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93화 (9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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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93화

“라파엘!”

“아, 넣었구나. 잘했다.”

“괜찮은 거예요?”

“아쉽지만 괜찮지 않네. 15분 남았나? 남은 시간 리드를 지켜줘. 계속 지켜볼게.”

안타깝게도 반 더 바르트는 지켜보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했다. 생각보다 심한 부상에 바로 병원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진정한 승부처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 더 바르트가 나가자 베르더 브레멘이 총공세를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토마스 샤프 감독이 칼을 빼 드네요. 수비수를 한 명 빼고, 그 자리에 슈퍼 서브인 넬손 아에도 발데스 선수를 넣습니다.]

[토마스 돌 감독이 반 더 바르트 선수 대신 수비수를 넣고 5백으로 내려앉았거든요. 지금은 공격수의 숫자를 더 많이 가져갈수록 이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해설의 말처럼 토마스 돌 감독이 선수들을 5-4-1 진형으로 세웠다. 여기서 전방의 1은 당연히 오솔이었다. 물론 역습에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아직까지 체력이 있는 오솔을 전방에 남겨둠으로써 상대 수비수들의 공격 가담을 막고자 함이었다.

‘반 더 바르트가 없는 이상, 아까 같은 역습은 불가능해…….’

3~40미터에 달하는 긴 패스를 그처럼 정확히 줄 수 있는 선수는 흔치 않았다. 물론 긴 패스 자체는 계속 날아왔으나 아쉽게도 측면으로 몰리는 공이 많았다. 덕분에 오솔이 그 공을 잡았을 때는 이미 상대 수비진이 완전히 갖춰진 이후였다.

‘이렇게 된 이상 버티자.’

오솔은 상대 진형 깊숙이 박혀서 공을 지키기 시작했다. 좌우로 몸을 움직이며 몸싸움을 벌이고, 상대가 발을 뻗으면 공에 닿기 전에 발을 뻗어서 막아내기도 했다.

삐익-!

[반칙이죠? 대단하네요, 오솔 선수. 기어이 프리킥까지 얻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하하. 베르더 브레멘 선수들이 화를 많이 내고 있네요. 하긴, 답답할 겁니다. 지금은 1분 1초가 아쉬운 순간이니까요.]

그러나 어쩌면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문전에서의 프리킥 찬스라 평소 연습했던 대로 중앙 수비수까지 모두 올라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역습을 당한다면 치명타가 될 수도 있었다.

‘별다른 지시가 없네? 뭐, 슈팅까지만 연결하면 괜찮겠지.’

오솔은 감독의 판단을 존중했다. 지금은 자신이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고, 괜히 나섰다가 잘못되면 책임질 방법도 없었다.

게다가 헤딩 경합에서 이길 자신도 있었다. 비록 나우두가 그보다 10㎝나 더 컸지만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는 높이 뛰지 못할 것이다.

파앙!

[올렸, 아!]

캐스터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마다비키아가 찬 공이 높이 떠오르지 못하고 낮게 깔렸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라도 골문까지 갔다면 문제 될 게 없었겠으나 하필이면 그 공이 벽을 세우고 있었던 요앙 미쿠의 발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 재현되었다.

파아앙-!

[미쿠가 길게 찔러줍니다!]

마침 세트피스를 위해 함부르크의 수비수들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공간이 많이 나왔다. 한 골 뒤지는 상황인 베르더 브레멘으로서는 이번 역습을 반드시 골로 연결해야 했다.

[클로제와 아투바의 경합!]

아투바가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걸었으나 클로제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패스를 가슴으로 가볍게 받아내더니 공이 바닥에 닿기 전에 발로 툭 차 올렸다.

앞으로 나오던 골키퍼의 머리 위를 살짝 넘기는 절묘한 로빙슛이었다.

“으윽!”

스테판 왓쳐는 급히 뒷걸음질을 치려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고, 공은 부드럽게 휘어지며 골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촤르륵!

[꼬오올!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판타스틱한 골이 터졌습니다!]

[단 두 번의 터치로 골을 만들어냅니다! 정말 대단한 골 결정력입니다.]

[이로써 클로제는 리그 15호 골을 기록하게 되었네요.]

클로제는 헤딩을 잘하는 선수로 알려졌고, 실제로 국제 대회에서는 헤딩골 득점이 상당히 많은 선수였다. 그러나 이번 시즌 그는 머리로 다섯 골, 오른발로 여섯 골, 그리고 왼발로 네 골을 기록하며 자신이 단순히 헤딩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느린 그림이 다시 나오죠? 이야, 정말 멋진 골입니다. 클로제 선수는 투박한 인상과는 다르게 지금처럼 감각적인 골도 곧잘 넣는 편이죠?]

[그렇습니다. 어려운 슛이었는데 망설임 없이 시도하네요. 확실히 최근에 물이 올랐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2 대 2, 동점이네요. 함부르크 팬들로서는 애가 많이 타겠는데요?]

[지금은 수비에 완전히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시 골을 넣기가 쉽지 않아요. 이미 교체 카드도 다 써버렸고요.]

[토마스 돌 감독이 어떤 판단을 할까요?]

[아, 선수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니까 변한 게 없네요. 그냥 비기겠다는 생각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홈인데 조금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만, 어쩔 수 없죠. 이미 공수 밸런스가 깨진 상황이니까요.]

[이왕 내려앉을 거였다면 방금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인원만 참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함부르크로서는 마다비키아의 실수가 굉장히 뼈아프겠습니다.]

어쩌면 마다비키아가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반 바이텐이나 바바레즈 같은 카리스마 있는 선수들이 잘 다독인 덕분에 흔들리지 않았다.

삑, 삑, 삐이익-!

경기는 그렇게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끝이 났다. 팬들을 향해 손을 올려 박수를 치는 함부르크 선수들. 그들 중 오솔만이 유일하게 상대 골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쉽다…….’

경기 종료 직전, 그는 각종 버프를 바탕으로 레버쿠젠 때보다 더 위력적인 돌파를 시도했었다. 느려 터진 파렌호스트나 이미 한계에 도달한 나우두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힘과 스피드였다.

측면을 타고 빠르게 시도한 돌파. 그러나 마지막 슈팅의 순간, 부족한 능력치 때문인지 공은 원래 노렸던 곳보다 더 외곽으로 향했고, 그대로 골대를 때리고 라인 밖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슈팅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들어갔을 텐데…….’

슈팅이나 개인기가 높았다면 절묘한 감아 차기로 골대 구석을 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쉬움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마지막 슛 아쉬웠어.”

“아, 클로제 씨.”

“오솔이라고 했지, 오늘 잘하던데?”

말을 한 사람은 미로슬라프 클로제였다. 그의 손에는 11번이라는 숫자가 박힌 유니폼이 들려 있었다. 오솔은 웃으며 유니폼을 벗었다.

“이번 시즌에 데뷔했다면서? 나도 프로에 데뷔한 건 스무 살 무렵이었는데, 우리 늦깎이들끼리 잘 지내보자고.”

클로제는 19살까지 7부 리그에서 뛰었고, 그다음 해가 되어서야 5부 리그로 겨우 이적했다. 그의 이름 앞에 프로라는 명칭이 붙은 건 2000년, 스물두 살이 되고 나서였다.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명실상부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이자 독일의 국가대표 골잡이가 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오솔보다 더한 상황에서 반전을 이루어낸 인물이 클로제였다.

오솔은 대뜸 물었다.

“혹시 상태창 같은 거 있어요?”

“응? 무슨 소리야?”

혹시나 하며 물었던 오솔은 ‘역시나’라는 생각과 함께 말을 얼버무렸다.

‘하긴, 전생에 메시나 호날두도 무슨 소린지 전혀 못 알아들었지…….’

그들 모두 시스템 사용자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오솔은 오히려 그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그들의 실력이 온전히 재능과 훈련으로만 만들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판에는 시스템이 필요 없는 괴수들이 너무 많아.’

2005년 현재, FIFA에 등록된 남자 축구 선수는 약 2억 4천만 명이다. 만약 1억 분의 1의 확률로 SSS급 재능이 태어난다고 치면 둘 혹은 세 사람이 압도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된다.

‘메시와 호날두가 그런 경우겠지.’

SS급 재능이 천만분의 1의 확률이라면 전 세계에 24명이 존재하게 되고, 같은 비율로 계산하면 S급 재능을 지닌 선수는 240명이 되고, 제법 준수하다고 할 수 있는 A급 재능은 무려 2,400명이나 된다.

‘나도 재능은 뒤지지 않아.’

단순한 시스템을 S급 재능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각종 스킬들이 더해진 상황을 SS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메시나 호날두에 비견되려면 여기서 꾸준한 훈련으로 능력치 90의 한계마저 깨뜨려야 했다.

‘메시와 호날두도 좋지만, 일단은 분데스리가를 제패하는 게 먼저지.’

오솔이 클로제에게 악수를 건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금 우리가 겨우 한 골 차이인 거 알고 계시죠?”

“그랬나? 잘 모르겠네. 난 기록에 연연하지 않아서 말이야.”

방금 한 말이야말로 이기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얄미운 대답이 아닐까 싶었다. 득점왕 타이틀로 추가 경험치를 얻으려던 오솔로서는 적잖이 자존심이 상하는 대답이었다.

“아마 신경을 쓰셔야…… 아니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가 리그 막판까지 언론을 시끄럽게 할 거거든요.”

“하하하! 재밌네. 그럼 후반기에 한번 승부를 내보자고. 득점왕 타이틀을 두고 싸우는 건 물론이고, 다음 맞대결에서 오늘 내지 못한 승부까지 마무리 짓는 거야. 맞다, 아예 이걸로 내기를 할까?”

“내기요?”

“그래, 내기. 내가 이기면 네가 나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클로제는 오솔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종일관 웃으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제가 이기면요?”

“똑같이 형님이라고 하는 건 내가 너무 손해고, 대신에 ‘미로’라고 부르게 해줄게.”

“보상이 그다지 안 땡기는데요?”

“까칠하긴…… 그냥 해주면 안 돼?”

“하하. 알았어요.”

오솔은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무엇을 좋게 봤는지는 몰라도 클로제는 오솔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다.

‘클로제와 내기라니…… 재밌네.’

메시&호날두라는 커다란 목표도 좋지만 그들은 각기 다른 리그에 있어서 지금은 직접적으로 부딪힐 방법이 없었다.

결국 당장은 향상심을 유지할 가까운 목표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2002년 월드컵 실버슈에 빛나는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오솔이 목표로 삼기에 차고 넘치는 남자였다.

‘득점왕 타이틀과 노르트 더비의 주인공이 되는 것, 그리고 클로제를 애칭으로 부를 수 있는 특권이라……. 마지막 보상은 필요 없지만…… 뭐, 이건 그냥 부록이라고 생각하자.’

오솔은 선한 얼굴을 한 클로제를 보며 마주 웃어 보였다. 이 장면이 다음 날 신문 1면을 장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 * *

오솔은 1등석에 앉아 미리 챙겨 온 신문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반 더 바르트 최소 두 달 결장!]

반 더 바르트는 발목에 철심을 박아야 했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회복하는 데 최소 한 달, 재활을 하는 데도 한 달이었다. 다행히 중간에 겨울 휴식기가 끼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빠지는 경기는 한 달 정도였으나, 그 한 달 사이에 치를 경기가 적어도 5경기였으니 결코 상황을 낙관할 수 없었다.

[노르트 더비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그라운드의 신사와 악동.]

클로제와 오솔이 나란히 두 골씩 기록한 노르트 더비에서는 양 팀 다 승점을 하나씩 나눠 가지며 기존의 순위를 지키게 되었다.

덕분에 함부르크 SV는 전반기를 1위로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얻은 바이에른 뮌헨의 추격으로 두 팀 간의 격차는 고작 승점 하나 차이였다.

[하에스파우의 새로운 스타! 어쩌면 득점왕까지도 가능하다! - 모르겐포스트. 데니스 쿤츠.]

모르겐포스트의 전반기 마지막 칼럼은 반 더 바르트도 바바레즈도 아닌, 오솔을 집중 조명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비 매치에서 두 골을 기록한 주인공이 아니면 누굴 다루겠는가.

[……전반기 오솔 선수의 활약은 다음과 같다.

리그 15경기(2경기는 교체 출전) 14골 4도움에 리그 득점 2위. 컵 대회를 포함하면 20경기 17골 8도움.

거의 경기당 1골씩 꽂아 넣는 무시무시한 기세다. 어느 누가 이 선수를 올해 처음으로 팀에 입단한 선수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오솔 선수는 뛰어난 활약으로 팀의 순위를 견인했고, 덕분에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꼭대기 층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 같은 활약을 한 선수에게 신인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전반기 종료와 함께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고, 그들의 활약을 기념하기 위한 상들이 제 주인을 찾아갔다.

오솔에게 온 것은 그렇게도 노렸던 분데스리가 전반기 신인상이었다.

라이벌 누리 사힌은 멋진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팀의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고, 도르트문트는 리그 6위까지 떨어졌다.

오솔 외에는 마땅한 후보조차 없는 상황. 그의 수상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오솔은 놀랍게도 분데스리가 전반기 베스트 11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 즉시 추가 경험치가 쏟아져서 덕분에 레벨이 한 단계 더 상승했다.

오솔은 그렇게 해서 얻은 포인트를 모두 점프력에 투자했고, 이제 점프력도 80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후우. 이제 좀 쉴 수 있겠네.’

오솔은 기내 방송을 들으며 안대를 덮었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하루 남기고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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