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71화
와아아!
오솔, 바바레즈, 그리고 반 더 바르트. 순간적으로 펼쳐진 이 세 사람의 콤비네이션에 경기장이 뒤집어졌다. 정확히는 원정 팬들이 모여 있는 그 공간만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홈 팬들은 가만히 앉아서 뒤집어지는 속을 진정시켜야 했다.
“가, 감독님. 이건…….”
랄프 줌딕 수석 코치가 선수들의 세리머니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게다가 감독인 토마스 돌 역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군.”
본래 그들이 준비했던 전략은 두 명의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세움으로써 보다 확실하게 제공권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뻥축구 극대화 전술이다. 당연히 이처럼 세밀한 패스 작업과 콤비네이션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이랬던 전술이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오솔의 스피드가 위협적인 수준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힘과 제공권을 담당하는 반 바이텐도, 지능적인 커버와 빠른 반응 속도를 맡고 있는 볼라루즈도 각기 하나씩만 담당해서는 오솔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명의 수비수가 오솔 한 사람에게 몰리자 바바레즈는 평소보다 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공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순간적이지만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서로 역할과 위치를 수없이 바꿔가며 플레이한다.
말은 참 쉽다.
하지만 이를 실전으로 녹여내려면 웬만한 실력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경기가 끊겼을 때 서로의 위치를 바꾸는 스위칭 플레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전술이었다.
중계진 역시 이러한 사실을 짚어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투 타워 전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트릭이었네요.]
[네.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를 공격진에 두는 다소 모험적인 수였습니다.]
[보통 플레이메이커를 둘이나 쓰는 팀은 포지션이 다르거나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편입니다. 카카와 피를로, 사비와 이니에스타, 지단과 피구처럼 말이죠. 공격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는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안정적입니다. 한쪽에서는 막히더라도 다른 한쪽에서는 공격이 통할 수 있으니, 경기가 누구 한 사람의 컨디션에 좌우되지 않거든요.]
기세를 타기 시작한 함부르크는 팀워크가 흔들리지 않았다.
바바레즈에서 시작해서 오솔을 거쳐 반 더 바르트에게 향하는 공격이나 반대로 반 더 바르트에게서 시작하는 공격, 혹은 두 사람만 공을 주고받고 오솔은 미끼가 되는 등 수십 가지의 공격 조합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덕분에 뮌헨의 수비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언가 수를 써야 했다. 지금의 수비진으로는 방어에 한계가 있었다.
삑!
[반칙으로 끊어내는 발락! 카드를 하나 받습니다.]
[방금은 굉장히 유용한 반칙이었습니다. 비록 카드를 받긴 했지만 상대의 흐름을 한 차례 끊었거든요?]
[다시 시작되는 경기. 아, 발락의 위치가 방금 전보다 더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저 정도면 거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다름없는 위치인데요?]
[실제로 하그리브스와 같은 라인입니다. 마가트 감독이 일단은 웅크리기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보시면 측면 자원들이 중앙으로 많이 밀집해 있는 걸 알 수 있죠?]
해설의 말대로 뮌헨은 좌우 날개를 중앙으로 불러들인 상황이었다. 중원을 장악해서 상대의 공격 기회를 최대한 차단하려는 작전 같았다.
[말씀드리는 순간, 함부르크에서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오늘 결정적인 실수를 한 기 드멜 선수를 빼고 표트르 트로초프스키 선수가 들어오네요.]
[토마스 돌 감독의 담력이 대단한데요? 원정인데도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옵니다. 공격수를 늘려서 역전 골까지 넣겠다는 뜻 같죠?]
* * *
같은 시각, 여민주는 밤늦게까지 책을 붙잡고 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수능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54일.
촉박한 시간 때문에 남자 친구의 경기를 챙겨 볼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중계를 했으면 한두 경기 정도는 봤을 텐데. 아쉽다.’
한국에서 경기가 중계되는 분데스리가 팀은 차태민 선수가 뛰는 프랑크푸르트 한 곳뿐이었다. 오솔이 이적한 함부르크 경기는 아직까지 중계권을 산 채널이 없었다.
오솔이 비록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이 돼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아직도 성지훈보다 낮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가 이적한 팀은 독일에서 나름 강팀이라고 할 수 있는 함부르크 SV였다.
경기에 얼마나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당연히 방송사 입장에서는 무턱대고 중계권을 살 수 없었다.
‘지금쯤이면 경기가 거의 끝났겠는데?’
그녀는 기출문제 하나를 완전히 헤집어놓고 슬쩍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능숙한 솜씨로 함부르크 SV의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독일 축구를 실시간으로 전하는 곳이 없었다. 조금 더 빠른 소식을 접하려면 현지 기사나 웹페이지를 뒤져야 했다.
알 수 없는 독일어로 가득한 공간이었으나 메인 페이지에 걸린 함부르크와 뮌헨의 엠블럼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1 대 1이잖아? 누가 넣었지?’
여민주는 오솔의 이름이 뜨길 기대하며 득점 현황을 살폈다.
“골은 아니네. 우와! 그래도 어시스트는 솔이가 했잖아?”
여민주는 한참을 ‘우와, 우와’거리더니 해당 장면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저장했다.
“이걸로 리그 4경기 2골 3도움이네? 헤헤. 솔이도 열심히 하고 있구나. 뮌헨을 상대로 공격 포인트도 기록하고.”
오솔이 출전한 네 경기 중 선발로 출전한 건 고작 두 경기였다. 이는 프로에 막 데뷔한 신인이 보였다고는 믿기 힘든 성적이었다. 그래선지 현지에서는 조심스럽게 전반기 신인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인상 경쟁자로는 지난 8월 6일에 데뷔해서 분데스리가 최연소(16세 334일) 출전 기록을 갈아치운 누리 사힌(도르트문트 소속)이 있었다.
“좋아! 나도 파이팅해야겠다! 그래야 수능 끝나고 솔이를 보러 가지.”
그녀가 괜히 공부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부모님께 수능을 잘 치르면 독일에 다녀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상황이었다.
“힘내, 솔아. 다치지 말고.”
여민주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다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 * *
한편 후반전 중반을 넘어선 함부르크 대 뮌헨의 경기.
오솔은 뜻밖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오솔 선수의 주위를 둘러싸는 발락과 루시우! 두 선수의 압박이 엄청납니다!]
[마가트 감독이 상대 공격진의 약점을 제대로 꿰뚫었네요. 경험이 없고 투박한 오솔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습니다.]
[함부르크로서는 난감한 상황이겠네요. 오솔 선수는 프로에 데뷔한 지 고작 40일째입니다. 이렇게 수준 높은 압박은 경험한 적이 없어요!]
‘응. 아니야. 그런 경험 있어. 그것도 많이.’
오솔이 해설을 들었다면 했을 법한 생각이었다.
[어라? 오, 오솔. 공을 뺏기지 않습니다.]
오솔은 두 사람의 힘을 온몸으로 견디며 공을 지켜냈다. 발락의 발이 공을 건드리기 전에 발등으로 막아내고, 루시우가 밀면 발락에게 기대며 균형을 잡았다.
아마 3~4초를 그렇게 버티라고 했으면 오솔로서도 힘들었을 것이다. 발락과 루시우의 압박은 청소년 대회에서 만난 녀석들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이제 오솔에게는 만만치 않은 실력의 동료들이 있었다. 버티는 건 1초면 충분했다.
[반 더 바르트가 공을 받으러 옵니다! 넘어지면서까지 패스에 성공하는 오솔!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반칙이지만 경기는 계속 진행됩니다. 빠르게 따라붙는 하그리브스!]
삐이익!
심판의 호각 소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반 더 바르트와 하그리브스, 두 선수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공을 잡고 가볍게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던 반 더 바르트를 하그리브스가 깊은 태클로 넘어뜨린 것이다. 둘 다 충격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카드가 나오겠는데요? 색깔이 어떻게 될지 의문입니다만, 위험한 태클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 지금 카드가 중요한 게 아닌데요? 두 선수 다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캐스터의 말대로 반 더 바르트는 발목을 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오언 하그리브스도 같은 부위를 잡고 엎드려 있었다.
‘지금 라파엘이 나가면 안 되는데.’
팀이 막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역전까지 딱 한 걸음만 남았는데 여기서 반 더 바르트가 빠지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다행히 반 더 바르트 선수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조금 쩔뚝거리지만 걸을 수는 있는 모양입니다. 걸어서 라인 밖으로 나가는 반 더 바르트.]
[토마스 돌 감독이 교체를 서두르고 있네요. 반 더 바르트 선수를 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감독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경기보다는 반 더 바르트 선수의 부상 여부에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격의 핵심인 반 더 바르트가 나가는 상황. 뮌헨으로서는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오언 하그리브스만 멀쩡했다면 말이다.
[하그리브스 선수. 결국 들것에 실려서 나갑니다.]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이렇게 되면 뮌헨도 교체를 해야겠죠?]
[그렇습니다. 마르틴 데미첼리스 선수가 준비를 하고 있네요.]
이때까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 부상이 오언 하그리브스 부상사(史)의 시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찰까?”
한편 반 더 바르트가 빠진 함부르크는 이번 프리킥 찬스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의견을 나누느라 바빴다.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으로 살짝 벗어난 위치에 놓인 공. 왼발의 달인 반 더 바르트가 참 좋아할 만한 위치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축구화를 벗고 치료를 받는 상황이었다. 직접 슈팅은 힘들어 보였다. 그때 오솔이 입을 열었다.
“이건 어때요?”
오솔의 작전을 들은 선수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즉석에서 짠 작전이긴 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제법 유용해 보였다.
“좋아. 그렇게 가자.”
공은 한때나마 우측 미드필더로 뛰었던 메디 마다비키아가 차기로 했다.
파앙!
마다비키아의 발을 떠난 공이 수비벽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갔다. 크게 감긴 공도 아니어서 얼핏 실축인가 싶은 킥이었다.
그때 중앙에 있던 오솔이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그는 적당한 높이로 오는 공을 머리로 받아 중앙으로 흘려보냈고, 그렇게 굴러온 공은 역시나 중앙에서 튀어나오고 있던 다비드 야롤림의 발에 얹어졌다.
뻥!
[고오올! 골이 들어갑니다! 2 대 1로 역전에 성공하는 함부르크! 올리버 칸은 반응조차 못했습니다.]
[워낙에 공이 빠르고, 또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쏘아졌습니다. 전성기의 칸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막기 힘들죠.]
올해의 최우수 골키퍼로 세 번이나 뽑혔던 올리버 칸이었지만, 아무리 거미손 골키퍼라 할지라도 흐르는 세월까지 잡을 수는 없었다.
비록 골키퍼로서는 아직도 팔팔한 서른여섯의 나이였으나 문자 그대로 날아다녔던 전성기에 비하면 반응 속도가 많이 느려진 상태였다.
[이제는 바이에른 뮌헨 역시 수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알리안츠 아레나 아닙니까?]
해설자의 예상대로 바이에른 뮌헨은 총력전을 기울였다. 본래 넣으려고 했던 데미첼리스 대신 공격수인 로케 산타크루즈를 넣고, 4-4-2 플랫으로 전술을 변환한 것이다.
물론 함부르크도 바바레즈를 빼고 미드필더를 보강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전방에는 오솔 혼자 서 있고 나머지 열 명의 플레이어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단단하게 뭉쳤다.
삑, 삑, 삐이익-!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하고, 반대쪽에선 쉼 없이 막아내는 상황이 20여 분간 지속된 끝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경기가 끝났습니다! 함부르크가 바이에른 뮌헨의 15연승을 무너뜨리고, 소중한 1승을 챙겨 갑니다!]
[동시에 함부르크가 리그 1위로 올라섰습니다. 승점 차이가 크진 않지만 굉장히 긍정적인 시작이죠?]
[아, 방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반 더 바르트 선수의 부상도 그렇게 심하지 않답니다. 짧으면 일주일, 늦어도 이 주가 지나기 전에는 돌아온다는 소식입니다.]
[이제 함부르크 팬들은 마음 놓고 맥주를 들이켜도 되겠군요!]
이날 함부르크의 팬들은 비트코르거에서 내건 현상금 맥주 1만 리터에, 함부르크의 스폰서인 호르스턴의 맥주 1만 5천 리터를 더해 총 2만 5천 리터의 맥주를 받아냈다. 당연히 현장은 축제의 도가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