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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81화 (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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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81화

‘역시 베테랑들이 필요해.’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잡혀가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대표팀은 2002년을 경험한 산증인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새롭게 코치로 합류한 홍명문까지 있어서 선수단의 기강 유지에는 문제가 없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 분위기를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는 거지만…… 뭐, 그런 건 협회에서 알아서 하겠지.’

재밌게도 한국에서 국가대표 감독이란 그저 단기적인 성적만 책임지면 되는 자리였다. 8개월짜리 단기 계약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이 월드컵 이후의 일까지 고민할 리 없었다.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바라보는 건 결국 협회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물론 선수 정보를 두고 장난질이나 치는 곳에서 그럴 리 없겠지만 말이야.’

아드보카트 감독은 쓸데없는 걱정을 그치고 선수들을 모았다. 그는 새로 합류한 선수들 앞에서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핌 베어백이나 압신 고츠비 등의 코치진도 소개했다.

“오늘은 가볍게 몸만 좀 풀지.”

소집 당일 훈련은 간단한 컨디션 조절 수준에 그쳤다. 유럽파가 대거 포함된 선수 구성이라 아직 몸 상태가 정상들이 아니었다. 고로 진짜 훈련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은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나와줘야지!”

“오케이! 교차하면서!”

“나이스!”

가볍게 합을 맞추는 것임에도 손발이 척척 맞아들어 갔다. 오랫동안 같이 뛰어온 인원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었다.

‘안태환 선배가 먼저구나.’

공격 훈련의 첫 번째 타자는 최근 소속 팀에서 분위기가 좋지 않은 안태환이었다.

파앙!

미드필드 지역에서 공이 넘어오자 안태환은 공을 잡으며 방향을 전환했다. 볼터치와 동시에 몸을 돌리는 기술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는 급히 따라붙는 수비를 상대로 슈팅을 하는 척 속임수를 쓰더니 크루이프 턴을 써서 순간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렇게 단 두 번의 볼 터치로 수비수를 완전히 벗겨냈다. 이후는 1초 정도의 노마크 찬스였다. 안태환은 아무런 고민 없이 슈팅을 시도했다.

뻥! 타앗!

슈팅까지의 과정은 물이 흐르듯 유려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골키퍼 이영일이 제때 몸을 날려 공을 쳐낸 것이다.

‘방금은 골키퍼의 예측이 좋았네.’

접고 바로 때리는 패턴은 안태환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벌써 4년 넘게 같이해 온 이영일이 모를 리 없었다.

‘막히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수비수의 마크를 벗어나는 기술은 아주 날카로웠어.’

안태환식 ‘접기’는 순간 속도와 균형 감각, 개인기, 드리블, 그리고 볼터치까지 두루 갖춰야 가능한 개인기였다. 지금의 오솔로서는 흉내 내기조차 힘들었다.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따라 할 수 없겠는데? 뭐, 그럴 필요도 없지만.’

감독이 오솔에게 원하는 건 전형적인 9번의 역할이었다. 반면 안태환은 9번 타입은 아니었다. 그는 최전방에 섰음에도 플레이 스타일은 오히려 10번에 더 가까웠다.

물론 안태환이 포스트플레이를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때에 비하면 그 위력이 많이 떨어졌다.

“국동아!”

다음은 매번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던 이국동의 차례였다.

‘내 기억에 이번 월드컵도 부상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었던 같은데…….’

K리그 경기 중에 부상을 입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오솔은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무슨 경기 중에 어떻게 하다 입은 부상인지는 알지 못했다.

‘전방 십자인대 부상이었지. 쩝. 괜히 미안하네.’

안타깝지만 딱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대뜸 부상을 조심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그런다고 부상을 피할 수 있으리란 법도 없었다.

뻐엉-! 철썩!

생각에 잠긴 사이에 이국동의 슈팅이 골망을 갈랐다. 그의 전매특허 발리슛이었다.

‘최근에 리그에서 기세가 좋다고 하더니 확실히 발끝이 살아 있네.’

개인기는 안태환 쪽이 더 좋았으나 골문 앞에서의 득점력은 이국동이 훨씬 나았다.

“다음은 형진이!”

훈련은 나이순으로 진행되는지 오솔이 제일 마지막 차례였다. 덕분에 그는 경쟁자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조형진은 확실히 젊은 피답게 움직임이 활발했다. 키도 이국동과 비슷한 수준에 몸싸움 능력도 준수했다. 그러나 문전에서의 파괴력은 역시나 부족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안태환의 테크닉과 이국동의 득점력, 그리고 조형진의 활동량을 두고 고민 중이겠군.’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리는 세 선수였다. 감독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을 좀 도와줘야겠네.’

오솔이 가볍게 발목을 돌렸다. 그를 네 번째 선택지로 생각하고 있을 감독에게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내가 세트 메뉴는 될 수 없어도 짬짜면 정도는 되어줄 수 있거든.’

안태환이 가진 발재간은 재현할 수 없었으나, 이국동이나 조형진이 가진 장점들은 그에게도 얼마든지 있었다.

“좋아! 다음, 오솔!”

“예!”

선배들이 섰던 공간으로 오솔이 걸어 들어갔다.

오늘 훈련은 간단했다. 4-4-2를 상대로 빌드업하는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다. 그래선지 처음 공을 잡은 사람은 토트넘 소속의 왼쪽 수비수 이영신이었다.

빌드업의 시작이 되는 선수는 패스와 시야는 물론이고, 공을 쉽사리 뺏기지 않을 만큼의 드리블 실력도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했다.

현재 국가대표 팀에서 그게 되는 건 이영신뿐이었다.

물론 이영신 혼자 잘한다고 해서 빌드업이 끝나는 건 아니다. 공격이 최종 단계까지 이르려면 여러 가지 패턴을 선수단 전체가 같이 익힐 필요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중앙 미드필더인 이은령의 활용이었다.

공격적인 역할을 맡은 이은령은 수시로 상대의 빈 공간을 찾아 움직였는데, 주로 넓게 벌리고 선 공격수들 사이의 공간으로 이동하곤 했다. 이때 그를 마크하는 선수가 없다면 공은 단번에 1.5선까지 진출할 수 있다.

물론 상대가 이은령을 자유롭게 놔뒀을 때의 일이다. 실제로는 높은 확률로 미드필더 중 한 사람이 이은령을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러면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사람은 반드시 노마크 상태가 되고, 패싱력을 갖춘 김남준이나 여민국에게 공을 주면 된다.

이게 두 번째 수(手)였다.

만약 상대가 공격수 중 하나를 밑으로 내려서 미드필더 세 사람을 모두 마크한다 해도 방법은 있었다.

‘바로 중앙 공격수가 밑으로 내려와서 공을 받는 것이지. 이렇게!’

오솔이 이은령이 만들어낸 공간 사이로 내려와 공을 넘겨받았다. 그는 공을 잡은 것과 동시에 몸을 돌렸는데 그 동작이 안태환이 보여줬던 턴과 매우 흡사했다.

공을 잡아두는 컨트롤이 그렇게 부드럽지는 않아서 공이 살짝 튀었으나, 이미 주변에 상대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돌아선 상황이라 문제 될 게 없었다.

차태민은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어때요, 괜찮죠?”

차태민이 신이 나서 묻자 안태환이 괜히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뭐, 제법 돌 줄 아는 놈이네.”

“하하. 그렇죠? 누구 후배인지 정말 잘하네요.”

“야, 넌 내 편을 들어줘야지. 쟤랑 안 지도 얼마 안 됐다면서……. 내가 쟤랑 경쟁 중인 거 몰라?”

“에이. 한참 후밴데 무슨 경쟁이에요?”

“필드에 올라가는 순간 나이고 뭐고 없는 거 잘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냐?”

“흐흐. 죄송하지만 제 경쟁자는 아니거든요. 그리고 저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이제는 동생들이 좋아요.”

“에휴. 후배 챙겨줘 봐야 아무 의미 없다더니…….”

안태환의 푸념이 이어지는 중에도 오솔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단 한 번의 터치로 돌아선 그는 좌우에서 쇄도해 들어가는 공격수들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왼쪽에는 박해진, 오른쪽에는 이청운이라……. 세상에 이렇게 호화로운 공격 옵션들을 봤나.’

오솔은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행복한 고민과 함께 발을 휘둘렀다.

파아앙!

* * *

[오솔 선수의 스루패스! 좌측에서 파고들던 박해진에게 닿습니다! 박해진! 슈우우웃!]

[고오오올! 박해진의 A매치 다섯 번째 골이 들어갑니다. 1 대 0으로 앞서가는 대한민국!]

박해진의 선취점에 중계진이 뒤집어졌다. 박해진은 이번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새롭게 대한민국 축구의 상징이 된 인물이었다. 흥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하. 팔을 요리조리 흔드는 세리머니네요. 저게 무슨 의미일까요?]

[날 것 같은 기분이라는 뜻 아닐까요? 아마 그만큼 좋다는 의미겠죠.]

[선수들이 모여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솔 선수도 국가대표 데뷔전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네요.]

[골은 박해진 선수가 넣었지만, 오솔의 플레이도 아주 좋았습니다. 화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돌아서는 동작부터 침착하게 패스 코스를 선택하는 순간까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어요.]

[어린 선수가 굉장히 침착하네요. 역시 괜히 유럽에서 뛰는 게 아닙니다.]

데뷔전이되 실상은 데뷔전이 아니었으니 긴장할 리 없었다.

‘그래도 이 멤버들과 뛰는 건 처음이네.’

대한민국 대표팀 역사상 최강의 전력이었다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선수들. 이들과 함께라면 16강, 그 이상도 노려볼 만했다.

‘아시안게임까지 갈 것도 없이 월드컵 16강으로 군 면제 좀 받아보자. 커트라인만 넘기는 건 아쉬우니까 8강이나, 뭣하면 4강을 재현하는 것도 좋겠지.’

오솔의 자신감은 혀컴이라고 불리는 이청운 못지않았다.

“얌마! 나한테는 왜 패스를 안 하냐?”

호랑이도 아니건만 하필 이 타이밍에 이청운이 나타나 타박을 했다.

“이게 연습할 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해진이한테 주네. 너 태환이 형이 한 말 잊었냐? 우리의 유니폼에는 태극마크만 있다고, 맨유 말고 나한테도 좀 줘!”

“형이야말로 팀 동료한테 맨유가 뭐예요. 그리고 형도 저한테 크로스 한 번을 안 했잖아요! 맨날 돌파하다가 걸리기나 하고, 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거든요!”

“야. 완벽하게 제쳐서 주려는 거지. 누가 일부러 안 줬냐? 암튼 다음에는 나한테도 좀 패스해. 내가 도움 올려줄게. 진짜로!”

오솔은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못 미덥다는 표정은 여전했다.

‘청운이 형한테 주면 되돌아오는 데 한 세월이란 말이야…….’

박해진은 수비수를 순간적으로 벗겨내고 바로 공을 처리하는 데에 반해 이청운은 수비수를 완전히 속이고 끝까지 돌파해 들어가기를 즐겼다. 박해진은 크로스나 패스를, 이청운은 슛을 목표로 돌파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였다.

‘게다가 오른쪽으로 주려면 왼발로 차거나 오른발 바깥쪽으로 차야 하는데, 내가 아직은 그만한 기술이 안 된다고.’

물론 왼쪽으로만 패스를 했다간 적에게 쉽사리 막히기 때문에 패스 코스를 좀 다양하게 가져갈 필요는 있었다.

‘왼발 숙련도도 신경 써서 올려놔야겠어.’

어쨌든 오솔은 지금까지는 제 역할을 다해주고 있었다. 선발로 출전해서 빌드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결과 도움도 하나 기록했다.

‘방금 도움으로 경험치도 많이 올랐어. 좋아. 역시 국가대표가 답이었어.’

[오늘은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술이 제대로 통하는 것 같죠?]

오늘 대한민국은 4-4-2로 나온 스웨덴을 맞아 3-4-3 진형으로 맞섰다. 측면 자원이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였다.

[후방에서 길게 넘어오는 공. 박해진의 헤딩! 뒤로 빠지는 공을 따라잡는 이영신!]

그중에서도 박해진과 이영신이 같이 선 왼쪽 측면은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한 수준이었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물론이고 PSV 아인트호벤에서 2년 넘게 호흡을 맞췄던지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이영신의 개인기!]

측면을 따라 달리던 이영신이 갑자기 공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헛다리 짚기를 시작으로 상대의 몸에 맞고 튀어 오른 공을 공중에서 좌우로 번갈아가며 리프팅하더니 순식간에 상대를 제치고 크로스를 올렸다.

파아앙-!

멋진 개인기 덕분에 돌파에는 성공했으나 그 반대급부로 크로스는 상당히 부정확했다. 공이 조금 길다 싶은 순간, 오솔이 껑충 뛰어올랐다. 스웨덴의 중앙 수비수 프레드릭 스텐만이 뒤늦게 붙었으나 말 그대로 너무 늦고 말았다.

철썩!

[고오오올! 선취 골을 넣은 지 고작 10분 만에 추가 골에 성공합니다!]

[이게 우리나라의 진정한 저력이죠. 이란과의 경기에서 무기력했던 모습이 오늘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피파랭킹 13위. 역대 전적 1무 2패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스웨덴을 상대로 대한민국이 2 대 0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해설자의 말에는 이브라히모비치나 라르손, 융베리와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빠졌다는 내용이 없었다. 또한 그들 외에도 주전 선수 4명이 더 빠진, 사실상 스웨덴의 1.5군을 상대하고 있다는 말도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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