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74화
리그 7라운드 슈투트가르트전.
이날 함부르크 SV는 오솔과 타카하라 투톱에 바바레즈가 뒤를 받치는 형태로 치르게 되었다.
반 더 바르트가 없는 경기.
함부르크는 플레이메이커의 역량에 따라 경기력이 천차만별로 변하는 전술을 사용 중이라 많은 이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바바레즈는 자신은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리며 그러한 우려를 불식(拂拭)시켰다.
[바바레즈의 컨디션이 아주 좋네요. 전방으로 뿌려주는 패스도 아주 날카롭고, 몇 차례 선보인 중거리 슛도 정확도가 높았습니다.]
[적어도 기본은 되는 선수니까요. 반 더 바르트가 뛸 때처럼 번뜩이는 돌파는 보이지 않지만, 플레이에 안정감이 있습니다.]
[전방에서 뛰어주는 오솔과 타카하라 투톱도 부지런히 움직이며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두 선수가 나란히 한 골씩 기록하면서 자신들을 기용한 이유를 몸소 증명했네요.]
슈투트가르트전은 무난하게 2 대 0으로 승리했다. 상대 수비수들은 오솔의 높이와 속도에 허둥지둥하다가 결국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 선취 골을 내줘야 했다.
오솔의 활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몇 번의 헤딩 패스를 성공시켰고, 덕분에 타카하라는 한 손을 다 채울 만큼의 일대일 기회를 잡게 되었다.
물론 결과는 말했다시피 2 대 0이었다. 아쉽게도 타카하라는 그 많은 패스 중에서 겨우 하나만 골로 연결했던 것이다.
비록 전방에서 아쉬움이 있었으나 어쨌든 경기 기록만 놓고 보면 이날 경기는 나쁘지 않았다.
‘한 경기 치르면서 호흡을 맞췄으니, 다음 경기에서는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겠지.’
토마스 돌 감독은 이 멤버 그대로 마인츠 05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찾아온 마인츠 05와의 리그 8라운드 경기.
상대는 젊은 감독 위르겐 클롭(J?rgen Klopp)이었다.
[오늘 경기는 두 젊은 감독의 전술 싸움을 보는 재미가 있겠습니다. 마흔도 되기 전에 1부 리그 클럽의 감독이 된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 감독들이 그러한 경우입니다.]
[토마스 돌 감독 같은 경우는 선수 시절부터 치면 벌써 7년째 함부르크 몸을 담고 있고, 위르겐 클롭 감독은 햇수로 무려 15년째 마인츠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두 감독. 그러나 구단의 역사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함부르크는 분데스리가가 출범한 이후 단 한 번도 2부 리그로 떨어진 적이 없는 반면, 마인츠 05는 지난 2004/05 시즌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1부 리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클롭 감독으로서는 감개무량한 순간이었겠죠. 선수 시절 못다 이룬 1부 리그의 꿈을 감독이 되어 이루게 되었으니까요. 이처럼 위대한 마인츠 맨이 팀을 이끌었기 때문일까요? 지난 시즌, 대다수의 전문가가 마인츠의 강등을 점쳤습니다만, 클롭 감독과 선수들은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1부 리그에 남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인츠 같은 경우는 선수들도 굉장히 젊은 편이죠? 필드에 올라온 선수 중에 서른이 넘은 선수는 골키퍼인 디모 바케(Dimo Wache) 선수뿐입니다. 그 외에는 거의 대부분 이십 대 중반의 나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선수 소개에 들어가 볼까요. 마인츠의 선발 명단입니다…….]
마인츠의 전술은 4-3-3으로 세 명의 공격수 중 왼쪽에 선 모하메드 지단이 가장 위협적인 선수였다. 그는 마인츠 같은 약팀에서 보기 힘든 뛰어난 테크니션이었다.
사정은 간단했다. 본래 지단의 소속 팀은 베르더 브레멘이었으나 미로슬라프 클로제, 이반 클라스니치 콤비에 출전이 힘들어지자 마인츠로 임대를 온 상황인 것이다.
[모하메드 지단 선수와 메디 마다비키아 선수의 싸움이 볼만하겠군요.]
[반면에 함부르크는 이번에도 동양인 듀오를 내세웠습니다.]
[지난 7라운드에서의 활약이 제법 짭짤했거든요. 그 기세를 이어가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오솔 선수의 제공권은 루시우조차 애를 먹을 정도로 가공할 수준이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인츠 05의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중앙 수비수인 니콜스 노베스키와 마누엘 프리드리히의 키가 제법 컸다. 둘 다 190이 넘어서 제공권 싸움을 해볼 만했고, 동갑내기인 덕분에 서로 호흡도 잘 맞았다.
“타카하라, 평소처럼 갑시다.”
“오케이. 그럼 중앙을 부탁해.”
체격이 밀리는 타카하라가 조금 밑으로 처졌다. 오솔이 포스트플레이를 전담하고 타카하라가 흔드는 식의 역할 분담은 두 사람이 같이 출전했을 때 제일 효과가 좋은 방식이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칠지 모르겠네.’
오솔은 타카하라의 뒤통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타카하라의 형편없는 마무리 실력만 생각하면 자꾸만 불안해졌으나, 그러한 마음을 차마 겉으로 내보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저번에 골을 넣었으니까 오늘은 좀 낫겠지? 후우. 제발 5개 중에 하나라도 받아먹었으면 좋겠는데.’
따끔한 말로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도 상대가 어느 정도 기운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저렇게 2년 넘게 슬럼프를 겪는 사람에게는 주변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겠어. 자기가 알아서 극복해야지. 프로 선수잖아.’
오솔은 지금 본인의 훈련을 소화하기에도 바빴다. 다른 사람의 플레이까지 이래라저래라 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 한마디에 고쳐졌으면 진작 바뀌었겠지.’
오솔이 보기에 타카하라의 부진은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 게 아니었다.
‘냉정한 말이지만 그냥 실력 부족이지.’
선후 관계가 잘못됐다. 심리적인 위축 때문에 실력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원래 실력이 부족해서 성적이 안 나왔고, 욕을 먹으니 압박감 때문에 안 그래도 부족한 실력이 더 안 나오는 것뿐이었다.
답이 없었다. 실력을 끌어올리든지 아니면 다른 팀이나 리그로 떠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수밖에.
‘뭐, 타카하라만 문제인 건 아니지.’
오솔이 느끼기에 함부르크의 공격진은 솔직히 수준 이하였다. 유일하게 제 몫을 하고 있는 바바레즈를 제외하면 도움이 되는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
나태한 에밀 음펜자, 열심히 해보지만 기량이 안 되는 나오히로 타카하라와 잔부상에 시달리느라 컨디션이 항상 엉망인 벤자민 라우트.
이들이 선보이는 플레이들은 도저히 분데스리가의, 그것도 우승에 도전하는 팀에 속한 공격수라고 할 수 없었다.
‘반 더 바르트가 빨리 돌아와야 해.’
미안한 말이었지만 바바레즈의 패스도 오솔이 바라는 타이밍보다는 느린 편이었다.
지난 슈투트가르트전에서 오솔은 몇 번이나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했으나, 스루패스가 조금씩 늦으면서 번번이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말았다. 기껏 주력을 올려놨더니 동료들이 적응을 못 한 것이다.
물론 이건 반 더 바르트가 뛰어난 것이지 바바레즈가 못났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바바레즈는 갑자기 포지션이 바뀌었음에도 평균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오솔은 경기 내내 답답하다고 느꼈다.
자신이 직접 승부를 결정지을 수 없다는 데에서 온 무기력함. 그것 때문이었다. 지난 7라운드에서는 운 좋게 코너킥 중 하나를 골로 연결할 수 있었지만, 그 외의 플레이는 전체적으로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주로 후방에서 길게 올라오는 공을 받아서 타카하라나 바바레즈에게 내주는 역할에 그쳤고, 직접 골을 노릴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오지 않았다.
파아앙!
“헤더!”
또다시 후방에서 공이 넘어왔다.
오솔은 습관처럼 자리를 잡고, 점프를 시도했다. 니콜스 노베스키가 옆에 달라붙어서 방해했지만 공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솔의 머리에 닿았다.
타다닷!
등 뒤로 타카하라의 뜀박질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뻥!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다시 후방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또 한 번의 공격 기회가 허무하게 지나간 것이다.
오솔은 욕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마음이 없다면 모를까 실력이 부족해서 안 되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사실은 본인이 제일 답답할 것이다.
한편 토마스 돌 감독은 팔짱을 낀 채 경기 내내 인상을 쓰고 있었다.
‘타카하라의 침투가 늦어.’
경기는 함부르크의 우세가 뚜렷했으나 그럼에도 골은 터질 줄을 몰랐다.
‘발이 빠른 공격수가 필요해. 아니면 오솔 대신 포스트플레이를 해줄 수 있는 선수가 있거나.’
원래라면 에밀 음펜자, 그리고 바바레즈가 해줘야 할 역할이었으나 당장은 대안이 없었다. 나머지 공격수들이 성과를 내주길 기대할 수밖에.
‘오솔은 잘하고 있어. 항상 한 명 이상의 수비수를 끌고 다니고, 동시에 경합에서 이기고 있으니까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는 활약이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틈으로 그나마 자유로운 타카하라가 무언가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타카하라는 매번 밋밋한 마무리 실력을 보여주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벤자민으로 교체할까?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야. 하아. 이거 큰일이네. 마인츠를 상대로도 이렇게 힘들다니.’
경기 진행이 한창이었음에도 돌 감독의 머릿속에는 겨울 이적 시장에서 데려올 선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삑!
전반전은 함부르크의 난타전으로 끝이 났고, 그러한 분위기는 후반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함부르크가 계속해서 공격권을 가져갑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 전술 싸움은 토마스 돌 감독의 승리라고 봐도 될까요?]
[그렇게 확정할 수도 없는 것이 마인츠는 사실상 강등권 팀이거든요. 전력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순히 전술에 의해 승패가 갈렸다고 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아직 0 대 0, 동점이기도 하고요.]
[결국 끝까지 두고 봐야 한다는 거로군요.]
마인츠의 선수들은 라인을 올리고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유지했다.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서 빠른 역습을 가져가려는 생각 같았다.
문제는 함부르크의 수비진이 마인츠의 압박에 당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발재간이 좋은 아투바와 마다비키아는 상대를 농락하듯 압박에서 벗어났고, 반 바이텐이나 볼라루즈는 전방으로 길게 차는 것으로 실수를 미연에 방지했다.
그렇게 찬 공은 오솔이 90% 이상의 확률로 따내고 있었으니 별로 손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나쁘지 않아.’
위르겐 클롭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압박의 강도를 조절할 것을 지시했다. 6 대 4 정도로 진행되는 경기 내용. 하지만 이렇게만 되어도 마인츠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라인을 올린 덕분에 가장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솔의 헤딩슛을 막았다. 그 외에 다른 공격은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양 팀 다 칼끝이 무딥니다. 유효 슈팅이 많지 않아요.]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마인츠가 득을 보는 셈입니다.]
[바이에른 뮌헨조차 꺾었던 함부르크인데 설마 마인츠에게 발목을 잡히나요?]
삑, 삑, 삐이- 익!
결국 경기는 무수한 찬스를 날려 버린 공격수들-타카하라와 라우트-덕분에 0 대 0으로 끝나고 말았다.
[오늘 경기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판정승이라고 봐야겠네요. 한참 약한 전력으로 무승부를 일궈냈습니다.]
[토마스 돌 감독으로서는 반 더 바르트 선수의 부재가 두고두고 아쉽겠습니다. 물론 이번 주말이 지나면 반 더 바르트 선수가 다시 팀에 합류하겠지만, 오늘 잃어버린 승점 2점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오솔은 레벨이 올랐다는 알람에도 표정을 풀지 못했다.
‘답답하네. 주전 경쟁이 쉬워진 건 좋은데, 팀원들이 하나같이 경기에 도움이 안 되니…….’
오솔이 상태창을 열었다. 지난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얻은 3포인트까지 포함해서 총 6개의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오솔은 드리블이나 개인기에 투자하고 싶은 욕망을 꾹 누르며 주력을 90까지 올렸다. 남은 1포인트는 순간 속도에 투자했다.
-주력 90(9%↓)
-순간 속도 71
‘좋아. 이제 최고 속도 하나만큼은 어디를 가더라도 뒤지지 않겠다.’
이제 반 더 바르트만 합류하면 다시 득점포를 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오솔의 활약은 조금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돌 감독은 주중에 열린 UEFA 컵 조별리그에서 오솔을 쉬게 했고, 주말에는 A매치 일정 때문에 리그 경기가 없었던 것이다.
협회는 오솔에게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시즌이 시작하고 근 두 달 만에 푹 쉴 수 있었다. 물론 빈말로도 기분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확, 져버려라!’
농담처럼 뱉은 투정.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아시아의 강호, 이란을 서울로 불러들였다가 2 대 1로 패배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