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8화
삑, 삑, 삐이익!
[경기가 끝이 납니다. 오늘 함부르크가 귀중한 승리로 3점을 가져갑니다.]
[샬케 04로서는 아쉽게 됐습니다. 최선을 다해봤으나 반 더 바르트 선수의 압도적인 퍼포먼스 앞에 무릎을 꿇고 마네요.]
[이제 함부르크는 리그 선두로 올라섰죠?]
[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베르더 브레멘과 동률을 이룬 상황입니다. 반면 샬케 04는 1패를 적립하면서 6위로 떨어집니다.]
오솔과 선수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서포터스석으로 향하자 팬들에게서 환호가 쏟아졌다. 곳곳에서 오솔과 반 더 바르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오늘 승리의 수훈 갑은 단연 이 두 사람이었다. 서로 득점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2골을 합작했으니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라파엘. 오늘 넣은 골은 정말 일품이었어요.”
“너도 좋은 움직임이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오솔을 바라보는 반 더 바르트의 두 눈에는 신뢰가 가득 들어 있었다. 믿고 공을 맡길 수 있는 동료의 존재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 듯했다.
“내 오버래핑도 괜찮았지?”
티모테 아투바가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며 활짝 웃었다.
“물론이지.”
반 더 바르트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비록 도움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아투바의 공격 가담은 골의 시발점이 되었다.
“좋았어! 하하하! 이 기세를 몰아서 뮌헨전도 이기는 거야!”
분위기가 좋았다. 시즌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맞이한 강팀 샬케 04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덕분이었다. 이후 함부르크의 선수들은 넘치는 자신감으로 뮌헨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4일 후, FC 코펜하겐과 치러진 UEFA 컵 1회전 2차전.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한 함부르크 SV는 선발로 출전한 나오히로 타카하라와 바스티안 레인하르트의 골로 2 대 0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함부르크는 1, 2차전 합계 3 대 1로 조별리그 단계로 진출하게 되었다. 오솔은 비록 이 경기에서 골은 넣지 못했지만 멋진 패스로 타카하라의 골을 도왔고, 그로 인해 레벨이 한 단계 올랐다. 그는 얻은 포인트를 모두 순간 속도에 투자했다.
-순간 속도 70
공격수라면 주력 못지않게 짧은 순간에 최고 속도에 도달하는 능력 역시 중요했다. 아니, 어쩌면 순간 속도가 더 중요할지도 몰랐다.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공간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 이제는 누구도 나한테 느리다고 할 수 없겠지.’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들어 오솔은 팀 내 달리기 경주에서 라우트나 타카하라에 못지않은 빠른 스피드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딱 분데스리가 평균 수준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오솔의 라인 브레이킹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경기를 치르면서 패스에 걸려 있던 페널티도 완전히 사라졌고, 이제 남은 페널티는 주력과 지구력에 걸린 것뿐이구나.’
-‘인생은 원래 혼자 사는 거야.’ 패스가 일정 확률로 부정확해집니다.(소멸)
1% 남짓 남았던 패스 페널티는 계속된 연계 플레이에 빠르게 감소하더니 지난 코펜하겐전을 경계로 완전히 소멸했다.
이제 없어진 페널티는 총 다섯 개. 남은 것 두 가지도 10%대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지금까지의 감소 추세로 보면 시즌이 끝나기 전에 다 없어질 것 같았다.
‘회귀한 지 2년 반 만에 여기까지 온 건가. 그래도 그간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언제 없어지나 했던 페널티가 드디어 없어졌다. 이제는 플레이를 할 때 불편한 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흐흐. 뮌헨전에서는 샬케전 때보다 더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 * *
나흘이 지나고 드디어 리그 6라운드 경기이자 전반기 최대 고비, FC 바이에른 뮌헨전을 치르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오늘은 원정 경기였다.
독일 북부의 대도시, 함부르크에서 1시간 10분을 날아가 도착한 뮌헨 공항.
거기서 다시 20여 분을 달리면 올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이 된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에 도달할 수 있다.
독특한 외양 덕분에 ‘고무보트(Schlauchboot)’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알리안츠 아레나는 경기장 외견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바이에른의 홈경기에서는 외관에 붉은색 조명을 켜고, TSV 1860 뮌헨의 경기에는 파란색을, 그리고 독일 국가대표팀이 경기할 때는 흰색 조명을 켠다.
‘확실히 빅 클럽이다.’
주차장에 내린 오솔의 감상은 그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가장 먼저 입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붉은색 유니폼의 관중들이 눈에 들어왔다. 뮌헨의 팬들이 분명했다.
오솔의 시선은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다시 알리안츠 아레나로 향했다.
6만 6천 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던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던전(Dungeon, 魔窟)이다. 이곳은 뮌헨을 제외한 다른 분데스리가 팀들에겐 악마의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반 더 바르트 파이팅!”
“하에스파우 힘내라!”
응원이 끝나기도 전에 주어(主語)만 똑같은 폭언이 이어졌다. 선수단의 입장 통로 좌우로 홈 팬과 원정 팬이 따로 서 있는 듯했다. 선수를 향한 응원과 협박이 계기가 되었는지 곧바로 양 팀 팬들의 언쟁이 시작됐다.
“저 남부 독일의 맥주광 녀석들의 배때기를 찢어버려!”
“북부의 머저리들아! 휴지는 준비했냐? 오늘 경기 내내 질질 짜려면 적어도 한 통은 필요할 거다!”
“오늘 너희를 꺾고 맥주를 받아 가겠다!”
“웃기지 마라! 올리버 칸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공은 없다!”
선수단은 곧장 원정팀의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코앞에서 선수들이 지나갔으나 함부르크 팬들은 사인을 요구하지 않았다. 경기 전에 선수들의 컨디션과 집중력을 위해 배려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에티켓이었다.
팬들은 자신들의 팀, 스타를 응원을 하러 온 것이지 사인을 얻기 위해 경기장에 온 게 아니다. 팀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은 팬들도 선수 못지않았다.
달칵!
라커룸에 들어가니 주전 선수들의 유니폼이 각 벽장(Locker)마다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곧 안에서 나온 사람이 선수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였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고마워요, 하트만.”
선수들보다 먼저 와서 그들의 축구 용품을 챙기는 장비 관리인(Kit Manager), 위르겐 하트만이었다. 평소처럼 주전 선수들의 물품은 물론이고 후보 선수들 것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오솔은 훈련용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축구화를 발에 끼워보며 오늘의 컨디션을 가늠했다.
-컨디션 : 96.3%
짧은 비행이었지만 원정을 온 탓에 컨디션이 살짝 흔들렸다. 어쩌면 아직 지난 경기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후우. 집중. 집중.”
오솔은 교체 인원이었음에도 경기 전 정신 집중에 만전을 기울였다. 갑자기 찾아오는 출전 기회. 그 기회를 흔들림 없이 소화하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트만 씨.”
“네, 오솔 선수. 무슨 일이에요?”
“다른 축구화로 좀 바꿔주세요.”
“어? 사이즈가 안 맞아요?”
위르겐 하트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선수들의 개인 용품 관리는 기본 중에 기본. 결코 실수가 나와서는 안 되는 부분이었다.
“아니요. 그냥, 느낌이 조금……. 새걸로 좀 부탁해요.”
“어휴. 제가 실수한 줄 알고 깜짝 놀랐네요. 주세요. 지금 바로 바꿔 드릴게요. 여분은 항상 준비해 놓고 있으니까 다음에도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오솔은 새 축구화를 착용하며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악의에 찬 관중들의 함성이 라커룸을 미약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6만 6천 명의 광적인 축구 팬들을 만나러 가야 했다.
이 미친 분위기는 전장의 북소리처럼, 그리고 전사의 외침처럼 울려 퍼지며 오솔의 심장을 펄떡이게 만들었다.
‘하하. 바보같이 이렇게까지 떨리다니.’
흥분일까, 아니면 두려움?
모르겠다. 정확한 판단은 필드에 들어서고 나서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는 명실상부한 분데스리가의 제왕이야. 그리고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즐비한 팀이기도 하지.’
로이 마카이, 제 호베르투, 미하엘 발락, 필립 람, 페레이라 루시우, 올리버 칸까지 각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자 세계적으로 첫손에 꼽히는 선수들이다. 오솔은 그런 선수들과 붙어야 했다.
“흐흐흐.”
길게 찢어진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이쯤 됐으면 월드 클래스와 비벼봐야지.”
떨림도 잠시, 오솔의 마음은 어느덧 그라운드를 향해 있었다. 그는 긴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승부욕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선수였다.
* * *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참 오래도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리그 6라운드, 함부르크 SV 대 FC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가 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과연 어느 팀이 전반기 승자가 될지 이번 경기로 결정 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물론입니다. 그 중요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죠. 양 팀의 선발 명단만 봐도 그 각오를 능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말이 나온 김에 선발 명단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먼저 홈팀 바이에른 뮌헨의 선발 명단입니다. 골키퍼에 올리버 칸, 우측 수비수로 윌리 사뇰, 중앙에 발레리엔 이스마엘과 루시우, 좌측에는 이번 시즌 임대에서 돌아온 필립 람 선수가 나왔습니다.]
[무시무시한 4백 라인입니다. 좌우의 풀백들의 오버래핑은 물론이고 때때로 루시우 선수조차 전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수비도 강하면서 동시에 공격적인 기여도 역시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다섯 경기 동안 겨우 3실점만 했습니다. 경기는 당연히 모두 이겼고요.]
물론 함부르크 역시 시즌 초반, 고작 2실점에 그침으로써 자신들의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뮌헨의 수비진은 공수를 겸비했다는 점을 유의해야 했다.
수비력만 놓고 본다면 함부르크의 수비진이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으나, 공격 가담 빈도까지 따진다면 바이에른 뮌헨 쪽이 더 나은 상황이었다.
[함부르크 역시 만만치 않죠. 어느 쪽이 더 뛰어난 수비를 보이는지는 결국 오늘 경기 결과가 말해줄 겁니다.]
[그럼 계속해서 미드필더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에 오언 하그리브스, 중앙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제 호베르투, 공격형 미드필더로는 미하엘 발락이 나왔습니다.]
[두 팀의 전술이 같아요. 442 다이아, 혹은 4-3-1-2로 부르는 전술입니다.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은 역시나 반 더 바르트 선수와 오언 하그리브스 선수의 싸움입니다. 반 더 바르트 선수는 현재까지 5골 4도움의 말도 안 되는 활약을 보이고 있습니다. 함부르크를 무너뜨리려면 반 더 바르트 선수를 꽁꽁 묶어야만 합니다.]
[5경기에서 5골 4도움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치네요. 그럼 계속해서 최전방을 알아보겠습니다. 뮌헨의 최전선에는 평소처럼 로이 마카이 선수와 클라우디오 피사로 선수가 나왔군요.]
[두 선수의 합이야 두말할 필요 없겠죠.]
캐스터는 이어서 함부르크의 선발 명단을 읽어나갔다. 오늘 함부르크는 한 명만 제외하면 기존의 베스트 일레븐과 거의 동일했다. 바로 중원에서 활발히 움직이며 공격에 가담해 왔던 표트르 트로초프스키가 빠지고 보다 수비적인 능력이 뛰어난 기 드멜이 들어간 것이다.
[참, 바이에른 뮌헨에게는 아직까지도 현상금이 걸려 있습니다. 한 맥주 회사에서 뮌헨을 이긴 팀에게 총 1만 리터의 맥주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했었죠?]
[그렇습니다. 지난 시즌 말에 10연승을 기록한 상태에서 올 시즌도 연승을 유지하고 있으니 무려 15연승째입니다.]
[함부르크 팬들은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두 배로 기쁘겠군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도 오늘만큼은 함부르크의 팬이 되어야겠네요.]
[공짜는 머리에 안 좋습니다.]
[괜찮습니다. 전 이미 글렀거든요!]
[……자! 말씀드리는 순간, 휘슬이 울립니다!]
경기는 뮌헨의 공격으로 시작됐다. 공은 로이 마카이에서 미하엘 발락에게 굴러갔다. 그는 오솔의 기억보다 훨씬 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첼시에 갔을 때 발락이 서른두 살이었으니까, 지금은 스물아홉이겠구나.’
사실 발락은 사흘만 지나면 만으로도 서른이 된다. 이제 그도 전성기가 슬슬 지나가는 나이인 것이다.
오솔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발락이 가볍게 마크맨을 따돌리더니 로이 마카이와 2 대 1 패스를 주고받으며 성큼성큼 전진했다. 그러곤 순간적으로 열린 수비진 사이로 특유의 빨랫줄 중거리 슛을 선보였다.
뻐어엉!
지켜보는 이들의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파워풀한 슈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