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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88화 (8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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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88화

오솔의 상태창에는 유독 파랗게 보이는 글씨가 있었다.

-컨디션이 일시적으로 S등급(110%)에 도달합니다.(일주일 한정.)

-현재 컨디션은 109.7%입니다.

그날 이후 생긴 변화였다. 고작 일주일이었으나 원래 능력치보다 무려 10% 더 증가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효과였다.

85(+5)이었던 힘은 93(+5)이 되었고, 주력은 페널티까지 감안해도 92에 달했다. 다른 모든 능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니오르가 형편없이 밀리는 것도 당연했다.

문제는 힘 수치 외에도 균형 감각이나 속도에 관련된 신체 능력, 그리고 기술에 관련된 부분도 모두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하나의 능력치만 올라도 그 변화가 극심한데 모든 능력이 동시에 버프를 받자 그 시너지가 어마어마했다.

‘이게 맞는 길이라는 거지?’

오솔은 상태창에게 확인하듯 물으며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진주가루를 흩뿌려 놓은 듯한 여민주의 눈물을 말이다.

-무서우면 안 해도 돼.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미안.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

오솔의 토닥임에 민주는 조금씩 눈물을 멈췄다.

-미안해. 자꾸만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서……. 이상하게 자꾸만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잊으면 안 될 물건을 잃어버린 듯한 그런…….

여민주의 불안은 오솔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더 심해졌다.

-저기, 그냥…… 안 될까?

한참을 고민 끝에 용기를 내서 꺼낸 말이었다.

오솔은 등골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제야 그도 내내 남아 있던 찝찝함의 원인을 깨달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오대한이라고 합니다!

문득 회귀 전에 만났던 그 아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두 사람의 아이.

오솔은 어쩌면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그 아이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 반응…… 단순한 느낌이 아니야.’

어쩌면 이것은 모성애가 빚은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모성애……. 상식적으로 있지도 않은 아이에게 모성애를 갖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스템이나 환생 따위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민주야. 정말로 괜찮은 거야?’

다만 걱정이 되는 건 아이로 인해 잃게 될 그녀의 꿈이었다.

-우리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자.

그날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홀로 아이를 키웠음에도 원망보다는 안타까움을 느꼈고, 10년을 홀로 고생했으나 그보다 훨씬 더 커다란 보람과 사랑을 느꼈다.

민주는 자신의 선택과 삶에 후회가 없었다. 회귀 따위 필요하지도 않고, 회귀한다 해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전과 같은 선택을 할 사람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건 네가 꿈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거겠지.’

오솔이 할 수 있는 건, 그리고 해야 하는 건 전생에 놓아버린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것이었다.

* * *

[고오오올!]

오솔이 세리머니 중에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 중계 캐스터는 목이 터져라 골을 외치고 있었다.

[오솔! 이번 시즌 리그 10호 골을 터트립니다! 어마어마한 강슛을 선보이면서 반 더 바르트가 빠진 함부르크를 수렁에서 건져냅니다!]

[슈팅 파워도 그렇지만, 여기서 돌파하는 장면은 정말 감탄만 나옵니다. 주니오르가 맥없이 밀려나더니 슈팅을 시도할 때까지 제대로 달라붙지도 못했어요.]

[그리고 강슛! 이야~! 다시 봐도 굉장하네요. 공이 터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굉장한 소리가 났었습니다.]

[이 정도면 인간 탱크라고 봐도 되겠네요. 바티스투타 선수나 최근에 활약하는 아드리아누 선수가 떠오르는 득점 장면이었습니다.]

[이거 전반기 신인상은 오솔 선수가 확실해 보이는데요? 이 어린 선수가 팀 내 득점 1위인 것은 물론이고, 분데스리가에서도 득점 선두인 클로제 선수와 고작 1점 차이입니다.]

-리그에서 10골을 기록하셨습니다. 두 자릿수 득점으로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Level Up!

“겹경사로군.”

오솔은 9개로 늘어난 포인트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지난 빌레펠트전에서 4골이나 몰아 넣은 덕분에 전반기가 지나기도 전에 목표로 했던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골의 영양가는 좀 떨어지는 편이었으나 이러한 수치는 그의 최근 기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증명하고 있었다.

“이 미친놈! 잘했어!”

“대단하다 정말! 하하하!”

뒤늦게 동료들이 달려와 그를 감싸 안았다. 워낙에 동료들의 위치가 뒤에 처져 있었기에 세리머니에 합류하는 것도 늦었다. 그들이 얼마나 수세에 몰렸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바바레즈는 오솔의 머리를 마구 문지르며 말했다.

“오늘 완전히 되는 날인데?”

“언제는 안 되는 날도 있었나요?”

오솔이 반문과 함께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였다. 평소라면 징그럽다는 핀잔이 나올 법한 모습이었으나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솔이 팀의 핵심 선수가 될 만하다는 것을.

이후 경기는 오솔의 쇼 타임이나 다름없었다.

[오솔의 헤더! 떨어지는 공을 노리고 달려가는 바바레즈! 아! 지몬 롤페스가 제때 막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말 그대로 되는 날이었다. 오솔은 몸싸움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고, 속도 경쟁에서도 상대를 압도했다.

‘이대로는 경기가 뒤집히고 만다.’

미하엘 스키베 감독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초반의 좋은 분위기는 어느새 꿈처럼 아득했고, 기세는 이미 상대방에게 넘어갔다.

‘변화의 시작점은 역시나 저 19번이야.’

아직은 이름보다 등번호로 구분되는 선수. 그러나 어쩌면 오늘 경기 이후 그 이름이 뇌리에 각인되어 벗겨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선수.

‘오솔……. 저 녀석을 막아야 해.’

당장 교체를 할 수는 없었으나 이대로 4백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스키베 감독은 빠른 결단을 내렸다. 그는 주니오르와 주앙을 모두 오솔에게 붙이고 타카하라는 풀백인 바비치에게 맡겼다.

몸싸움이 강한 주니오르와 빠르고 정확한 태클이 강점인 주앙이 같이 붙는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할지라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당분간 공격은 포기한다.’

레버쿠젠은 말 그대로 내려앉았다. 현재 오솔은 공수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었고, 덕분에 함부르크는 마치 12명의 선수가 뛰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당장은 태풍을 피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못 간다. 초반부터 저렇게 뛰었다간 후반전에 반드시 퍼지게 되어 있어.’

스키베 감독은 오솔이 지치기만을 기다렸다.

[레버쿠젠의 진형이 조금 변한 것 같죠?]

[그렇습니다. 3-5-2와 비슷해졌네요. 오솔 선수를 막기 위해 3백으로 변환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오솔 선수를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습니다. 역시나 전술적으로 유연한 스키베 감독답네요.]

[젊지만 벌써 지도자 경력만 17년째인 감독입니다. 물론 대부분 유소년팀 감독이나 수석 코치로 일한 것이지만, 지난 4년간 독일 대표팀 수석 코치로 활동하며 전술적인 능력은 인정받은 사람이죠.]

스키베 감독은 1965년생, 올해로 딱 마흔이 되는 젊은 감독이었음에도 스태프 경력은 벌써 17년이나 되었다.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십자인대 부상을 세 번이나 당하면서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은퇴했기에 나올 수 있는 이력이었다.

그는 젊은 만큼 전술적으로 유연하고, 동시에 경험이 많아 노련한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적절한 대응 덕분에 레버쿠젠은 빠르게 혼란을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대처로도 오솔을 완전히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바박!

[오솔의 돌파! 치고 달립니다. 주앙! 몸을 날려 간신히 걷어냅니다. 주앙의 태클이 좋았습니다!]

[느린 그림으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방금은 주니오르 선수가 오히려 방해가 되었습니다.]

[오솔 선수의 영리한 움직임이 돋보이는 장면이네요.]

오솔은 빠르게 돌파해야 할 때는 주니오르가 있는 방향으로, 제공권을 노릴 때는 대놓고 주앙에게 붙었다. 그는 두 사람의 합동 방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각각의 단점을 공략하며 끊임없이 문전을 흔들어댔다.

막무가내식 돌파와 빠른 치고 달리기, 쉼 없이 뛰어다닐 수 있는 체력과 잠깐만 쉬어도 금방 호흡이 가라앉는 회복력 등, 말도 안 되게 강해진 능력들이 이런 활약을 가능케 했다. 만약 여기에 기술까지 높았다면 진작에 두 골 정도 더 넣었을 것이다.

‘확실히 둘이나 달라붙어 있으니 공을 컨트롤하기 힘드네. 아마 라파엘도 이랬겠지? 후우. 어쩐다?’

오솔은 잠시 경기가 멈춘 틈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능력치는 낮을수록 올리기 쉽고, 90에 도달하면 훈련이나 경기 활약으로만 올릴 수 있다. 고로 낮은 능력치에는 되도록 투자를 늦추는 게 좋았다.

‘하지만 70부터는 능력치가 잘 오르지 않고, 80은 더 힘들지.’

70부터는 훈련으로 올리는 것보다 능력치를 투자하는 것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길이었다. 다만 포인트에 여유가 없어서 투자하지 못할 뿐.

그렇게 생각하니 힘 85(+5)라는 수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좋아. 힘에 5개 쓰자.’

-힘 90(+5)

-잔여 포인트 4개.

컨디션으로 상승한 값까지 합하자 힘이 100을 가뿐히 넘어섰다. 정확히는 103. 삼국지로 치면 관우나 장비급 무력이었다.

파아앙!

마침 코너킥이 이어지고 오솔에게로 공이 날아왔다.

오솔은 앞뒤에서 밀치고 잡아당기는 상황에서도 굳건히 서서 자리를 지켰다. 그러고는 그대로 날아올라 공을 받아냈다.

툭 떨어진 공은 그대로 타카하라의 발에 닿았고, 곧이어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으아아아! 드디어 넣었다!”

오랜 침묵 끝에 나온 타카하라의 골이자, 레버쿠젠을 침몰시키는 골이었다.

삑, 삑, 삐이익!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스키베 감독은 쓴웃음을 삼켜야 했다.

‘졌다. 단 한 명에게…….’

비록 역전 골은 타카하라가 넣었으나 오늘 레버쿠젠은 오솔 한 사람에게 패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에스파우! 영광이 영원하길!”

와아아!

함부르크 팬들은 뜻밖의 승리에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아무런 기대 없이 경기장을 찾은 이들에게도 작은 기적이 이루어졌다.

에이스인 반 더 바르트가 없는 상황. 팬들은 레버쿠젠을 이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마 컨디션이 오른 오솔이 없었다면 무난하게 졌을 것이다.

“라텔! 라텔!”

“오거!”

팬들과 동료 선수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토마스 돌 감독과 반 더 바르트까지 모두의 의식 속에 오솔의 존재감이 크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꿀맛 같은 승리의 보상이 따라왔다.

-New Skills!

-조건부 스킬, ‘에이스님이 다 해주실 거야’를 획득하셨습니다.

-경기에 참가한 팀원 중 과반수-6명-이상이 에이스로 인정하는 경우, 플레이어의 모든 능력치가 1씩 상승합니다.

-45분 이상 에이스로 뛴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다음 단계 승급 조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Lv 2가 되기 위해 필요한 승리 수는 3경기입니다.

‘아예 에이스가 되라고 떠밀어주는군.’

확실한 일인자, 반 더 바르트.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이인자, 바바레즈. 4-3-1-2 전술에서는 결국 이 둘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자신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후후. 어쩌면 팀의 중심이 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 * *

경기 후 양 팀 감독의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오늘 호되게 당한 미하엘 스키베는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한 선수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기자들 역시 경기를 지켜봤기에 알 수 있었다. 분데스리가에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다는 것을!

언론이 일제히 기사를 내보냈다.

[“그는 이미 완성된 스트라이커였다.” 스키베 감독의 극찬을 받은 오솔.]

[스키베. 패배의 요인으로 오솔을 뽑다. “분데스리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공격수다.”]

[함부르크의 어둠을 걷어낸 태양신. Oh-Sol!]

오솔은 스키베 감독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을 13라운드, 하노버 96과의 경기에서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텐 백으로 내려앉은 하노버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에 골을 뽑아내며 또다시 함부르크에게 승점 3점을 벌어다 준 것이다.

-컨디션이 A등급(100%)으로 돌아옵니다.

오솔을 마구 날뛰게 해줬던 버프는 아쉽게도 그 경기를 끝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오솔은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로 두 경기 연속 MOM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 주의 베스트 11에도 선정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추가 경험치가 쏟아졌고, 덕분에 레벨도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성장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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