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97화
훈련이 시작하기 전, 선수들이 새로운 신입에게 다가가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그중에는 아까부터 혼자 키득거리고 있던 오솔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반갑다, 만두치킨아.”
“만두치킨이 아니고 만주키치야. 그냥 편하게 마리오라고 불러.”
“난 이게 더 편하니까 그냥 만두치킨으로 부를게.”
“아니, 이름으로 부를 거면 제대로 좀…….”
“아~ 오랜만에 양념치킨 먹고 싶다. 벌써 치킨 끊은 지 4년째네.”
“아니…….”
“젠장.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축구 선수는 할 게 못 된다니까.”
오솔은 그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혼자 떠들어대더니 그대로 필드로 돌아갔다.
“저, 저…… 뭐야, 저놈?”
황당해하는 만두치킨. 그에게 바바레즈가 다가왔다.
“저 녀석은 원래 마이페이스니까 내버려 둬. 내가 말해도 잘 안 듣는 놈이야. 그나저나 크로아티아에서 왔다고?”
“네.”
“반갑다. 난 세르게이 바바레즈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이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이 두 나라는 서로 국경도 마주하고 있는 데다가 1989년까지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 심리적으로 가까웠다.
바바레즈가 오솔에 이어 만주키치의 멘토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거 꼬맹이들을 둘이나 돌봐주게 생겼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바바레즈는 표정이 밝았다. 베테랑으로서 경기 외적으로도 팀에 기여하는 건 보람된 일이었다.
‘두 녀석이 멋진 활약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바바레즈는 팀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내년에 있을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생각하게 밝게 웃었다.
* * *
짧은 몸 풀기가 끝나고, 이어서 7 대 7 훈련이 진행됐다. 돌 감독은 가만히 훈련을 지켜보다 수석 코치에게 물었다.
“신입생들은 어떤 것 같아?”
“나이절 더 용은 제법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흡도 생각보다 잘 맞추고 있죠.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 영리한 선수 같더군. 만주키치 쪽은 어떤가?”
랄프 줌딕 수석 코치가 힐끗 훈련장을 훑어보더니 짧은 신음 소리를 냈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훨씬 뛰어난 선수입니다. 다만 오솔을 대신할 수 있는가 하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주게.”
“제공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오솔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키도 더 크고, 헤딩도 만만치 않게 잘하죠. 하지만 위치 선정이나 몸싸움 같은 부분은 조금 부족하더군요. 덕분에 헤딩 성공률은 미세하게 오솔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군.”
제공권은 만주키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여기서조차 오솔에게 밀린다면 당장 짐을 싸야 했을 것이다.
“그것 외에 장점이라면 역시나 활동량을 들 수 있습니다.”
“음. 확실히 수비 가담도 뛰어나고, 좌우로 벌려주거나 밑으로 내려오는 횟수도 많은 편이군.”
“네. 부지런하고 이타적인 선수죠. 물론 활동량은 오솔도 만만치 않지만 태클이나 대인 마크 같은 수비적인 면은 오히려 만주키치 쪽이 더 낫습니다.”
하지만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법. 만주키치는 수비가 뛰어난 대신 공격에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속도입니다. 특히 역습 시 스피드가 심각하게 느리죠.”
“그건 어쩔 수 없지. 장신 선수니까.”
“또 생각보다 슈팅 기술이 좋지 않습니다. 헤딩을 할 때와는 다르게 발로 차야 할 때는 반응 속도가 굉장히 떨어집니다.”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뜻인가?”
“네. 아무래도 문전에서의 파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헤딩슛을 제외하면 득점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죠.”
“으음…….”
“그나마 연계 플레이는 기본이 되어 있습니다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패스 타이밍이 조금씩 늦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고 경험 부족과 판단 실수 같습니다.”
토마스 돌 감독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사실 축구에서 기술 못지않게 익히기 힘든 것이 예측력, 판단력과 같은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이건 훈련으로 고치기 힘들고 결국 실전을 반복해서 경험을 쌓는 수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로군.”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솔 대신 쓰기에는 부족합니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골을 넣지 못한다는 게 큽니다.”
오솔의 많고 많은 장점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결국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라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자네 눈이 너무 높아진 것 같군. 우리가 처음에 오솔을 영입할 때 기대했던 역할들을 생각해 보게. 그럼 만주키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부드러워질 거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기준치가 너무 높아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 그럼 오솔을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어떤가?”
“오솔이 아닌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라는 말씀인가요?”
“아니, 말 그대로 오솔을 다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 하는 물음이었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9번 자리에 만주키치를 놓고 오솔을 보다 자유롭게 둘 생각이네. 좀 더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말이야. 굳이 예를 들자면 안드리 셰브첸코처럼 운용하는 거지.”
기존에는 오솔을 인자기처럼 써먹었다면 이제는 그 역할을 만주키치에게 맡기고, 오솔은 만능 공격수 셰브첸코처럼 써먹겠다는 소리였다.
“그건…… 한번 시도해 볼 만하겠군요. 마침 만주키치는 수비 쪽에 조금 더 공헌할 수 있는 타입이니, 어쩌면 꽤나 효과적인 조합이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솔은 공중 볼 경합과 연계, 그리고 수비 가담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높은 득점력을 보인 것은 슈팅 대부분이 골문 안쪽으로 향했고 동시에 꽤 높은 확률로 골까지 연결됐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오솔은 결정적인 기회에 강했다.
‘선천적으로 대범한 스타일이야. 뮌헨전 같이 큰 경기에서 더 위력을 발휘할 타입이지. 만일 오솔이 90분 내내 골을 노릴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을지도 몰라.’
메시나 호날두 같은 선수에게 수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단순히 체력적인 안배(按排)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90분 내내 상대의 골문을 노리는 편이 팀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더 이득이기 때문에 역할을 나눈 것이라고 봐야 했다.
반 더 바르트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도 이러한 선택을 부추겼을 것이다. 어쨌거나 토마스 돌 감독은 반년 만에 오솔이 공격에 올인하게 하는 편이 팀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 * *
한편 만주키치는 공을 쫓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짧은 시간임에도 벌써 전력 질주 횟수가 15회를 넘어가고 있었다.
‘젠장, 질 수 없어!’
그가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이유는 반대편에서 뛰고 있는 오솔 때문이었다.
‘이 몹쓸 승부욕 같으니…….’
처음에는 단순히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오솔이 질주할 때마다 따라 했었다. 그러다가 비슷한 덩치임에도 자신보다 훨씬 빠른 오솔에게 묘한 승부욕이 생겼고, 전력 질주 횟수가 10회를 넘어가면서부터는 반쯤 오기 때문에 하게 되었다.
‘그래.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해보자! 나도 체력이라면 어디 가서도 안 꿀려.’
그러나 넘치는 패기와는 다르게 연습이 진행될수록 만주키치의 발은 느려져 갔다. 원래도 오솔에게 밀렸던 속도가 점점 더 느려지더니, 결국 훈련이 끝날 때쯤에는 완전히 느림보 걸음이 되고 말았다.
‘이런 미친놈! 설마 오전 훈련만 하고 갈 생각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전력 질주를 20번 넘게 할 리 없었다. 농담이 아니라 이 정도면 정식 시합을 한 번 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미친 짓을 했음에도 녀석의 스피드는 처음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분데스리가의 레벨이라는 것인가? 나보다 한 살 더 어린 선수가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이다니…….’
단순히 달리기 속도, 그리고 체력에서만 밀렸다면 이처럼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솔은 만주키치가 버거워했던 반 바이텐을 상대로 여유로운 몸싸움을 선보였으며, 영리한 오프 더 볼 움직임과 부드러운 볼터치로 경기장 곳곳에서 슈팅을 시도했다.
‘대단하다. 내가 과연 이 녀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오솔의 미친 활동량은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만주키치는 완전히 기가 질렸는데, 만약 이게 컨디션이 90퍼센트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나온 퍼포먼스라는 걸 알았다면 충격이 훨씬 컸을 것이다.
“자! 여기까지 하고, 내일 보지!”
드디어 첫날의 훈련이 끝이 났다.
‘후우. 힘든 하루였다.’
만주키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감독과 스태프, 그리고 동료 선수들을 만나는 건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거기다 이렇게 강도 높은 훈련까지 진행했으니 정신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만주키치가 터덜터덜 샤워실로 향할 때였다. 필드위로 깔린 긴 그림자 하나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뭐야?’
파앙! 하는 공 차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지는 해를 비웃듯이 열정적으로 공을 차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훈련 내내 그를 놀라게 했던 오솔이었다.
“미친!”
기어코 욕이 튀어나왔다. 하루 종일 누구보다 많이 뛰어놓고서 공식 훈련이 끝나고도 혼자 남아서 개인 훈련까지 진행한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그래. 한번 끝까지 해보자.’
만주키치는 걸음을 돌렸다. 이왕 부딪치기로 한 거 끝을 보기로 했다.
“같이 연습해도 될까?”
“그럼 나야 좋지. 나중에 합을 맞출지도 모르니까 2 대 1 패스를 연습해 볼까?”
“좋아!”
훈련은 땅거미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끝났다. 만주키치는 만용의 대가로 2시간이 넘는 추가 훈련을 겪어야 했고, 몸이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오솔과 조금 친해졌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물론 오솔은 여전히 그를 만두치킨으로 불렀지만, 이것도 자꾸 들으니 어쩐지 애칭 같아서 듣기 괜찮았다.
‘그나저나 이 짓을 매일 반복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다음 날 아침, 만주키치는 제 눈을 의심할 만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신입답게 30분 일찍 나왔건만, 그곳에서는 이미 오솔이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언제 온 거지……?”
기다렸다는 듯이 등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두 시간쯤 전에 왔어요.”
“예?”
돌아보니 구장 관리인 마티아스 퀴네가 보였다. 퀴네는 물품을 나르며 미지근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함부르크에 오고 나서 매일 반복되는 일이에요. 아침에 문을 열 때 오솔 선수와 같이 들어가고 저녁에 같이 퇴근하는 거죠.”
“매일이요?”
“네. 오솔 선수는 아침에 두 시간, 저녁에 두 시간씩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죠. 무려 반년을요. 전반기가 끝나고 사람들은 함부르크에 신동이 나타났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렇게 매일같이 연습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둔재라고 해도 남들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게 당연하잖아요.”
“…….”
만주키치가 훈련장에 들어섰다. 오솔은 어느새 개인 훈련을 마치고 마무리에 들어가고 있었다.
“어, 일찍 왔네?”
“너야말로 두 시간이나 일찍 나왔다며.”
“원래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지는 법이거든.”
“뭐? 하하! 그럼 내일부터는 나도 같이 훈련해도 될까?”
“대답이라면 어제 했던 것 같은데?”
“좋다는 뜻이지?”
“당연하지. 대신 몸 관리는 알아서 해. 괜히 내 페이스에 맞춘다고 무리하지 말고. 아파놓고 나중에 내 핑계 대봐야 소용없어.”
“물론이지.”
그날부터 두 사람은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훈련에 쏟기 시작했다. 오솔을 경쟁자로만 봤던 만주키치도 그의 노력을 보고 나서는 단순한 경쟁자에서 존경할 만한 선수로 평가가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솔이 말했다.
“아마 우리 둘이 같이 나간다면 네가 타깃맨 역할을 맡고 내가 수비수 뒤로 침투하는 역할을 맡게 되겠지?”
“아마도 그렇겠지. 난 발이 느린 편이니까.”
“하지만 때로는 중앙에서의 경합이 어려울 수 있어. 반 바이텐을 봐서 알겠지만 분데스리가의 중앙 수비수들은 전부 괴물 새끼들이거든.”
만주키치는 지금 그게 반 바이텐을 상대로 몸싸움에서 이기는 놈이 할 소리냐고 묻고 싶었으나 일단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럴 때 이렇게 해보는 거야.”
오솔의 손가락이 측면으로 기울어졌다.
“좌우 수비수들은 상대적으로 키가 작잖아. 물론 스피드는 너보다 빠르겠지만 키와 몸싸움은 상대가 되지 않지. 그럼 이 녀석들과 헤딩 경합을 하면 공을 따내기 더 쉽지 않겠어?”
“측면에서 헤딩 경합을 벌인다고?”
“그래. 네 활동량을 적극 활용하는 거야. 어차피 지금도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고 있잖아. 굳이 힘든 상대와 경합할 이유가 뭐가 있어. 상대적으로 우위를 갖는 곳에서 붙으면 훨씬 쉽게 공격이 가능한데.”
오솔은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이 만주키치를 활용했던 예를 들어가며 와이드 타깃맨(Wide Target Man)의 역할을 설명했고, 만주키치는 그 기발한 발상에 입을 떡 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