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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78화 (7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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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78화

[뭐지? 방금 내가 뭘 본 거임?]

[네가 뭘 봤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어휴. 당연히 방금 골 말하는 거지. 이 답답아.]

[그럼 애초에 주어를…… 아니, 목적어를 정확히 했어야지.]

[야. 그럼 내가 축구방에서 야구 얘기를 하겠냐?]

[그만 싸워요. 진짜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싸우시네.]

채팅창이 시끄러워진 사이 오솔의 득점 장면이 천천히 재생됐다. 타이밍에 맞춰 수비 뒤로 돌아가는 오솔과 그런 오솔의 발 앞에 공을 뚝 떨궈주는 반 더 바르트. 어느덧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었다.

[반 더 바르트 쟤 잘하지 않나? 이름은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ㅇㅇ. 네덜란드의 신성임. 이번에 국가대표팀에서 세도르프 밀어내고 네덜란드 10번 달았음.]

[이해하기 쉽게 게임으로 설명하면 대충 오버롤 85 정도 되는 선수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박해진은 75 정도다.]

[겁나 잘하는 놈이네.]

[지금 그런 애랑 우리나라 선수랑 같이 뛴다는 거잖아?]

[심지어 패스를 받아서 골도 넣었어.]

[방금 세리머니하면서 어깨동무도 했어!]

채팅방에 모인 이들은 불을 최초로 발견한 인류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조금은 우스운 반응이었으나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대형 공격수에 목말라하던 국내 축구 팬들에게 오솔의 등장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단비였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유럽 선수들에게 안 밀리는 선수가 생기는 건가?]

[그러게. 그동안은 J리거만 뽑았잖아. 이번에 이란한테 질 때도 시미즈 S펄스에서 뛰는 애가 원톱이었는데 역시나 못하더라.]

[누구, 조형진? 걔는 그래도 제법 몸싸움이 되는 앤데? 헤딩도 나름 잘하고, 네가 기준이 너무 높은 거 아니야?]

마침 오솔과 프랑크푸르트의 장신 수비수, 마르코 루스가 헤딩 경합을 벌였다. 오솔은 190㎝에 육박하는 유럽 선수를 상대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더니 손쉽게 공을 따냈다.

[오늘부터 내 기준은 저 녀석이다!]

[나도! 시미즈 따위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당장 오솔을 국대로!]

[국회로!]

[옳소!]

그때 ‘지멘’이란 아이디를 단 사람이 불쑥 끼어들었다.

[지멘 : 그래도 아직 국가대표로 뽑기에는 부족하지. 유럽에서 뛴다고 해도 프로가 된 지 이제 겨우 3개월째잖아. 경험이 너무 적어. 개인적으로 큰 대회 경험이 많은 성지훈을 뽑는 편이 백배 낫다고 본다.]

[에이. 성지훈은 한물갔지.]

[아직도 성지훈을 미는 애가 있네? 알콜지훈을 지금 어디다 들이대냐? 아드보카트호를 전봇대에 꼬라박을 일 있냐?]

[저거 아이디부터 성지훈빠네.]

[지멘 : 야. 딱 한 번 실수한 걸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라. 음주운전 이후로 반성 많이 했더라. 본인도 달라지겠다고 했는데, 굳이 그걸 가지고 비꼬고 있냐. 하여튼 우리나라 네티즌들 인성하고는.]

[여기서 갑자기 인성 드립을? 성지훈 실더들 수준 보소.]

[음주운전으로 사고까지 낸 놈을 욕하지, 그럼 칭찬하냐? 게다가 사고 내고 반성이나 했을까, 내 기억에 한 달도 되기 전에 복귀했던 거 같은데?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뭐? 축구로 보답한다고? 아니, 무슨 놈의 보답을 지가 돈 버는 걸로 하냐?]

[지멘 : 아 나……. 말이 안 통하네. 그러니까 국가대표에서 뛴다는 거지. 월드컵 성적으로 보답한다는 의미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국가대표라는 자리가 그리도 쉽게 보이시나. 그리고 국가대표도 엄연히 출전 수당 따로 받아요. 월드컵은 대회 끝나고 성적에 따라 보너스도 차등 지급되고요. 게다가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쌓는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절대 자원봉사가 아닙니다.]

[심지어 16강 이상 가면 군 면제 혜택도 받을 수 있음.]

여기에 아이디 ‘아침뱃살’이 팩트 폭격에 동참했다.

[아침뱃살 : 국가대표면 실력을 최우선으로 보고 뽑아야죠. 성지훈 선수도 실력이 괜찮은 편이긴 하지만 솔직히 오솔 선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술상 3톱을 사용할 텐데, 솔직히 성지훈 선수는 위치가 어정쩡하잖아요. 반면에 오솔 선수가 원톱으로 서면 조형진 선수 이상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해요.]

[지멘 : 아이고 감독 났다. 아직 3톱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무슨 원톱이 어쩌고 측면이 어쩌고……. 그리고 오솔이 실드 좀 그만 쳐라. 누가 보면 가족인 줄 알겠다.]

[아침뱃살 : 실드가 아니라 타깃형 스트라이커로서 장점이 있다는 거죠. 성지훈 선수는 솔직히 원톱으로 놓기에는 아쉽잖아요.]

[지멘 : 오솔이 그렇게 좋으면 아예 결혼을 하지 그러냐? 나중에 오솔이 닮은 아들딸 낳고 살아라.]

[지멘 님 말이 좀 심하시네.]

[그러게 차라리 쌍욕을 하시지. 아들딸로 오솔을 낳으라니…….]

[아침뱃살 : 왜요! 오솔 선수 닮은 아들딸이면 전 너무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나중에 오솔 선수랑 결혼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

[엇! 아침뱃살 님 설마 여자?]

[뭐? 채팅방에 여자가 있다고?]

[님. 어디 사셈? 내 이상형이 축구 좋아하는 여자임.]

---[아침뱃살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아……. 나갔다.]

[이게 다 님 때문임. 거기서 사는 곳은 왜 물어봐요?]

[지멘 : 병신들. 수준 보인다. 니들이 축구를 알기나 하냐? 성지훈이 얼마나 잘하는데, 고작 오솔이 따위랑 비교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런데 아까부터 영 이상하네. 저놈이 말하는 게 꼭 오솔을 잘 안다는 투란 말이야.]

[그러게. 혹시 성지훈 본인이라거나 그런 거 아니야? ㅎㅎㅎ]

[전에 그런 소문 돌지 않았었나? 채팅방에서 다른 사람인 척 자기 칭찬하다가 걸렸다고.]

[어라? 아까부터 지멘이 말이 없네. 뭐 찔리는 거 있으시나?]

[설마 지훈이가 또?]

[지훈아 추하다.]

[추훈아 지하다.]

[또훈이니? ㅋㅋㅋ]

[또훈아? 왜 말이 없니?]

‘지멘’은 조용히 채팅창을 나갔다. 그렇게 서울에 사는 ‘지멘’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성 모 씨에게 또 하나의 별명이 생기는 사이, 오솔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고 있었다.

‘하아, 하아. 국내에 중계돼서 그런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귀를 후벼 파는 것도 잠시, 오솔은 다시 시작된 공격에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 더 바르트! 이번에는 좌측면을 향해 돌파해 들어갑니다!]

[이 선수는 왼발의 마술사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왼발을 잘 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위치에서 크로스는 굉장히 위협적이에요!]

파앙!

반 더 바르트는 낮게 깔리는 크로스를 선택했다. 이미 상대방은 오솔의 제공권을 한껏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 방법을 한번 꼰 것이다.

그러나 공은 오솔에게 오기 전, 중앙 수비수의 발에 맞고 살짝 굴절되었다. 본래라면 무릎 높이로 왔어야 할 공이 가슴께까지 튀어 올랐다. 게다가 하필이면 오솔에게 오기 직전에 방향이 바뀐 터라 반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슛이다!’

오솔은 들어 올린 발을 내릴 틈도 없이 고개만 꾸벅 숙여서 공에 가져다 댔다.

툭!

공격수조차 겨우 반응한 공이었다. 두 번이나 궤도가 변한 공에 골키퍼가 반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철썩!

[고오올! 오솔 선수! 전반전 종료 직전에 또 한번 골을 기록합니다!]

[방금은 반응 속도가 아주 좋았네요. 순간적으로 머리를 숙여서 이마 끝으로 공을 살짝 찍었어요.]

[네. 대단합니다, 오솔 선수. 전반전에만 두 골을 몰아 넣었네요. 반면 차태민 선수는 오늘 돌파가 쉽지 않습니다.]

차태민의 짧게 깎은 머리에 땀이 잔뜩 맺혔다.

후배와 같이 뛰는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데다가 그사이 후배는 벌써 2골이나 넣으며 선전(善戰)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포지션도 같은 공격수라서 경기가 진행될수록 까마득한 후배에게 밀린다는 인상을 풍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진짜로 뭔가 보여줘야 해. 이대로라면 국가대표는 물론이고 클럽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말 거야.’

그러한 차태민의 각오에 하늘도 감명을 받았는지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 기회가 찾아왔다. 모두의 긴장이 흐트러진 찰나의 순간, 프랑크푸르트 미드필더가 찬 공이 수비진 틈을 뚫고 함부르크 진영 후방에 떨어진 것이다.

타다다닥!

[차태민 달립니다! 따라붙으며 몸싸움을 거는 반 바이텐! 아! 그러나 밀리지 않아요. 더 빠르게 뛰며 돌파하는 차태민!]

[반 바이텐이 밀려났어요! 차태민-! 돌풍처럼 빠릅니다!]

[수비가 또 붙습니다!]

반 바이텐이 시간을 끈 잠깐의 틈에 티모테 아투바가 달라붙었다. 차태민은 한차례 더 질주하며 아투바마저 날려 버렸다. 무지막지한 파워였다.

‘이런…….’

그러나 마지막 돌파 과정에서 공을 너무 길게 찬 나머지 골키퍼의 손아귀에 공을 뺏기고 말았다.

[아……! 아쉽습니다. 마지막 슈팅까지 가져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지만 돌파 자체는 아주 위력적이었습니다. 폭발적인 스피드는 물론이고, 덩치 큰 수비수들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강한 힘까지 자신의 장점을 모두 보여줬어요.]

동시에 그가 가진 한계 역시 여실히 드러났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차태민의 장단점을 단번에 확인했다. 이미 자료를 통해 알고 있던 내용들이었으나, 실제로 보니 뚜렷한 장점만큼 단점도 크게 다가왔다.

‘앞에 공간이 있어야만 위력을 발휘하는 타입이야. 피지컬은 유럽에서도 통할 만하나 테크닉은 기대보다 더 안 좋군.’

아드보카트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전술은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쓰는 4-3-3 진형이었다. 이때 쓰리톱의 중앙에는 포스트플레이가 되는 대형 공격수를 놓고, 좌우 공격수들은 돌파력이 뛰어난 측면 자원들로 채우는 것이 기본 골자였다.

여기서 차태민의 경쟁자들은 잉글랜드 챔피언쉽(2부 리그)의 팀 울버햄튼에 뛰고 있는 설현민과 프리메라리가에서 돌아와 K리그의 풍운아가 된 이청운, 두 사람이었다.

‘몸싸움이나 스피드는 설현민도 만만치 않아. 크로스 실력도 설현민 쪽이 훨씬 좋고.’

차태민은 여러모로 설현민에 비해 아쉬운 선수였다. 그렇다고 이청운이랑 비교할 수도 없는 게 이청운이 비록 스페인 무대에서 실패하긴 했지만, 그는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테크니션 타입의 윙어였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선수들로 포지션을 채우는 편이 상대를 교란시키기 편하기 때문에 이청운은 반드시 데려가야 했다.

‘차라리 윙백으로 뛰면…….’

앞에 공간이 있어야 힘을 쓰는 타입이고, 여유 있는 상황에서 크로스를 올려야 그나마 크로스의 정확도가 확보되는 선수라면 윙어보다는 상대적으로 압박이 덜한 윙백으로 뛰는 편이 더 좋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국가대표를 위해 포지션을 바꿔달라는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월드컵 경기에 내보내겠다고 백 퍼센트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포지션을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감독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슬그머니 운을 띄워봐야지.’

최근 들어 우측면의 송정욱의 기량이 하락하면서 우측 자원으로 마땅히 쓸 만한 이가 없었다. 그나마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조영희가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국가대표로 뽑기에 아쉬웠다.

오죽하면 왼쪽 붙박이인 이영신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쪽은 최근에 K리그에서 무서운 활약을 보이고 있는 신예, 김동준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잘만 하면 내내 고민거리로 남아 있던 우측 풀백을 채워 넣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무리한 부탁인 걸 알면서도 한번 정도는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오솔이라고 했지?’

그는 차태민에 대한 고민이 끝나자마자 오솔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흡사 양아들이라도 대하는 것처럼 흐뭇한 기색이 가득했다.

‘저런 선수를 국가대표 명단에서 빼먹다니, 정말 어처구니없군.’

그는 무능한-혹은 의도적으로 무능해지는-축구 협회 인사들을 욕하며 오솔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전반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임에도 오솔은 전방에서 촉각을 곤두세운 채 골을 노리고 있었다. 이미 두 골이나 넣었음에도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움직임만 놓고 본다면 조형진도 나쁘지 않지만, 골 결정력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땐 저 선수가 훨씬 뛰어나. 그리고 저 움직임! 순간적으로 자리를 잡고 연계하는 움직임이 굉장히 좋아.’

조형진은 타깃형 스트라이커로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슈팅 실력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그가 20대 초반부터 앓아왔던 ‘선천성 고관절 이형성’이라는 병이 문제였다.

선천성 고관절 이형성. 이것은 엉덩이 쪽 관절이 탈구되어 뼈가 깎이면서 골반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병이었다.

당연히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느껴야 했고, 특히나 방향을 전환하거나 슈팅을 시도하는 등 고관절을 회전할 때는 더욱 큰 격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니 슈팅을 시도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고, 자연히 슈팅이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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