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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79화 (7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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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79화

‘조형진은 훌륭한 선수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더 잘 뛸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해.’

감독은 때론 냉정하리만치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 했다.

조형진 선수가 아픔을 참아가며 뛰고, 그 와중에 결국 국가대표로 뽑힐 만큼 노력한 점은 인정하고, 또 인간적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국가대표를 뽑는 기준은 누가 뭐래도 실력이었다. 선수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한 선발 같은 건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었다.

‘만으로 19세라……. 한창 좋을 때군.’

아드보카트 감독의 두 눈에 그리움이 걸렸다. 그가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아 ‘UEFA 유로 2004’를 준비했을 때도 몇몇 나이 어린 선수가 있었다.

당시 스물하나였던 라파엘 반 더 바르트와 막 스무 살이 된 베슬리 스네이더와 아르옌 로번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그중 아르옌 로번은 기존 선수들을 제치고 네덜란드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할 정도로 대단했었다.

덕분에 그는 알게 되었다. 때로는 경험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압도적인 재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물론 조형진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를 선택해야겠지.’

혹은 그 두 사람도 아닌 제3의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아직 월드컵까지 8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아드보카트 감독이 면담을 준비하는 사이 경기는 종장을 향해가고 있었다.

후반 30분경.

차태민은 이미 10분도 전에 교체되어 나간 상황이었고, 이제 필드 위에 남은 건 오솔뿐이었다. 오솔은 프랑크푸르트의 벤치를 슬쩍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역시…… 표정이 안 좋네.’

차태민은 항상 밝고 경쾌한 사람이었으나 이런 날에는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모두의 기대와 믿음을 저버렸을 때 선수가 느끼는 자괴감은 어마어마했다. 아마 저것도 최대한 표정을 관리한 모습일 것이다.

‘됐어. 일단은 경기에 집중하자.’

한 사람의 희로애락과는 관계없이 경기는 계속 진행됐고,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함부르크는 두 골을 더 넣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최선을 다했으나 코너킥을 활용해 간신히 한 골을 따라붙는 데 그쳤다.

그렇게 최종 스코어는 4 대 1이 되었다.

“유니폼 교환할까?”

“저야 좋죠.”

경기가 끝나자 어느새 차태민이 다가와 유니폼을 건넸다. 그는 그사이에 심각한 얼굴을 버리고 다시 웃는 낯으로 돌아와 있었다.

“저녁은 집에서 먹을까 하는데 괜찮겠어?”

“상관없어요. 아, 혹시 한국 음식도 있어요?”

“물론이지. 김치도 있고, 불고기 재워놓은 것도 있어.”

오솔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무리 그가 외국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음식은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은 것이라 적응에 한계가 있었다.

차태민은 형편없는 경기력과 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오솔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줬다.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고생을 하는 후배를 보자 괜히 동생 생각이 난 것이다.

‘마침 나이도 비슷하네.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잘해줘야겠다.’

7살이나 어린, 말 그대로 막내 동생뻘 후배였다. 그의 눈에는 오솔의 근육마저 마냥 귀엽게만 보였다. 오솔은 차태민의 미소에 마주 웃었다.

‘확실히 사람은 좋아.’

전생에 오솔은 특유의 자기중심적인 성격과 막무가내식 행동으로 국가대표 선후배들에게 비호감을 샀었다. 그래서 모두가 그를 싫어했었는데, 그중에 그나마 후배로 대우해 준 것은 박해진과 차태민 두 사람뿐이었다.

그가 굳이 차태민에게 포지션 변경을 권유하려는 것도 그때의 배려를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차태민 선수, 그리고 오솔 선수. 끝나고 잠시 시간 내주셔야 하는 거 아시죠? 아드보카트 감독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내 대기하고 있었는지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협회 직원이 말을 걸었다.

오솔의 입가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국가대표 감독과의 면담은 곧 국가대표 소집을 의미했다.

‘11월 친선경기도 한국에서 열린다고 했었지? 12일이던가? 후후. 간신히 민주가 수능을 보기 전에 만날 수 있겠다.’

이번 친선경기는 그에게도 중요한 경기였으나, 비슷한 시기에 여민주는 훨씬 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역시 전화로 응원하는 것보단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는 게 좋겠지. 시간 내서 감독님과 선생님도 뵙고 말이야.’

“하하하.”

오솔은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깨닫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국가대표 데뷔전 같은 큰 사건을 앞두고 설마 다른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날이 올 줄이야,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회귀를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되리란 생각을 못 했었는데……. 후후.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네.’

그는 어느덧 변화된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 * *

“반갑네. 딕 아드보카트일세.”

“오솔이라고 합니다.”

오솔은 악수를 하며 가볍게 웃었다. 덕분에 옆에 선 통역사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솔의 영어는 오히려 아드보카트 감독보다 유창했다. 통역은 필요 없었다.

“오, 영어를 꽤 잘하는구먼. 내 말을 곡해할 일은 없겠어.”

“언어가 달라도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만 있으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선수들이야 문제가 없지.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쪽이었네. 참, 자네들은 이만 나가주게.”

아드보카트 감독이 통역사와 협회 직원을 쫓아내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골을 넣은 것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아니야. 내가 고맙지. 덕분에 자네가 어떤 플레이를 잘하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었거든.”

칭찬도 잠시, 아드보카트 감독은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는 어떤 전술을 사용할지 고민 중이네. 정확히는 수비 쪽만. 공격은 어떤 식으로 운용할지 확실히 틀을 잡은 상태야.”

아드보카트 감독이 고민하는 건 3백을 사용할지, 아니면 4백을 적용할지 하는 부분이었다. 공격은 이미 3톱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상황이었다.

“내 전술에서 중앙에서 뛰어주는 선수는 전형적인 9번이 되어야 하네. 포스트플레이가 되는 선수, 상대의 수비진을 끌고 다니며 2선에 찬스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선수 말일세.”

그가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 때에는 뤼트 반 니스텔루이가 그 자리를 맡았었다.

그 당시 진형은 4-3-3으로 왼쪽에 아르옌 로번이, 오른쪽에는 반 더 메이더가 뛰었고, 중앙에는 에드가 다비즈와 클라렌스 시도르프가,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필립 코쿠가 있었다.

한국에서 구상하는 전술도 비슷했다.

중앙에는 전통적인 9번을 넣고 왼쪽에 박해진, 오른쪽에는 이청운을 세운다. 미드필더는 활동량과 수비력을 갖춘 선수들로 구성해서 중원을 꽉 잡을 생각이었다.

단, 이 전술은 필연적으로 중앙 공격수가 고립되기 쉬웠다. 측면 공격수들이 거리를 좌우로 크게 벌린 데다가 공격형 미드필더조차 없기 때문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자신이 바라는 역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라는 게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포스트플레이는 기본으로 되면서 동시에 연계와 수비 가담까지 다 가능한 선수를 찾고 있네.”

직접적으로 골을 노린다기보다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물론 기회가 왔을 때는 직접 마무리도 지어야 했지만 기본 역할은 도움을 주는 쪽이었다.

‘전생에 조형진 선수를 기용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전생의 오솔은 어정쩡한 실력으로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었으니, 국가대표로 뽑힐 리 만무했다. 물론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문제없습니다. 이미 청소년 대표 때 비슷한 역할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거 잘됐군. 어쨌든 좀 더 자세한 설명은 훈련장에서 이어서 하고, 오늘은 이만 가보겠네. 그럼 일주일 후에 보자고.”

“예. 감사합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번에 반드시 소집하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듣기로는 내일까지 터키에 가서 이은령 선수의 경기를 확인해야 한단다.

‘확실히 감독도 쉬운 자리는 아니야.’

“이야기 잘 했어?”

밖에 나오니 차태민 선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사이에 또 표정이 굳어 있었다.

‘카메라 때문인가? 아니면 감독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었나?’

차태민이 뒤에서 따라오던 제작진을 소개했다.

“인사해. 이쪽은 MBS 방송국에서 오신 김태영 피디님이랑…….”

“반갑습니다, 오솔 선수. 오늘 경기 잘 봤습니다. 편하게 김 피디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먼 길을 오셨네요. 그런데 이거 방송에 나가려면 재밌어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예능도 아니니까 부담 가지실 것 없습니다.”

김 피디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으나 차태민은 여전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두 사람 사이를 이실직고했다.

“실은 저희가 이번에 처음 만난 거라 평소 모습이랄 게 없어요. 솔직히 이렇게 서 있는 것도 조금 어색하네요.”

“괜찮습니다. 있는 그대로 찍으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맞아요, 선배님. 또 요즘 대세가 리얼 아닙니까. 그리고 이건 다큐잖아요. 진실을 보여줘야죠.”

“그, 그런가?”

차태민은 귀가 얇은 편인지 리얼이 대세라는 말에 홀라당 넘어갔다. 이후 김 피디는 이동하는 사이에 방송에 쓸 질문을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두 분은 원래 알던 사이예요?”

“아니요. 그동안은 기회가 없어서 만나지 못했어요. 축구 선수는 이 시기에 시즌을 준비하느라 바쁘거든요. 게다가 같은 독일이라고 해도 함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간을 내기 힘들죠.”

두 도시 사이의 거리는 비행기로는 약 1시간, 차로 가면 무려 5시간이 넘게 걸린다.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에야 만나기 힘든 거리였다.

“그래도 이렇게 알게 됐으니까 앞으로는 근처로 원정을 갈 때마다 볼 생각입니다. 괜찮지?”

“저야 좋죠. 선배님은 어렸을 때부터 독일에서 생활하셨으니까 제가 배울 점이 많을 거예요.”

“어, 내가 독일에서 생활한 건 어떻게 알았어?”

“아……. 차, 차호진 감독님 다큐를 보고 알았어요.”

사실은 전생에 그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었다.

“진짜요? 그거 저희 팀에서 만든 다큐였어요.”

인연이 되려는지 하필이면 그 다큐를 만들 때 김 피디도 막내 연출로 참여했었다.

‘아니, 다큐 봤다는 건 뻥인데…….’

어쨌든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게다가 한번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이때부터는 차태민이 나서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밥 같은 건 어떻게 해결해?”

“그냥 구단에서 매니저가 장 봐주고, 음식은 아주머니가 해놓으세요.”

“운동선수는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해. 이따가 내가 김치 좀 싸줄 테니까 원하는 만큼 가져가.”

“그럼 감사하죠.”

“참, 만나는 사람은 있어?”

여자를 뜻하는지 친구를 뜻하는지 애매한 표현이었다.

“예. 최주혁 감독님이라고 청소년 대표팀으로 뛸 때 은사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독일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계세요. 그래서 쾰른 쪽을 지날 때마다 저녁을 같이하곤 해요.”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타국 생활은 심리적인 안정도 중요해. 사교 생활에 들어가는 시간들을 아깝다고 생각하면 안 돼.”

“예. 동감이에요.”

“참, 이번에 아드보카트 감독님이 뭐라고 하셨어?”

“그냥 전술이나 원하는 플레이에 대해 설명해 주셨어요. 이번에 소집할 테니까 자세한 건 그때 얘기하자고…….”

대화의 주제가 마침내 국가대표로 옮겨 갔다. 김 피디는 이때다 싶어서 끼어들었다.

“오솔 선수 같은 경우는 이번이 첫 국가대표 소집이죠?”

“네.”

“기분이 어때요?”

오솔의 눈빛이 번뜩였다. 내내 기다렸던 질문이 드디어 나왔다.

“글쎄요. 이미 청소년 대표팀에서 한번 태극마크를 단 적이 있었지만, 성인팀은 또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국가를 대표한다는 상징성이 더 강하다고 해야 하나?”

“시즌 중에 지구를 반 바퀴씩 이동해야 하는데 체력적으로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전혀요. 내 나라,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뛰는 건데 힘들어도 감수해야죠. 국가대표는 그 자체로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잖아요.”

오솔은 말을 마치고 차태민과 촬영팀의 얼굴을 재빨리 살폈다. 과연 그들의 얼굴에는 흐뭇한 기색이 가득했다.

‘흐흐흐. 됐다!’

오솔은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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