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7화
[오프사이드가 아닙니다! 절호의 찬스!]
[프랑크 로스트! 나올 듯 말 듯 잘 재고 있어요!]
골키퍼와 공격수의 눈치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일대일 찬스에서 골키퍼는 앞으로 튀어나갈 수밖에 없다. 이는 슈팅 각도를 좁히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문제는 ‘어느 타이밍에 얼마나 가까이 붙느냐’였다.
너무 늦게 나가면 슈팅할 각도를 내주기 쉬웠고, 반대로 너무 빨리 나가면 공격수에게 돌파를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이다!’
프랑크 로스트가 주춤주춤 다가오다가 어느 순간 확 하고 태클을 걸었다.
마음 같아선 더 버티고 싶었으나 수비수들이 너무 늦었다. 여기서 시간을 끌어도 수비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달려드는 게 맞았다.
‘제발!’
그는 온몸으로 덮쳐 들어가며 두 다리와 양팔을 크게 벌렸다. 최대한 상대에게 슈팅 각도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후후. 그럴 줄 알았다.’
오솔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을 앞으로 띄웠다. 상대의 다리에 걸리지 않으려면 지금처럼 공을 살짝 띄우는 편이 좋았다.
공은 골키퍼의 오른쪽 옆구리로 스쳐 지나갔다.
오솔은 상대의 태클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공이 생각보다 멀리 나갔으나 넘어지면서 긴 다리를 쭉 뻗은 덕분에 라인을 나가기 전에 슛을 할 수 있었다.
[고올! 골입니다! 팽팽한 긴장을 깨트리는 함부르크의 선제골! 그 주인공은 교체되어 들어온 오솔입니다!]
[정말 귀중한 골이 나왔습니다. 지금처럼 강팀들의 싸움에서는 많은 골이 필요 없거든요. 먼저 한 골을 넣는 팀이 이길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함부르크의 팬들이 경기장이 떠나가라 함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하하. 얼핏 김치 나이트라는 별명이 들리고 있죠? 제가 알기로 오솔 선수는 벌꿀 오소리라는 별명으로 불러달라고 했었는데요. 팬들은 김치 나이트 쪽이 더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오솔은 김치 나이트라는 별명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동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은 반 더 바르트를 향하고 있었다. 이처럼 짜릿한 패스는 근 8년 만에 처음으로 받은 것이었다.
“나이스 패스였어요!”
“너야말로 멋진 쇄도였다. 패스를 해놓고 조금 강한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그걸 잡을 줄이야……. 어째 훈련 때보다 더 빨라진 것 같다?”
“흐흐. 이를 악물고 뛰긴 했죠.”
“오케이. 이제는 그것까지 계산해서 패스해야겠네.”
“오늘은 안 되고 다다음 경기에서는 더 빨리 줘도 될 거예요.”
오솔이 아리송한 말을 남기는 사이, TV 화면에는 골 장면이 천천히 재생되고 있었다.
크리스티안 폴센의 시선을 피해 빈 공간을 찾아간 반 더 바르트.
마침 그에게 공이 오고, 오솔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수비 뒤 공간으로 파고든다.
[새로운 이적생들의 호흡이 굉장히 좋네요. 방금은 오솔 선수가 뒤로 파고드는 움직임도 좋았고, 반 더 바르트 선수의 패스 타이밍도 굉장했습니다. 수비수가 뒤늦게 손을 들었으나 오프사이드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방금은 조금 아쉽네요. 크르스타이치 선수가 오솔 선수의 침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사실 그럴 만도 한 게 오솔 선수의 장기는 누가 뭐래도 제공권과 포스트플레이였거든요. 지금처럼 수비 뒤 공간을 파고드는 모습은 이번에 처음 나온 장면이었습니다.]
그 말대로 샬케 04의 수비진은 오솔의 스피드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었다.
스피드는 오히려 반대편의 에밀 음펜자가 더 위협적이었기에 사실상 모든 관심이 그쪽으로 쏠린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솔의 속도가 분데스리가에서도 통할 수준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아차린 탓이다.
“좋아!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해! 방심하지 말고!”
토마스 돌 감독은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하며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준비시켰다.
1 대 0으로 이기는 상황이었다. 이제 상대는 보다 공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비를 굳히고 에밀 음펜자의 빠른 다리를 이용해서 역습을 노리는 게 최선의 판단이었다.
이후의 경기는 치열함 그 자체였다.
샬케 04는 보다 공격적으로 움직였고, 크리스티안 폴센은 상대의 다리를 아작 내러 나온 사람처럼 태클을 해댔다.
삑!
결국 폴센에게 카드 하나가 주어졌다. 그러나 샬케 04로서는 불만을 표시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빨간색이 아닌 게 감사할 뿐이었다.
토마스 돌 감독은 경기를 지켜보며 가슴이 조마조마해 미칠 것 같았다.
‘이거 미치겠네. 뮌헨전을 생각하면 라파엘은 절대 다치면 안 되는데……. 하아. 그렇다고 지금 뺄 수도 없고.’
안타깝지만 샬케 04도 막판까지 우승 레이스에 남아 있을 팀이었다. 감히 그들을 상대로 반 더 바르트를 뺐다가는 남은 시간, 일방적으로 수비만 하다가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제발 부상만 당하지 말아다오.’
돌 감독의 바람대로 반 더 바르트는 슬슬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퇴장조차 불사(不辭)하고 달려드는 상대에게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물론 무리를 한다면 돌파할 수는 있겠으나, 그러다가 다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손해였다. 지금은 반 더 바르트의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었다.
돌 감독이 터치라인을 따라 섰다.
“표트르! 올라가! 가서 라파엘을 도와!”
돌 감독의 선택은 중앙 미드필더인 표트르 트로초프스키를 위로 올리는 것이었다. 포메이션을 4-2-2-2에 가깝게 바꿈으로써 반 더 바르트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덜어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트로초프스키까지 세 사람이 나눠서 갖던 수비 부담을 다비드 야롤림과 라파엘 비키, 단 두 사람이 감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파비안 에른스트! 공을 끊어냅니다!]
[역습입니다! 샬케 04의 숫자가 더 많아요!]
[공은 하밋 알틴톱에게. 알틴톱, 측면으로 돌아 나가는 링콘에게 찔러줍니다.]
[링콘! 이번에는 마다비키아와 붙습니다!]
메디 마다비키아는 본래 오른쪽 윙이었다. 올해 초에 포지션을 변경했기 때문에 수비수로 뛴 기간이 아직 9개월 정도밖에 안 된 상황이다.
물론 준비 기간이 짧았던 것치고는 수비 실력이 뛰어난 편이었으나, 일천한 경력 때문인지 링콘처럼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를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접었어요! 마다비키아, 완전히 속았습니다. 링콘의 크로스!]
[케빈 쿠라니의 머리로 향합니다! 반 바이텐의 반응이 늦어요!]
반 바이텐이 허겁지겁 걸음을 옮겨봤으나 공은 이미 케빈 쿠라니의 머리에 닿은 후였다.
철썩!
골키퍼, 스테판 왓쳐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뛰는 타이밍도 한 박자 느렸고, 공을 제대로 쳐내지도 못했다.
공이 골대 구석으로 파고들었다는 점과 중간에 한번 바운드되면서 움직임을 예측하기 힘들었다는 점 등 어느 정도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실수가 덮이는 건 아니었다.
냉정한 말이지만 프로인 이상 불운이나 실수도 모두 실력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아! 들어갑니다! 동점 골을 넣는 케빈 쿠라니!]
케빈 쿠라니는 코너로 달려가 카메라 렌즈에 뽀뽀를 날렸다. 그가 정말로 기분이 좋을 때만 보여주는 세리머니였다.
‘아오! 저 데브라 같은 놈!’
오솔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기껏 비장의 무기를 꺼내서 선제골을 넣었건만 케빈 쿠라니의 만회 골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만 것이다.
[양 팀 감독들이 동시에 교체 카드를 꺼내 듭니다.]
[홈팀인 함부르크로서는 승리가 고픈 상황이니 당연히 공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어야겠죠. 에밀 음펜자 선수를 빼고 벤야민 라우트 선수를 집어넣습니다.]
[아, 샬케 04도 공격을 선택했네요?]
[이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자는 생각 같습니다. 후반전 들어서 속도가 줄어든 게랄트 아사모아 선수를 빼고 백전노장, 에베 산 선수를 투입합니다.]
왕년의 득점왕이자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의 뜻을 밝힌 에베 산이 경기장에 들어왔다. 그는 비록 움직임은 느려졌으나 아직도 결정적인 한 방이 있는 선수였다.
이후 경기는 다시 백중지세(伯仲之勢)로 돌아섰다.
함부르크는 오솔의 헤딩과 라우트의 뒤 공간 공략으로 상대를 괴롭혔고, 샬케 04는 링콘을 중심으로 게임을 풀어나갔다.
[오늘 라파엘 비키 선수가 호되게 당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격하게 부딪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폴센 선수처럼 투쟁심을 보여줘야 상대방도 위축이 되죠!]
[아! 말씀드리는 순간, 폴센의 파울입니다.]
[지금은 조금 쓸데없는 파울이었죠? 비키 선수와는 반대로 폴센 선수는 조금 자중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두 선수를 반씩 섞어놓으면 딱 좋을 텐데요.]
[그럼 오언 하그리브스가 되겠죠.]
중계진은 오언 하그리브스를 언급하며 다음 주에 있을 6라운드를 예고했다.
[반 더 바르트 선수가 다음 주에는 더 힘들겠어요.]
[하그리브스는 폴센과 달리 반칙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몸싸움에 아주 능합니다. 투쟁심이 있지만 동시에 영리한 선수죠. 그에게는 아마 오늘보다 더 힘든 시합이 될 겁니다.]
크리스티안 폴센은 별명 그대로 미친개처럼 달려들었고, 덕분에 반 더 바르트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아약스에서 뛸 때에는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는 선수가 없었다.
설혹 있다 하더라도 슈나이더나 즐라탄 등 다른 위협적인 선수가 많았기에 이렇게까지 압박이 심하지 않았다.
하나 함부르크에는 그 외에 이렇다 할 해결사가 없는 실정이었다. 그나마 플레이메이킹이 되는 게 바바레즈였는데, 그는 이미 벤치로 돌아간 이후였다.
자연스럽게 반 더 바르트에게 압박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대등한 상대를 만나니 이렇게 되는구나.’
약팀을 상대할 때는 몰랐다. 그때는 비교적 쉽게 동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우승권 팀을 만나자 하나둘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반 더 바르트 선수가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이 절실해 보이는데요?]
캐스터의 의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솔이 움직였다.
[오솔! 밑으로 내려옵니다.]
이는 오솔의 독단적인 판단이었다.
‘지금은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라파엘에게 집중된 공격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어.’
그렇다고 트로초프스키를 위로 올릴 수도 없었다. 이미 그런 시도를 했다가 골을 먹힌 상태이지 않은가.
그래서 내려왔다. 상대 수비 라인을 뒤로 물려서 공간을 만드는 대신 연계를 돕기로 한 것이다.
“라파엘!”
마침 공을 뺏길 위기에 처했던 반 더 바르트가 가까스로 오솔에게 공을 전했다.
‘좋아. 너희들에게도 등신의 위엄을 보여주마.’
오솔은 그때부터 폭넓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험지역에서 공을 지키며 시의 적절하게 패스를 시도하고, 반 더 바르트에게 몰린 수비를 자신이 나눠 가졌다.
그가 공을 뺏기는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상대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는 습관 덕분에 등 뒤에서 접근하는 상대를 미리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함부르크의 측면 수비수들도 슬슬 라인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솔이 있는 한 쉽게 공을 뺏기지 않는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마침 잉글랜드에서 활발한 공격을 선보였던 티모테 아투바가 타이밍을 보고 앞으로 크게 전진한 상황이었다.
반 더 바르트는 곧장 로빙 스루-높이 띄운-패스를 시도했다. 아투바의 큰 키를 믿고 일부러 공을 띄운 것이다.
191㎝의 아투바는 반 더 바르트의 기대대로 높이 뛰어올라 공을 앞으로 떨어뜨렸다. 고작 171㎝인 하피냐로선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플레이였다.
아투바는 흑인 특유의 유연한 착지를 선보이며 공을 따냈고, 측면을 따라 빠르게 질주했다.
크르스타이치가 급히 커버를 하러 왔으나 아투바의 센스 있는 패스와 오솔의 공간을 찾는 움직임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솔의 노마크 찬스였다.
자유롭게 돌아선 오솔은 본능적으로 슈팅 각도를 쟀다. 안타깝게도 전혀 각이 안 보였다.
설상가상 앞뒤로 폴센과 크르스타이치가 접근하는 상황.
‘가만, 폴센이 붙었다고? 그럼 지금 노마크인 사람이…….’
크리스티안 폴센의 찰랑거리는 금발 너머로 반 더 바르트의 불타는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솔이 주저 없이 왼발을 뻗었다.
아차! 왼발이라 패스가 조금 부정확했다.
반 더 바르트 앞에 찔러줘야 할 공이 그의 진행 방향보다 뒤쪽으로 향한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공을 놓치거나 잡더라도 슈팅 타이밍을 놓쳤을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반 더 바르트는 이 어려운 상황 앞에서 어째서 자신이 제2의 요한 크루이프라고 불리는지를 증명해 냈다.
살짝 틀어서 왼발로 공을 감싸 안더니, 동시에 몸을 회전시키며 뒷발질로 공의 방향을 골문 쪽으로 유도한 것이다.
공이 반 더 바르트의 발 안쪽에 자석처럼 달라붙더니 너무도 부드럽게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썩!
…….
와아아아!
잠깐의 정적과 미칠 듯한 열광이 빠르게 교차했다.
오솔은 고개를 저었다.
“미쳤다. 진짜.”
미쳤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