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92화
오솔은 반 더 바르트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러고는 홈 팬들을 향해 서서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반쯤은 반 더 바르트가 만든 골이었으니 같이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다.
와아아!!!
순간 쏟아지는 함성에 귀가 먹을 것만 같았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밌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이네, 살리네’ 하던 광증(狂症)은 사라지고 이들은 어느새 순한 관중으로 돌아간 후였다.
“깜짝 놀랐잖아요. 갑자기 라보나 킥이라니, 그건 그냥 장난쳤던 거 아니었어요?”
“다 먹힐 것 같으니까 쓰는 거지. 잘 받아놓고 엄살은…….”
만약 패스를 받는 상대가 다른 공격수였다면 반 더 바르트도 그렇게까지 변칙적인 패스를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오솔 정도의 순발력과 반응 속도를 가진 이라면 받아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오솔은 이를 반응 속도가 아닌 경험에 의함 감으로 받아냈지만 말이다.
‘혹시나 하고 준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나까지 속을 뻔했잖아.’
만약 훈련 때 반 더 바르트의 라보나 킥을 보지 못했다면 아무리 오솔이라고 해도 적절히 반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오솔은 훈련 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자 혹시나 라보나 킥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덕분에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었다.
“아무튼 덕분에 편하게 넣었네요.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맙지. 반드시 골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제때 넣어줬으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너 퍼스트 터치가 더 좋아진 것 같다? 방금은 원래 머리를 향해 올리려고 했는데 잘 안 됐던 거라 걱정했었거든.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아주 멋지게 잡아내던데?”
“언제까지 헤딩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발밑으로 오는 공도 처리할 줄 알아야죠. 흐흐.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발밑으로도 좀 찔러줘요.”
“진짜 너처럼 발전 속도가 빠른 녀석은 처음 본다. 보통은 그 나이쯤 되면 슬슬 성장이 정체되게 마련인데…….”
반 더 바르트가 오솔을 처음 본 것은 대략 다섯 달 전이다. 그러나 그사이 오솔이 보여준 성장세는 눈부시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뛰어났다.
‘흐흐흐. 이거 많이 놀란 모양이네. 그런데 어쩌지, 난 이제 시작인데?’
오솔이 상태창에 떠오른 글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업적 달성!]
-업적, [첫 만남만 천 번째!]를 달성하셨습니다.
-시합 중 퍼스트 터치를 1천 회 이상 성공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은 그 어떤 사나운 공이라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볼터치가 5 상승합니다.(70→75)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지속 스킬, ‘세상에 나쁜 공은 없다’가 생성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볼터치에 +5의 가중치가 붙습니다.
-볼터치 75(+5)
알토나93에서 요나단 타와 놀 때만 해도 63에 불과했던 볼터치 수치가 어느덧 80이 되어 있었다. 70의 볼터치에도 깜짝 놀라던 반 더 바르트인데 80이라니, 이번에는 또 얼마나 놀랄지 궁금했다.
‘뭐, 한 골 더 넣고 보면 되겠지.’
오솔은 한층 거만해진 걸음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 * *
이후 오솔은 연달아 멋진 볼터치를 선보이며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포스트플레이를 펼쳐 보였다. 반 더 바르트의 부담이 한층 낮아진 것은 당연했다. 이전처럼 완벽한 패스가 아니더라도 일단 오솔에게로 공이 가면 어떻게든 받아서 지켜냈기 때문이다.
[오솔 선수가 충분히 버텨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견고한지 나우두 선수도 뺏을 생각을 못하고 있네요.]
[지난 레버쿠젠전에서의 돌파가 워낙 임팩트가 강해서 그렇지, 원래 오솔 선수는 포스트플레이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습니다. 게다가 연습을 많이 했는지 오늘은 볼터치가 굉장히 부드럽네요. 저런 상대에게 공을 뺏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지금은 공을 노리기보다 상대가 돌아서지 못하게 막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지만 오솔 선수를 중심으로 함부르크의 공격이 조금씩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이건 베르더 브레멘 입장에서 위험하지 않을까요?]
[오솔 선수가 연결고리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 이상을 붙이는 건 과한 대비가 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상대가 돌아서지 못하게 막아내고 있거든요. 역시나 관건은 반 더 바르트 선수에게 공이 연결되는 걸 막는 겁니다.]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를 운영하는 함부르크에 맞서 베르더 브레멘도 보로프스키와 바우만을 투 볼란치 형태로 세웠다. 물론 이전처럼 클로제가 적극적으로 내려와 준 덕분에 중앙이 밀리는 일은 없었다.
함부르크는 반 더 바르트가 이른바 프리롤로서 상대 전 지역을 자유롭게 활보했고, 오솔과 바바레즈는 최대한 그의 보폭을 맞추려고 했다.
그러나 그 외의 선수들은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다. 한번 상대의 산탄총에 된통 당한 탓에 쉽게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전장은 다시 중원으로 좁혀졌다.
그래, 이곳은 전장(戰場)이었다. 이들의 경기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이리 줘!”
“뒤에 조심해!”
“이봐, 심판! 반칙이잖아!”
중원에서의 다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치열해졌다. 경기는 수시로 울리는 휘슬 때문에 계속해서 끊겼고, 위험한 반칙에 당한 선수들은 신체 부위를 붙잡고 괴로워했다.
과연 북부 독일 최대의 더비 매치답게 경기가 뜨거웠다.
삐이익!
또다시 반칙이 오가고, 주심의 손이 다시 한번 앞주머니로 향했다. 노란색 카드에 적힌 이름은 어느새 두 자릿수에 근접해 갔다. 하지만 스코어는 여전히 1 대 1, 동점이었다.
와아아-!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경기임에도 팬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흥분이 고조되는 듯했다. 실제로 그들은 팔꿈치가 오가는 과격한 상황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목소리를 높였다. 흡사 콜로세움의 관중처럼, 군중심리에 몸을 맡겼다.
오솔은 두근거리는 심장의 울림을 적절히 제어했다. 지나친 흥분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과열이 지속되면 코어가 타버리고 만다. 냉각수가 없는 인간은 저 스스로 냉정함을 유지해야 했다. 그는 잠시 숨을 돌릴 겸 전광판을 바라봤다.
‘72분인가? 슬슬 지칠 때로군.’
평소보다 격한 경기 양상 때문인지 아직 시간이 20분이나 남았음에도 많이들 지쳐 보였다. 그것은 오솔의 마크맨인 나우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솔은 가슴을 들썩이는 그를 보며 기분 나쁘게 히죽거렸다.
“왜 그렇게 헥헥대? 무슨 개도 아니고, 설마 벌써 지쳤어?”
“이런 망할 놈 같으니…….”
나우두의 대꾸는 자연스럽지 못했다. 오솔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툭툭 끊기는 목소리가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한계가 찾아오겠는데? 좋아. 한순간만, 한순간이면 된다.’
간단한 대화로 상대의 체력을 확인한 오솔은 언제라도 돌아 들어갈 수 있게 스텝을 밟았다. 나우두는 힘든 와중에도 오솔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 자식은 지치지도 않나?’
나우두는 솔직히 이 녀석의 마크를 파렌호스트에게 맡기고 단 5분이라도 푹 쉬고 싶었다. 농담이 아니라 오솔은 오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단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 뛰어다녔다. 자연히 마크맨인 나우두도 계속 뛰어야 했다.
게다가 오늘 오솔은 평소보다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덕분에 나우두는 70분 넘게 자신보다 힘이 더 강한 상대를 따라다니며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나마 그였기에 이 정도까지 막아낸 것이지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벌써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게도 날씨 역시 일주일 전보다 훨씬 추워진 상태였다. 다행히 눈까지 내리지는 않았으나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인지 바람이 보통 날카로운 게 아니었다.
이처럼 급격히 날씨가 변화한 상황에서 버거운 상대를 만난 탓에 나우두는 경기 시작 70분 만에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프랑크 씨에게 맡길 수는 없어. 이 녀석은 아직도 엄청나게 빠르니까 말이야.’
결국에는 그가 막아야 했다.
나우두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어차피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다. 이후 한 달간 휴식기가 주어지니 남은 체력을 이 경기에 모두 쓴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큰거리는 발목에도 불구하고 계속 뛰고 있는 반 더 바르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기랄. 이젠 한계야.’
후반전 15분, 바우만과 크게 부딪힌 다음부터 발목이 시큰거렸다. 착지에 문제가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반 더 바르트는 끊임없이 울리는 이상 신호에도 계속 몸을 움직였다.
‘이미 지난 세 경기를 나가지 못했는데 마지막 경기까지 중간에 빠질 수는 없어.’
비록 그가 없는 세 경기 중 두 경기를 이겼으나 미안한 마음이 완전히 가실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1위를 유지하느냐 마느냐의 싸움. 겨우 이 정도 부상을 핑계로 벤치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한 번의 기회만 온다면!’
반 더 바르트도 오솔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솔에게 패스만 닿는다면 반드시 골을 넣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촤아악!
[반 더 바르트의 태클! 공만 절묘하게 빼내는 데 성공합니다!]
[방금은 프링스 선수가 뒤에서 반 더 바르트가 오는 걸 전혀 몰랐어요! 방금은 바우만 선수가 미리 경고를 해줬어야 합니다!]
공을 뺏은 반 더 바르트는 무의식중에 전방을 바라봤다. 골키퍼와 수비 라인, 그리고 오솔의 위치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오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이구나!’
반 더 바르트는 힘껏 발을 휘둘렀다. 평소보다 반 박자는 더 빠른 타이밍에 시도하는 패스였다.
[바로 패스를 시도합니다!]
오솔은 우중간으로 파고 들어가며 패스를 확인했다. 그가 원했던 공간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이 날아오고 있었다.
‘역시 호흡이 잘 맞는다니까.’
반 더 바르트의 반 박자 빠른 패스는 굉장히 위력적이었다. 오솔의 속도가 올라가면서 그 위력은 한층 배가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재밌는 점은 반 더 바르트가 이 패스를 오솔 외에 다른 선수에게는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도하지 못한다’였다.
[놀라운 패스입니다. 빈 공간을 정확히 찌르는 송곳 같은 패스!]
[넓은 시야와 빠른 판단력, 그리고 정확한 킥까지 고루 갖춰야만 가능한 패스죠.]
[대단합니다! 반 박자 빠른 패스가 이렇게까지 날카롭다니요!]
제삼자는 알지 못한다. 어째서 이 패스가 오솔 외에 다른 선수들에게 나가지 못하는지.
중계진의 칭찬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반 더 바르트는 시야와 판단력, 그리고 킥까지 패서가 갖춰야 할 기본 능력을 모두 지닌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반 박자 빠른 패스를 할 때에는 정확한 킥 능력 하나만 사용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오솔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내가 달려드는 곳에 공략하기 좋은 공간이 있다’나, ‘나는 적어도 이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으니 그보다는 더 세게 차라’ 같은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는 공격수의 판단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는 패스 방식이었다.
‘믿는다. 오솔! 윽!’
반 더 바르트는 패스와 동시에 쓰러졌다. 공을 뺏겼던 보로프스키가 패스하기 직전 태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의 태클은 하필이면 내내 시큰거리던 발목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만 보고 뛰어 들어가는 오솔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높고, 빠르네…….’
앞에선 골키퍼가 나오며 슈팅 각도를 좁히고 있었고, 뒤에서는 나우두가 죽을힘을 다해 쫓아오고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헤딩을 하거나 가슴으로 트래핑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것도 가능했다.
오솔은 길게 넘어오는 공을 향해 발을 쭉 뻗었다. 40m 넘게 날아온 공이 오솔의 발에 닿는 순간, 간식을 앞에 둔 강아지처럼 얌전해졌다.
나우두의 두 눈이 알밤처럼 동그랗게 떠졌다.
‘이, 이게 무슨!’
톡!
오솔이 발목을 까닥하자 공이 깡총 뛰어올라 나우두의 머리 위로 넘어갔다. 나우두는 질주하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미끄러졌다.
오솔은 너무도 여유롭게 공을 잡았다. 골키퍼가 앞으로 나온 탓에 골문이 훤했다. 그대로 공을 몰고 가다 툭 하고 가볍게 밀어 넣었다.
와아아아! 와아아!
천지가 진동하는 울림이 느껴졌다. 그가 멋진 퍼스트 터치를 선보였을 때부터 일던 소란이 골이 터지는 순간 폭발적으로 번져 나간 탓이었다.
오솔은 소리를 음미하려고 귓바퀴에 손을 올렸다. 관중의 감정이 홍수처럼 불어나 그에게 쏟아졌다. 짜릿한 쾌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래. 이거야.”
그렇게 한참을 즐기던 오솔이 정신을 차린 건 경기장에 의료 요원들이 들어온 걸 보고 나서였다. 들것에 실리는 사람은 방금 멋진 패스로 도움을 기록한 반 더 바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