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99화
19장 내기의 결과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대지에 온기가 느껴지는 3월이 되었다. 함부르크 사람들의 얼굴은 한 달 사이에 한층 밝아져 있었다. 팀의 에이스가 따뜻한 봄날과 함께 돌아왔기 때문이다.
[반 더 바르트가 드디어 인고의 시간을 끝내고 필드로 돌아온다!]
데니스 쿤츠의 칼럼에서 알 수 있듯이 드디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던 함부르크의 에이스가 팀 훈련에 합류하게 되었다. 훈련장을 찾은 팬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왕의 귀환을 반겼다.
“라파엘! 이제 멀쩡해진 거예요?”
“여러분들이 응원해준 덕분에 회복이 빨리 했어요. 고마워요.”
“우리가 시즌이 끝나고 마이스터 샬레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요? 벌써 3월이고, 2위로 떨어졌는데?”
남은 리그 경기는 11경기. 현재 리그 1위는 바이에른 뮌헨이고, 함부르크와의 승점 차이는 고작 1점이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만 존재하는 상황. 문제는 중반 이후 뮌헨의 경기력이 살아나면서 후반기 여섯 경기를 모두 이겼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전반기에 졌었던 베르더 브레멘을 상대로도 승리를 따내면서 우승을 향해 파죽지세로 나아가고 있었다.
결국 리그 우승을 위해서는 바이에른을 비롯한 나머지 11개 팀을 모조리 꺾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괜찮아요. 남은 경기를 다 이기면 되니까.”
반 더 바르트는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함부르크는 그의 장담대로 24~27라운드를 모조리 이기며 최근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약팀들은 물론이고 도르트문트나 샬케04 같은 팀들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원래부터 막기 힘들었던 반 더 바르트인데 여기에 오솔과 만주키치의 와이드 타깃맨 전술이 합쳐지자 훨씬 더 강력해진 것이다.
결국 4월이 되도록 함부르크와 뮌헨은 단 한 경기도 놓치지 않고 모두 승리했다. 그리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순위권 최상위층에 이름을 번갈아 적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8라운드 상대로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게 되었다.
“선수들 반응은 어떤가?”
토마스 돌 감독의 어조에는 은은한 걱정이 어려 있었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상황이라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합니다. 오솔과 라파엘을 필두로 하는 젊은 선수들의 자신감이 선수단 전체에 퍼져있죠.”
“그거 다행이군.”
리그가 후반으로 향하면서 컨디션이 하락하는 선수들이 속속 출몰하고 있었다. 이때 감독이 챙겨야 할 건 피지컬만이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멘탈’ 즉, 정신력이었다.
“어쩌면 시즌아 끝날 때까지 우승팀이 결정 나지 않을 수도 있어. 이럴 때는 신체적인 휴식 못지않게 정신적인 휴식 또한 필요하지. 짧고 간결한 훈련으로 선수들이 집중력과 승부욕을 잃지 않도록 잘 관리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뮌헨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상대의 예상되는 포메이션은 무엇인가?”
“뮌헨은 최근 4-4-2 기본형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다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 때문에 4-3-1-2로 복귀할 가능성도 얼마간 있습니다.”
“기억나는군. 2주 전에 다이슬러와 하그리브스가 부상을 입었다고 했었지, 정확히 얼마나 다친 건가?”
“생각보다 부상이 심했는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복귀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죠.”
수비의 핵심인 오언 하그리브스가 빠진다는 건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전반기에 붙었을 때도 결국에는 그가 빠지고 나서야 게임이 순조롭게 풀렸지 않았나.
“그나저나 다이슬러는 또 부상이군. 이번에는 월드컵에서 볼 수 있나 기대했는데…….”
“또다시 무릎이 말썽을 일으켰다고 하더군요. 겨우 우울증을 극복했는데 다시 위험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제바스티안 다이슬러는 독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뛰어난 테크니션이었으나, 동시에 엄청난 유리 몸으로 유명했다.
이번 부상도 사실은 훈련 중에 오언 하그리브스와 부딪히면서 입을 것이었다. 마치 유리잔 두 개가 서로 부딪힌 것과 같은 결과였다.
“그 외에 특별한 것은 없나?”
“저……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최근에 세르게이에게 불만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으음. 아마 출전 시간이 문제겠지…….”
“예, 아무래도 만주키치와 반 더 바르트 때문에 출전시간이 줄어든 것이 서운한 모양입니다. 전반기만 하더라도 좋은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이거 곤란하군.”
토마스 돌 감독은 볼을 긁적였다.
사실 와이드 타깃맨 역할은 바바레즈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만주키치보다 더 잘 할지도 모른다. 그의 전술 이해도는 아직 스무 살인 만주키치보다 월등한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돌 감독의 선택은 결국 만주키치였다. 거기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이유가 혼재되어 있었다.
“강팀을 상대할 때 만주키치의 활동량은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된단 말이지.”
“덕분에 오솔을 공격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점도 뺄 수 없죠.”
코치의 말대로 만주키치가 수비에 집중하고, 오솔과 반 더 바르트가 역습을 도맡기 시작하자 바바레즈가 있을 때보다 오히려 득점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뮌헨전은 상대의 측면 수비수들을 막는 것이 관건이야.”
프랑스 국가대표인 윌리 사뇰과 독일의 국가대표 필립 람이 지키는 측면 라인은 그 견고한 수비만큼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도 유명했다.
돌 감독은 이를 오솔과 만주키치를 활용해서 막을 생각이었다. 가끔씩 전진하는 루시우는 반 더 바르트가 맡으면 적어도 상대의 공격은 완벽하게 막을 수 있었다.
마치 4-3-3처럼 변하는 이 수비 진형은 역습 시에도 유용했다. 좌우로 넓게 벌린 오솔과 만주키치의 머리를 향해 후방에서 공을 길게 차주고, 그들이 따낸 공을 반 더 바르트가 받아서 적진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럼 UEFA컵에 내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마침 만주키치는 경험도 적고 어쩌면 체력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바바레즈를 쓰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
돌 감독은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최근에 베른트 호프만 구단주에게 귀띔을 들었던 게 계속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바바레즈의 에이전트와 재계약을 논의한다는 걸 알고 있을 거요. 그래서 말인데, 괜히 상대에게 협상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바바레즈의 출전시간을 제한하라는 은밀한 요구였다.
함부르크 운영진은 최근 두 달 동안 바바레즈의 에이전트를 만나 재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는 걸 의미했다.
바바레즈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경기를 뛰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했으나, 구단으로서는 부진했던 최근 성적을 들이밀며 최대한 그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싶었다. 당연히 구단에서는 해당 선수가 활약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음……. 그 문제는 그의 재계약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본 다음에 결정하도록 하세.”
다행히 바바레즈가 없이도 팀은 연전연승을 기록하는 상황이었다. 굳이 구단주에게 밉보이면서까지 그를 쓸 필요는 없었다.
‘그래, 이 멤버가 베스트야. 만주키치까지 제 몫을 해주고 있는 지금, 바바레즈는 결국 반 더 바르트의 대체자일뿐이지.’
토마스 돌 감독은 애써 자기합리화를 시도했다. 사실은 운영진과의 관계 때문에 바바레즈에게서 등을 돌린 것이었으나, 그는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잖아. 내 입장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결정을 했을 거야.’
그렇게 팀의 계획에서 바바레즈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 * *
이후 맞이한 28라운드 바이에른 뮌헨전.
최상위권 두 팀이 맞붙는다는 소식에 독일 전역에서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이날 경기에서 오솔과 만주키치는 상대 측면 수비수를 철저히 막아내는 모습을 보였으며 간간히 역습을 시도했다.
그러나 바이에른 뮌헨 역시 준비를 단단히 했는지 함부르크의 공격진을 상대로 탄탄한 수비를 펼쳐 보였다. 수비라인의 압박과 커버가 굉장히 정교해서 오솔이나 반 더 바르트로서도 틈을 발견할 수 없었다.
팽팽했던 경기는 후반전에 나온 프리킥 한 방에 결정 나고 말았다. 반 더 바르트가 정교하게 감아 찬 공이 반 바이텐의 머리에 제대로 맞은 것이다.
[꼬오오올! 다니엘 반 바이텐!]
경기는 1 대 0, 함부르크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함부르크는 이 경기에서 승리함에 따라 다시금 리그 1위를 탈환하게 되었고, 시내 전역은 밤늦게까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때부터 ‘잘하면 리그 우승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란 생각이 함부르크 전역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처럼 호들갑의 시작은 언론이었다.
[어쩌면 23년 만에 더블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 모르겐 포스트, 데니스 쿤츠.]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1982-83 시즌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분데스리가 우승과 유로피언컵 우승. 즉, 더블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말이다.
필자 역시 아버지에게 고막이 닳도록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나 에른스트 하펠 감독과 그의 전사들이 어떻게 해서 빅이어를 손에 얻었는지에 대한 모험담은, 안타깝게도 현세대에게는 전설처럼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었다.
80년대를 그리워하는 지역의 올드팬들은 항상 말해왔다. 그 당시 함부르크는 세계를 제패한 구단이었다고…….
그때 우리에게는 독일 역사상 최고의 오른쪽 수비수인 만프레트 칼츠와 고공 폭격기 호르스트 흐루베슈, 그리고 유벤투스를 꺾고 빅이어를 들어 올리게 해줬던 펠릭스 마가트 같은 선수들이 존재했었다.
문제는 이후 한참 동안 위대한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려 23년간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철의 4백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수비라인과 마이티 마우스(케빈 키건)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는 라파엘 반 더 바르트! 그리고 제2의 호르스트 흐루베슈라 불리는 특급 골잡이 오솔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들과 함께라면 올 시즌 더블도 꿈이 아니다.
물론 빅이어(챔피언스 리그 트로피)와 UEFA컵 트로피를 직접 비교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함부르크는 이제 막 첫발을 뗐다는 걸 알아야 한다. 반 더 바르트는 아직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이고, 오솔은 아직까지도 10대에 불과했다.
이번 시즌이 두 선수가 이적해온 첫 해라는 걸 기억한다면, 지금 필자의 반응이 그저 호들갑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환호와 찬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몇몇 함부르크 팬들은 벌써부터 구단의 성공시대를 확신했다. 그 생각은 팀이 승리를 하나씩 쌓아갈 때마다 더 확고해져 갔다.
UEFA컵 8강 2차전 FC 슈테우아 부쿠레슈티전 승리. 4강 진출 성공.
리그 29, 30라운드 승리. 리그 1위 수성. 남은 리그 경기는 4경기.
이때부터 몇몇 선수들에 대한 이적 제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먼저 4백의 수문장으로 큰 키를 활용해 웬만한 공격수들 이상의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다니엘 반 바이텐. 그에게 영입 의사를 표시한 곳은 분데스리가의 포식자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그들은 약 1,300만 유로(약 170억 원)와 더불어 공격수 파울로 게레로까지 넘기겠다고 전해왔다. 반 바이텐 본인과 함부르크 운영진 모두 이번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 다른 중앙 수비수 칼리드 볼라루즈 역시 EPL 우승에 바짝 다가선 첼시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금액이 오가는 단계는 아니었으나 이쪽도 역시나 분위기가 좋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바바레즈의 처지가 더 처량해질 수밖에 없었다. 웃돈을 얹어서 데려가려는 동료들과 달리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게 생겼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훌륭한 활약을 보였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이 같은 대우를 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시즌 중에는 물론이고, 휴식기에도 술을 자재했던 바바레즈가 어느 날 잔뜩 취해서 오솔을 찾아왔다.
UEFA컵 4강 1차전을 지척에 앞둔 어느 날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