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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83화 (8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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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83화

‘일단은 경기가 끝나고…….’

오솔은 레벨과 경험치만 확인하고 귀에서 손을 뗐다. 아직은 경기 시간도 많이 남았고, 한 골, 한 골이 어마어마한 경험치로 돌아오는 상황이었다. 딴짓을 할 틈이 없었다.

파앙!

중앙에서 공이 올라오고 조형진이 상대 수비수와 헤딩 경합을 시도했다. 덕분에 오솔을 마크하는 선수는 한 명뿐이었다.

‘확실히 투톱이 편하다.’

쓰리톱의 경우는 사실상 중앙에 한 사람의 공격수만 서기 때문에 투톱에 비해 압박의 정도가 훨씬 심했다. 게다가 항상 상대와 경합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함부르크에서처럼 상대 뒤 공간을 노리기가 쉽지 않았다.

[조형진의 헤딩 경합! 박해진 선수가 받고 바로 중앙으로 찔러줍니다! 오솔이 달려갑니다!]

두 명의 공격수를 세운다는 것은 곧 중원이나 수비에서 인원이 하나 줄어든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 위험지역을 공략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빠른 역습을 가져가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위력적이었다.

[오솔 선수 공을 몰고 측면으로 빠집니다.]

[패스가 조금 길었죠? 이럴 때는 측면 미드필더들이 빠르게 올라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오솔 선수가 드리블로 상대를 제칠 수 있는 선수는 아니거든요.]

다행히 오솔이 막혀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측면에 있던 차태민이 빠르게 올라온 덕분이었다. 오솔은 안쪽으로 접는 척 페인트를 씀과 동시에 차태민이 달려가는 공간으로 공을 차 넣었다.

파앙!

‘젠장. 왼발로 패스를 하려니 더 엉망이네.’

오솔의 패스는 생각보다 더 길었다. 공은 목표했던 곳을 지나쳐서 거의 터치라인까지 굴러갔다.

타다닷!

[차태민 선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습니다!]

분명 패스 미스였는데, 차태민이 놀라운 스피드와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공이 아웃되기 전에 따라붙었다.

“막아!”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수비진이 급박해졌다. 도저히 잡지 못할 것 같은 공을 상대가 살린 상황이라 수비진이 정비되지 않았었다.

‘나가기 전에 처리할 수 있어!’

차태민은 가속도 때문에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대로 크로스를 시도했다. 쿵 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이 바닥을 뒹굴었으나 덕분에 공은 라인을 벗어나지 않았다.

[집념의 크로스입니다!]

낮게 깔린 크로스. 수비수도 골키퍼도 걷어내지 못한 공. 그 공은 뒤늦게 쇄도하고 있던 조형진의 앞으로 굴러갔다.

골키퍼조차 막아서지 않는 완벽한 노마크 찬스!

‘이건 반드시 넣어야 해!’

놓칠 수도 없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절호의 득점 찬스였다. 하지만 그만큼 공격수가 느끼는 부담감은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형진은 마음을 진정시킬 틈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공이 지나간 자리에 발을 휘두르게 생겼다. 그는 아무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발을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찌릿!

‘크윽!’

디딤 발에 힘을 주는 순간 갑자기 엉덩이뼈 근방에서 격통이 밀려왔다. 몸 깊숙한 곳에서 뼛조각이 근육을 치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익!’

그럼에도 조형진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 통증이야 매 경기마다 느껴왔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슈우우웃!]

그러나 잠깐의 움찔거림 때문에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발이 늦는 것까지는 그도 어찌할 수 없었다.

투웅!

공은 그렇게 노리고 차기도 힘들 만큼 높이 떠올랐다. 거의 80도 각도로 솟구친 공은 그대로 관중석까지 날아갔다.

[아아!]

상암 경기장을 울리는 깊은 탄식 소리에 조형진은 얼굴을 길게 쓸어내렸다. 벌써부터 경기가 끝나고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이 됐다. 그러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이후에도 몇 번의 기회가 찾아왔으나 그는 속절없이 모두 놓치고 말았다.

역시나 경기가 끝나고 네티즌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피라냐 떼처럼 무리를 지어 달려들었다.

[그날 한국은 떠올렸다. 독수리 슛의 계보가 조형진에게 이어졌음을…….]

[ㄴㄴ 최용선에게 배운 게 아니라 일본에서 배워 온 거임.]

[후지산을 폭발시키고 왔다고 합니다. 애국자에게 너무 뭐라고 하지 맙시다.]

[덕분에 이번에는 우리 복창도 같이 터짐.]

조롱은 한동안 이어졌다.

[좋게 생각하자. 이로써 공격수 중 하나는 거른 거잖아. 잘된 거야. 만약 월드컵에서 저랬다고 생각해 봐라.]

[그걸 월드컵에서 한 게 최용선임ㅋㅋㅋ]

[조형진 아니어도 이국동도 있고, 오솔도 있으니까 문제 될 건 없지. 솔직히 그 둘의 실력이 조형진보다 낮지도 않잖아.]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만 보면 조형진보다 오히려 그 둘이 더 낫지.]

오솔은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며 혀를 찼다.

‘안됐지만 어쩔 수 없지. 국가대표로 뛰는 이상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클럽 경기와는 달리 국가대표는 말 그대로 국민들을 대신해서 뛴다는 의미가 강했다. 그래서 조금만 경기력이 부족해도 국민적인 비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SNS가 발달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수밖에 없지.’

지금으로부터 한 10년쯤 지나면 잘못을 한 선수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지인들의 SNS까지 찾아가 욕설과 모욕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것과 비교하면 이 정도 비난은 양호한 수준이었다.

‘물론 당사자 입장은 다르겠지만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이번에 얻은 포인트는 어디에 투자하지?’

오솔은 상태창을 확인했다.

-오솔(오른발잡이, 왼발 숙련도 36%)

-신체 : 균형 감각 70/ 힘 85(+5)/ 반응 속도 67/ 순간 속도 71/ 주력 90(7%↓)/ 점프력 71(+5)/ 지구력 90(10%↓)/ 강인함 91(+5)

-기술 : 개인기 51/ 드리블 53/ 볼터치 60/ 슈팅 60/ 패스 61/ 헤딩 76(+5)/ 스로인 15/ 태클 36/ 일대일 마크 36

-잔여 포인트 : 6

오솔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조금은 어정쩡한 점프력과 헤딩을 80, 혹은 90까지 끌어올려서 완전한 헤딩머신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드리블, 볼터치, 패스 등을 올려서 보다 연계에 치중하는 방법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월드 클래스 수비수들을 상대로 공중 볼 경합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결정적인 순간에 헤딩슛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할 만했다.

‘월드컵에서 골을 터트리면 경험치가 더 대박일 텐데. 조금 욕심이 나긴 하네.’

실제로 독일의 올리버 비어호프라든가 멕시코의 하레드 보르헤티 같은 공격수들은 압도적인 헤딩 실력을 바탕으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었다.

지난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에서 차태민이 보여줬듯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능력치도 이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리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었다.

물론 연계에 치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플레이가 현재 아드보카트 감독이 가장 바라는 역할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비록 조형진이 실수를 했고 이국동도 언제 터질지 모를 부상의 위험성이 남아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전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감독이 직접 연계 플레이를 1순위로 생각한다고 밝힌 이상 주전 출전을 위해서는 연계 플레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결국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는 얘기였다.

오솔이 어떻게 할지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였다. 고영주가 불쑥 핸드폰을 내밀었다.

“솔아, 여기 네 기사 났다.”

오솔은 최신형 폴더폰을 받아 들고 기사를 읽었다.

[오솔은 한국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게 될까?]

[이번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오랜 문제 중 하나인 골 결정력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이 회의감 짙은 의문은 12일과 16일에 치러진 경기를 기점으로 은은한 기대감으로 변해가고 있다. 모두 오솔이라는 선수가 등장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우리는 지난 두 경기에서 이 어린 공격수의 가능성과 실력을 확인했다. 더불어 이 선수가 대한민국 정통(正統)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깨달았다.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계보는 다음과 같다.

이회택-차호진-최순호-황선홍-최용선-이국동-???

축구 팬이라면 알겠지만 한때는 저 자리에 성지훈의 이름이 거론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상황. 그렇게 공백이 되어버린 차세대 스트라이커 자리에 오솔 선수가 거론되고 있다.

물론 이국동이 전성기를 맞이한 시점에 오솔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그의 나이를 두고 너무 어리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많은 분들이 당시 만 19세 2개월이었던 어린 선수가 네덜란드전에 출전해서 역대 최연소 출장 기록을 경신하고 멋진 중거리 슛을 보여줬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 바로 현재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는 이국동 선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이국동은 프로에 데뷔한 지 4개월밖에 안 된 풋내기였다. 반면 오솔은 벌써 함부르크에서 데뷔하고 4개월이 지났으며 실력을 인정받아 매 경기 주전으로 출전하고 있다.

지금 기세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가정하에 오솔 선수는 월드컵이 열리는 내년 6월에는 유럽 무대에서 열 달이 넘게 활약한 시점일 것이다. 자격이라면 차고 넘쳤다…….]

오솔의 아드보카트호 승선을 기원하는 기사였다.

“부럽다. 내 이름은 한 줄도 안 났는데. 하긴 출전도 못 했는데 기사가 날 리 없지. 에휴. 기껏 왼쪽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더니 박해진 선배가 떡하니 버티고 있네.”

고영주의 포지션 경쟁자는 박해진이었다. 그러니 이런 푸념이 나올 만도 했다. 오솔조차도 이번만큼은 자신감을 갖고 붙어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형도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오겠죠. 내년에 컵 대회는 국내파랑 J리거들만 데리고 치른다면서요. 거기서 감독님에게 눈도장을 콱 찍어버려요.”

내년 1월. 유럽파 선수들이 한창 시즌을 진행 중일 때 오프 시즌인 국내 선수들은 사우디에서 열리는 4개국 초청 대회와 홍콩에서 열리는 칼스바그컵에 참여한다.

이때는 적어도 4경기는 국내파만으로 치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영주에게도 출전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 * *

다음 날. 하루의 휴가가 주어졌다.

오솔은 여민주의 집에 찾아가 아버님, 어머님을 뵙고 아직도 미래에 대한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걸 밝혔다.

“너희들 좋을 대로 해.”

여민주의 부모님은 두 사람의 뜻을 존중했다. 이미 딸 혼자 여행을 가는 것까지 허락한 것에서 반쯤은 결혼을 허락을 했다고 봐도 좋았다.

이후에는 신혼살림을 차린 이탁수 감독과 김영은 선생의 집을 찾아갔다.

“이건 아기 선물이에요. 아무래도 미리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것저것 준비했어요.”

“뭘 이런 걸 벌써 샀어?”

“어머. 고마워, 솔아. 그런데 다 여자아이용이네?”

“왠지 선생님을 똑 닮은 딸이 나올 것 같아서요.”

“그래? 우리도 딸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무튼 고마워.”

그렇게 미래의 조카를 위한 선물을 건네주고, 마지막으로 가족을 만났다.

어머니와 여동생, 두 사람은 4개월 전과 달리 표정이 한층 밝아진 상태였다. 특히나 여동생은 이전보다 웃는 모습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기숙사에 들어갔다고?”

“응.”

“그래. 공부는 잘 하고 있어?”

“나 경찰이 되고 싶어.”

“경찰?”

“응.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그래? 흐흐. 잘 생각했네. 체력 시험은 문제없겠다.”

“우씨!”

오솔은 괜히 동생을 한번 놀리고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생활비를 충분히 받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식당에 나가신다는 어머니. 분명 이전보다 편해져야 정상인데도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엄마, 사람은 환경이 변하기 전까진 스스로 변하지 못해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오솔은 눈빛을 통해 그녀의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그거면 됐다.

그렇게 가족과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친 오솔은 곧장 함부르크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11라운드 경기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이었다.

“묀헨그라트바흐전은 푹 쉬고, 주중에 있을 AS 모나코전에 맞춰서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둬라.”

토마스 돌 감독은 상대적으로 멀리 다녀온 오솔을 리그 경기에서 쉬게 해줬다. 그의 위상이 단순한 신인에서 팀의 주전 선수로 격상했음이 느껴지는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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