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2화
[아…….]
중계진은 할 말을 잊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오솔의 세리머니가 끝나자 화면은 다시 득점 당시의 장면으로 돌아갔다.
[노, 놀라운 점프력입니다.]
오솔이 점프하는 순간, 그의 허리춤이 클로제의 눈높이까지 솟아올랐다. 클로제의 무릎이 굽혀진 상태라는 걸 감안해도 엄청난 높이었다.
실제로 방금 오솔이 뛴 높이는 약 75㎝로 이것은 웬만한 선수들이 전력으로 러닝 점프했을 때보다 더 높았다.
모두 점프력이 90(+5)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키가 크고, 중량이 나가는 선수일수록 점프력이 낮다. 동일한 힘을 가졌다고 했을 때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람이 더 높이 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오솔은 좀 달랐다. 그는 웬만해서는 흠집도 나지 않을 단단한 골격과 전신을 갑주처럼 두른 탄탄한 근육이 있었다. 그렇기에 제법 중량이 나갔음에도 점프력이 뛰어났다.
여기에 빠르고 정확한 위치 선정과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몸싸움 능력이 더해져서 오솔은 자신보다 더 큰 선수를 상대로 대등한 헤딩 경합을 선보일 수 있었다.
점프력이 76(+5)일 때도 그러했는데 이제는 점프력이 95에 이르렀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키가 한 10㎝쯤 더 커진 기분이네.’
-점프력 90(+5)
-헤딩 86(+5)
한층 강화된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은 마치 다리에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높은 점프력을 선사했고, 강인한 목과 어깨의 근육은 강하고 정확한 헤딩을 도왔다.
‘여기에 균형감각까지 높았다면 더 높이 뛸 수도 있을 텐데…….’
사실 방금 점프도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뛰려고 한다면 더 높이까지 뛸 수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공중에서 균형을 잃을까 봐 나름대로 힘 조절을 했다.
‘상관없어. 어쨌든 골은 넣었으니까. 예측 성공이야.’
오솔은 이번 경기에서 2선의 지원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전술 훈련에서도 수비에만 집중할 뿐, 공격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점프력과 헤딩에 투자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다른 능력을 올리더라도 혼자서 상대 수비진을 돌파하는 건 불가능했고, 그럴 거면 차라리 세트피스에 모든 것을 거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가대표에서의 역할도 결국은 공중볼을 따내는 거니까, 이쯤에서 두 능력을 90까지 올리는 것이 좋아.’
덕분에 오솔은 최소한의 도움닫기로 남들이 도달하지 못할 위치까지 뛰어오를 수 있었다. 이제는 헤딩에 한해서 전설적인 선수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내내 수비만 하던 함부르크가 먼저 골을 넣었습니다.]
[네, 오솔 선수가 멋진 헤딩골로 팀을 구원했네요.]
[경기는 다시 베르더 브레멘의 공격으로 시작합니다. 토마스 샤프 감독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네요. 몸이 달은 것 같죠?]
[이 경기에서 지게 되면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서 4등까지도 떨어질 수 있거든요.]
[아, 샬케04가 뒤를 바짝 쫓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만약 4등이 되면 큰일입니다. 비록 등수는 하나 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냐, 아니면 UEFA컵에 떨어지느냐의 차이거든요. 이번 경기, 베르더 브레멘으로서도 결코 놓칠 수 없는 일전입니다.]
이후 베르더 브레멘의 폭풍 같은 공격이 쏟아졌다. 그들은 상대의 역습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좌우 풀백까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고, 덕분에 함부르크는 전방위적인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경기는 베르더 브레멘이 주도하고 있지만, 오히려 애가 닳는 것은 그들입니다.]
[그렇죠! 함부르크로서는 무리해서 공격을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우승이 거의 확실해지거든요!]
창과 방패의 싸움.
함부르크의 반 바이텐과 볼라루즈가 지키는 중앙은 클로제와 클라스니치의 이른바 k-k 공격대를 철저히 막아냈고, 나이절 더 용과 라파엘 비키, 다비드 야롤림은 높아진 우승 가능성만큼 더 많이 뛰고,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이처럼 중원에서 대등해지자 자연스럽게 오솔에게 공이 오는 횟수도 늘었다.
파아앙!
[전방으로 길게 차는 반 바이텐!]
‘한 골만 더 넣으면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다.’
오솔은 최대한 공을 지키며 동료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공격에 가담하는 선수는 바바레즈와 만주키치밖에 없었다.
‘쳇! 이런 식의 경기 운영은 마음에 안 드는데…….’
투덜거리는 오솔과 달리, 토마스 돌 감독은 애초부터 역습으로 골을 넣을 생각이 없었다. 기본적인 목표는 이대로 시간을 끄는 것이었고,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슈팅을 시도해서 코너킥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파앙!
오솔의 발을 떠난 공이 바바레즈의 발 앞에 뚝 떨어졌다. 71로 오른 패스 능력 덕분에 패스 연결이 한결 부드러웠다.
바바레즈는 굴러오는 공을 잡지 않고 그대로 만주키치에게 찔러줬다.
[바바레즈 선수가 공을 바로 처리합니다.]
[평소보다 빠르게 처리하네요. 바우만 선수의 마크를 의식한 모습 같습니다.]
덕분에 만주키치는 굴러오는 공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어떻게 하지?’
여기서 제일 좋은 판단은 스피드를 살려서 상대를 돌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드리블이니 돌파니 하는 것들은 그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플레이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시 상대를 등졌다간 공격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 텐데…….’
만주키치가 고민 끝에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려 할 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두 치킨!”
만주키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를 이런 특이한 명칭으로 부를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오솔밖에 없었다. 과연 고개를 드니 쇄도하는 오솔의 모습이 보였다.
[오솔 빠릅니다-악!]
중계진의 성대가 혹사를 당했다. 생각보다 빠른 오솔의 스피드에 저도 모르게 돌고래 울음소리가 나온 것이다.
[오솔 선수! 도대체 언제 여기까지 왔나요?]
패스를 하고 바로 달리기 시작했던 오솔은 바바레즈가 공을 논스톱으로 처리할 때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만주키치에게 공이 굴러가는 그 잠깐 사이에 말 그대로 빛살 같은 속도로 달려 나갔다.
“받아!”
만주키치는 오솔의 발 앞에 툭 하고 공을 건네주고는 그대로 수비수를 붙잡아 슈팅 각도를 만들어줬다.
덕분에 오솔은 훤히 드러난 공간을 향해 발을 휘두를 수 있었다.
쾅!
오솔의 슈팅이 번개처럼 내려쳤다!
정면으로 날아간 공.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골키퍼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슛이기도 했다.
‘제, 젠장!’
팀 비제 골키퍼는 오솔의 슈팅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공이 얼마나 빠르게 날아오는지 중간에 날아오는 과정이 삭제된 것처럼 느껴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 좁쌀만 한 크기에서 주먹보다 더 커진 공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골키퍼는 그럼에도 몸을 날렸다. 눈으로 따라가기 보다는 그저 본능에 따른 반응이었다.
타앗!
[쳐, 쳐냈어요!]
대에에엥!
골키퍼의 손바닥에 맞고 굴절된 공은 골대를 강하게 울리며 튕겨져 나갔다.
‘막았다!’
오오우우!
베르더 브레멘 홈팬들의 동요가 중계화면을 넘어서까지 느껴졌다.
“슈팅 각도를 주지 말라고!”
골키퍼의 입에서 비속어가 터져 나왔다.
위기의 순간이 넘어갔음에도 심장은 여전히 펄떡였다.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미친! 저렇게 먼 곳에서 때린 슛이었나?’
골키퍼는 오솔이 서 있는 위치를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거의 35미터는 떨어진 위치였다.
‘더 접근했다간 진짜 위험하다!’
그의 반응 속도도 뛰어났지만, 거리가 멀었다는 점도 방금과 같은 선방이 가능하게 했다.
만약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웠거나 슛이 골대 외곽으로 향했다면 아무리 뛰어난 골키퍼라고 해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쩝!”
한편 오솔은 아쉬움에 발걸음을 쉽게 돌리지 못했다. 골이 들어가지 않은 거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공이 설마 골대에 맞고 수비수에게 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코너킥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야 하는데…….’
기습적인 중거리 슛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슈팅이 골키퍼의 눈에 익는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상대는 이미 한번 막았으니 두 번째는 더 막기 쉬울 것이다.
‘이쯤에서 두 골 차이로 벌려놔야 안심이 되는데.’
물론 축구판에서는 가끔씩 ‘이스탄불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두 골 차이도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두 골 차 승리를 두고 무난히 이겼다고 평가한다. 적어도 두 골 정도는 벌려놔야 승부가 뒤집히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오솔이 아쉬움을 삼키고 있을 때, 바바레즈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휑한 이마 위로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체력적인 부담에 정신적인 부담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바바레즈는 죽어라 뛰는 꼬맹이들을 보면 심한 자괴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억지로 몸을 움직여서 그들과 호흡을 맞추려고 했다.
그러나 예전 같으면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을 태클과 몸싸움에 자꾸만 움츠려 들었다.
필드에서 쓰러지겠다는 생각으로 뛰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핑계로 결국 걸어 다녔다.
‘이건, 이런 건 내가 아니야.’
그러나 경기는 바바레즈의 방황이 끝나길 기다려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반복된 공격 끝에 기어이 클로제가 골을 터트린 것이다.
[역시 클로제네요. 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득점에 성공하다니요.]
[이러면 오솔 선수와의 득점 차이도 도로 두 골로 벌어지겠군요.]
[그보다는 리그 순위가 문제입니다. 지금 다른 경기장에서는 뮌헨이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거든요.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함부르크는 다시 2위로 떨어지고 맙니다.]
[함부르크 선수들 힘을 내야죠! 지금 우승 트로피를 코앞에서 놓치게 생겼어요!]
중계진은 흡사 함부르크 관계자라도 되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약과였다. 목숨을 걸고 원정을 온 함부르크 팬들이 느낀 실망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으음…….’
토마스 돌 감독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전술적인 변화를 줘야 할지 아니면 잠시 지켜봐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 당장 공격적인 운영으로 전환해도 모자라. 하지만 갑작스러운 전술 변화는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미 60분 넘게 수비만 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수비적인 움직임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공격을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았다.
그의 경험상 어설픈 공격은 대부분 날카로운 역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만약 동점을 넘어서 역전까지 당한다면 정말로 끝이었다.
‘언제…… 언제 반격을 가해야 하는 거지? 언제냐?’
돌 감독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선장이 흔들리고 있군.’
오솔은 그런 감독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었다. 누구라도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경험이 없는 감독이라면 저렇게 헤매는 게 당연했다.
이럴 때는 필드에 선 선수들이 단서를 던져줘야 하는데, 보통은 바바레즈 같은 베테랑들이 힘을 썼다. 물론 지금 바바레즈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괜찮아요?”
오솔은 가장 먼저 바바레즈를 찾았다. 동료들의 표정이 전반적으로 안 좋았지만 그중에서 바바레즈의 표정이 가장 어두웠기 때문이다.
‘이럴 때 베테랑이 흔들리면 어떻게 합니까.’
오솔은 속으로 가벼운 타박을 하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 바바레즈는 평소보다 더 힘겨워하고 있었다. 내면의 갈등이 그만큼 심하다는 뜻이었다.
“짜증 나죠?”
“뭐?”
“솔직히 제대로 사람대접도 안 해줬던 놈들을 위해 뛰려니 짜증이 나잖아요.”
“…….”
“아니에요?”
“미안…….”
“미안할 필요 없어요. 만약 제가 같은 일을 당했어도 제대로 안 뛰었을 거니까요. 아니, 아예 출전을 거부했을 수도 있죠. 한번 엿 돼봐라 하면서 말이죠.”
바바레즈는 별 말이 없었으나 눈빛만은 그에게 동조하고 있었다. 자신의 신념 때문에 경기를 뛰고 있긴 하지만 속으로는 오솔처럼 행동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죠. 이미 뛰기로 했고, 또 뛰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그럼 경기에서 뛰면서 엿 먹일 방법을 찾아야죠. 이대로 제대로 뛰지도 못하다가 쫓겨나면 그들이 말했던 팀에 불필요하다는 평가가 진실이 되어 버리잖아요.”
“…….”
“팬들의 입에서 왜 구단의 레전드를 방출하느냐란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하지 않겠어요?”
오솔은 최대한 그를 설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바바레즈는 생각보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 서른 중반에 들어서는 베테랑인 탓에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이런 얕은 수로는 안 되나…….’
결국 오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진심만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오늘 이기려면 결국 열한 명이 모두 함께 뛰어야 해요. 누가 뭐래도 우리는 ‘팀’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연습 때처럼 플레이할 거예요. 세르게이가 그곳에 있다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