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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3화 (10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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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3화

‘우리는 팀이잖아요.’

오솔은 그 말을 끝으로 전방으로 돌아갔다. 바바레즈는 여전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솔이 전해준 울림을 끊임없이 읊조리고 있다는 점이다.

‘팀이라…… 내가 이곳에 온 게 언제였지?’

2000년 여름에 왔으니 이제 곧 6년이 된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었다. 서른에 함부르크에 와서 어느새 서른여섯인 것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갑자기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마음은 여전히 이십 대 못지않았으나 실제로는 체력에 부침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베테랑의 요령으로 어떻게든 풀타임을 소화했으나 전성기에 선보였던 폭발적인 돌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후우.’

바바레즈는 고개를 들어 원정 응원석을 바라봤다. 위험천만한 베르더 브레멘 원정에 따라온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실점을 했음에도 팬들은 여전히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무릎을 곧게 펴고 양손을 크게 들어 올렸으며,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좌절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몸보다 큰 깃발을 휘두르며 선수들 못지않게 땀을 뻘뻘 흘리는 이도 있고,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입을 가리는 이도 보인다.

어쩌면 선수인 자신보다 더 승리를 갈망하는 듯했다. 오늘 이기면 귀갓길이 위험해질 수 있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한껏 승리를 부르짖었다.

“바바레즈, 힘내!”

“고개를 들어! 한 골 정도는 쉽잖아!”

“우승하는 거야!”

바바레즈의 몸이 잘게 떨렸다. 선수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응원을 보내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신의 부름이라도 받은 것처럼 크나큰 감동을 느꼈다.

‘그래, 어쩌면 이게 함부르크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일지도 몰라.’

비록 그에게 합당한 대우도, 주전 출전도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우승 트로피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8골 13도움. 올 시즌 그의 성적이었다.

반 더 바르트가 비록 퍼포먼스는 더 뛰어났을지 몰라도 부상과 징계 때문에 실제 출전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때 제 몫을 한 것이 바바레즈였다. 올 시즌 누가 더 많은 기여를 했냐고 묻는다면 열에 여덟은 바바레즈의 이름을 꺼낼 것이다.

‘그래, 리그 1위는 결국 내가 만든 결과야. 반 더 바르트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바바레즈가 내면의 혼란을 수습하고 있을 때, 오솔도 바삐 움직였다. 그는 아직도 침묵하고 있는 벤치를 보고는 선수들을 끌어 모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수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요. 우승을 하려면 우리도 공격을 해야 돼요.”

“하지만 감독의 지시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어.”

“정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솔의 반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대로 아무런 변화도 하지 않는다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자칫 감독의 지시 없이 먼저 나섰다가 그게 단초가 되어 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1패가 아니라 우승 실패가 되고 만다.

실패 시 리스크 그리고 책임이 너무 크다. 그러니 누구도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감독조차도!

결국 오솔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그러니까…….”

“잠깐, 이제는 내가 말할게.”

오솔의 말을 끊은 것은 바바레즈였다. 마음의 정리가 끝났는지 그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이대로 수비만 해서는 정말 답이 없어. 이제 공격은 선택이 아닌 필수야. 책임은 내가 질게. 어차피 떠날 사람이 무슨 책임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맹세할 수 있어 혹시나 너희들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공격하자.”

“부주장…….”

“아니면 이대로 수비만 하다가 우승을 놓칠 거야? 이게 얼마 만에 찾아온 기회인지 모두들 잊은 건 아니겠지?”

선수들이 크게 동요했다. 그들의 시선은 빠르게 벤치를 오갔다. 그러나 벤치에서는 여전히 묵묵부답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결국 팀의 주축 선수들까지 나섰다.

“저도 같이 할게요. 어차피 리그가 끝나면 이적하니까 팬들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견딜 수 있어요.”

“저야말로 비난받아도 상관없어요. 전 영국으로 가잖아요.”

반 바이텐과 볼라루즈까지 나서자 분위기가 점차 하자는 쪽으로 변했다. 이제는 다른 선수들까지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까짓 거 우리도 공격에 나서보죠.”

“맞아요. 내내 수비만 하다가 트로피를 놓치면 너무 꼴사납잖아요.”

“그게 오히려 팬들의 비난을 받을만한 모습이죠.”

선수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일단 방향이 정해지자 머릿속이 단순해진 것이다.

“거기! 이제 그만 준비해요.”

마침 심판이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했다. 그러나 토마스 돌 감독은 이때까지도 어떠한 결단도 내리지 못했다.

오솔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고 행동하지 않는 건 아니야. 결국 그것도 기다리는 걸 선택한 거지.’

물론 오솔이 느끼기에 이것은 기다림보단 방조나 외면에 더 가까웠다.

‘이래서 내년에 있을 챔피언스 리그는 잘 치를지 모르겠군.’

그는 가벼운 한숨으로 답답함을 털어내고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 * *

후반전 15분을 남겨두고 다시 시작된 경기.

함부르크 선수들은 공격적으로 나서자는 다짐과는 달리 조심스럽게 공을 돌렸다. 베르더 브레멘 측이 여전히 공격적인 압박을 보였기 때문이다.

동점 상황이다. 이대로 끝나면 보통은 무승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두 팀에게 승리 외에 다른 결과는 의미가 없었다. 무승부는 모두의 패배나 다름없었다.

이것이 베르더 브레멘이 공격적으로 나온 이유였고, 동시에 함부르크에게 빈틈을 내주게 된 빌미가 되었다.

[공은 우측의 마다비키아에게…… 오늘 함부르크가 쉽게 공격을 못하네요. 경기 내내 공이 외곽에서만 돌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렇습니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공격이 전혀 날카롭지 않네요. 게다가 유효슈팅도 모두 오솔 선수의 발끝에서만 나왔죠. 그만큼 다른 선수들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중계진이 함부르의 공격력을 트집 잡고 있을 때였다. 마침내 그들이 칼을 빼들었다.

시작은 오른쪽 수비수 마다비키아였다. 그는 센터 라인을 살짝 넘어서 발을 크게 휘둘렀다.

[얼리 크로스를 시도합니다.]

캐스터는 일반적인 크로스로 생각하고 별 감흥 없이 상황을 읊었다.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경기장의 모두가 자꾸만 반복되는 상황에 긴장이 풀어진 상태였다.

[반대편 측면으로 길게 넘어갑니다.]

바나나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공은 측면으로 공간을 벌린 만주키치에게 향했다. 그러나 만주키치를 마크해야 할 파렌호스트는 여전히 중앙을 지키고 있었다. 이는 실수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지난 일주일간 연습한 결과에 따른 대처였다.

‘좋아. 그렇게 하는 거다.’

토마스 샤프 감독은 파렌호스트의 움직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보모옐라의 키는 187㎝. 측면 수비수치곤 상당히 큰 편이지.’

실제로 만주키치와 나란히 선 모습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공중 볼 경합은 오보모옐라에게 맡기고 파렌호스트는 혹시나 공간으로 파고들 바바레즈를 막는 편이 더 효과적이야.’

함부르크가 선보인 와이드 타깃맨 전술은 결국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선사한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렇게 대비하면 설혹 헤딩 경합에 실패한다 해도 상대의 슈팅 기회는 막을 수 있다.

‘후후. 이대로 역전까지 가주마.’

공을 따내면 바로 역습이었다. 그리고 과장을 좀 보태서 그의 선수들이 펼치는 역습은 세계에서 가장 위력적이었다.

[자, 헤딩!]

그러나 고기도 역시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아무리 키가 크다고 해도 측면 수비수로서는 만주키치를 상대로 헤딩 경합을 이기기 힘들었다.

[공은 뒤로 흐릅니다. 터치라인 아웃…….]

중계진은 물론이고 선심도 깃발을 들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툭 튀어나와 공을 몰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마다비키아가 크로스를 올렸을 때부터 가속하고 있었던 측면 수비수 티모테 아투바였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지난 75분간 센터라인 근처를 떠나지 않았던 선수가 갑자기 공격에 가담한 것이다.

덕분에 뒷공간을 훤히 내준 오보모옐라와 뒤늦게 커버하러 가는 파렌호스트, 졸지에 혼자 중앙을 지키게 된 나우두까지 온통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재밌게도 이 순간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함부르크의 감독 토마스 돌이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위험하잖아!’

측면 수비수가 모두 올라간 덕분에 이제 함부르크의 진영엔 두 명의 중앙 수비수만 있었다. 상대가 측면으로 공을 보내면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아무런 방해 없이 도달할 게 뻔했다.

‘뺏기면 안 돼!’

다행히 아투바는 수비수가 붙기 전에 크로스를 올릴 수 있었다. 나우두는 그 공을 보며 전반전에 클로제가 했던 생각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공이 높다.’

나우두는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습관처럼 손을 휘저었다. 앞뒤, 좌우 어디에서든 오솔의 흔적이 잡히길 바라면서…… 그러나

‘어, 없어!?’

오솔은 이미 두 발자국 이상 떨어진 상태였다.

나우두는 급히 오솔을 찾았으나 그때는 이미 공이 그의 머리 위를 지나쳐 오솔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타앗!

오솔은 제 자리에서 어떠한 도움닫기도 없이 뛰어올랐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체공시간도 길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떠 있는 거냐?’

오솔은 사람이 이렇게 오래 떠 있어도 되나 싶을 만큼 오랜 시간 허공에 머물렀고, 당연히 모두의 시선은 그의 머리에 꽂혀 떨어질 줄 몰랐다.

그렇게 모두가 오솔을 보고 있을 때였다. 정작 오솔 본인은 공도 골대도 아닌, 바바레즈를 보고 있었다.

‘연습한 대로 할 거예요.’

바바레즈는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실제로 오솔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신뢰였다.

‘믿습니다.’

그 순간 바바레즈는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헐떡이던 가슴에 숨을 억지로 불어넣고, 후들거리는 다리는 가슴까지 크게 차올렸다. 그는 그렇게 마지막 한 줌의 체력까지 모두 끌어올렸다.

타다닷!

바바레즈는 방금까지 헉헉대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 나갔다. 마크맨인 바우만이 깜짝 놀라 따라붙으려 했으나 일단 탄력이 붙은 상대를 따라붙는 건 불가능했다.

오솔의 헤딩은 그 순간 이루어졌다.

골키퍼는 공이 오솔의 머리에 닿는 그 잠깐의 순간, 시간의 흐름이 한없이 느려지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어디로 오든 다 막고 말겠어.’

공이 어디로 날아올지 바짝 긴장한 골키퍼와 숨을 죽이며 바라보는 수비수들, 모두가 공이 골문으로 향하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공에 실린 힘을 최대한 살려냈던 오솔의 머리가 이번에는 전혀 다른 변화를 이끌어냈다. 빠르게 회전하던 공이 갑자기 회전을 뚝하고 멈춘 것이다.

힘을 완전히 잃은 공은 그렇게 박스 중간의 빈 공간을 찾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빈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올 시즌 내내 연습했던 것처럼 바바레즈가 달려들고 있었다.

‘여기서 패스를 한다고?’

골키퍼의 시선은 오솔의 머리에서 박스 중앙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나우두의 뒤로 미친 듯이 쇄도하고 있는 바바레즈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골키퍼의 입장에서 보면 바바레즈는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나우두의 몸이 시야가 전면을 크게 가린 탓이었다.

뻥!

골키퍼는 슈팅 소리가 고막을 때리고 지나갈 때까지도 공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그가 볼 수 있었던 거라곤 눈 옆을 스쳐 지나가는 희끗한 그림자뿐이었다.

와아아아!

골키퍼는 환호성이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그물망을 확인했다. 그 속에서 축구공을 발견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실점을 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꼬오오올! 세르게이 바바레즈!]

한편 바바레즈는 득점 직후 팬들을 향해 질주했다. 그가 다가오자 원정석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2 대 1! 다시 2 대 1로 벌어졌어요!]

[방금은 공격 전개가 굉장히 날카로웠습니다. 특히나 이 장면! 여기서 오솔 선수의 선택이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모두가 골을 노린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오솔 선수는 뒤에서 들어오는 바바레즈 선수를 보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굉장히 짜임새 있는 공격이 나왔네요. 눈이 즐겁습니다!]

이후 베르더 브레멘 선수들은 승부를 뒤집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10분 남짓이었다. 한껏 기세가 오른 함부르크를 상대로 득점을 노리기에는 너무 적은 시간이었다.

삑, 삑, 삐이익!

결국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클로제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축하한다. 오늘은 우리의 완패였어. 그래도 아직 득점은 내가 앞서는 거 알고 있지? 누가 득점왕이 될지는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야.”

오솔은 악수를 나누며 가볍게 웃었다.

“끝까지 재밌겠네요.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에요. 알죠?”

“음? 하하. 맞아. 내일 1면을 장식할 주인공은 따로 있지.”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눈물을 흘리는 바바레즈가 있었다. 그는 단순히 기쁘다는 말로는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팬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에 화답하듯 함부르크의 팬들은 벌써 10분째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팬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바레즈가 함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있는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날 경기의 MOM은 1골 1어시를 기록한 오솔이 받았지만 팬들의 가슴속에 남은 것은 서른다섯 살의 노장, 세르게이 바바레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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