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95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06년 새해, 국가대표 첫 경기를 중계하게 된 캐스터 임주원입니다. 해설에는 황정연 해설위원이 힘써주시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이죠?]
[그렇습니다. 팀의 주축을 이루는 선수들이 모두 K리그에서 뛰고 있고요. 유일하게 합류한 해외파 선수는 현재 함부르크에서 멋진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오솔 선수뿐입니다.]
[그동안은 중계가 되지 않아서 오솔 선수가 현지에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요. 그래서 저희 MBS가 준비를 한 게 있습니다…….]
이후에는 뻔했다. 자사에서 함부르크의 경기를 중계하게 되었다면서 시청을 좀 해주십사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시청자들이 의도치 않게 광고에 노출되는 사이, 오솔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통로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귀찮은 이유는 훈련 때부터 계속해서 말을 걸어대는 놈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배면 적당히 상대해 주겠는데, 이 새끼는 좀 짜증 나네.’
최상욱. 놈의 이름이었다. 사실 이 녀석은 이름보다는 승부 조작 브로커로 더 유명했다.
‘돈도 많이 버는 놈이 뻔뻔하기는…….’
승부 조작은 잘못이었지만 적어도 생계유지가 힘든 3부 리그 선수들의 동기, 그리고 처지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상욱은 승부 조작에 가담할 만큼 절실한 동기가 없었다. 놈이 승부 조작에 가담했을 때의 연봉은 무려 10억에 달했다.
‘씀씀이가 커져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용돈벌이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 물론 그게 더 나쁘긴 하지만 말이야.’
최상욱은 언제 시간이 되면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며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제 딴에는 친해지고자 하는 것 같은데 오솔로서는 영 불편하기만 했다.
‘승부 조작 사건이 터졌던 게 2008년 말이었으니까……. 흐음. 이 일이 언제부터 시작된 거지?’
오솔은 승부 조작이 시작된 게 정확히 언제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기억하는 거라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좋은 활약으로 메달을 따고 해외 진출을 모색할 때쯤 사건이 터졌다는 것뿐이었다.
‘순리대로 풀리게 놔두는 편이 낫지만…….’
그러나 K리그 곳곳에 친구들이 있다 보니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후우.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날파리 녀석 때문에 자꾸만 신경이 분산되잖아.’
오솔은 오늘 경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필드 위로 올라섰다.
삐이익-!
[경기 시작합니다. 오늘 한국은 4-4-2 플랫 형태로 아랍에미리트 연합을 상대합니다.]
[전방에 고영주, 오솔 투톱에 좌측에는 리틀 아이마르 최상욱이…… 중앙 수비로는 여민국이 출전했습니다. 골키퍼에는 구경용 선수입니다.]
[어찌 보면 기존에 기회를 많이 받지 못한 선수들로 구성된 명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곧 있을 사우디컵에 가동될 멤버를 시험하는 무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고 10분. 오솔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공은 지속적으로 그에게 오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도와주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비시즌이 길었기 때문인지 선수들 몸이 조금 무겁네요.]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현재 두바이 기온은 18도입니다. 영하를 밑도는 날씨에서 갑자기 20도에 가까운 지역으로 이동했으니 컨디션이 정상이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오솔 선수는 움직임이 좋네요. 유럽에서 시즌을 치르다가 왔기 때문에 경기 감각이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해설은 어떻게든 국가대표팀을 옹호했으나 사실은 오솔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근 한 달만의 실전이었으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오솔의 경기력이 좋아 보이는 것은 단순히 다른 선수들이 그보다 더 못했기 때문이다.
파앙!
[아, 패스를 뺏기고 맙니다.]
‘패스 좀 정확하게 해라.’
오솔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패스의 질이 영 좋지 못했다.
예를 들어 패스가 오히려 상대 수비수에게 가까운 쪽으로 온다거나, 패스 코스에 상대가 있음에도 안일한 패스를 시도해서 그대로 스틸당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자연히 공격의 흐름이 뚝뚝 끊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황은 크로스를 올릴 때도 다르지 않았다.
[최상욱의 크로스!]
‘크로스를…… 상대편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주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만약 상대 수비수의 머리를 노리고 찼다면 아주 정확하게 찼다고 칭찬할 수 있을 만큼, 좌우 날개들은 형편없는 크로스를 선보였다.
뭐, 여기까지는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 오솔을 화나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좀 움직여, 이 새끼들아!’
바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고영주가 빈틈을 찾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뿐, 나머지는 제 자리에 콕 박혀서 미동조차 없었다.
‘상대가 패스 코스를 막았다 싶으면 바로 이동하든지, 아니면 수비수 뒤로 뛰어 들어가서 앞쪽에 드리블을 할 공간을 만들든지, 뭐든 하란 말이야!’
오솔은 경기장에 위치한 모든 사람이 자신만을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 수비수들이야 공을 가진 그를 보는 게 당연했으나, 같이 공격해야 할 동료들도 그저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오솔의 백패스!]
백패스를 강조해야 할 정도로 경기가 지루하게 흘러갔다.
전반전에는 단 두 번의 찬스만 있었는데, 하나는 여민국의 롱패스를 오솔이 받아서 슈팅을 시도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솔이 찔러준 패스를 고영주가 받아서 돌파를 시도하다 막힌 것이었다.
결국 후반 15분, 오솔은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아오! 이 노답 새끼들아! 제발 1인분이라도 하란 말이야!”
1인분도 못 하고 있던 몇몇 선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비록 오늘 경기력이 형편없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참 후배인 오솔에게 이렇게 노골적인 비난을 들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어, 우리 선수들끼리 말다툼이 일어났는데요?]
[오솔 선수와 최상욱 선수인데요. 말다툼까지는 아니고, 단순히 의견 조율 같습니다. 경기를 뛰다 보면 힘이 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상을 쓰면서 말하게 됩니다.]
아니, 말싸움 중이었다.
“이게 좋게 봐줬더니……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뭐, 이 노답 삼형제 같은 놈들아. 너랑 너, 그리고 너는 진짜 답이 없다. 그따위로 할 거면 다시는 국가대표로 뛰겠다고 하지 마. 농담이 아니라 중국에서 태극권 하는 할머니도 너희보다는 많이 뛰겠다.”
“뭐, 뭐!? 이게 선배한테…….”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못하면 열심히라도 해야 할 것 아니야! 지금 산책 나왔어?”
[의견…… 조율이 조금 길어지네요.]
난감해하는 중계진과는 달리 네티즌은 신이 나서 낄낄대고 있었다.
[봤냐. 이게 진짜 한국 축구다!]
[오소리는 진짜로 문화 충격을 느낀 얼굴인데? 하긴, 박해진이나 안태환이랑 뛰다가 쟤들이랑 뛰려니 답답하기도 하겠지.]
[지켜보는 우리도 속이 터지는데 직접 뛰는 입장에선 오죽할까. 솔직히 오솔이 공을 잡으면 움직이는 인간이 하나도 없음. 그나마 고영주가 어떻게든 연계하려고 하는데, 2선 침투 없이 둘이서 뭐가 되겠냐고.]
[맞아. 다른 애들이 공 잡으면 오솔 혼자 공간 찾아다니는데 어린애가 안쓰럽더라. 이거 완전히 소년 가장 아니냐?]
[소년 가장은 맞는데 안쓰럽지는 않음.]
[왜, 얼굴 보면 안쓰럽잖아.]
[아, 그 소리였군. ㅋㅋㅋ]
[너어어는 진짜 나빴다.]
오솔과 최상욱의 언쟁이 느린 화면으로 다시 나왔다.
[ㅋㅋㅋ 입모양 쩐다! 대놓고 욕해 버리는데? 대표팀에서 쟤가 지금 제일 어리지 않나?]
[ㅇㅇ 아직도 미성년자임.]
[패기 하나는 흰수염급이네.]
[이런 걸 보면 유럽파와 국내파의 차이가 확 느껴지네. K리그 올스타가 고작 19살짜리보다 못하다는 거잖아. 여윽시 개리그! 극혐~]
[뭔 소리야. 쟤는 지금 분데스리가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히는 공격수인데, 고작 19살이라니……. 그리고 K리그 올스타 아니다. 이청운이나 이국동 같은 애들 다 빠졌어.]
[그래도 어린놈이 너무 건방지다. 아마 유럽파라고 부심을 좀 부리는 것 같은데, 적어도 선배들한테 예의는 지켜가면서 해야지. 축구 선수 이전에 인간이 되어야 할 거 아니야.]
[응. 아니야. 축구 선수면 경기장에서 잘 뛰는 게 첫 번째야.]
[동감. 솔직히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건 나머지 10명이지. 지금 경기장에서 두 발로 뛰는 건 오솔이 하나고, 그 외는 전부 네발로 기는 수준임.]
이윽고 커뮤니티는 오솔이 잘했다, 아니다 못했다로 나뉘어서 싸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오솔을 빼야 한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최상욱을 비롯한 선수들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고민은 현장에 있는 아드보카트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흠. 이를 어쩐다…….’
당장 사우디컵이나 홍콩컵만 생각하면 오솔을 빼는 편이 나았다. 이제 유럽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오솔이 합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이런 컵 대회가 아니라 6월에 있을 월드컵이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오솔이 잘하고, 나머지 선수들이 부진했다.
만약 오솔이 베테랑이고 단순히 강짜를 부리는 것이라면 그를 빼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선수였다. 저런 모습들이 괜한 성질이 아니라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 즉 승부욕일 확률이 높았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는 선수를 빼고, 경기력이 좋지 못한 선수를 계속 기용한다는 건 감독의 지도력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 문제가 복잡할 때는 원론대로 가는 거야.’
아드보카트 감독이 생각보다 빨리 결단을 내렸다.
[아, 최상욱 선수가 교체되네요. 그 자리에는 정호경 선수가 들어옵니다.]
중계진이 말을 아꼈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이들은 이미 감독의 속뜻을 파악했다.
-경기장에서 제 몫을 못하는 선수는 필요 없다.
교체되어 나가는 최상욱도 그 뜻을 이해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제기랄! 안 그래도 박해진 때문에 월드컵에 가기 힘든 상황인데, 저 어린놈까지 사람을 환장하게 하네!’
사실 그나 다른 선수들이 단순히 게을러서 뛰지 않는 건 아니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와 불안정한 컨디션 때문에 자신감을 잃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은커녕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하고 팀에 도움이 되질 못하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마침 오솔이라는 유럽에서도 통하는 스트라이커가 보였다. 그들로서는 괜히 뭔가를 시도하는 것보다는 공을 넘기고 뒤로 빠지는 편이 더 마음이 편했다.
오솔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러니까 월드컵에 못 나가는 거지. 그리고 조작범 주제에 선배는 무슨 선배야.’
많은 조작범 중에 최상욱이 특히 싫은 이유는 승부 조작으로 영구 제명까지 당한 주제에 나중에 어린이 축구 교실까지 만들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기만했던 축구로 버젓이 돈을 번다? 이는 웬만큼 뻔뻔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쯧! 애들한테 미리 말해놔야겠어. 혹시나 조작 제의가 들어오면 알려달라고.’
오솔은 혹시나 친구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진 않을까 걱정하며 최상욱의 뒷모습을 뇌리에 새겼다.
[교체 투입된 선수들이 조금 더 많이 뛰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선수들이 몇몇 교체되면서 오솔도 겨우 숨통이 트였다. 새로 들어온 정호경은 상무 소속답게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격을 도왔고, 오솔과 고영주는 각각 한 골씩 기록할 수 있었다.
삑, 삑, 삐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대표팀이 2 대 1로 승리하는 데 성공했네요. 오솔 선수의 멋진 활약이 돋보이는 경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참, 오늘 멋진 활약을 보여준 오솔 선수의 분데스리가 경기는 나흘 후, 밤 10시에 MBS 스포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서 안태환 선수와 차태민 선수의 경기도 중계하니 많은 시청 바랍니다.]
[차태민 선수와 오솔 선수,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안태환 선수까지…… 분데스리가에는 우리 선수들이 정말 많이 활약하고 있네요.]
중계진의 말처럼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 안태환이 독일로 넘어왔다. 리그 앙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FC 메츠에서 마찬가지로 분데스리가에서 최하위에 랭크되어 있는 뒤스부르크로 이적한 것이다.
2002년을 뒤흔들었던 영웅의 행보라기엔 씁쓸한 면이 있었으나, 사실 이 모든 것은 올해에 있을 독일 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독일 현지에서 적응을 하고 있으면 국가대표로 선발하겠다는 핌 베어백 코치의 말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