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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96화 (9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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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96화

오솔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으나, 실제로 대표팀 선수 중 상당수는 이미 1년 전부터 월드컵에 초점을 맞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뭐, 나도 다르진 않지. 월드컵만큼 큰 대회는 많지 않으니까.’

오솔이 월드컵에 주목하는 이유는 경험치와 군 면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라는 증표, 발롱도르.(Ballon d’or, 황금빛 공) 때문이었다.

발롱도르는 각국 리그나 챔피언스 리그, 혹은 국가대표에서 모두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받을 수 있는 상이었고, 당연히 월드컵이 있는 해에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발롱도르는 2008년부터 무려 10년 동안 메시와 호날두가 양분하게 된다. 만약 메시와 호날두를 꺾었다는 확고부동한 증거가 있다면 오로지 발롱도르 수상, 그것뿐이었다.

‘그렇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일단은 최우수 영 플레이어상을 노려보자.’

골든볼은 최소한 결승에는 진출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오솔로서는 타는 게 불가능했다.

또한 골든슈(득점왕)는 보통 5골에서 6골을 넣는 선수가 수상하는데, 얼핏 적어 보일 수도 있으나 결승까지 7경기에 불과한 짧은 여정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그가 실질적으로 노려볼 만한 상은 최우수 영 플레이어상(21세 이하 대상)뿐인데, 이것도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루카스 포돌스키(독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세스크 파브레가스(스페인) 등 무수히 많다.

실제 역사에서는 ‘애국자’ 포돌스키가 3골이나 넣으며 팀을 3위까지 이끌었고, 자연스럽게 신인상의 영광도 그에게로 향했었다.

월드컵 3위와 3득점. 득점이야 어떻게 노려볼 만해도 팀 순위 3위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오솔은 가볍게 웃었다. 애초에 힘들다는 걸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이번에 무리하면서까지 A매치를 소화한 이유도 결국에는 이런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이 아닌가.

‘일단은 후반기에 집중하자.’

함부르크 SV는 아직도 리그 1등을 달리고 있었고, UEFA 컵 역시 순항 중이었다. 우승과 성공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이번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칠 필요가 있었다.

* * *

함부르크 SV의 클럽하우스 안. 토마스 돌 감독이 팀 닥터에게 물었다.

“라파엘의 상태는 어떠한가?”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는 회복 단계를 넘어서 재활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럼 복귀 시기는 언제로 예상할 수 있지?”

“애석하게도 빨라야 2월 말입니다.”

“으음. 경기력 회복까지 감안하면 3월에나 경기에 나설 수 있겠군.”

돌 감독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반 더 바르트가 재활하는 동안 빠지는 경기는 약 8경기로, 이번 달에는 중간에 UEFA 컵 경기가 포함된 덕분에 유독 경기수가 많았다.

빡빡한 일정과 에이스의 부재. 함부르크로서는 이 한 달을 어떻게 버티느냐가 리그 순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행히 나이절 더 용을 싸게 영입할 수 있었지만…….’

나이절 더 용은 작년에 있었던 청소년 세계 선수권 대회 당시 오솔의 강력한 몸싸움에 밀려났었던 네덜란드 선수 중 하나였다.

함부르크 SV는 중원에서 조금 더 터프하고 왕성하게 움직여 줄 미드필더를 필요로 했고, 마침 아약스에 불만을 품고 있던 나이절 더 용을 100만 유로(약 13억 원)라는 싼 가격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번 계약 역시 함부르크의 단장인 바이어스도르퍼가 나섰는데, 그는 나이절 더 용의 계약 기간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직접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 그를 설득했다.

-우리 팀에는 반 더 바르트도 있고, 볼라루즈도 있죠. 팀에 적응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팀에 같은 국적의 선수가 많다는 것도 나이절 더 용의 마음을 흔들었으나, 결정타는 아약스 시절에 한솥밥을 먹었던 반 더 바르트의 존재였다.

-누가 뭐래도 함부르크의 에이스는 반 더 바르트입니다. 우리는 그를 뒷받침해 줄 선수를 찾고 있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당신 이외의 적임자가 없습니다.

팀의 핵심 선수와 한 묶음이 된다는 것은 주전이 보장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나이절 더 용은 이미 아약스에서 반 더 바르트와 호흡을 맞춰봤었다. 고로 적응하기도 다른 팀보다 더 쉬울 것이다.

주전 보장과 리스크의 감소. 큰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나이절 더 용에게 함부르크행은 가장 안전하면서도 위력적인 패(牌)였다.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나이절 더 용이 팀에 합류했다. 바이어스도르퍼의 수완이 또 한번 빛을 발한 것이다.

‘중원이 탄탄해진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도 쓸 만한 공격수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건데. 하아. 구단주 영감이 돈을 쓸 생각을 안 하니…….’

돌 감독의 걱정대로 구단주, 베른트 호프만은 나이절 더 용을 생각보다 싸게 샀음에도 여전히 지갑을 열 생각이 없었다.

그는 확실한 공격수보다는 되도록 싸고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선수를 찾고자 했고, 마땅한 선수를 찾지 못한 스카우트들은 유럽 중심부보다는 변방을 돌아다녀야 했다.

‘후반기에 탄력을 받으려면 확실한 카드가 추가되는 편이 좋은데. 아쉽다, 아쉬워!’

사실 공격수 영입도 이미 진행 중이었다. 다만 이적이 아닌 임대 형식의 영입이었다. 당연히 감독으로서는 그저 인원수만 채우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후반기 운영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다. 바이어스도르퍼 단장이 감독실을 찾았다.

“잠시 이야기 좀 하지.”

“네. 어서 오십시오.”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후반기에 쓸 공격수 영입이 확정되었네. 임대 후 완전 이적 가능한 조건으로 계약할 생각이지. 써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말하게. 완전 이적을 추진할 테니까.”

“그렇습니까, 혹시 제가 이름을 아는 선수인가요?”

“아니, 아마 모를 거야. 우리 스카우트도 급하게 발견한 선수였으니까…….”

그 말에 돌 감독의 얼굴이 한층 어두워졌다. 역시나 어중이떠중이를 영입한 모양이었다.

단장은 선수 자료를 넘겼다. 동영상도 없어서 사진과 스카우트 노트가 주어진 자료의 전부였다. 공개된 이름이나 얼굴이 역시나 낯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단점이 확실하다는 점이었다. 큰 키로 인한 제공권 장악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이타적인 선수라는 평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는 빠르고 기술이 좋은 선수로 구해달라고 했는데…….”

“그런 선수는 비싸다 보니 주어진 예산 내에서 구하기 힘들었네.”

“하아.”

“그래도 최근에 오솔의 돌파력이 살아나고 있으니까 포스트플레이를 대신 해줄 선수가 있으면 어떻게 만회되지 않겠나?”

“하지만 오솔보다…… 아니죠, 오솔만큼 포스트플레이를 잘해줄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큰돈을 들인 건 아니니까, 일단 써보고 결정하게. 참, 슬슬 바바레즈의 대체자도 키워야 하는데, 트로쵸프스키의 출전 시간을 늘리는 건 어떤가?”

단장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돌 감독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바바레즈의 대체자라니요? 설마 다음 시즌에 그와 계약할 생각이 없다는 뜻인가요?”

“글쎄 잘 모르겠네. 그도 다음 시즌에는 벌써 서른다섯이야. 언제까지 지금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주급 협상이 맞는다면 모를까 만약 너무 많은 돈을 원한다면 구단으로서는 붙잡을 수 없을 걸세.”

서른다섯이면 솔직한 말로 은퇴를 앞둔 나이였다. 축구판에서 말디니나 히바우두처럼 마흔이 넘어서까지 뛰는 선수가 흔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바바레즈도 최근 들어서 풀타임 출전을 부담스러워하곤 했다.

설상가상 이런 현상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더 심해질 것이다. 아무리 몸 관리를 꾸준히 하고 경기 감각을 유지한다고 해도 서른다섯은 장기전인 리그를 따라가기 벅찬 나이였기 때문이다.

꽃이 한순간에 피고 또 한순간에 지듯, 축구 선수도 십 대에는 하루가 다른 급격한 성장을 보여주지만 서른이 넘으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한없이 추락하곤 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건 시즌이 끝나고 이어가기로 하고, 이 친구는 언제 합류하기로 했습니까?”

“지금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중이네. 아마 내일부터는 훈련에 참가할 수 있을 거야.”

“흠. 그나저나 저 이름은 어떻게 읽는 겁니까?”

“아, 어떻게 발음하냐면…….”

토마스 돌 감독은 선수의 이름을 몇 번이고 따라 하며 외웠다. 비록 기대했던 유형의 선수도 아니고, 명성도 없고, 검증도 안 된 선수였으나, 그래도 스카우트들이 유럽 방방곡곡을 찾아다닌 끝에 발견한 선수였다. 아직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혹시 알아, 이 녀석도 오솔처럼 갑자기 포텐이 폭발할지?’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다음 날을 기다렸다.

* * *

“여기에 사인하면 되네.”

함부르크의 새로운 이적생은 단장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사인을 적었다.

‘이로서 함부르크 소속이 된 건가?’

그는 이처럼 빨리 기회가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심 독일 쪽으로의 진출을 염두하고 있었으나 적어도 2~3년은 더 자국 리그에서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제의가 들어왔을 때 깜짝 놀랐다. 심지어 제의를 한 팀이 현재 분데스리가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함부르크 SV라니……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하. 축하하네. 함부르크에서 함께 성공을 거뒀으면 좋겠군.”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는 달리 신입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흘러 넘쳤다. 당연했다. 이건 완전 이적이 아니다.

고작해야 6개월짜리 임대 계약. 만약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는 반년 만에 원래의 구단으로 돌아가야 했다.

‘반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경기를 치르는 기간은 넉 달 정도야. 그 안에 내가 쓸모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해!’

신입의 눈이 반짝였다. 다행히 그는 이러한 종류의 압박감에 강했다. 원래도 상황이 어려울수록 투쟁심을 더 불태우는 성격이었고, 누군가와 경쟁할 때 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아마 자네는 오솔과 호흡을 맞추게 될 걸세. 하하하! 열아홉과 스무 살로 두 사람 다 아주 젊구먼! 젊은 선수답게 팀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길 바라겠네.”

오솔의 이름이 나오자 신입의 눈초리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오솔! 이번 시즌 함부르크의 확고부동한 주전 공격수.’

오솔의 전반기 성적은 14골 4도움이다.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옵션으로 생각하고 데려왔던 선수가 어느덧 공격진의 핵심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성적이 좋은 선수는 바바레즈였다. 그나마 그는 9번과 10번을 오가며 많은 기회를 받은 덕분에 4골 7어시로 간신히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둘 외에는 제 몫을 해내는 공격수가 없었다.

벤자민 라우트 2골 1어시. 에밀 음펜자 1골 1어시. 나오히로 타카하라 2골 1어시.

셋을 합쳐도 5골 3어시밖에 안 된다. 앞선 이들과 비교하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처참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내 경쟁자는 오솔, 그리고 바바레즈지.’

그가 맡을 역할은 전통적인 9번이었다. 적어도 포스트플레이와 제공권만은 저들과 비슷한 수준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함부르크에 남을 수 있을 테니까.’

그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자연히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그는 감독의 손에 이끌려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무시무시한 인상의 선수들이 가득했는데, 중간에 남들에 비해 유독 체격이 좋은 동양인이 하나 보였다. 그의 경쟁자이자 동료인 오솔이었다.

‘이 녀석이 오솔이구나. 화면으로 봤던 것보다 더 커 보인다. 키는 분명히 내가 더 큰데도 덩치 때문인지 밀리는 느낌이 들어…….’

그는 위축되려는 자신을 억지로 다잡았으나 쉽지 않았다. 자꾸만 상대의 인상과 덩치에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에잇! 붙기도 전에 주눅이 들면 어쩌자는 거야. 정신 차리자!’

그가 기합을 듬뿍 넘는 사이, 토마스 돌 감독의 소개가 이어졌다.

“다들 주목! 이쪽은 이번에 새롭게 팀에 합류한 신입이다. 이름은 마리오 만주키치(Mario Mandzukic). 포지션은 공격수다. 후반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되도록이면 빨리 적응할 수 있게 서로 도왔으면 한다.”

“예!”

군기가 가득 찬 대답이 돌아왔다. 돌 감독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만주키치의 등을 툭 쳤다.

“인사하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리오 만주키치라고 합니다. 크로아티아에서 왔습니다. 편하게 마리오라고 불러주십시오.”

인사를 마쳤을 때, 만주키치는 다시 평소의 승부욕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특히 오솔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투쟁심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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