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82화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좋았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앞선 경험과 비교해서 현재를 평가하게 마련이었다. 오늘의 대표팀은 유럽파가 제외되었던 지난 평가전과 비교할 수도 없는 시원시원함을 선사했다.
[박해진의 백헤딩도 좋았고, 이영신의 개인기는 환상적이었다.]
[이영신은 진심 브라질리언이나 가능한 몸놀림 아니었냐? 상대를 완전히 농락했는데?]
[오솔이도 헤딩 좋았어. 확실히 유럽에서 뛴다더니 몸싸움이 좀 되네.]
[기본적으로 키가 되니까. 그리고 저 몸 봐라. 비슷한 키의 이국동보다 더 단단하잖아. 근육의 질부터 다르지.]
이번 경기에 앞서 차태민과 오솔의 경기가 중계된 적이 있으나 아직까지는 오솔의 장점에 대해 자세히 아는 인물이 적었다. 일반인이 보기에 오솔은 조형진과 크게 차이가 없는 유형의 선수로 보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안데르스 스벤손! 어어!? 공격수를 놓쳤어요!]
[아아. 골입니다. 요한 엘만데르의 만회 골이 들어갔습니다.]
스코어가 1점 차로 좁혀졌다. 기분 좋은 시작을 칭찬하기 바쁘게 한국 대표팀 특유의 불안한 수비 조직력이 드러나며 상대에게 실점을 하고 만 것이다.
화려한 개인기로 골을 넣은 한국과 달리 스웨덴의 득점 장면은 평범했다.
단순한 스루패스. 순간적으로 공격수를 놓친 중앙 수비수. 단 한 명의 공격수에게 세 명의 수비수가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 모습까지…….
너무도 쉽게 들어간 골 때문에 화가 난다기보다 오히려 허무함이 더 컸다.
[방금은 김철영 선수의 커버가 좀 늦고 말았습니다.]
날카로운 공격력과는 별개로 수비 조직력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필요에 따라 5백으로 변환될 수 있는 3-4-3 시스템에서 4명의 공격수를 방어하지 못했다는 건 조직력이 흔들렸다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불가능했다.
[니클라스 알렉산데르손의 돌파! 태클로 막아내는 여민국입니다.]
[방금은 태클이 아주 잘 들어갔습니다.]
특히나 불안한 것은 우측 윙백으로 출전한 송정욱이었다. 그는 최근 몇 년째 사생활 문제를 겪고 있어선지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기량이 하락하고 있었다.
별수 없이 지금처럼 여민국이 커버를 들어가는 장면이 많이 나왔고, 그만큼 중앙의 수비에도 균열이 갔다.
결국 아드보카트 감독은 차태민이란 카드를 들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소집한 김에 한번 확인을 해야 하는데…….’
이미 차태민도 윙백 전향이 가능하다고 말한 상황이었다. 오늘처럼 이기고 있을 때 차태민의 윙백 기용 가능성을 한번 점쳐보고 싶었다.
‘좋아. 한번 시도해 보자.’
아드보카트 감독은 후반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교체를 지시했다.
[송정욱 선수가 나가고 그 자리에 차태민 선수가 들어갑니다.]
[상당히 공격적인 변화네요. 비록 피지컬적인 면은 차태민 선수가 더 좋긴 하지만 저 자리가 마냥 공격만 하는 자리는 아니거든요. 상대 윙어를 마크해야 하기 때문에 수비적인 능력 역시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동시에 이은령 선수 대신 안태환 선수가 들어갑니다. 이청운 선수도 빼고 그 자리에 설현민 선수를 넣네요.]
[선수들의 진형을 봐야 정확해지겠지만 포메이션이 조금 변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4-2-3-1이 아닐까 하는데요? 아, 맞네요. 보시면 여민국 선수가 미드필더로 올라왔죠?]
이 전술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 때 선보였던 것이었다.
타깃맨으로 오솔을 세우고 섀도 스트라이커로 안태환을, 좌우에 박해진과 설현민을 놓는 전술이다. 비록 중앙에 김남준과 여민국 단 두 사람만 놓는 형태라 수비는 이전보다 더 불안해지겠지만 공격력만큼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설현민의 돌파. 살짝 접습니다. 빠르게 합류하는 차태민! 크로스! 아, 조금 멀었습니다.]
설현민에 차태민까지 가세하자 오른쪽 라인도 공격이 활발해졌다. 기본적으로 스피드가 되는 두 선수인지라 공간만 나오면 언제든지 달려들 수 있었다.
‘둘의 스타일이 겹치는 탓에 효율이 별로 안 나오는군.’
아드보카트 감독은 우측 라인의 조합을 궁리하며 설현민-차태민 조합에 X를 쳤다. 그의 수첩에는 이미 ‘이청운-송정욱 X’라는 글도 적혀 있었다.
‘개인기가 좋은 이청운과 몸싸움이 되는 차태민 조합을 굴려봐야겠어. 송정욱도 깊숙이 오버래핑하기보다는 후방에서 얼리 크로스를 즐겨 하는 편이니 설현민이랑 더 잘 맞을 거야.’
다음 경기에서 각각의 조합을 사용해 보고 A플랜과 B플랜으로 나눌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자칫하면 이영신을 우측으로 돌릴 뻔했는데. 차태민이 잘만 적응한다면 지금처럼 박해진-이영신 라인을 구축할 수 있겠어.’
이제 중요한 것은 오솔과 안태환이 얼마나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때마침 중앙에 있던 여민국이 공을 뺏었다.
“솔아!”
여민국이 곧장 전방의 오솔에게 패스를 보냈다. 낮게 깔린 공. 역습을 빠르게 가져가려는 의도였다. 그러자 수비수 프레드릭 스테만이 오솔을 압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물론 오솔은 상대가 뒤에서 접근하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뭐야. 설마 내가 바보도 아니고 똑같이 돌아설 거라고 생각한 거야?’
오솔은 콧방귀와 함께 공을 뒤로 보냈다. 공은 노마크 상태로 전진 중이던 안태환의 발 앞에 떨어졌다.
[오솔의 논스톱 패스! 안태환도 바로 줍니다!]
안태환은 달리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 공을 바로 측면의 이영신에게 보냈다. 일련의 패스가 원터치로 이어진 덕분에 전개가 굉장히 빨랐다.
덕분에 상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허둥댔다.
이영신은 공을 잡기 직전 전방을 확인했다. 그의 눈에 안쪽으로 접어 들어가는 박해진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들어갈게, 바로 줘!’
‘바로 들어갈 거지?’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 서로의 뜻을 확인했다. 이영신은 패스와 동시에 측면을 따라 내달렸고, 박해진은 살짝 내려와서 공을 받는 척하다가 측면으로 로빙 스루패스를 보냈다.
[두 사람의 원투 패스! 앞에 아무도 없습니다. 빠르게 돌파하는 이영신!]
전방에는 어느새 오솔과 안태환, 설현민까지 포진해 있었다.
[달리는 자세 그대로 러닝 크로스!]
이미 공격수들이 박스 안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빠른 크로스가 답이었다.
[아! 살짝 길어요. 바깥으로 감겨 나갑니다.]
그러나 왼발로 올린 공이라 힘이 과했다. 공은 세 명의 공격수의 머리 위로 지나갔고, 공격 기회가 허무하게 끝났다 싶었다. 그러나 그때 공이 흐르는 방향으로 차태민이 지축을 울리며 달려들었다.
[차태민! 슈우웃!]
차태민의 슈팅은 놀라운 궤적을…… 그리지 못했다. 그의 슈팅은 땅강아지처럼 바닥에 낮게 깔렸다. 설상가상 공이 향하는 위치도 선수들이 잔뜩 운집한 중앙 부분이라 금방 막힐 것 같았다.
[아……. 아!?]
캐스터의 한탄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안쪽에 있던 안태환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슛인지 패스인지 모를 공에 발을 댄 것이다.
[아, 안태환의 터닝 슛!]
뒤로 빠져나오는 도중에 방향을 전환하고, 동시에 슛이나 다름없는 공을 논스톱으로 때린다. 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동작이 안태환의 몸에서 이루어졌다.
뻐엉-!
공은 그 많은 수비수를 모두 피해 날아가더니 기어이 골망에 닿았다.
[고오오오올!]
‘하하! 이건 정말 클래스가 느껴지는 슛이네.’
오솔은 헛웃음이 나오는 걸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선배들의 실력이 상상 이상임은 훈련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제 시합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또 달랐다.
‘슬슬 전성기가 지날 시기인데…….’
2005년 현재 안태환의 나이는 스물여덟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부진한 소속 팀 상황 때문에 경기 감각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
이는 안태환뿐만 아니라 박해진, 이영신 등 국가대표 선수들 대부분이 그랬다. 이들은 모두 시스템이나 상태창이 없이 온전히 연습과 자기 관리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었다. 만약 이들에게 시스템이 있었다면 어쩌면 전생의 오솔보다 더 대단한 선수가 탄생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 다른 사람들만큼은…… 아니지, 내게 주어진 기회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해.’
경험치나 얻어 가고자 합류한 국가대표팀이었으나 오솔은 이곳에서 진짜로 소중한 경험을 얻어 가고 있었다.
삑, 삑, 삐이익-!
경기가 끝이 났다. 최종 스코어는 3 대 2였다. 유럽파들의 기량을 확인하는 동시에 수비진의 불안도 재확인하게 된 경기였다.
물론 친선경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정확히 나흘 뒤, 한국은 동유럽의 강호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선수들을 서울로 불러들여 추가 평가전을 치렀다. 스웨덴과는 달리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서는 마테야 케즈만이나 사보 밀로세비치 등이 포함된 1군 멤버가 그대로 나왔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는 깜짝 3-5-2 전술을 시도했다. 최전방 공격수로 이국동과 안태환을 세우고, 박해진을 중앙으로 옮겨서 플레이메이킹을 맡긴 형태에 이번에는 시작부터 차태민을 윙백으로 기용했다.
그렇게 시작된 경기. 국가대표팀은 전반전 내내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몇 번의 역습 기회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선수가 속공에 참여하지 않았다. 오늘 대표팀은 투톱의 연계로 마무리까지 가져가거나 혹은 공을 돌리며 지공을 선택하곤 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성향이 어떤지 알 것 같네.’
아드보카트 감독은 기본적으로 수비적인 인물이었다. 경기를 준비할 때부터 수비진의 안정화에 중점을 뒀고, 실제 경기에 들어갔을 때도 수비적인 운영을 선보였다. 특히나 오늘은 상대의 공격수들이 만만치 않은지라 더욱더 수비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한국의 수비수들은 상대를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케즈만이 공을 잡고 돌파합니다! 위험합니, 슈우웃!]
캐스터가 위험을 감지했을 땐 이미 공이 케즈만의 발끝을 떠난 후였다. 이번에도 수비수들은 한발 늦게 따라붙었고, 노마크 상태에서 때린 케즈만의 슈팅은 아무리 이영일 골키퍼라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아,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선취점은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드보카트 감독은 전술을 바꾸지 않았다. 함부로 전술을 바꿨다가 팀이 급격히 흔들릴 것을 염려한 것이다.
“오솔. 준비해. 후반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들어간다.”
원래 그런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전반전과 후반전의 운영이 극단적 갈리는 편이었다. 전반전에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쓰다가도 후반전-특히나 지고 있을 때-에 들어가서는 극단적인 공격 전술을 선보이는 식이었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바로 교체를 해주네요. 안태환 선수가 나옵니다.]
오솔은 안태환과 교체되어 들어갔다. 이번에는 이국동과 호흡을 맞춰보라는 의도였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자 자연스럽게 오솔이 포스트플레이를 맡았고, 이국동은 보다 공격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 둘의 조합은 결과적으로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둘 다 기술이 좋은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가 밀어주고 받아내는 동작이 투박했다.
[이국동 OUT] [조형진 IN]
아드보카트 감독은 10분간 두 사람의 호흡을 지켜보더니 곧바로 이국동을 빼고 조형진을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조형진이 포스트플레이를 맡고 오솔이 골을 노리는 역할이었다.
이건 생각보다 괜찮았다. 조형진은 오솔 못지않게 활동량이 좋은 선수였고, 헤딩을 따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최전방에서의 오솔은 모두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랐다.
[조형진의 헤딩! 오솔 선수. 뒤로 흐르는 공을 쫓아갑니다.]
수비수 뒤로 길게 흐르는 공. 그 공은 누가 봐도 골키퍼에게 더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골키퍼는 오솔의 접근을 보고도 여유를 부렸다. 상대의 덩치를 보고 당연히 느릴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오솔 선수 빠릅니다. 빨라요!]
오솔은 처음엔 조금 빠르다고 느끼는 수준이었으나, 일단 가속도가 붙자 웬만큼 작고 날랜 선수보다 더 빨랐다.
골키퍼는 그제야 기겁해서 달려 나왔으나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상황이었다.
[골~! 두 경기 연속 골을 집어넣는 오솔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이 선수 단순히 키만 큰 게 아니었네요. 발도 굉장히 빠릅니다.]
[하하! 오늘도 귀를 살짝 덮는 세리머니를 선보이네요. 얼핏 루카 토니 선수의 세리머니가 연상되는 모습입니다.]
사실은 세리머니가 아니라 단순히 상태창을 보는 중이었다.
‘좋아. 이걸로 포인트도 벌써 6개다.’
스웨덴전의 활약 덕분에 오솔은 레벨 업을 하고도 50%에 가까운 추가적인 경험치를 얻었었다. 덕분에 이번에 골을 넣자마자 레벨이 하나 더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