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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72화 (7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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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72화

14장 어디로 가고 싶어

리그 선두. 분데스리가의 공룡 FC 바이에른 뮌헨 격침. 2만 5천 리터의 맥주 파티까지. 6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끝낸 함부르크 SV의 분위기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뮌헨의 골키퍼 올리버 칸은 ‘함부르크는 벌써부터 마이스터 샬레를 들어 올렸다고 착각하고 있다’며 리그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그렇다고 한껏 오른 흥을 깨트릴 수는 없었다.

실제로 모르겐 포스트의 데니스 쿤츠는 ‘영원한 우승 후보 바이에른 뮌헨이 겁을 먹었다’며 함부르크의 전력이 우승에 도전해 볼 만하다는 칼럼을 게시했다.

“우리에게는 리그 최소 실점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짠물 수비가 있고, 분데스리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반 더 바르트도 있다. 여기에 뮌헨전에서 보였던 바바레즈-오솔-반 더 바르트의 콤비 플레이는 축구라기보다는 예술에 더 가까웠다.”

토마스 돌 감독은 칼럼을 다 읽고는 컴퓨터를 껐다. 이제 곧 약속 시간이었다.

“후우. 분위기는 좋은데 말이야.”

외부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으나 오히려 돌 감독의 얼굴에는 근심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상대가, 그리고 그의 목적이 영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감독님, 라시드 탐 씨가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라시드 탐은 에밀 음펜자의 에이전트였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다리를 꼬고 손깍지를 꼈다.

돌 감독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으나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선수가 아니라 에이전트가 왔다는 것에서 벌써 그들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볼까?’

“에밀이 원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재계약. 혹은 이적이죠.”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재계약 조건은 간단합니다. 주급은 4만 유로(약 5천만 원)에 최소 리그 20경기 선발 출전 보장. 그리고 득점 보너스 1만 5천 유로(약 2천만 원)입니다.”

“자네, 음펜자의 계약 기간이 아직 2년이나 남았다는 건 알고 있나?”

함부르크 입장에서는 굳이 이 타이밍에 계약을 연장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저런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는 더욱더.

‘반 더 바르트와 같은 주급으로도 모자라서 출전 보장까지 요구하다니. 이건 그냥 이적하겠다고 통보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에밀 음펜자는 지금 자신을 팀에서 최고의 선수로 대우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불가능하다는 건 감독도, 에이전트도, 그리고 선수 본인까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적 시장이 닫혔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죠.”

“역시 미리 입장을 정하고 왔었군.”

“서로 인식이 다른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솔직히 섭섭한 걸로 따지면 저희 쪽이 더 섭섭하죠.”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대신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건 최대한 늦춰주게.”

“글쎄요. 그래봐야 한 달입니다. 여기저기 발품을 팔다 보면 소문은 퍼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두 사람 다 서로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간단한 통보와 최소한의 예의만 당부할 뿐이었다.

“그럼 이만.”

라시드 탐이 떠나고 혼자 남은 돌 감독이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후우우.”

꾸구국 하는 가죽 시트 구겨지는 소리와 앓는 소리가 같이 났다. 토마스 돌 감독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감싸며 눈을 감았다.

이적 시장이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세 달. 이제 그때까지는 단 네 명의 공격수만 활용해서 경기를 끌어가야 했다.

물론 에밀 음펜자도 기용할 수는 있겠으나 완전히 마음을 떠난 선수가 얼마나 잘 뛰어줄지 솔직히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기존에 1순위 공격수였던 음펜자를 3순위로 밀어낸 상태였다. 솔직히 지금까지 성적만 놓고 보면 음펜자도 이러한 평가에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지. 바바레즈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쓰면 고작 세 명이야.’

두 경기뿐이지만 반 더 바르트가 부상으로 빠지게 생겼다. 문제는 현재 플레이메이커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반 더 바르트와 바바레즈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벤야민과 오솔, 타카하라 이 세 사람의 조합으로 공격진을 꾸려야 한다는 뜻인데…….’

오솔이 제법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었지만 벤야민과 타카하라는 아직도 제 몫을 못 해주고 있었다. 돌 감독은 바바레즈와 오솔을 놓고 남은 한 자리를 고민하다가 픽 웃고 말았다.

‘오솔을 데려올 때만 하더라도 이 선수가 주전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는데, 이제는 누가 그와 더 잘 어울릴지를 고민하고 있군. 재밌어, 축구. 정말 어찌 될지 모르는 판이야.’

반 더 바르트가 돌아오는 건 10월 둘째 주. 그 전까지 치르게 될 경기는 리그 7라운드와 8라운드 단 두 경기였다. 다행히 상대가 슈투트가르트와 마인츠 05로 비교적 약한 상대들이었으나 부실한 공격진을 보니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일단 슈투트가르트전은 오솔과 타카하라를 선발로 정하고, 마인츠전은…… 흠. 이건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군.”

동양인 듀오 같은 경우는 이미 DFB 포칼에서 찰떡궁합을 선보인 적 있었다. 돌 감독은 이들 듀오가 분데스리가 팀을 상대로도 통하는지 확인한 후에야 마인츠전의 명단을 짤 생각이었다.

* * *

“여기 맞아요?”

“몰라. 나도 처음 와보는데 어떻게 알겠어.”

같은 시각, 함부르크 시내.

두 동양인이 짐을 한 아름 들고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리그 7라운드 출전이 거의 확실시된 두 사람, 오솔과 타카하라였다.

둘은 쪽지를 들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근 30분 만에 겨우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타카하라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찾았다!”

“아오! 30분이나 걸렸네. 함부르크에서 2년이나 살아놓고, 어떻게 길을 저보다 몰라요?”

“경기장 외에는 별로 돌아다닐 일이 없었거든. 사람들 시선도 좀 신경 쓰이고.”

“왜요, 사인 요청이라도 받을까 봐요?”

“그랬으면 차라리 좋겠다. 대부분의 경우 잘 좀 하라고 말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거나 둘 중 하나야.”

프로 선수는 성적이 낮으면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팬들에게 인기가 많기로 유명한 분데스리가 같은 경우는 그런 압박이 훨씬 더 컸다.

오솔은 반성 모드에 들어간 타카하라를 무시하듯 지나치고 바로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집주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어서 와.”

“이렇게 걸어 다녀도 괜찮아요?”

“목발이 있으니까.”

반 더 바르트가 목발을 슬쩍 들어 올리더니 씩 웃었다. 바닥에서 살짝 뜬 발에는 흰색 붕대가 야무지게 묶여 있었는데, 부기가 심하지는 않았다.

“들어와.”

오늘 오솔과 타카하라가 초대를 받은 곳은 팀의 핵심 선수, 반 더 바르트의 집이었다. 그들은 선물을 한쪽에 놓고 반 더 바르트와 가볍게 포옹했다.

“발목은 좀 어때요?”

“다행히 심하게 다친 건 아니야. 살짝 삔 정도? 그런데 조금 늦었네?”

“인기 없는 누구 때문에 좀 헤맸어요.”

오솔은 타카하라에게 장난스러운 핀잔을 날리고 내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반 더 바르트의 집은 엘베강 하류가 내다보이는 근사한 저택이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강 위로 건너편 상가의 불빛이 흩뿌려졌다. 그 모습이 꼭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내 집이랑은 차원이 다른데?’

주변에 숲과 안개밖에 없는 오솔의 숙소와 비교하면 이곳은 궁전이나 다름없었다. 가만히 풍경을 보며 감탄하고 있으니 곧 안방에서 반 더 바르트의 아내가 나타났다.

“이쪽은 아내인 실비야. 실비, 이쪽은 오솔과 타카하라.”

“반가워요.”

실비는 모델답게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부부가 나란히 서자 선남선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앉아 있어요. 다리도 아픈 사람이 무슨 음식 준비예요?”

“그래도 당신 혼자 준비하게 둘 수는 없잖아.”

반 더 바르트는 생각보다 가정적인 남자였다. 그는 다리가 불편한 와중에도 아내를 졸졸 따라다니며 요리를 도왔다.

‘아직 신혼이라 그런가? 하긴, 결혼한 지 아직 100일도 안 됐다고 했지? 한창 깨를 볶을 시기겠지.’

오솔은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원래라면 자신도 전생에 가질 수 있었던, 그리고 가지고 싶었던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도 며칠만 지나면 성인이 되는데 이제는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해도 되지 않을까?’

오솔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지난 10년을 후회했고, 돌아와서 2년을 참았던 사랑을 마침내 완성하고자 마음먹었다.

‘겨울 휴식기에는 한 달 정도 정규 경기가 없으니까 그때 잠깐 한국에 갔다 와야겠다.’

그렇게 오솔이 프러포즈 구상을 하는 사이 저녁 준비가 끝이 났다. 나온 음식들은 뜻밖에도 독일 가정식들이었다. 알고 보니 실비의 어머니가 독일인이라 어렸을 때부터 독일 음식들을 많이 해 먹었단다.

“그래서 라파엘에게 더 고마워요. 저희 가족들은 다 독일에 있거든요. 라파엘이 함부르크행(行)을 결정해 준 덕분에 부모님도 자주 뵐 수 있고, 아주 좋아요.”

이건 반 더 바르트가 좀 특이한 경우였다. 축구 선수가 이적을 할 때 지금처럼 가족의 편의를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돈과 출전 보장, 유럽 대회 출전 가능 여부 등이 중요했고, 가정 문제는 보통 아내가 희생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평소에는 떨어져서 각자 일을 하다가 휴식기에만 같이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다.

“참, 듣기로는 타카하라 씨도 곧 결혼을 하신다면서요?”

“네. 겨울 휴식기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어요. 이미 양가(家)에선 이야기가 끝났죠.”

실비는 남편의 동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것도 여자 친구나 아내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오솔 선수는요?”

“저도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그 사람에게 제 마음을 알릴 생각이에요.”

“어머, 아직 열아홉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벌써 결혼을 생각하시는 거예요?”

“네. 확신이 있으니까요. 누가 채 가기 전에 제가 꽉 잡아야죠.”

“그건 좀 아쉽네요. 제 후배 중에 오솔 선수를 탐내는 애들이 꽤 많은데. 어때요? 관심이 있으면 소개해 드릴게요.”

실비는 과거의 오솔이었다면 살짝 흔들렸을 법한 소리를 하면서 살포시 웃었다. 오솔은 별다른 대꾸 없이 마주 웃는 것으로 사양의 뜻을 전했다.

“후후. 경기장에서도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더 멋진 사람이었네요.”

“흠흠. 한잔할까?”

분위기가 살짝 어색해지자 반 더 바르트가 잔을 들어 올렸다.

째앵~

와인잔이 찰랑거리고 달큼한 향이 입 안에 맴돌자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건 그렇고 오솔, 아직도 에이전트가 없다면서? 그거 진짜야?”

반 더 바르트는 괜히 와인잔을 흔들며 물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바로 꺼내기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오솔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샬케전이 끝나고 몇 명한테 연락이 오더니, 뮌헨전 다음 날에는 동시에 십여 곳에서 연락이 쏟아졌어요.”

오솔은 뮌헨전에서 루시우를 상대로 대등한 수준의 경합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발락과 루시우 두 사람의 압박에 당황하지 않고 패스를 성공시킨 것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장면이었다.

“계약은 했어?”

“아직이요. 아직까지는 제 마음에 차는 사람이 없네요.”

오솔의 노(No)라는 대답에 반 더 바르트는 더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한참을 더듬거리더니 결국 조심스럽게 부탁받은 바를 꺼냈다.

“내 에이전트가 너랑 한번 만나보고 싶다던데 어때, 생각 있어?”

“예? 누구요?”

“쇠렌 레르비라고 내 오랜 친군데, 너한테 관심이 생겼다고 하더라고.”

쇠렌 레르비(S?ren Lerby).

칠팔십 년대 아약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그때의 커넥션을 이용해서 라파엘 반 더 바르트와 베슬리 스네이더 등 아약스 출신 선수들의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의 에이전트라 이거지?’

머지않은 미래에 반 더 바르트와 스네이더는 각각 1,500만 유로와 2,700만 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나란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입성하게 된다.

즉, 다른 건 몰라도 쇠렌 레르비는 레알 마드리드의 보드진과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의 남자라는 것이다. 이 정도로 거물급 에이전트가 연락을 취해 온 것은 이번 생에 처음이었다.

오솔은 흥미가 돋는 걸 느꼈다. 그의 목표가 레알 마드리드는 아니었으나 한번 만나고는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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