응수했던 것이다.

[옐로카드가 벌써 7장 째네요. 이제 슬슬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는데요?]

[함부르크로서는 아쉽겠네요. 좋은 기회로 연결될 수 있는 장면을 많이 놓쳤어요.]

세비야의 감독은 후반전 중반에 들어서자 진형을 3-5-2으로 바꿨다. 그는 좌우 윙백으로 다니 아우베스와 안토니오 푸에르타를 세우고, 장신 공격수인 카누테 대신 발이 빠른 하비에르 사비올라를 투입했다.

‘중앙 수비를 강화하고 측면 공격은 윙백들에게 맡기겠다는 건데…….’

함부르크의 공격이 중앙에 치중되는 걸 보고 맞춤 대응을 한 것 같았다. 게다가 사비올라까지 투입했다는 것은 전력의 열세를 인정하고 ‘선 수비 후 역습’의 경기 운영을 펼치겠다는 뜻이었다.

‘혹은 승부차기까지 생각하고 있거나.’

전반전에 확인했듯이 팔로프 골키퍼의 페널티킥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 이대로 경기가 무승부로 마무리된다면 승부차기에서 불리할 수도 있었다.

‘그전에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겠어.’

오솔은 승부를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만주키치와 더불어 좌우로 폭넓게 움직이며 측면 공략에 나섰다. 상대도 측면 수비수가 적은 만큼 이렇게 좌우에서 흔들어주면 중앙에 공간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덕분에 오솔은 윙백으로 내려온 푸에르타와 자주 경합하게 되었다.

“날 따라다니려면 적잖이 뛰어야 할 텐데 괜찮겠어?”

“왜, 또 심장 얘기를 하려고? 이번에는 내가 목표인가 봐?”

나바로를 담근 탓일까, 푸에르타의 반응이 영 까칠했다. 오솔은 인상을 찌푸렸다.

“단지 같은 예비 아빠로서 충고하는 거야.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몸을 아낄 줄 알아야지.”

“웃기는군! 하비의 가족에게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겠어?”

“그건 사고였잖아. 그 녀석이 내 눈을 우. 연. 히 찍으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야.”

“…….”

푸에르타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하비 나바로가 팀 동료라고 해도 그 부분은 옹호할 수 없었다.

“잡담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마침 오솔 쪽으로 패스가 넘어왔고, 두 사람은 어깨를 마주하며 측면을 내달렸다. 그러나 작정하고 잠그기에 들어간 세비야를 무너뜨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삑, 삐이익!

그렇게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선수들은 조금씩 걸음이 느려지고, 숨을 헐떡였다. 딱 한 사람, ‘극장골의 주인공.’으로 체력이 늘어난 오솔만 빼고 말이다.

[다시 한번 오솔 쪽으로 공이 갑니다.]

[정말 대단한 체력이네요. 잠깐 쉬었다곤 해도 연장전인데 저런 스피드가 나온다니요.]

[저건 체력만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죠.]

덕분에 죽어나가는 건 푸에르타였다. 이미 한계까지 이른 체력 탓에 따라가기도 힘든데 오솔의 몸싸움까지 감내하려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진짜 시련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오솔이 연장전에 들어서 압도적인 활약을 보이자 함부르크 선수들의 기대가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에이스님이 다 해주실 거야.’가 활성화되었던 것이다.

“힘들면 쉬어. 괜히 무리하지 말고.”

오솔은 반 더 바르트의 패스를 받기위해 가속했고, 그 속도는 지금까지와는 또 달랐다.

‘여기서 놓치면 위험하다!’

푸에르타는 요동치는 심장의 경고음을 무시하며 오솔을 따라 달렸다. 연장전도 이제 곧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막으면 승부차기가 펼쳐진다는 뜻이다.

푸에르타는 무리해서라도 상대를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세 걸음도 떼지 못하고 굳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격통에 눈앞이 까맣게 변해버린 것이다.

‘윽!’

푸에르타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그대로 그라운드 위를 굴렀다.

‘뭐야?’

오솔은 공을 향해 달리다 말고 푸에르타를 돌아봤다.

‘가슴? 설마 심장이……?’

그는 아주 잠깐 고민했다. 이대로 공을 받아서 슛을 시도할 것인지 아니면 바로 푸에르타를 향해 달려갈 것이지.

‘……젠장! 뭘 고민하고 있는 거야?’

그때 오솔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전생에 봤던 기사의 제목이었다.

[또다시 반복된 그라운드의 비극! 스물두 살의 예비 아빠, 푸에르타 심장마비로 사망.]

오솔은 딱히 인류애나 동업자 정신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인 청년의 죽음을 두고 볼만큼 인면수심인 것도 아니었다.

“의료진! 빨리!”

오솔은 재빨리 다가가 푸에르타의 상태를 확인했다. 의식과 호흡,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막 심폐소생술을 하려 할 때, 의료진이 도착했다. 운이 좋게도 그들의 위치가 벤치에 가까운 쪽이었다.

“쓰러질 때 가슴을 움켜쥐었어요.”

의료진은 오솔의 말을 토대로 상태를 확인하더니 급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심판은 바로 경기를 멈췄고, 관중 모두가 일어서서 푸에르타의 회복을 기도했다.

1분……· 1분 30초.

그렇게 2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푸에르타가 눈을 떴다.

“허어억!”

“푸에르타.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심장마비가 왔었어요.”

“심장…… 마비?”

푸에르타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오솔은 안도하며 말했다.

“빨리 병원에 가 봐요. 아직 위험한 거 알고 있죠?”

오솔의 말대로 지금 푸에르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은 상태였다. 비록 적절한 응급조치로 심장이 빠르게 돌아왔으나, 심장마비의 원인을 치료하지 않은 이상 언제 같은 일이 반복될지 몰랐다.

결국 푸에르타는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짝짝짝짝!

관중은 그를 응원하기 위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정신을 차려서 고맙고 별 탈 없이 다시 경기장에 돌아오길 기대한다는 뜻의 박수였다.

그리고 박수는 푸에르타가 경기장을 떠나고 나서도 그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그 대상이 아까까지 야유를 듣던 오솔로 바뀌었다.

“저 녀석, 생각보다…… 아니, 생긴 것보단 착하잖아?”

“그러게 절호의 공격 기회였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푸에르타를 구하러 갔어.”

“우리가 오해한 걸까? 설마 나바로를 다치게 한 것도 우연인 거야?”

세비야의 팬들도 그리고 선수들도 모두 오솔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여기에는 세비야의 팬들조차 하비 나바로의 거친 플레이를 싫어했다는 사실이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맞을 짓을 한 놈이 맞은 것과 팀의 유망주를 살려준 것은 공과(功過)를 따졌을 때 공이 압도적으로 클 수밖에 없었다.

[오솔 선수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야유를 보내던 관중이었는데요. 지금은 오솔 선수가 보여준 동업자 정신에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세비야 선수들도 공을 오솔 선수에게 넘겨주는군요.]

[공격권은 돌려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겠죠. 그래도 조금은 아쉽네요. 정말 좋은 기회였…….]

뻐어엉!

그렇게 분위기가 훈훈하게 흘러갈 때쯤, 오솔이 대뜸 중장거리 슛을 시도했다.

[……는데요. 어, 어?]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던 팔로프 골키퍼는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놀라 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는 생각보다 멀리 나와 있었고, 오솔이 침착하게 찬 슈팅은 중첩된 버프 덕분에 한층 정교하게 날아갔다.

철썩!

[고, 골이네요?]

중계진은 물론이고 관중, 선수들, 심판까지 모두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심지어 함부르크 선수들조차 ‘이렇게 넣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착하다는 거 취소야!”

“비열한 놈!”

“오거…… 아니, 오크 같은 놈!”

우우우우!

다시 야유가 쏟아졌다.

* * *

삑, 삑, 삐이익!

경기는 함부르크의 승리로 끝이 났다. 최종 스코어는 3 대 1이었다.

오솔은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 한 골을 더 넣어서 기어이 해트트릭을 달성했고, 덕분에 세비야 팬들은 억울한 패배를 피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팬들의 기분이 좋아질 리 없었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들도 오솔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쳇! 어차피 졌겠네.”

“그래. 따지고 보면 아까 푸에르타를 살리면서 날린 기회를 본인이 찾아 먹은 거지.”

“팔로프가 너무 방심했어.”

“하긴, 경기는 이미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저 놈을 욕할 수도 없지.”

그렇게 세비야의 팬들은 간신히 패배를 납득할 수 있었다.

[우승팀은 함부르크 SV입니다!]

시상식은 경기가 끝난 직후 바로 이루어졌다.

함부르크 선수들이 거대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꽃가루가 날렸다. 곧이어 샴페인이 분수처럼 피어나고, 형형색색의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선수들은 한 명씩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그때마다 관중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모든 선수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이 있었으나 그중 백미는 오솔이었다.

와아아! 와아!

결승전 해트트릭과 본선 10골로 대회 득점왕 등극!

주급은 반 더 바르트 쪽이 5배 더 많았으나, 오늘 쏟아지는 함성은 오솔이 5배…… 아니, 10배는 더 많았다.

앞에선 열광적인 팬들의 함성이, 뒤에선 폭죽 터지듯 쏟아지는 경험치 폭탄이 느껴지는 상황. 오솔은 술 한 잔 하지 않았음에도 잔뜩 흥취가 올랐다.

‘키야! 달다 달아!’

오솔은 원술 부럽지 않은 달콤함을 느끼며 승리를 즐겼다.

‘꿀물, 꿀물을 다오!’

그는 욕심 그득한 얼굴로 리그 마지막 경기를 기다렸다. 아직 시즌 보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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