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1화
‘이번에는 진짜 선물 맞네.’
오솔은 안도하며 상태창을 열었다.
-오솔(Lv 39. 오른발잡이, 왼발 숙련도 42%)
-신체 : 균형감각 70/ 힘 90(+5)/ 반응속도 70/ 순간속도 72/ 주력 91/ 점프력 76(+5)/ 지구력 92/ 강인함 92(+5)
-기술 : 개인기 60/ 드리블 61/ 볼터치 75(+5)/ 슈팅 63/ 패스 71/ 헤딩 81(+5)/ 스로인 13/ 태클 46/ 일대일 마크 45
-잔여 포인트 : 19
한순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게다가 더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은 남아있는 19개의 포인트였다.
‘이걸 어떻게 한다?’
19개의 포인트면 70대의 능력치를 단번에 90까지 찍을 수 있는 양이었다.
‘일단 신중히 생각하자.’
오솔은 시합이 끝나고도 한참을 고민했다. 지금 모인 포인트는 리그 우승과 UEFA컵 우승 그리고 다가올 월드컵까지 모두 고려해서 투자해야 했다.
‘일단 UEFA컵 결승전은 큰 문제가 없어. 그때쯤이면 반 더 바르트가 돌아올 테니까. 월드컵은 리그가 끝나고 추가적인 레벨 업이 가능할 테니 약간의 여유는 있는 셈이지.’
역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진짜 문제는 베르더 브레멘전이었다. 32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만 이기면 이후에는 슈투트가르트나 뒤스부르크처럼 상대적으로 약한 팀들만 남게 된다. 말하자면 다음 주 경기가 우승으로 향하는 마지막 능선인 셈이다.
문제는 2선에서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오솔은 베르더 브레멘과의 전반기 경기를 떠올렸다.
당시 함부르크는 반 더 바르트까지 출전한 상황이었음에도 베르더 브레멘의 막강한 미드필더진에게 중원을 탈탈 털렸었다. 그나마 반 더 바르트와 오솔의 한 반자 빠른 패스를 통한 역습으로 따라잡았던 것이지 경기 내용은 완패에 가까웠다.
물론 대비는 하고 있었다. 최근에 진행되는 훈련은 다른 무엇보다 중원의 조직력을 다듬는 내용이 많았다. 게다가 나이절 더 용의 합류와 만주키치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전반기에서 부족했던 중원 장악력이 전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격진에 남아 있는 건 오솔이 유일했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선수들로는 한 박자 빠른 패스를 찔러줄 선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역습을 할 때마다 오솔은 고립되곤 했다.
‘좋아. 역시 이게 좋겠어.’
오솔은 다가올 베르더 브레멘전을 수십 번 시뮬레이션해보더니 이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포인트를 모두 사용했다.
* * *
[분데스리가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함부르크 SV와 베르더 브레멘의 32라운드 경기를 중계하게 된 MBS스포츠의 캐스터 임주원입니다. 해설에는 황정연 씨가 수고해주시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황정연입니다.]
[황정연 해설, 오늘 경기의 중요성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굉장히 중요한 경기입니다. 현지에서는 사실상 함부르크의 우승이냐 아니면 뮌헨의 우승이냐를 결정지을 라운드로 평가하고 있고요. 또 우리나라 팬들에게는 클로제와 오솔 선수의 득점왕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득점왕 경쟁이라니…… 오솔 선수 정말 대단하네요.]
[네, 신인 선수가 그것도 이번에 프로 계약을 한 쌩짜 신인이 첫 시즌에 득점왕 후보에 오른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현재 31라운드까지 오솔 선수는 22골을 기록 중이고 클로제 선수는 24골을 넣고 있네요. 미세하게 클로제 선수가 앞서고 있습니다.]
[이게 아쉬운 점이 도움까지 합하면 오솔 선수의 공격 포인트가 더 높아요. 그만큼 팀 공격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인데, 아쉽게도 득점 순위에서는 클로제 선수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다재다능하다는 뜻이겠죠. 이번 월드컵에서 오솔 선수의 활약이 기대되는 측면도 이런 모습을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게다가 독일에서 현지 적응이 끝났다는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중요한 경기였다. 그러나 오솔은 다른 가치들은 모두 잊고 온전히 경기의 준비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오솔은 만주키치와 손을 잡고 스트레칭을 하다가 대뜸 물었다.
“왜 그래? 설마 긴장했어?”
“어?”
만주키치는 조금 긴장한 듯 오늘따라 반응 속도가 느렸다.
“괜찮은 거야?”
“그, 글쎄.”
“진정해. 지난번에는 뮌헨전도 잘 치렀잖아.”
지난 뮌헨전의 활약을 떠올렸는지 만주키치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나 뮌헨전과 이번 경기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그래도 오늘 경기는 우승을 결정짓는 일전이나 마찬가지잖아. 게다가 더비 경기이기도 하고…….”
확실히 단순히 강팀과 경기하는 것과 우승 트로피를 놓고 일전을 벌이는 것은 압박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노르트 더비까지 겹치는 바람에 팬들의 감정은 평소보다 훨씬 격앙되어 있었다. 당연히 선수들 역시 관중의 감정에 동화되고 있었다.
“너 그러다가 자책골이라도 넣는 거 아니야?”
“윽!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
만주키치는 실책을 했을 경우를 상상했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흐흐.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혹시 알아? 나중에 월드컵 결승전 같은 데서 자책골을 넣게 될지.”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 진짜.”
만주키치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오솔을 바라봤다. 그가 크로아티아 국가대표가 되어 월드컵 결승에 올라가는 건 항상 꿈꿔왔던 일이었다. 다만 거기서 자신이 자책골을 넣어서 지는 건 너무도 끔찍한 상상이었다.
“어때? 오늘 무슨 짓을 해도 그것보다는 낫잖아? 그러니 마음 편히 뛰어.”
“너 때문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어.”
그래도 만주키치는 가벼운 투덜거림과 함께 몸에 묻어있던 긴장을 일부 털어낼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나보다도 더 어린 주제에 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와주고 있잖아? 정말 대담한 녀석이야.’
만주키치가 그렇게 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 이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두 사람의 멘토인 바바레즈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 같아서는 두 녀석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으나 실제로는 반쯤 억지로 뛰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제 실력이 나올 리 없었다.
‘젠장. 프로라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해놓고, 결국에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말다니…….’
그는 강한 자존심과 긍지를 갖고 있던 선수였던 만큼 흔들리는 자신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한편 입장 경기 시작을 앞두고 오솔과 클로제가 눈을 마주쳤다. 클로제는 싱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잘 지냈어, 꼬마?”
“그럭저럭요.”
“그런데 득점 2위인 거야? 이야~ 무서운데?”
“클로제야말로 최근 활약이 대단하던데요? 얼마 전에는 해트트릭도 했다면서요?”
클로제는 그 해트트릭 덕분에 오솔보다 두 골 앞설 수 있었다.
“넣을 수 있을 때 많이 넣어둬야지. 언제 네가 쫓아올지 모르잖아.”
“그만 좀 넣어요. 덕분에 득점왕 되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후후. 분데스리가에 막 발을 들인 신입에게 득점왕 자리를 내줄 수 없지. 참, 우리가 내기한 것도 잊지 말라고.”
“전 여전히 애칭을 부를 생각이 없어요.”
“걱정 마. 다음 시즌에는 형님이라고 해야 할 테니까.”
삐이익!
두 사람의 잡담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둘 모두 프로였기에 경기가 시작되자 미련 없이 각자의 위치로 향했던 것이다.
‘내기라…….’
리그 우승과 득점왕이라는 목표를 모두 이루려면 이번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그러나 중앙에서 공격을 풀어줘야 할 바바레즈가 프랑크 바우만에게 꽉 잡혀있는 꼴을 보니 오늘 경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역시나 초반 10여 분은 완전히 베르더 브레멘의 주도하에 있었다. 바바레즈가 완전히 묻혔고, 나이절 더 용은 분데스리가 최상급 미드필더인 프링스를 만나 쩔쩔 매고 있었다.
다행히 만주키치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그럭저럭 동수를 가져갈 수 있었으나 오솔은 전방에 고립되고 말았다. 딱 오솔이 시뮬레이션 했던 상황대로 흘러간 것이다.
‘한 박자 빠른 패스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대로 된 타이밍에 내가 원하는 곳으로라도 공을 보내줘.’
오솔의 간절한 바람대로 몇 차례 괜찮은 패스가 넘어왔다. 그는 그때마다 공을 몰고 상대 진영으로 달려들었다.
다행히 중앙 수비수인 나우두나 파렌호스트는 오솔에게 적극적인 태클을 걸기보다 슈팅 각도를 없애고 그를 외곽으로 밀어내는데 집중했다.
‘지공은 별로 무섭지 않다 이건가?’
오솔의 짐작대로 베르더 브레멘은 함부르크의 빠른 역습만 철저히 방비할 뿐, 그 외의 공격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역시 예리하구나.’
오솔의 뇌리에 토마스 샤프 감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토마스 샤프. 2003-04 시즌에는 베르더 브레멘 팬들에게 11년 만의 리그 우승을 찾아왔고, 동시에 포칼 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해서 더블을 기록한 유능한 감독. 그는 함부르크의 장단점을 완전히 꿰뚫고 있다.
‘함부르크는 지공에 들어갔을 때, 게임을 풀어줄 수 있는 선수가 없다.’
이른바 플레이 메이커의 부재다.
반 더 바르트도 없고, 바바레즈는 의욕을 잃고 상대에게 완전히 막힌 상황이다.
오솔은 뛰어난 포스트 플레이로 공격권을 지켜냈으나 공은 후방에서 좌우로 옮겨가기만 할 뿐, 상대의 빈틈을 찌르는 플레이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파아앙!
결국 마지막 선택은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는 그나마 함부르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협적인 공격 방법이었다.
191㎝인 만주키치와 188㎝인 오솔과 바바레즈가 박스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상대가 잠깐만 방심하거나 실수하면 슈팅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타앗!
이번 크로스는 만주키치에게 향했다. 오솔에게는 나우두가 따라붙고 있었고, 바바레즈도 전담 마크맨이 있는 상황이니 다른 대안이 없었다.
[만주키치의 헤더!]
만주키치는 좋은 움직임으로 공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파앙!
아무런 방해도 없이 이루어낸 헤딩. 공은 골키퍼에게서 먼 쪽 골대로 향했다.
굉장히 절묘한 위치였다.
[아! 쳐냅니다! 팀 비제의 놀라운 선방!]
그러나 공은 골키퍼의 손을 맞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너무 먼 거리에서의 헤딩이었습니다.]
빽빽한 중앙을 피하다 보니 헤딩이 생각보다 먼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골대 구석으로 향한 슛이었음에도 골키퍼가 막아낼 수 있었다.
[거리가 먼 것도 있지만 팀 비제 선수의 반사 신경도 좋았네요.]
[이번 시즌에 이적해온 선수죠. 전반기에는 아쉽게도 부상 때문에 모습을 보이지 못했는데요. 그 미안함 때문인지 후반기 말미에 접어들면서 많은 선방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공격이 끝난 것은 아니죠? 코너킥이 이어집니다.]
[함부르크로서는 이런 세트 피스를 잘 살려야 합니다. 베르더 브레멘에는 요앙 미쿠라는 걸출한 플레이 메이커가 있지만, 함부르크는 반 더 바르트 선수가 빠지면서 중원에서 게임을 풀어줄 선수가 없거든요.]
코너킥 상황. 오솔을 막는 건 클로제였다.
“어떻게 된 거야. 전반기보다 약해 졌는걸?”
“그쪽도 만만치 않아요.”
시즌이 말미에 접어들면서 함부르크처럼 집중력을 잃은 팀도 있었고, 뮌헨처럼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곳도 있었다. 아니, 이처럼 장기 레이스를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력과 컨디션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시즌 초반과 같은 경기력이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럴 때야말로 감독의 역량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정신적으로 해이해진 선수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목표를 명확히 하며 낙오하는 선수가 없도록 모두를 하나로 묶는 것.
소위 명장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이러한 일에 매우 능숙했다.
‘아쉽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토마스 돌 감독은 확실히 모자람이 있었다. 만약 그가 구단과 바바레즈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중재를 했다면, 그래서 바바레즈가 갖고 있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줬다면, 적어도 오늘 이렇게 힘든 상황을 마주하진 않았을 것이다.
“미리 사과할게. 오늘 우리가 제대로 찬물을 끼얹을 거야.”
함부르크를 쓰러뜨리고 2위로 올라서겠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함부르크는 23년 만에 찾아온 우승 기회를 놓치게 된다. 오솔은 가볍게 응수했다.
“말 그대로 너무 이른 사과네요. 괜한 걱정 마시고 경기에 집중하시죠. 제가 미안할 일 없게 해드릴게요.”
[바바레즈의 코너킥!]
파아앙!
두 사람의 시선이 코너로 향했다. 정확히는 바바레즈의 발을 떠난 공을 쫓았다.
강한 힘이 실린 공은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박스 중앙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반 바이텐과 나우두가 서로의 유니폼을 잡고 투덕거리는 곳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만주키치와 파렌호스트가 어깨를 부딪치는 곳 역시 아무런 방해 없이 지나쳤다. 바바레즈의 코너킥 정확도가 떨어지면서 생각보다 멀리 나아간 것이다.
클로제는 공과 푸른 하늘을 한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실축이로군.’
공은 먼 쪽 골대를 바라봤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높이 날았다.
클로제는 판단이 끝나는 순간, 긴장을 풀었다. 이 정도 높이면 아무도 잡을 수 없다. 골킥이 되거나 스로인이 될 게 뻔했다.
타닷!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옆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렸을 때 그가 본 것은 한 발자국 크게 내딛는 오솔의 모습이 보였다.
다음 순간 녀석의 쪽빛 유니폼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클로제는 오솔의 얼굴을 보기위해 고개를 들었다. 아니, 고개를 계속해서 젖혀야 했다.
‘높이라니…….’
그러나 그가 오솔의 짓궂은 미소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공이 골 망을 가른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