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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3화 (6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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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3화

퍼엉. 펑!

화려한 폭죽과 함께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약 4만 5천 명의 함부르크 팬들과 1만 명이 조금 넘는 원정 팬들이 개막전을 즐기러 왔고, 덕분에 폴크스파르크 슈타디온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와아아!

양 팀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투지가 넘쳤다.

선수들은 경합 과정에서 결코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고, 공을 가운데 놓고 투닥거리는 모습은 집단 난투극을 연상케 할 정도로 거칠었다.

객관적인 전력은 함부르크가 한 수 위였으나 전반전 15분까지는 뉘른베르크도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함부르크 선수들은 타이트한 경기 일정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몸놀림이 굼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기는 전반전 15분이 넘어가면서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제 컨디션을 찾은 반 더 바르트가 슬슬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해 나간 것이다.

[반 더 바르트 선수. 중원에서 공을 몰고 전진합니다. 가볍게 한 명 제치고, 앞쪽으로 날카롭게 찔러줍니다! 바바레즈가 그대로 공을 받아서 다시 반 더 바르트에게! 중거리 슈우웃! 아! 골키퍼가 바깥으로 쳐냅니다!]

FC 뉘른베르크 선수들은 이 ‘네덜란드에서 온 베컴’을 도저히 어떻게 하질 못했다.

반 더 바르트는 남미의 선수들 못지않은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를 농락했고, 동시에 날카로운 패스 한 방으로 수비진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에는 일방적인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반 더 바르트를 위시한 1군 선수들은 FC 뉘른베르크를 상대로 슈팅 연습에 들어갔다.

전반전 29분에 바바레즈의 선취 골을 시작으로 37분에 반 더 바르트의 추가 골, 그리고 후반전 5분에 반 바이텐의 헤딩골로 3 대 0이 되었다.

[함부르크, 강력합니다! 수비진의 단단함은 물론이고 중앙에서 성실히 뛰어주는 미드필더들과 쉼 없이 상대를 괴롭히는 공격진의 조화가 경이로운 수준이에요!]

오솔이 출전했던 컵 대회는 4부 리그 팀을 상대로 한 것이었기에 큰 점수 차로 승리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엄연히 같은 1부 리그 팀과의 경기였다. 뉘른베르크가 비록 수비진이 다소 불안하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일방적인 경기가 나올 만큼 약함 팀은 아니었다.

[진정 이번 시즌 반 더 바르트 선수가 하에스파우의 구세주가 될 것 같습니다. 후반전 30분 대를 앞두고 그는 총 5번의 결정적인 패스를 성공시켰고, 2개의 도움과 1개의 골을 기록했습니다. 반 더 바르트는 지금 그야말로 게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함부르크 현지의 중계진은 공정한 중계 따위는 내다 버리고, 거의 간증(干證)에 가까운 해설을 하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그를 비롯한 대다수의 함부르크 팬은 반 더 바르트가 그들의 팀을 구원해 줄 것이라 믿고, 또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공수의 조화가 완벽에 가깝습니다. 지금 모습이 후반기까지 이어진다면 우승도 꿈은 아닙니다!]

지나친 설레발이었으나 그만큼 현재 함부르크 선수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강렬하단 뜻이기도 했다. 오솔 역시도 반 더 바르트를 보며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마르세유 턴으로 따라붙는 수비수를 자연스럽게 벗겨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지금 이게 부상으로 폼이 떨어진 모습이라니, 부상 전에는 어땠을지 상상하기 힘든데?’

반 더 바르트는 6개월 전, 당시 동료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발목 부상을 입고 난 후 발전이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정체가 아니라 퇴보에 가까웠다. 확실히 부상 이전보다는 공격의 파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남미 선수를 연상케 하는 현란한 발재간은 여전했지만, 이전에 보여줬던 폭발적인 스피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만약 발목 부상도 없었고 스피드 역시 여전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반 더 바르트는 그리도 원하던 레알이나 바르샤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고 있었을지 모른다.

“오솔. 준비해라!”

후반 20분이 넘어가자 바바레즈가 지친 모습을 보였다. 그에 토마스 돌 감독은 오솔과 타카하라에게 몸을 풀도록 지시했다.

5일 뒤에 곧바로 인터토토컵 결승전 2차전이 있었다. 지금은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3 대 0으로 크게 이기고 있으니까 부담 없이 뛰길 바란다.”

무리할 필요도, 부담도 없는 스코어.

게다가 개막전, 홈경기.

팬들에게 첫선을 보이기 적격인 무대였다.

와아아! 세르게이!

짝짝짝짝!

바바레즈가 교체되어 나가자 홈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뒤따랐다. 벌써 다섯 시즌째 팀에 헌신하고 있는 선수에 대한 애정을 내보인 것이다.

[꾸준함의 대명사, 세르게이 바바레즈가 나가고 18살의 젊은 공격수, 대한민국의 오솔이 투입됩니다. 이 선수, 어떤 선수인가요?]

[주중에 있었던 DFB 포칼 64강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멋진 데뷔전을 치른 선수입니다. 분데스리가 데뷔는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토마스 돌 감독이 금방 기회를 주는군요.]

[경기 분위기가 워낙에 좋아서 여유가 생긴 모양입니다.]

[네. 전술적으로도 좋은 선택입니다. 지금처럼 밑으로 아예 내려앉는 전술에서는 전방에서 헤더를 따낼 선수가 필요한 법이거든요.]

중계진의 말대로 함부르크는 평소보다 더 수비적인 위치로 라인을 내리면서 수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 골이나 앞서가는 상황이라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공격은 긴 패스를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바바레즈가 체력적인 부담을 느낀 이유도 후반전에 들어서 그에게만 공이 집중된 탓이었다.

“패스를 돌리면서 천천히 체력 관리에 집중하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오솔은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서 감독의 지시를 전달했다. 아직 독일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복잡한 전술 지시를 옮기는 건 힘들었지만 이 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라는 데에 있었다. 그로서는 간단한 지시만 가능할 뿐, 세부적인 계획을 전달하는 건 불가능했다.

덕분에 사소한 오해가 생겼다. 이는 아주 사소하지만 선수의 상황에 따라 쉽게 풀리지 않을 오해이기도 했다.

‘이런 빌어먹을! 남는 시간 동안 수비만 할 거라면 나도 지금 빼줘야 할 거 아니야.’

에밀 음펜자는 여전히 몸을 풀고 있는 타카하라를 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체력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계속 공격적인 전술을 유지했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체력이야 어찌 되든 당장은 득점 감각을 찾는 쪽이 더 좋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비에만 집중하는 상황에서 계속 뛰라고 하는 건 아무런 의미 없는 중노동이었다.

‘나보고 이따위 애송이의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거야?’

음펜자는 훈련을 게을리한 탓에 최근 들어 체력이 좀 떨어진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풀타임 출전이 아예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처럼 경기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있었다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토토컵 일정이 추가되면서 출전 간격이 짧아진 게 문제가 되었다. 그는 부족한 체력만큼 집중력이 떨어졌고, 자연스럽게 득점 찬스를 살리기 힘들어졌다. 덕분에 공격진에서 아직까지 마수걸이 골을 못 넣은 유일한 선수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바바레즈만 교체해 주고 자신은 이대로 방치한다?

감독이 자신의 훈련 태도를 보고 보복한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음펜자의 오해였다.

“타카하라, 아직이야?”

“죄송합니다. 이제 다 됐습니다. 아까는 갑자기 긴장을 했는지 근육이 잘 안 풀렸습니다.”

“좋아. 다음에 공이 나갔을 때 들어가도록 해.”

“예!”

두 사람의 대화처럼 원래 토마스 돌 감독은 타카하라와 오솔을 동시에 투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타카하라가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말에 오솔을 먼저 투입했다.

음펜자가 조금 더 뛰어야 하겠지만 겨우 5분 차이였고, 그마저도 패스를 돌리면서 체력 관리를 하라고 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음펜자의 불성실한 훈련 태도와 그로 인해 서로의 감정이 상한 것이 이 모든 오해의 원인이었다.

* * *

“후우.”

오솔은 가볍게 다리를 굴리며 경기장에 들어섰다. 습도도 적당했고, 기온도 그렇게 덥지 않고 딱 좋았다.

“컨디션은 99.7퍼센트. 좋아. 거의 완벽하군.”

5일 전에 풀타임 출장한 것치고는 몸 상태가 아주 좋았다. 타고난 체력 회복 속도에 철저한 몸 관리가 더해진 결과였다.

오솔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 뭔가 일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상대의 공을 빠른 시간 내에 뺏을 수 있었다. 함부르크의 공격 상황. 공은 에밀 음펜자에게 갔다. 그는 센터 라인을 살짝 넘어서면서 오솔과 눈을 마주쳤다.

‘왜 저렇게 웃지?’

오솔이 뭔가 이상하다 느꼈을 때, 이미 공은 음펜자의 발을 떠나 그에게 오고 있었다.

파아앙!

생각보다 패스가 강했다. 이 정도면 조금 약한 슛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패스는 완전히 잉글랜드 스타일이구나. 이 친구, 원래 이렇게 강하게 패스하는 편이었나?’

오솔은 강한 패스에 이골이 나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볼터치 능력이 높지는 않았으나 주의를 기울인다면 공을 잘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읏! 여기서 튄다고?’

그런데 하필이면 공이 오솔의 바로 앞에서 지면에 부딪혀 크게 튀어 올랐다.

65분 넘게 뛰고 구르면서 경기장 곳곳의 잔디가 훼손되었는데, 하필이면 공이 지면에 닿은 부위가 그런 곳이었다.

덕분에 공은 생각보다 높이 떴고, 오솔은 발로는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허벅지로 트래핑을 시도했다.

타악!

그러나 공에 실린 운동 에너지는 그 정도 노력으로 죽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공은 마치 오솔의 허벅지에서 도움닫기 하듯이 크게 떠올라 그의 머리 위로 넘어갔다.

‘이런 젠장!’

오솔은 급히 몸을 돌려 공을 쫓았다. 다행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공을 뺏으러 온 사람도 없었다.

오솔은 공을 따라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리그 데뷔 경기, 그것도 개막전 첫 번째 터치에서 공을 뺏길 뻔했다.

‘저 새끼, 어쩐지 패스의 의도가 불순한데?’

프로 선수는 공만 주고받아도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읽을 수 있었다. 방금의 패스에서 오솔이 느낀 건 배려가 없는 수준을 넘어서, 상대를 괴롭히고자 하는 악의까지 느껴졌다. 패스 직전에 보였던 웃음까지 생각하면 거의 100% 확률로 후자의 경우였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는 패스를 뒤로 돌리는 편이 좋겠지만…….’

드리블과 개인기가 좋지 않은 오솔로서는 혼자서 상대를 돌파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수비수와 일대일로 붙는 상황이 아니라면 돌파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에라 모르겠다.’

오솔은 공을 앞에 두고 짓궂게 웃었다. 그 웃음은 방금 보았던 음펜자의 것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분데스리가에서 펼쳐 보이는 첫 번째 플레이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백패스로 끝낼 수는 없잖아?’

오솔은 공을 잡기 직전, 곧장 슈팅 자세를 잡았다. 수비수는 아직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했고, 골키퍼는 침투해 들어오는 음펜자의 움직임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논스톱으로 간다!’

빗나가면 개쪽이겠지만, 그는 ‘까짓것 넣으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발을 굴렀다.

[어! 슛이에요!]

공은 한 번 튕기고도 아직 힘이 남아서 공중에 떠 있었다. 그곳으로 오솔의 왼발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촤아악-!

말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발등으로 공을 비껴 찬 것이다.

공은 오른쪽으로 강한 회전이 먹힌 채 날아갔다. 덕분에 페널티 에어리어 앞까지는 골대 오른쪽을 노리고 날아가다가 선을 넘으면서 급격하게 왼쪽으로 휘어 들어갔다.

‘으헛! 고, 공이 휜다!’

골키퍼는 갑자기 공의 진로가 바뀌는 바람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본능적으로 공을 따라 몸을 날렸는데, 갑자기 반대로 공이 휜 것이다.

결국 골키퍼는 몸을 날리다 말고 풀썩 쓰러졌다. 그는 넘어진 자세 그대로 누워서 공이 골대를 벗어나기만을 기도했다.

철썩!

그러나 오늘, 뉘른베르크는, 그리고 그곳의 골키퍼는 운이 너무도 안 좋았다. 오솔이 기분 내키는 대로 찬 슛은 골대 한복판으로 파고들었고, 아무런 저항 없이 그물망을 뒤흔들었다.

[꼬오오올!!! 엄청난 골이 터졌습니다!]

현지 캐스터의 목에 핏대가 섰다. 토마스 돌 감독은 만세를 불렀고, 관중들은 천지가 떠나가라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질렀다. 삐딱하게 앉아 있던 구단주마저 아이처럼 기뻐할 만큼 멋진 슛이었다.

유일하게 표정이 굳은 사람은 에밀 음펜자였다. 그는 하얗게 질려서 오솔의 세리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크게 벌린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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