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9화
[미하엘 발락! 중거리 슈웃!]
때애앵!
발락의 슈팅은 스테판 왓쳐의 손에 맞은 후 골대를 때리고 넘어갔다.
[오래간만에 스테판 왓쳐의 선방이 나왔습니다!]
[방금은 아주 잘 막았습니다. 경기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나온 슛이라 반응하기 힘들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아직 공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너킥을 차러 가는 제 호베르투!]
[뮌헨 같은 경우는 키가 큰 선수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당장 발락 선수만 하더라도 코너킥에서 득점 비율이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로이 마카이와 미하엘 발락, 루시우, 이스마엘 등은 거의 190㎝에 육박하는 키를 지녔고, 그 외에도 뮌헨에는 180을 넘는 선수들이 즐비했다.
코너킥 공격은 반 바이텐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나, 수비를 할 때는 상대의 장신 선수마다 적절히 마크맨을 붙여줄 필요가 있었다.
함부르크는 중앙 수비수인 볼라루즈가 비교적 작은 편이었기에 그 공백을 대신 메워줄 선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오늘 리그 경기에 처음으로 선발 출전을 한 기 드멜 선수가 꽤 큽니다. 키가 188㎝죠?]
[티모테 아투바 선수가 측면 수비수임에도 190㎝가 넘는다는 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 호베르투, 도움닫기를 합니다. 자, 올립니다!]
[중앙에서의 경합이 치열하죠? 어디로 갑니까? 발락? 발락!]
최근 들어 반 더 바르트가 분데스리가의 새로운 미들라이커-골 넣는 미드필더-로 각광을 받는 상황이지만, 원래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미들라이커는 발락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발락!’이라는 말이 나올 법한 장면이 연출됐다. 마크맨인 기 드멜을 상대로 묵직한 몸싸움으로 자리를 선점하더니, 누가 위에서 잡아당긴 것처럼 높이 뛰어오른 것이다.
[발락의 헤더!]
공은 정확히 이마의 한가운데에 와서 맞았다.
발락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틀어 공의 진로를 정했다. 목표는 가까운 쪽 골대 구석이었다.
공은 모두가 들어갔다고 여길 만큼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금방이라도 환호성을 지르려고 다리에 힘을 주는 뮌헨의 팬들과 충격으로 벌어지는 입을 막는 함부르크 팬들.
그들의 희비(喜悲)를 가른 것은 시즌 시작 전부터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스테판 왓쳐의 기적적인 선방이었다.
공은 골키퍼가 본능적으로 뻗은 다리에 맞은 후 하늘 높이 튀어 올랐고, 스테판 왓쳐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눌 틈도 없이 뛰쳐나가 펀칭을 시도했다.
[스테판 왓쳐! 이걸 막아냅니다!]
[방금은 한 골 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선방이었죠? 공이 근처로 날아와서 막기 수월한 면도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반응 속도가 아주 좋았습니다.]
[지난 경기에서 실점한 이후 감독에게 한 소리 제대로 들은 걸까요? 오늘은 시작부터 엄청난 선방을 연이어 보여줍니다!]
[반면 발락 선수 입장에서는 아쉽겠네요. 두 번의 기회 모두 그가 만들어낸 것이었는데 하나도 넣질 못했습니다.]
초반의 위기는 골키퍼의 선방으로 겨우 넘길 수 있었다.
스테판 왓쳐는 거칠게 포효하며 손뼉을 쳤다. 반 바이텐과 볼라루즈 등, 수비수들이 그에게 몰려와 마주 소리를 질렀다. 억지로라도 집중력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이었다. 덕분에 계속되는 공격도 무리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라파엘 비키는 미하엘 발락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었고, 반 더 바르트도 오언 하그리브스를 만나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05년이면 아직은 하그리브스가 유리몸이 되기 전이었고, 부상이 없는 하그리브스는 월드 클래스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늘 반 더 바르트 선수가 맥을 못 추네요. 하그리브스의 태클에 또 넘어지고 맙니다. 전반전에만 벌써 세 번째예요.]
[왜 카드를 주지 않느냐고 어필해 보지만 판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애꿎은 땅만 내려치는 반 더 바르트.]
함부르크는 전반전 내내 수세에 몰렸다. 견고한 4백 라인과 골키퍼의 선방으로 버티고는 있었으나 경기는 일방적인 흐름을 타고 있었다.
[경기는 순조롭게 흘러가지만 펠릭스 마가트 감독의 표정은 밝지가 않습니다.]
[결정적인 찬스에서 계속 득점에 실패하고 있거든요. 특히나 최전방의 로이 마카이 선수가 많이 아쉽습니다. 좋은 찬스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 모두 놓치고 말았거든요.]
[비단 오늘 경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번 시즌 마카이 선수의 득점 기록은 고작 한 골. 이는 뮌헨에 소속된 공격수가 보인 성적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초라한 수치입니다.]
[마가트 감독의 고민이 깊겠군요.]
[그래도 토마스 돌 감독보다는 나을 겁니다. 함부르크의 공격진은 서른넷의 노장, 세르게이 바바레즈와 이제 곧 19살이 되는 오솔 선수를 제외하면 전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니까요.]
중계가 이어지는 사이, 반 더 바르트가 한 번 더 바닥을 굴렀다.
토마스 돌 감독은 터치라인 끝까지 다가서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어째서 카드를 주지 않는 것인지 강하게 어필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음 반칙에서 카드가 나올 확률이 올라간다. 설혹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에게 카드를 의식하게 해서 거친 태클을 방지할 수도 있었다.
[하하. 마가트 감독이 검지를 들어 좌우로 흔들어 보입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뜻이겠죠. 오늘 감독들의 신경전도 대단한데요?]
[성향이 비슷한 감독들이라 더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석의 같은 극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습니까?]
두 감독은 규율을 강조하고 개인보다는 팀의 조직력을 다지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나이는 마가트 쪽이 13살이나 더 많았고, 출신도 서독과 동독으로 서로 달랐다.
특히나 마가트 감독 같은 경우에는 전후, 그리고 분단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서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선지 다른 감독들에 비해 유난히 규율과 기강을 중시했고, 비교적 낡은 축구관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력, 투혼을 강조하는 타입이었다.
게다가 성격이 독선적인 데다가 감독의 권위를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서 선수들과 구단 운영진은 물론이고 언론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독재자형 감독인 것이다. 이러한 지도 스타일은 타고난 성격은 물론이고, 그의 선수 시절 커리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펠릭스 마가트 감독은 선수 시절 알아주는 스타플레이어였다. 그것도 다른 어디도 아닌, 함부르크 SV에서.
그는 1976/77 시즌 함부르크로 이적을 와서 10년간 팀의 주축 선수로 활동했고, 이 기간 동안 분데스리가 3회 우승을 하고 유러피언 컵, UEFA 컵 위너스 컵에서 1회씩 우승을 차지했었다.
함부르크의 올드팬들 입장에서는 얼굴만 봐도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침 화면에 마가트 감독의 얼굴이 잡혔다.
우우~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함부르크 팬들의 환호를 받았던 마가트 감독인데요. 정작 시합에 들어가니 야유가 나오네요.]
[함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 중의 레전드였으니 반가울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팬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의 영광보다는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영광 아니겠습니까?]
중계진의 말대로 팬들이 바라는 건 현재의 승리였다.
토마스 돌 감독은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터치라인을 따라 걸으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FC 바이에른 뮌헨의 홈경기였다. 호의적이지 않은 관중들과 미묘하게 불리한 판정을 이겨내려면 우습게도 구닥다리나 다름없는 정신주의를 꺼내 들어야 했다.
“더 붙어줘! 절대 밀리지 마! 카드 하나 정도는 내준다는 느낌으로 더 거칠게 밀어붙이라고!”
덕분에 선수들의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라파엘 비키는 발락에게 아득바득 달려들었고, 상황은 다른 미드필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야롤림! 제 호베르투의 공을 뺏습니다! 그대로 전방으로 깊숙이 찔러주는 야롤림. 아! 그러나 올리버 칸 선수가 적절히 나와 걷어냅니다.]
[방금은 패스가 조금 길었습니다만, 함부르크의 중원이 살아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전반전 종료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양 팀의 중원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함부르크가 이득을 본 셈이죠.]
양 팀 선수들의 주급은 대략적으로 두 배, 많게는 세 배까지 차이가 났다.
함부르크 내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반 더 바르트의 주급이 고작 4만 유로-약 5천2백만 원-인 반면, 뮌헨의 최고 연봉자는 주마다 10만 유로-1억 3천만 원-씩 챙기고 있었다.
이대로 경기가 팽팽하게 흘러가면 함부르크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로이! 전방에서 보다 폭넓게 움직이란 말이야!”
마침내 마가트 감독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전방에서 골도 넣지 못하고, 활동량도 부족한 로이 마카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로이 마카이는 본래도 활동량이 적은 편이었는데 올해로 서른이 되면서 컨디션 조절에도 난항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감독에게 지적을 듣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말 몇 마디 듣는다고 플레이가 달라질 리 있겠는가. 로이 마카이는 여전히 움직임이 굼떴고, 덕분에 좋은 찬스를 서너 번이나 더 놓치고 말았다.
[오늘 마카이의 움직임이 좋지 않습니다. 컨디션 문제인지 아니면 단순히 나이 탓인지 전성기에 보여줬던 스피드가 안 나오고 있어요.]
[네.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은 여전하지만 딱 한 걸음씩 늦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뛰어난 위치 선정 능력과 골 결정력에도 불구하고 그걸 발산할 기회 자체를 잡지 못하고 있어요.]
로이 마카이의 별명은 유령(Das Phantom)이었다. 그만큼 어느 순간 툭 튀어나와 골을 넣는 장면이 많았다는 것이고, 위치 선정 능력과 예측력, 그리고 골 결정력이 두루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기회 포착 능력이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최근에 함부르크에도 비슷한 유형의 선수가 등장하지 않았었나요?]
[오솔 선수 말이군요.]
[맞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샬케 04전 득점을 보고 많은 분들이 로이 마카이 선수를 떠올렸었잖아요.]
[귄터 네처(Gunter Netzer)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운 ‘유령’의 등장이었죠.]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패스 마스터로 뽑히는 레전드, 귄터 네처는 오솔의 플레이를 보고 타고난 골잡이라는 말과 함께 소감을 남겼다.
‘그가 오늘 보여준 플레이가 요행이 아니었다면, 함부르크에 새로운 유령이 등장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도 열 살이나 더 어린’이라고.
패스의 길을 볼 수 있는 이 전설적인 선수는 ‘자신이 보았던 길’을 향해 달려드는 오솔의 모습에서 오랜만에 필드 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후보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두 유령이 붙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그러나 두 사람이 같이 경기장에 서게 되는 일은 없었다. 후반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마가트 감독이 마카이를 빼고 하산 살리하미지치를 넣은 것이다.
‘이러면 포메이션이 어떻게 되는 거지?’
토마스 돌 감독은 상대 선수들의 위치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제 호베르투가 왼쪽으로 크게 벌리고, 하산 살리하미지치는 오른쪽에 섰다.
두 사람이 양쪽 날개로 뛰려는 것이 분명했다. 측면이 취약한 함부르크로서는 상당히 위협적인 변화였다.
그렇다고 중원이 밀리는 것도 아니었다. 공격수만 한 사람 줄어든 것이기에 여전히 중원에는 발락과 슈바인슈타이거, 그리고 하그리브스가 서 있었다.
하그리브스는 지금까지처럼 반 더 바르트를 따라다녔고, 발락은 조금 밑으로 내려와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전반전에 공격의 중심이 발락이었다면, 후반전에는 좌우 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중앙에서의 공격 가담은 보다 젊고 빠른 슈바인슈타이거가 전담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곧바로 효과를 보였다.
[살라하미지치의 돌파! 아투바가 급히 따라붙지만 섣불리 발을 뻗지 못합니다. 살라하미지치도 무리하지 않고 공을 뒤로 뺍니다. 올라와서 공을 받는 사뇰. 아! 아니네요. 바로 공을 올립니다.]
[크로스! 아, 조금 기나요?]
[아니에요. 반대편에 제 호베르투! 발리 슈우웃!]
분명 아무도 없던 공간이었는데, 돌아보니 어느새 제 호베르투가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뻐어엉!
와아아아!
어느 누가 와도 막을 수 없는 골이 들어갔다.
1 대 0.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뮌헨이 앞서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