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6화
5월 10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필립스 경기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관중석이 조금의 빈틈도 없이 꽉꽉 들어찼고,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해 주변의 술집을 찾는 이들도 수없이 많았다. 하긴, 함부르크와 세비야의 팬들은 물론이고 유럽의 축구팬들까지 모두 모였으니 자리가 부족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경기장에만 최소 3만 6천 명이 운집했으니, 도시를 찾은 관광객은 적어도 5만 명은 될 것이다. 덕분에 인구 20만의 에인트호번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다행이다. 미리 표를 준비하길 잘했어.”
“내가 말했잖아. 올 시즌 우리가 일을 낼 거라고 말이야. 젠장, 내 말대로 조금 더 빨리 샀으면 더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32강에 오르기도 전에 결승전 표를 사는 게 말이 되냐?”
“결과적으론 결승전에 올랐잖아? 그리고 중간에 떨어졌으면 되팔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함부르크 지역지의 칼럼니스트 데니스 쿤츠는 친구의 태평한 소리에 한숨이 나왔다. 그는 코를 막고 친구를 타박했다.
“에휴. 술 냄새 봐. 벌써 취하면 어떻게 해? 적당히 좀 마시랬잖아.”
“어쩔 수 없잖아. 네덜란드의 샌님들은 경기장에서 술을 반입하지 못하게 하니까…….”
“그건 나도 불만이지만 어쩔 수 없잖아.”
경기장 내에서의 음주는 독일이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지 다른 국가들은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스페인에서는 무알콜 맥주를 팔았고, 영국에서는 복도에서만 마실 수 있을 뿐 경기장에는 들고 가지 못했다.
이윽고 경기장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이중 절반은 함부르크를 응원하는 이들이었고, 나머지 반은 세비야를 응원하는 이들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오솔을 응원하기 위해서 열 시간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온 한국 팬들도 존재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이봐 이 친구들 모두 한국인들이라는데?”
“뭐? 오솔이랑 같은 나라에서 왔다고? 오! 이 친구는 함부르크 유니폼도 입고 왔잖아?”
오솔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은 한국인 하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건 오솔의 한국어 사인이에요. 지난번에 함부르크에 갔을 때 받은 거죠!”
“오오오! 이런 보물이!”
“나도 나중에 한국어로 사인해달라고 해야지!”
“하하하! 그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오다니 어지간히 축구에 미친놈들이구나! 이리와! 같이 뛰는 거다!”
오솔의 사인과 유니폼 덕분에 한국 팬들은 이들에게 빠르게 동화될 수 있었다. 물론 데니스 쿤츠 역시 그들에게 말을 걸어서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간단한 인터뷰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미하엘, 들었어? 오솔은 한국에서도 유명하대.”
“국가대표니까 당연하잖아. 데니스, 너 축구 칼럼니스트 맞냐?”
“그래도 뭔가 신기하잖아. 우리 선수를 보려고 한국에서까지 오다니.”
“우리 선수? 뭔가 인식에 문제가 있는데? 혹시 너도 술 마셨냐?”
“왜, 함부르크 소속 맞잖아.”
“국적이 먼저라는 생각은 안 드냐?”
그렇게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사이, 경기장에 UEFA컵 트로피가 등장했다.
트로피 이름은 대회 이름처럼 ‘UEFA컵’이었는데,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트로피의 모습은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 트로피인 ‘빅이어’ 못지않게 멋있었다.
“저기에 맥주를 담아 마시면 무슨 기분이 들까?”
“샴페인이겠지. 바보야.”
“뭐가 됐든. 궁금하지 않아?”
“말해 뭐해. 당연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겠지.”
“난 우리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만 해도 비슷한 기분이 될 것 같아.”
미하엘 자이어는 UEFA컵을 보고 퍽 감격한 듯 보였다. 데니스 쿤츠는 이번에는 그를 면박하지 않았다. 사실 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 장면을 볼 수 있겠지? 우리에겐 UEFA컵의 득점왕이 있잖아.”
여기서 UEFA컵 득점왕은 역시나 오솔을 의미했다. 물론 아직 대회가 끝난 건 아니었으나, 현재까지는 오솔이 득점왕 타이틀을 가져갈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가 본선 32강부터 준결승전까지 넣은 골이 무려 7개로 현재 FC바젤의 공격수 마티아스 델가도와 동점이었다. 물론 바젤은 8강에서 떨어졌으니 더는 늘어날 수 없는 기록이었다.
다음으로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세비야의 파비아누인데, 그는 솔직히 준결승까지 4골밖에 기록하지 못해서 오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터트리지 않는 이상 가능성이 없었다.
“야, 기억나? 오솔이 데뷔하던 날. 우리도 그 경기장에 있었잖아.”
“당연히 아직 생생하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날을 잊겠어. 심지어 난 칼럼으로도 적었잖아.”
“후후. 그때만 해도 얼굴도 모르는 동양인을 데려왔다고 욕했었는데, 어느새 그 선수가 팀의 구세주가 되었어. 신기하지 않냐?”
“그러니 오늘을 되도록 오래 기억하자고. 우리는 지금 전설의 시작을 지켜보는 거니까.”
* * *
사전 행사가 모두 끝나고 양 팀 선수들이 천천히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남들보다 높은 곳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두 남자가 있었다.
“정말 대단한 성과요. 안 그렇소, 단장?”
“이제 시작입니다. 내년에는 더 대단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이런 선수들을 모은다고 고생 많았소. 올해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당신이요.”
“아닙니다. 회장님이 팀을 적절히 운영한 덕분이죠.”
VIP석을 차지한 두 남자, 베른트 호프만과 디트마르 바이어스도르퍼는 평소와는 달리 서로를 칭찬하기 바빴다. 기대 이상의 성적에 두 사람 다 한껏 관대해진 결과였다.
“참, 첼시에서 볼라루즈의 이적료로 얼마를 준다고 하던가요?”
“최종적으로 1,300만 유로(약 169억 원)를 적었습니다. 아마 이게 그들이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일 겁니다.”
“오오! 굉장하군!”
호프만은 팀의 주축 선수를 팔면서도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함부르크의 운영 방식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우리가 그를 얼마에 데려왔었죠?”
“RKC발바이크에 150만 유로(약 19억 원)를 줬었죠.”
단 2년 만에 선수의 가치가 9배 가까이 뛰었다. 게다가 단순히 묵혀둔 것이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요긴하게 썼으니 실제로는 그보다 더 한 이득을 본 셈이었다.
“1,300만 유로라…… 반 바이텐과 동일한 금액이잖아? 하하! 첼시가 러시아의 석유 재벌에게 팔리더니 돈을 물 쓰듯이 쓰는군.”
호프만은 그렇게 한참을 웃더니 슬쩍 물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들의 대체자를 구하는 일인데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소?”
“반 바이텐의 대체자로는 같은 벨기에의 뱅상 콩파니를 노리고 있고,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입니다.”
“콩파니라면 벨기에의 국가대표 아니요? 몸값이 꽤나 비쌀 텐데, 괜찮은 거요?”
“물론 만만치 않은 이적료를 지불해야겠지만, 그는 반 바이텐의 빈자리를 채워줄 최적의 선수입니다. 스카우트의 말로는 가진 바 재능은 반 바이텐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더군요.”
콩파니를 추천한 스카우트가 지난번에 추천했던 선수가 반 바이텐이었다. 그런 사람이 두 사람의 재능을 놓고 콩파니가 더 뛰어나다고 했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쳇, 그럼 더 비싸겠군. 그쪽에서 얼마나 달라고 하던가?
“다행히 800만 유로(약 104억 원)에 합의했습니다.”
호프만은 생각보다 가격 높았는지 한동안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콩파니의 몸값이 그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제로 올림피크 리옹에서는 콩파니의 바이아웃(buy-out) 금액인 1,500만 유로(약 195억 원)를 제시하면서까지 그를 데려오려고 했다. 이를 단돈 800만 유로에 낚아챘으니 바이어스도르퍼의 수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칼리드 볼라루즈는 역시나 네덜란드 국가대표인 요리스 마티센으로 대체할 생각입니다. 이쪽은 아직 구체적인 금액이 오가는 상황은 아니지만 최소 500만에서 600만 유로는 줘야 할 겁니다.”
국가대표급 선수를 수급했다면 좋아해야 정상이었지만, 호프만은 줄줄이 새어나가는 금화에 인상을 펼 줄 몰랐다. 결국 보다 못한 바이어스도르퍼가 한 마디 보탰다.
“아까워할 게 아닙니다. 어차피 챔피언스 리그를 치르고 나면 지금 나간 돈의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함부르크는 최소 리그 2위가 확보된 상황이다. 이는 곧 내년에 있을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별 리그에 직행한다는 뜻이었다.
조별 리그는 경기 승패에 따라 최소 860만 유로에서 최대 1,460만 유로까지 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추가로 들어오는 중계권료까지 생각하면 이 정도 지출은 그리 과한 투자도 아니었다.
“으음. 그래도 이 정도에 그쳐서 다행이군. 만약 여기에 공격수까지 사야 했다면 적자를 기록할 뻔했어.”
“만주키치가 생각보다 잘해줘서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죠.”
“하하. 맞소. 앞으로도 그런 선수들을 많이 찾아주시오.”
바이어스도르퍼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소리 내어 대답하지 않았다.
* * *
한편 오솔은 경기장에 서서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골키퍼인 안드레스 팔로프를 시작으로 쭉 이어진 악수는 미스터 까브론, 하비 나바로에 이르러서 절정에 이르렀다.
“적당히 까부는 게 좋을 거야, 동양인. 어디 한 군데 부러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너야말로 남은 생을 죽으로 연명하고 싶으면 이빨 적당히 털어라.”
“후후. 날 겪기 전에는 다들 그렇게 이빨을 들이밀지. 하지만 한 번 제대로 물리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차마 눈도 못 마주치더군.”
“그러니까 더 지껄이면 그 이를 다 뽑아준다니까?”
하비 나바로가 손에 힘을 줬고, 오솔 역시 힘을 빼지 않았다. 얼굴은 웃지만 팔뚝에는 힘줄이 바짝 선 모습이 굉장히 기묘했다.
“거기 뭐해? 빨리 경기 시작해야 하는데.”
다행히 두 사람의 기싸움은 거기까지였다. 지금 이곳에는 레나르트 요한슨 UEFA(유럽 축구 연맹) 회장도 있었다. 함부로 싸움을 키우기에는 자리가 좋지 않았다. 결국 오솔은 하비 나바로를 한번 노려봐주고 악수를 이어갔다.
“하비랑 기싸움을 하다니 너도 어지간히 싸움닭이구나?”
“넌 이름이 푸에르타였나?”
“응, 안토니오 푸에르타야. 오늘 좋은 경기 부탁한다.”
“그래…….”
오솔은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푸에르타는 사실 전생에 마주친 적이 없었으나 놀랍게도 그 이름은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오솔처럼 남에게 관심이 없는 이가 기억할 정도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언제였지? 내년…… 아니, 내후년이었나?’
안토니오 푸에르타는 2007년 8월 경기 중에 심장마비로 쓰러진 후 사망하게 된다. 23세의 전도유망한 젊은이이자 한 아이의 예비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예상치 못한 비극에 스페인 전역은 슬픔에 잠기게 된다. 워낙에 충격적인 일이라 오솔도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축구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심장 문제를 겪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다. 이는 기록으로도 증명된 일이다.
1973년 이후 5년마다 혹은 10년마다 사망자가 나왔고, 이러한 추세는 현대로 올수록 점점 심해졌다.
90년대에는 10년 동안 열 명의 선수가 그라운드를 떠났고, 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무려 열네 명의 선수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 통계는 현대로 올수록 선수들은 좀 더 신체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게 되었고, 그만큼 몸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증가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에이 씨, 모르겠다. 야! 너 나중에 시즌 끝나고 심장에 정밀 검사를 한번 받아봐.”
“뭐?”
“심장 조심하라고. 난 분명히 말해줬다.”
오솔은 그 말을 끝으로 함부르크 진영으로 돌아갔다. 안타깝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만약 푸에르타가 오늘의 대화가 신경 쓰인다면 나중에 검사를 받을 것이고, 그럼 뜻밖의 행운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