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4화
[정말 멋진 골이 들어갔습니다. 분데스리가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습니다!]
[경기장에 들어오고 거의 바로 넣었습니다. 정확히는 데뷔한 지 43초 만에 득점했군요. 이 정도면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와아아!
함부르크 팬들을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65분간 이어졌던 반 더 바르트의 화려한 플레이도 좋았지만, 방금 오솔이 넣은 골은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있었다.
35미터 거리에서 쏘아 보낸 파워풀한 중거리 슛.
심지어 기묘한 각도로 휘면서 골인했다.
지금 미치지 않으면 축구 팬, 그리고 하에스파우의 팬이라고 할 수 없었다.
“미쳤어! 저 새낀 미쳤다고! 사랑한다. 이 미친놈아!”
“꺄아악! 오늘 밤, 내 침대에 들어와 줘!”
미성년자인 오솔을 두고 남녀 할 거 없이(?) 성적인 농담이 섞인 찬사를 내뱉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독일인들이었으나 축구와 맥주, 그리고 골이 뒤섞이자 여느 나라의 축구 팬들 못지않게 열정적인 모습으로 돌변했다.
물론 그 속에는 칼럼니스트 데니스 쿤츠와 맥주광인 미하엘 자이어도 섞여 있었다.
“마시자! 어차피 이번 경기도 이겼어! 하하하!”
“미친놈아. 그러다가 잘리면 어떻게 하려고?”
“몰라! 모가지가 날아가더라도 이런 날에는 마셔야 해!”
오솔은 팀원들과 즐거움을 나누면서도 한편으론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찬 공이 골까지 연결되니 황당하면서도 기뻤다.
‘이게 들어가네?’
슛이 들어가고 잠시 경기가 멈추자 타카하라와 음펜자가 교체했다. 음펜자는 그렇게 얼떨결에 도움을 하나 기록하고 벤치로 돌아갔다. 그러나 공격 포인트를 얻은 것과는 달리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단장, 바이어스도르퍼가 옆자리를 향해 은근히 물었다.
“데뷔전 임팩트가 강렬하군요.”
“흠흠. 어쩌다가 골이 들어가긴 했지만 실제로 승점에 영향을 주는 골은 아니지 않은가. 제 값을 할지는 두고 봐야 아는 법이네.”
구단주 베른트 호프만은 아직은 오솔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말과 함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솔직하지 못한 양반 같으니.’
바이어스도르퍼는 그 모습이 아니꼬웠으나 굳이 지적해서 핀잔을 주진 않았다. 어찌 되었든 구단주와 단장은 같이 팀을 이끌어가야 하는 처지였다.
* * *
삑, 삑. 삐이익!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타카하라는 오솔의 어깨를 툭 쳤다.
“축하한다. 분데스리가 데뷔전에, 골까지 넣은 거.”
“고마워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볼터치는 실수한 거지? 일부러 머리 위로 넘긴 건 아닐 거잖아.”
“노린 겁니다. 흐흐.”
오솔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볍게 걸었다. 제대로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경기가 끝나서 오히려 몸이 근질근질했다.
“너 생각보다 뻔뻔하구나? 불규칙 바운드에 당황해하는 걸 내가 빤히 봤는데.”
“그것도 다 제 계산 아래에 있었어요.”
“그래. 뭐가 됐든 골을 넣었으면 된 거지.”
에밀 음펜자의 패스, 그리고 거기에 담긴 심술은 직접 공을 받은 오솔 외에는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당장 타카하라도 단순히 패스가 좀 강했다고만 여겼다.
오솔은 굳이 자신이 느낀 점을 토대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신입생인 데다가 결국 그 패스가 골이 되었으니 의심을 잠시 덮어두고자 한 것이다.
[이로써 2005-2006 분데스리가의 화려한 막이 올랐습니다. 오늘 함부르크는 4 대 0으로 승리했고, 경기 MOM은 반 더 바르트입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골은 신입생이자 데뷔전을 치른 오솔 선수의 중거리 슛입니다.]
[네. 그야말로 꿈에 나올 만큼 멋진 슛이었습니다.]
[뉘른베르크 팬들 입장에서는 악몽 같은 슛이겠죠.]
오솔은 샤워를 하다 말고 슬쩍 상태창을 확인했다.
-Level Up!
‘좋아. 예상대로 레벨이 올랐구나. 바로 주력에 투자하자.’
-주력 82(18.4%↓)
‘골도 넣고, 레벨도 오르고. 아주 성공적인 데뷔전이었어.’
오솔은 싱긋 웃으며 상태창을 닫았다. 페널티도 꾸준히 줄고 있고, 레벨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현재 그의 레벨은 26.
지금까지의 추세로만 본다면 전반기 내에 레벨 30까지 무난하게 오를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이야.’
이제 목표 득점수까지 남은 골은 9개였다.
* * *
개막전이 끝나고 5일 후, 인터토토컵 결승전 2차전이 함부르크에서 펼쳐졌다.
발렌시아를 홈으로 불러들인 함부르크는 세르게이 바바레즈와 벤야민 라우트를 투톱으로 내세워 수비에 치중했다.
전방에 남들보다 많이 뛰어주는 두 공격수에다가 중원도 활동량이 좋은 선수들 위주로 짠 덕분에 발렌시아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낼 수 있었다.
후반전에는 에밀 음펜자를 조커로 기용해서 역습까지 노려봤으나 오히려 경기 막판에 골을 하나 헌납하고 말았다. 하지만 실점은 그게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함부르크는 1, 2차전 도합 2 대 1로 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고, 9월에 있을 UEFA 컵의 1회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27일, 리그 2라운드.
FC 카이저슬라우테른과의 경기에서 오솔의 선발 출장이 결정됐다.
[오늘 선발 라인업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골키퍼에 스테판 왓처, 4백 라인은 오른쪽부터 메디 마다비키아, 다니엘 반 바이텐, 칼리드 볼라루즈, 그리고 이적생 티모테 아투바가 섭니다.]
[인터토토컵은 물론이고 지난 개막전에서도 굉장히 촘촘하고 세밀한 수비를 선보였던 선수들입니다. 서로 호흡도 잘 맞고 라인 컨트롤도 아주 훌륭합니다. 흠이라면 골키퍼인 스테판 왓처 선수가 아직까지 공을 처리하는 게 불안하다는 걸 들 수 있습니다.]
스테판 왓처는 아직까지는 리그 톱 골키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철벽에 가까운 4백 라인의 보호를 받으며 현재까지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어서 미드필더진을 보시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른쪽부터 마기스 갈, 기 드멜, 스테판 베이니히,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오늘도 반 더 바르트가 나왔습니다.]
[허리 라인은 DFB 포칼에서 뛰었던 선수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차이점이라면 공격형 미드필더로 반 더 바르트 선수가 나왔다는 건데요. 지난 인터토토컵 결승전 2차전에서 휴식을 준 덕분에 체력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수비와 공격, 이 두 가지는 확실히 가져가겠다는 의중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공격진입니다. 투톱으로 오솔과 타카하라 동양인 듀오가 출전했습니다.]
[역시나 컵 대회에서 합을 맞춘 조합입니다. 리그 개막전 막판에도 같이 뛰었고, 전체적으로 합이 잘 맞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두 선수다 살짝 투박한 감이 없잖아 있는데, 그 점은 앞서 말한 대로 반 더 바르트 선수가 잘 메꿔줄 겁니다.]
이어서 카이저슬라우테른 선수들에 관한 정보가 떠올랐다.
[다음은 카이저슬라우테른입니다. 골키퍼에 위르겐 마초, 4백으로 에르부 넬로 렘비, 마티유 베다, 티모 벤젤과 잉고 헤르취가 섭니다. 미드필더로는 어빈 켈라…… 그리고 치리아코 스포르자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왔습니다. 오늘 스포르자 선수의 임무가 막중합니다.]
[그렇습니다. 반 더 바르트 선수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한시도 편할 수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공격수로 카르스텐 얀커와 부바카르 사노고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전형적인 4-4-2 진형으로 나왔다. 이 팀은 전통적으로 좌우 돌파에 이은 높은 크로스로 헤딩 골을 노리는 팀으로, 시즌 전에 오솔에게 관심을 보내기도 했다.
[오늘은 중앙과 측면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싸움이 되겠습니다.]
[함부르크 입장에서는 카르스텐 얀커 선수의 높이를 주의해야겠고,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역시나 반 더 바르트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겁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가 시작됩니다.]
193㎝의 얀커는 더 큰 반 바이텐이 상대했고, 사노고는 상대적으로 날렵한 볼라루즈가 맡았다. 반면 오솔과 타카하라 조합은 마티유 베다와 티모 벤젤을 상대하게 되었다. 이들은 둘 다 185㎝에 이르는 준수한 키와 덩치를 가졌으나 오솔을 막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오솔! 다시 한번 헤더를 따냅니다!]
[베다도, 그리고 벤젤도 헤딩 경합에서 이겨내질 못합니다.]
두 선수는 마크를 오가며 오솔을 막아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오솔은 정확하고 빠른 예측으로 공이 떨어질 만한 위치를 선점했고, 한번 자리를 잡으면 결코 밀려나지 않을 만큼 힘도 강했다. 반 바이텐급의 선수가 아닌 이상 오솔의 헤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수비수들은 오솔에게 당한 울분을 타카하라에게 풀었다. 함부르크의 공격진을 향한 몸싸움과 태클이 갈수록 격렬해진 것이다. 슬프게도 타카하라는 두 선수 중 누가 붙더라도 이겨내질 못했다.
‘조금 답답하게 흘러가네.’
후방에서 길게 넘어오는 공을 거의 백 퍼센트 확률로 따냈건만, 타카하라가 뒷받침을 해주지 못했다.
솔직히 타카하라는 아시아권에서만 대형 공격수에 타고난 골잡이로 인정받을 뿐, 유럽 선수들과 붙여놓으면 이렇다 할 실력을 보이지 못했다.
몸싸움도, 드리블도 평균을 살짝 웃도는 수준이랄까?
그래서 수비수를 상대로 버텨봐야 1초, 2초 정도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 상태에서 나오는 패스가 상당히 허접하다는 데 있었다. 단단하게 버티는 게 아니라 휘청휘청 물러나며 공을 컨트롤한 탓에 패스의 질이 좋지 않았다.
결국 공격진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타카하라가 부진하자 삼각패스와 그로 인한 점유율 축구가 불가능해졌다.
“라파엘!”
토마스 돌 감독은 더 늦기 전에 지시를 내렸다. 라파엘 반 더 바르트에게 보다 전방으로 나가라고 손짓한 것이다.
그때부터 반 더 바르트의 플레이 방식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전통적인 10번-전진 플레이메이커-으로서 활약했다면, 이제는 가짜 10번으로 급변한 것이다.
가짜 10번.
위치는 분명 기존의 10번 자리에 있었으나 플레이 방식은 마치 공격수처럼 중앙으로 파고드는 형태를 취했다. 말하자면 후이 코스타(Rui Costa)에서 히카르도 카카(Ricardo Kaka)로 변했다고 할 수 있었다.
[오솔 선수 다시 공을 따냅니다! 전반전에만 벌써 5번째입니다.]
[함부르크가 후방에서 길게 뿌려주는 형태로 공격을 전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아주 좋습니다. 다만 그렇게 따낸 공을 타카하라 선수가 잘 받아주지 못하고 있어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반 더 바르트 선수가 중앙으로 침투합니다!]
타카하라는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바깥으로 크게 벌려주는 움직임을 취했다. 수비수가 조금이라도 따라 나오게끔 노력한 것이다. 그렇게 벌어진 틈으로 날카로운 비수로 돌변한 반 더 바르트가 파고들었다. 그는 오솔이 떨어뜨려 준 공을 잡고 좌우에서 달려드는 수비수들을 가볍게 피하며 슈팅을 가져갔다.
[고오오올! 반 더 바르트의 득점입니다. 시즌 두 번째 골을 터트리는 반 더 바르트! 과연 해결사답습니다.]
그때부터 경기가 슬슬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오솔은 끊임없이 상대 제공권을 장악했고, 반 더 바르트는 두 수비진 사이에서 공을 잡고 자유롭게 움직였다.
설혹 수비수가 타카하라를 버리고 그에게 온다 해도 상관없었다. 반 더 바르트는 언제든지 논스톱 패스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고, 타카하라는 노마크 찬스에서까지 골을 놓칠 바보는 아니었다.
[골! 골입니다! 선취 골을 넣은 지 고작 3분 만에 추가 골이 터졌습니다.]
[반 더 바르트 선수, 정말 대단하네요. 스포르자 선수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음에도 기어이 찬스를 만들어냅니다.]
[오솔 선수의 헤더도 아주 좋았죠?]
[네. 결국 공격의 시작은 이 선수였습니다. 높은 타점과 정확한 헤딩으로 반 더 바르트 선수가 아무런 견제 없이 공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있어요.]
[세르게이 바바레즈와는 또 다른 느낌의 타깃맨입니다.]
오솔은 선발 첫 경기 만에 자신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