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70화
[뮌헨의 선취 골! 정말 예술적인 골이 들어갔습니다.]
중계진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만큼 측면에서 날아오는 공을 달리는 와중에 발리로 때리는 모습은 다시 봐도 감탄이 나왔다. 아니, 느린 화면으로 봤더니 한층 짜릿했다.
[선취 골의 주인공은 제 호베르투입니다!]
[웬만한 발재간으로는 시도조차 못 할 슈팅이었는데, 그걸 성공시키네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꾸준한 몸 관리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어요. 올해로 서른한 살인데도 쇄도하는 속도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자기 관리를 잘하기로 유명한 선수죠. 프로로 데뷔한 후에는 단 한 번도 술이나 탄산, 심지어 패스트푸드에도 손을 댄 적 없다고 하니, 사실상 수도승처럼 산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도승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게 제 호베르투는 어쩔 때는 자발적으로 아내와도 떨어져 지낼 정도로 축구에 올인했다.
‘난 저렇게는 못 살아.’
오솔은 아무리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저 정도면 ‘축구와 결혼했다’는 표현을 뛰어넘어 아예 축구라는 이름의 종교에 귀의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저나 마가트 감독의 노림수가 제대로 적용한 것 같은데요? 전술에 변화를 주자마자 골이 들어갑니다.]
[전반전이 동일한 전술로 정면 대결을 했다면, 후반전은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함부르크는 전술 특성상 측면 미드필더가 없다. 그래서 측면을 활용한 공격은 물론이고 측면 수비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바이에른 뮌헨이 다른 분데스리가 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측면 자원을 보유한 팀이라는 데 있었다.
오른쪽에는 돌파가 위력적인 살리하미지치와 크로스가 뛰어난 윌리 사뇰이 있고, 반대쪽에는 측면과 중앙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제 호베르투와 돌파와 크로스, 중거리 슛까지 다 뛰어난 필립 람이 있었다.
이처럼 월드 클래스 윙어와 풀백이 같이 있는 팀을 상대로 4-3-1-2를 쓰려면 기계와 같은 정교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아쉽게도 방금 함부르크는 그게 안 됐다.
‘기 드멜의 커버가 너무 늦었어.’
선수들을 독려하면서도 토마스 돌 감독의 이맛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기 드멜은 이번 시즌 새롭게 팀에 합류한 선수로 수비력은 물론이고 전술 이해도도 뛰어나서 하프라인 밑이라면 어느 위치라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열 달이라는 긴 시간을 한정된 인원으로 끌고 가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는 팀에 반드시 필요한 유형의 선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의 다재다능함이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기 드멜이 전술을 익힌 시간은 고작 2개월. 그는 수비진 전역을 뛸 수 있었던 탓에 각각의 역할을 모두 배우는 중이었다. 그래서 상대의 급작스러운 전술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방금 같은 경우는 중앙은 커버 올 공격수에게 맡기고 측면을 도와주러 갔어야 했다.
‘전반전 내내 슈바인슈타이거만 마크한 탓이야.’
엄밀하게 따지면 감독 역시 잘못을 피할 수 없었다. 중간 휴식 시간에 상대의 전술 변화를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설마 이렇게 일찍 교체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후우. 수비를 보강한다고 일부러 트로초프스키를 뺐건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실점의 빌미가 되고 말았구나.’
이래서 감독이 어려웠다. 우리 팀의 전술과 상대 팀의 전술, 그리고 선수들의 정신적, 신체적인 면까지 고려할 게 너무 많았다.
‘후반전 중반까지는 0 대 0으로 끌고 갔으면 했는데, 할 수 없지.’
토마스 돌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오솔! 준비해라!”
내내 구상해 왔던 기습적인 투 타워 전술. 그것을 지금 꺼내기로.
* * *
‘오늘은 교체가 생각보다 빠른데?’
아직 후반전 10분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
오솔은 경기를 지켜보며 천천히 몸을 풀었다. 돌 감독은 5분 후에 교체할 생각이라고 말했고, 5분이면 준비를 끝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 혼자만 준비하는 건 아니었다. 상대를 교란시키기 위해 벤자민 라우트나 표트르 트로초프스키 같은 공격 자원들도 옆에서 같이 뛰었다.
“뮌헨이라고 쫄 것 없어.”
“그래. 너는 다니엘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잖아. 루시우나 이스마엘이 아무리 힘이 좋아도 설마 다니엘만 하겠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벤치에 있는 선수들도 같았다. 그래서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오솔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했다. 혹시나 과도한 긴장으로 몸이 굳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걱정이 무색하게도, 오솔은 이미 긴장을 받아들이는 단계를 넘어 즐기는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당연하죠. 제가 밀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오솔은 담담히 각오를 밝히고 터치라인으로 다가갔다. 심판이 들어 올린 번호판에는 오솔을 뜻하는 19번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양이 있으면 음이 있듯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었다. 번호판에는 19번 외에도 에밀 음펜자를 뜻하는 9번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후반 10분.
굉장히 이른 시간에 에밀 음펜자가 빠지게 되었다. 그는 교체로 들어오며 감독의 악수를 무시하듯 지나쳤고, 벤치에 앉은 후에도 표정이 계속 좋지 않았다.
‘이젠 끝이야.’
이번 교체로 에밀 음펜자는 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술적인 희생에 득점력이 떨어져서 기분이 안 좋았는데, 가장 중요한 시합이라고 할 수 있는 뮌헨전에서 제대로 된 기회도 받기 전에 교체되고 말았다. 그것도 이제 막 팀에 들어온 신입생에게 밀려서.
등번호 9번, 팀의 첫 번째 스트라이커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상 더는 함부르크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한편 오솔은 땀 냄새가 듬뿍 나는 루시우에게 등을 대고 있었다.
‘이 녀석은 발도 제법 빠르지 않았나?’
오솔은 전생에 딱 한 번 루시우를 상대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루시우는 서른이 넘은 나이였는데도 속도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었다.
현재 루시우의 나이는 만 27살. 중앙 수비수로서는 아직도 한창때였다. 주력은 물론이고 힘이나 반응 속도도 전생보다 뛰어날 게 분명했다.
반 바이텐보다 키는 작지만 속도라는 측면은 월등한 상대였다.
‘그래도 한 번은 흔들어봐야지.’
오솔은 스루패스를 받기 위해 조금씩 자세를 바꾸고 걸음을 옮겼다. 타이밍만 나오면 언제든지 수비의 틈에 파고들 작정이었다.
툭. 툭!
‘노련한데?’
오솔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자꾸만 등 뒤에서 손과 어깨 등이 튀어나와 몸에 닿았다.
루시우의 바디 체크였다.
수비수는 항상 공과 선수를 같이 체크해야 했다. 둘 중 하나라도 놓치면 곧바로 실점 위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반면 공격수들은 항상 수비의 눈을 피해 그들의 뒤로 돌아가고자 한다.
공격수와 수비수는 마치 꼬리잡기를 하듯이 계속 상대의 뒤를 점하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바디 체크였다. 눈은 공을 좇더라도 신체를 이용하면 계속해서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체크할 수 있었다.
‘타이밍이 나올 때마다 건드려 주는군.’
네 속셈을 다 알고 있으니 감히 침투할 엄두도 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기를 5분, 오솔은 침투 기회가 왔음에도 등 뒤로 신호가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날 놓친 건가?’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오솔은 곧장 루시우의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공은 반드시 온다. 반 더 바르트라면 최적의 타이밍에 패스를 넣어줄 것이다.
파아앙!
과연 별다른 신호를 보내지 않았음에도 스루패스가 날아왔다. 상대의 수비진 틈을 간신히 뚫고 오솔의 발끝에 겨우 닿을 법한 아주 날카로운 패스가.
촤르륵!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중간에 잘려 나가고 말았다. 범인은 루시우였다. 그가 슬라이딩 태클로 반 더 바르트의 패스를 중간에 커트해 낸 것이다.
‘젠장! 속임수였구나!’
상대의 공격을 예상해서 막아내는 수비 방법. 여민국이 어설프게 썼던 이 방법을 루시우는 프로 레벨에서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전에 말했듯이 이런 식의 수비는 웬만큼 지능적이지 않은 한 시도하기 힘들었다.
‘머리도 몸처럼 빠릿빠릿하다 이거지?’
페레이라 루시우. 정말이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공을 커트한 루시우. 그대로 사뇰에게 건네줍니다. 역시 노련하네요.]
[노련하고 빠르죠. 동시에 영리하고요.]
[역시 바이에른 뮌헨의 철벽답습니다.]
[토마스 돌 감독이 기습적인 투 타워 전술을 꺼내 들었는데, 생각보다 효과를 못 내는 것 같죠? 다행히 오솔 선수가 헤딩 경합은 반반씩 가져가 주고 있는데, 라인 브레이킹은 루시우의 예측력과 빠른 반응 속도 때문에 전혀 통하질 않고 있습니다.]
에이스인 반 더 바르트가 막히고, 비장의 무기인 오솔마저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토마스 돌 감독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 거라 확신하는 사람처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상대 선수들이 투 타워 전술에 익숙해진 순간, 돌 감독은 마침내 바바레즈에게 신호를 보냈다. 지금이 바로 비장의 한 수를 꺼내 들 타이밍이었다.
“부탁한다, 오솔.”
“걱정 말고 내려가세요. 전 여기, 골대랑 가까운 곳에 있는 게 더 좋으니까요.”
세르게이 바바레즈는 오솔에게 중앙을 내주고 한 칸 밑으로 내려갔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함부르크의 포메이션이 4-3-2-1처럼 변했다.
“라파엘!”
반 더 바르트의 패스가 바바레즈에게 향했다. 지금 수비와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 2.5선을 방어하는 건 오언 하그리브스 단 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그가 부지런히 뛴다 해도 두 사람을 동시에 마크할 수는 없었다.
[바바레즈! 포스트플레이를 버리고 섀도 스트라이커처럼 뛰기 시작합니다!]
[포스트플레이라면 오솔 선수가 훨씬 더 잘하거든요!]
바바레즈는 9번과 10번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다. 최전선에서의 포스트플레이도 나쁘지 않았고, 1.5선에서 베르캄프처럼 움직이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둘 다 압도적으로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때때로 이런 다재다능함은 압도적인 하나의 재능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바바레즈의 돌파…… 아, 아닙니다! 오솔에게 패스, 오솔 선수는 다시 논스톱으로 반 더 바르트에게! 아, 노마크예요! 하그리브스는 바바레즈에게 붙어 있습니다!]
공격의 시작 단계에서는 바바레즈와 반 더 바르트, 이 두 플레이메이커가 틈을 만들고, 그러다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둘이 10번과 9번을 번갈아가며 상대의 수비진을 위협한다.
[반 더 바르트 선수는 미들라이커라고 불릴 정도로 득점력이 좋죠. 말하자면 전통적인 10번과 가짜 10번을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그런데 함부르크에는 그런 선수가 한 명 더 있었어요. 바로 9번과 가짜 9번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세르게이 바바레즈 선수죠!]
이는 서로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공격이 꼬여 버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전술이었다. 최정상급 팀이 아닌 이상 시도하기 힘든 공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바레즈의 경험과 반 더 바르트의 센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마크맨을 찾지 못해 허우적대는 뮌헨의 수비진!]
[틈이 너무 많아요!]
반 더 바르트가 공을 잡고 프리가 되자 내내 오솔에게만 집중하던 루시우 역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위치에 따라 중앙 수비수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마크하러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반 더 바르트의 패스! 아! 루시우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오솔에게 향하는 스루패스!]
[이스마엘 선수는 늦어요! 람 선수가 재빨리 따라붙었지만, 오솔 선수의 돌진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솔의 슈우우…… 패, 패스입니다!]
오솔의 발을 떠난 공은 노마크로 쇄도하고 있던 바바레즈의 발에 걸렸다.
철썩!
거미손 올리버 칸의 거미줄이 뻥 뚫리고 말았다.
[1 대 1로 따라잡는 함부르크! 그리고 세르게이 바바레즈입니다!]
[이러다가 오늘 진짜로 맥주 파티를 할 수도 있겠는데요?]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아니, 기세만큼은 함부르크가 완전히 가져간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