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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4화 (10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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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4화

20장 Mr. Cabrón.

경기가 끝나고 오솔을 뺀 모두가 라커룸에 들어갔다. 오솔 역시 당장 들어가서 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아직 MOM 인터뷰가 남아있었다.

“오늘 2 대 1로 승리하셨는데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좋죠. 이겨서 좋고, 우승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늘 보여준 점프력에 많은 이들이 놀랐습니다. 분명 시즌 초와는 확연히 다른 높이였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오솔 역시 점프력에 대한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한 대사를 읊었다.

“갑자기 일어난 변화는 아닙니다. 시즌 초부터 꾸준히 점프력 훈련을 진행해왔었고, 그 효과가 이제야 나타난 것이죠.”

“그렇군요. 그럼 다음으로 득점왕 경쟁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아직 클로제 선수와 2골 차이가 나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득점왕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클로제 선수가 해트트릭을 두 번 연속으로 터트린다거나 하면 아무래도 힘들겠죠.”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클로제라면 또 몰랐다. 게다가 베르더 브레멘도 남은 팀들이 비교적 약팀들이었다. 얼마든지 다득점이 나올 수 있었다.

“만약 우승과 득점왕 수상을 모두 달성하게 된다면 정말 환상적인 데뷔 시즌을 보내게 되는 것인데요…….”

“UEFA컵 우승도 있죠.”

“하하하. 맞습니다. 제가 그걸 빼먹었군요. 어쨌든 더블과 득점왕까지 엄청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그에 따른 각오라든지 기분이 어떤지 묻고 싶습니다.”

“팬들이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믿기지 않는 성과에 날아오를 것처럼 기쁘기도 하고, 우승 트로피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죠. 확실한 건 샴페인을 터트리는 건 시즌이 완전히 끝난 다음이라는 겁니다.”

“과연…… 끝까지 멋진 활약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진행자가 인터뷰를 끊으려 하자 오솔이 손을 들어 올렸다.

“한마디만 더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최근에 성공가도를 달리는 덕분에 구단의 분위기가 무척 좋습니다. 저도 매 경기마다 경신되는 기록에 피곤한 줄을 모르고 뛰고 있죠. 다만…… 친구이자 멘토인 세르게이와 헤어진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아, 바바레즈 선수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팀을 나간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입니다. 시합에 나서서 골과 도움을 기록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훈련장에서는 팀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고, 평상시에는 저나 만두치킨 같은 어린 선수들의 적응을 도왔죠. 실제로 오늘 동점골을 허용했을 때도 그가 나서서 분위기를 바로잡은 덕분에 혼란을 빨리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은 바바레즈 선수의 방출이 실수라는 뜻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우리는 프로 선수니까, 테이블에 앉았다고 해서 반드시 악수를 한다는 법은 없죠. 때로는 빈손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사인 직전에 다른 테이블에 앉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다만 한동안 바바레즈가 그리울 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용병으로서 의지가 많이 되었으니까요.”

구단으로서는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인터뷰였다. 협상이 엎어지는 것이야 흔한 일이었으나 바바레즈의 방출은 비교적 지저분하게 진행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구단에서 불편해한다는 사실은 오솔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일부러 꺼냈고,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바바레즈의 공헌도를 팬들과 구단에 알리고자 함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내년에 있을 챔피언스 리그에 꼭 필요한 인재가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쫓겨난다. 그래서 팀 전력이 약해지는 상황이 짜증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오솔의 마지막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같은 용병으로서…….’

오솔은 바바레즈와 같은 비유럽권 선수로서 이번 사태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구단 운영진에게 솔직하게 전달했다. ‘너희 이번에 별로였어.’라고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꺼낸 말이 아니라 나름대로 계산을 끝마치고 한 말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너희들이 용병을 어떻게 대하는지 확인했다. 그러니 앞으로 내게 구단에 대한 의리나 애정 같은 정량화 할 수 없는 가치를 들이밀 생각은 하지 마라.'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앞으로 아니, 이미 그 가치가 빠르게 치솟고 있는 오솔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건방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뭐, 지들이 어쩌겠어. 어차피 날 뺄 수도 없잖아.’

건방진 언행인 것은 맞지만 그것도 실력이 뒷받침되니 하룻강아지의 만용으로 볼 수 없었다. 실제로 함부르크는 오솔을 대체할만한 공격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게 괜찮은 공격수 좀 많이 영입하지 그랬어.’

사실 오솔로서는 함부르크의 이런 어설픔이 반가웠다.

팀의 주축 선수인 반 바이텐과 볼라루즈를 고작 2년 만에 헐값이나 다름없는 돈에 팔아버리고, 챔피언스 리그를 병행해야 할 내년을 생각하면 꼭 잡아야 할 바바레즈를 자유계약으로 놓아버린다.

고작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만족하는 작은 배포와 돈이 된다 싶으면 선수를 바로바로 처분하는 셀링 클럽 같은 마인드는 구단에 충성할 생각이 없는 오솔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곳을 떠나는 날이 과연 언제가 될까? 내년? 아니면 올해?’

오솔은 참을성은 부족하고 욕심은 많았다.

‘그전에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루고 가고 싶은데…….’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이다.

* * *

며칠 후, 함부르크의 훈련장에서 만난 바바레즈는 오솔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다음 시즌에 뛸 곳을 찾았어.”

“진짜요, 어딘데요?”

“레버쿠젠에 내 자리가 있다고 하더라고.”

레버쿠젠이면 정통도 있고, 제법 강팀이기도 했다. 비록 올 시즌에는 5위에 그치고 말았지만 어쨌든 UEFA컵 1라운드로 직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비록 베른트 슈나이더라는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도 나이가 꽤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바바레즈도 충분히 주전을 차지할 수 있었다.

“고맙다. 덕분에 자신감을 되찾았어. 뭐가 소중한 것인지도 새삼 깨달았고.”

“저야 말로 감사하죠. 많이 배웠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래. 참, 앞으로 인터뷰는 조금 더 신중하게 해. 날 도와준 건 고맙지만 괜히 구단이랑 싸워서 좋을 건 없어.”

“……정말 마지막까지 한결같으시네요. 후후. 그래도 싸울 때는 싸워야죠. 게다가 딱히 지지도 않을 것 같잖아요.”

“그런가? 하하. 네 그런 배짱은 나도 배워야 하는 건데.”

이후 바바레즈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훈련에 들어갔다. 그는 반 더 바르트가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다시 후보로 밀려났지만, 더는 화를 내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한편 팬들은 바바레즈가 팀을 떠난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난 6년간 함부르크의 중원에 창의력을 불어넣었던 선수가 마침내 그 쓰임을 다하고 스러진다는 건 몇몇 감수성이 뛰어난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바바레즈는 2000년대의 첫 번째 레전드였어. 난 그를 항상 그리워할 거야.]

[나도 동의해. 그는 클래스가 느껴지는 패스와 볼터치, 그리고 충성심을 보였거든. 우리로서는 한동안 만나기 힘든 유형의 선수였지.]

[레버쿠젠에 가서도 잘 됐으면 좋겠어. 일 년에 두 번, 우리와 만날 때만 빼고…….]

그러나 이 같은 구단의 결정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반 더 바르트가 있는 함부르크에서 바바레즈의 역할은 결국 후보라는 주장이었다.

마침 만주키치가 합류하면서 공격진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게다가 반 바이텐을 팔면서 영입한 파울로 게레로(브라질)는 그들이 그렇게도 원했던 발재간이 좋고 빠른 공격수였다.

[바바레즈를 그리워하기에는 반 더 바르트가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환상적이야.]

[나는 두 사람을 마술사와 마법사에 비유하고 싶어. 잔인하지만 둘은 그 정도로 차이가 크다고. 그런데 몇몇은 추억에 젖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더라. 뭐? 바바레즈와 재계약? 우린 그 돈을 더 젊고 재능 있는 선수에게 줘야 해.]

[맞아.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거나 시즌 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였던 트로초프스키에게 출전 기회를 주는 편이 나아.]

사실 구단의 운영을 생각한다면 연봉이 높은 고참 선수를 내보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만 그 방법이 좀 치졸했다 뿐이지 구단의 선택 자체는 오솔이나 다른 선수들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팬들의 아쉬움은 너무도 빠르게 증발해 버렸다. 바바레즈를 두고 논쟁을 벌인 지 고작 닷새 만에 모든 관심사가 반 더 바르트의 복귀에 쏠린 것이다.

[왼발의 베컴이 다시 돌아왔네요. 오늘 반 더 바르트는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굉장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막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죠.]

33라운드 뒤스부르크전.

이날 반 더 바르트는 여전한 센스와 화려한 발놀림을 선보이며 오솔의 시즌 24, 25호 골을 도왔다. 반면 클로제는 득점 없이 33라운드를 마쳤다.

덕분에 오솔은 한 경기를 남겨두고 클로제와 동률을 이룰 수 있었다.

4 대 0. 강등 팀에게 너무 잔인한 짓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큼 많은 골이 터졌다. 동시에 함부르크가 어째서 우승에 접근한 팀인지, 또 뒤스부르크가 어쩌다가 강등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경기였다.

“축하한다. 잘한다 싶더니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구나.”

말은 건 사람은 후반기에 뒤스부르크로 이적한 안태환이었다. 그는 오늘까지 11경기에서 2골 3도움을 기록하며 나름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팀을 강등에서 구할 수는 없었다.

하긴 그가 이적했을 때 이미 팀은 강등권이었고,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조직력은 진작 무너졌고 공격과 수비 모두 엉망이었다. 그 하나 더한다고 결과가 바뀔 리 없었다.

“최근에 인터뷰로 입을 좀 털었다며? 조심해. 괜히 감독의 눈 밖에 나면 피곤해진다.”

사실 이건 안태환 본인의 이야기였다. 전에 말했지만 그가 뒤스부르크에 온 것은 6월에 있을 독일 월드컵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그는 스스로 분데스리가와는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약도 6개월 단기로 맺었다.

이처럼 딴생각을 품고 있었으니 팀에 적응하기도 어려웠고, 구단에서 평가도 냉혹했다. 특히나 힘든 것은 하이코 슐츠 감독의 심술이었다.

아니, 단순한 심술은 아니었다. 조직력을 중시하는 독일 축구에서 월드컵에 대비하며 개인 훈련에 치중하는 안태환은 확실히 밉상이었다.

“그래서 간 봐가면서 적당히 개기고 있어요.”

“하하. 그래, 잘하고 있네. 참, 알아서 잘 하겠지만…… 일단 결승전에 맞춰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해.”

안태환은 어린 후배가 대견했는지 이것저것 조언을 덧붙였다.

“그리고 월드컵이 있는 해에는 시즌과 시즌 사이에 쉴 시간이 거의 없는 건 알지? 월드컵도 중요하지만 컨디션을 갑자기 확 끌어올릴 게 아니라 충분히 쉬면서 천천히 끌어올리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좋아. 내가 원래는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지 않는데, 네가 이번에 첫 시즌이라고 해서 해주는 말이야.”

안태환의 말대로 이번 월드컵 소집일은 5월 15일이었다. 그런데 함부르크의 시즌 마지막 경기는 같은 달 14일이었다. UEFA컵 결승전 때문에 경기가 조금 더 밀린 탓이었다.

당연히 오솔은 경기를 마치고 거의 바로 비행기에 타야 했다. 휴식은커녕 피로감이 더 심해지는 일정인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2주도 안 돼서 친선 경기를 네 경기나 치러야 한다. 간신히 친선 경기를 끝내면 이제는 월드컵 조별 예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쯤 되면 리그가 계속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제 지치지 않는 체력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네요.”

“이건 농담할 게 아니야. 나야 이번 월드컵에 모든 것을 쏟아도 되지만 너는 연말에 있을 아시안게임까지 생각해야지. 내가 장담하는데 월드컵까지는 어떻게 정신력으로 뛴다고 해도 리그가 시작되고 아시안게임을 뛸 때쯤이 되면, 너 무조건 퍼진다.”

안태환이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하면 군 대체복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최종 목표를 아시안게임으로 놓고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오솔은 그 마음만 감사히 받기로 했다.

“괜찮아요. 까짓 거 16강 이상으로 올라가면 되잖아요.”

자신만만한 표정의 오솔. 안태환은 그런 오솔을 답이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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