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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98화 (9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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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98화

“이,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한 거야?”

“간단한 생각의 전환이지. 어차피 4-3-1-2 전술의 특성상 투톱이 측면을 공략해야 하잖아. 이것저것 생각해 보니까 이런 움직임이 쓸 만해 보이더라고.”

‘사실은 네가 미래에 할 역할이다.’

오솔도 만주키치를 보기 전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전술이었다. 회귀 후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오솔 역시 ‘주어진 전술 속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같은 꽉 막힌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포스트플레이만 할 수 있는 단순한 공격수가 아니잖아. 미리부터 플레이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어.’

그렇게 오솔이 한 꺼풀 벗고 있을 때, 만주키치는 새로운 전술을 앞에 두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윙어로 뛴 적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너무 느려서 그곳에서 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일단 한번 시도해 보자. 이따가 동료들이 오면 같이 연습해 보는 거야.”

오솔은 선수들이 모두 모였을 때 이 같은 플레이 방식을 설명했다.

“만두치킨이 좌측으로 크게 벌려주고 제가 수비수들을 우중간에 묶어놓고 있으면, 여기! 저와 만두치킨 사이에 공간이 만들어지겠죠? 이때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만두치킨이 이쪽으로 떨어뜨리는 거예요. 그럼 공격형 미드필더가 이 공간으로 가서 자유롭게 공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죠.”

만주키치가 측면으로 가면서 생긴 공간으로 헤딩 패스를 시도하면 이곳으로 바바레즈 같은 선수들이 쇄도한다는 계획이었다.

“혹은 응용해서 공을 이 뒤로 떨어뜨리고, 측면 수비수가 공격에 가담하는 것도 가능해요. 이 방법은 타이밍만 맞출 수 있다면 상대 뒤 공간을 자유롭게 돌파할 수 있죠. 어차피 측면 수비수는 만주키치에게 묶여 있을 테니까요.”

만약 측면 수비수와 호흡만 잘 맞는다면 지금까지 전무(全無)하다시피 했던 측면 공격에 활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덕분에 아투바나 마다비키아의 눈동자에도 흥미가 일었다. 원래 그들은 공격적인 재능이 가득한 선수들이었다. 돌 감독의 주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비에만 집중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내심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먹힐까?”

“통한다고 해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와이드 타깃맨이라는 생소한 개념에 몇몇은 난감한 표정이, 이해력이 뛰어난 몇몇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이들은 공격 코치 잉고 다만에게 몰려가 이 전술을 시험하고 싶다고 말했고 다만 코치는 그 말을 그대로 돌 감독에게 전했다.

그리고 시작된 전술 훈련…….

“이게 대체…….”

놀라워하는 주변인들의 반응에 오솔은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말았다. 어차피 본인이 창안한 전술도 아니었으니 잘난 척하기도 민망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토마스 돌 감독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이, 이건 대체 뭐라고 명명(命名)해야 하지?”

“아아. 이것은 와이드 타깃맨이라는 것이다.”

“오오! 와이드 타깃맨이라고?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야.”

“뭐, 뭐야…….”

오솔은 장난처럼 건넨 한마디에 생각보다 격한 반응이 돌아오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 이후 함부르크는 기존 전술에 와이드 타깃맨을 활용하는 방법을 섞어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돌 감독은 여전히 측면 수비수의 공격 가담을 꺼려 했으나 공격형 미드필더가 활약할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들어 했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후반기가 시작한 지도 20여 일이 지났네요. 오늘은 바이어 04 레버쿠젠과의 21라운드 경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반 더 바르트 선수의 결장 때문일까요, 아니면 겨울 휴식기에 너무 푹 쉬었던 탓일까요. 함부르크 SV의 후반기 성적이 영 좋지 않습니다.]

[18라운드 하노버 96전 패배, 19라운드 빌레펠트전 승리, 그리고 20라운드 헤르타 BSC 베를린전 무승부로 1승 1무 1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리그 1위를 다시 뮌헨에게 내주고 말았죠. 반 더 바르트의 부재가 유독 돋보이는 경기들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세 경기에는 예상외의 문제도 발생했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바바레즈 선수도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서 팀에 기여할 수 없었습니다.]

[심한 독감 때문에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다행히 이제는 괜찮은 듯합니다.]

[과연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일지 걱정이네요. 걱정거리는 이게 끝이 아니죠? 하필이면 오늘, 새로운 이적생들이 대거 출전하게 되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바로 나이절 더 용 선수와 마리오 만주키치 선수죠. 과연 중원과 최전방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무척이나 기대되는 상황이네요.]

[잘 풀리면 지금의 침체기를 넘길 수 있겠지만, 만약 신입생들이 오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지금의 상황이 조금 더 오래갈지도 모릅니다.]

삐이익-!

경기가 시작되고 미하엘 스키베 감독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벤치에 앉았다. 오늘의 승리를 자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최근 오솔은 그날의 퍼포먼스를 재현하지 못하고 있어. 바바레즈의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고, 우리가 이길 확률이 훨씬 높다.’

물론 그렇다고 상황을 낙관하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스키베 감독은 오솔을 막기 위해 주앙과 주니오르가 서로 긴밀히 협력하는 훈련을 짰고, 이제는 그가 지난번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주니오르가 몸싸움을 시도해서 상대의 균형을 잃게 만들고, 주앙이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공을 뺏는다.’

막강한 힘에 비해 균형 감각과 드리블이 낮은 오솔을 막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다만 오늘 경기에서는 상대가 투 타워 전술로 나왔기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인 지몬 롤페스를 밑으로 내려서 3백 형태로 전환했다. 또한 바바레즈는 미드필더 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내려와서 막고, 중앙은 우측 미드필더가 커버하기로 했다.

모든 대비가 완벽한 상황이었다.

삐이익-!

과연 경기가 시작되자 오솔은 두 사람에게 잡혀서 옴짝달싹 못 했고, 함부르크의 뉴페이스 또한 지몬 롤페스에게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그렇게 무난한 승리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던 순간, 일이 벌어졌다.

파아앙-!

센터 라인을 막 넘어선 마다비키아가 반대쪽 먼 곳을 향해 얼리 크로스를 보낸 것이다.

공은 측면과 중앙 수비수 사이의 공간으로 날카롭게 감겼고, 그곳에는 어느새 마리오 만주키치가 도달해 있었다.

지몬 롤페스가 급히 따라 나왔고, 측면 수비수도 뒤에서 붙으며 헤딩을 방해하고자 했다.

그러나 만주키치는 너무도 쉽게 헤딩에 성공했다.

점프할 필요도 없었다. 191㎝의 장신을 상대하기에 상대 측면 수비수는 너무도 작았다.

툭 소리와 함께 공이 중앙으로 떨어졌고, 그곳으로 바바레즈가 달려들었다.

[바바레즈의 슈우웃!]

뻐엉-!

바바레즈는 마지막 남은 감기 기운까지 훨훨 날려 버리는 멋진 슈팅으로 후반기 첫 득점에 성공했다.

상황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만주키치가, 그가 안 될 때는 오솔이 좌우로 빠지면서 바바레즈에게 기회를 만들어줬고, 바바레즈는 그때마다 슛과 패스를 적절히 섞어가며 상대 수비진을 괴롭혔다.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는 상황이라 바바레즈가 활약하기 너무도 좋았다. 그러한 문제점을 파악한 스키베 감독은 지몬 롤페스를 다시 위로 올려 바바레즈를 전담 마크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였다. 4백으로 바뀐 덕분에 한층 자유로워진 오솔을 막느라 수비진이 한없이 휘청거렸다.

‘미치겠군. 그렇다고 공격수를 줄일 수도 없고.’

0 대 1로 지고 있는데 지금 공격수를 빼버리면 역전은 불가능하다. 결국 스키베 감독은 추가 실점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현재 포메이션을 유지했다.

역전을 노리는 레버쿠젠과 그런 레버쿠젠의 완전한 침몰을 원하는 함부르크의 싸움은 치열한 난타전 끝에 총 여섯 골이 터지는 골 잔치로 끝이 났다.

최종 스코어는 4 대 2. 함부르크 승(勝)!

이날 오솔은 오랜만에 멀티 골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레버쿠젠전 대승에 환호하는 함부르크 팬들.]

오래간만에 펼쳐진 화끈한 공격과 준수한 경기력에 팬들은 한껏 취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어지는 경기에서도 많은 축구 팬이 추위도 잊고 경기장을 찾았다.

[또 오솔이야!? 머리를 감싸 쥐는 스키베 감독!]

스키베 감독은 유연한 전술 변화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오솔이 레벨 업을 하는 데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날 오솔은 두 골로 MOM을 받았고, 21라운드 베스트 11에 만주키치와 나란히 들어가며 포인트 3개를 얻을 수 있었다.

‘극장 골의 주인공’ 스킬이 4단계로 넘어갔다는 것과 ‘에이스님이 다 해주실 거야’의 조건을 하나 채운 것은 덤이었다.

[새로운 전술의 등장? 토마스 돌 감독의 창의적인 전술 변화.]

몇몇 기사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토마스 돌 감독의 전술을 찬양했다. 그가 부족한 스쿼드를 창의적인 선수 운용으로 보충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주키치. “와이드 타깃맨은 오솔의 아이디어였다.”]

물론 새로운 이적생 만주키치의 양심 고백(?)에 새로운 전술의 공헌은 오솔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토마스 돌 감독은 내심 달콤한 말을 더 듣고 싶었으나, 선수의 업적을 뺏을 정도의 비겁자는 아니었다.

[와이드 타깃맨을 막아라! 대처법을 찾아 나선 전술가들.]

이후 함부르크 SV는 오솔과 만주키치 투톱을 앞세워 리그를 폭격하기 시작했고, 22라운드 프랑크푸르트전과 23라운드 마인츠 05전에서도 큰 득점 차로 승리를 이어가며 리그 2위를 굳건히 수성했다.

이중 프랑크푸르트전은 한국에서도 크게 이슈가 되었는데, 측면 수비수로 나온 차태민과 오솔이 수차례 경합을 하게 되면서 오솔의 실력을 모두가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놈 뭐냐. 방금 차태민이 밀린 거 맞냐?]

[사실 경기 초반부터 계속 밀렸지. 냉정한 말이지만 차태민의 폼이 많이 죽었거나, 아니면 오솔이 차태민보다 더한 괴물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겠어.]

[실제로 차태민 폼도 죽었고, 오솔이 괴물이기도 해. 현지에서는 오솔을 두고 수비수 혼자서는 막기 힘든 공격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

[그래서 지금 독일에서 사신다?]

[그냥 유학생인데?]

[그래서 금발 백인 여학생들이랑 같이 수업을 들으신다?]

[백발의 중후한 교수님 수업은 듣고 있다. -_-;;]

[존중은 취향합니다.]

[……아무튼 현지의 평가로는 제2의 호르스트 흐루베슈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 키도 비슷하고 플레이 스타일도 비슷한 면이 많거든. 그리고 정말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골잡이가 등장한 거라 팬들의 반응도 열광적이지.]

[호어 누구? 그게 누군데?]

[……그냥 함부르크의 레전드 공격수라고 보면 된다.]

반 더 바르트가 빠진 사이에 오솔의 위상은 계속해서 올라갔고, 기어이 80년대 레전드의 이름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 * *

만주키치가 오솔의 훈련을 따라 하길 한 달째. 그는 처음과는 달리 오솔에게 존경심이 어린 눈빛을 보내게 되었다.

‘매일 이렇게 훈련해 왔다면 이런 실력을 보여주는 것도 당연하겠지. 나도 겨우 한 달 반복했을 뿐인데 실력이 늘었다는 게 체감이 되니까 말이야.’

만주키치는 매일같이 왕성한 체력을 보여주는 오솔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도 체력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오솔의 훈련은 그런 그조차도 힘들어서 일주일에 두 번씩은 쉬어야 할 정도였다.

결국 만주키치는 그날도 저녁 훈련이 끝나자마자 잔디에 몸을 눕혀야 했다.

“하아. 힘들다.”

“무리다 싶으면 하루 더 쉬든지 시간을 줄여.”

“아니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따라가 봐야지.”

“너도 한 고집 한다. 만두치킨아.”

“……그런데 너는 신혼인데 집에 안 들어가도 괜찮아?”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어떻게 하겠어. 그렇다고 훈련을 줄일 수는 없는 일이잖아.”

“설마 너도 제 호베르투처럼 그렇게 사는 건 아니지?”

만주키치의 익살스러운 말에 오솔은 허탈하게 웃었다.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해. 아내가 임신했거든. 이제 3개월째야.”

“진짜? 축하해!”

“고마워.”

“그러면 집에 더 자주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다행히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독일에 와계셔. 경기 전날이나 경기가 끝난 날에는 어차피 쉬어야 하니까 그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이제 3개월에 부모님까지 같이 살면 강제로 금욕생활을 하고 있겠네. 흐흐흐. 힘들겠는데?”

“별로…….”

오솔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늘을 봤으나 눈동자가 촉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주키치는 그런 오솔을 측은한 눈으로 보다가 곧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응?’

나란히 누워 있는 오솔의 바지춤이 불룩 솟아난 것이다.

‘뭐, 뭐야?’

만주키치는 오솔의 바지춤과 자신의 다리 사이를 몇 번이고 번갈아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졌다……. 과연 동양인의 피지컬이 아니라 이건가?’

그는 새삼 오솔에게 경외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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