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0화
12장 분데스리가 데뷔
“이봐, 오솔.”
오솔은 누군가의 부름에 귀에서 손을 뗐다. 돌아보니 반쯤 머리가 벗겨진 사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세르게이 바바레즈였다.
“아, 부주장.”
“오솔이라고 불러도 되나?”
“편할 대로 해요. 그냥 이름만 불러도 되고, 성까지 붙여도 되고.”
“잘됐네. ‘오’라고만 부르기는 좀 어색했는데, 그럼 붙여서 부를게.”
“네.”
“감독님이 부르셨어. 같이 가보자고.”
오솔은 대충 무슨 이유인지 짐작하고 있었기에 편안한 표정으로 감독을 만났다.
“내가 두 사람을 같이 부른 이유를 알겠나?”
“여기, 오솔에게 도움을 주라는 뜻 아닙니까?”
“정확하네.”
역시나 튜터링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솔. 여기 세르게이는 경기장에서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경기 외적으로도 타인의 모범이 되는 선수라네. 내 생각에는 두 사람이 같이 다니는 게 리그 적응과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떤가?”
“그래만 준다면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죠.”
“세르게이?”
“저도 상관없습니다.”
“하하하. 아주 좋구먼.”
토마스 돌 감독은 두 사람의 대답에 몹시 흡족해했다.
* * *
그날 이후 오솔과 바바레즈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물론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 게 아니라 훈련장에 출근한 이후에 붙어 지낸다는 의미였다.
“프로 선수라면 모름지기 자기 관리를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해. 몸 상태를 항상 최상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훈련도 게을리해선 안 되지.”
바바레즈는 만 서른넷의 나이에도 풀타임 출장이 가능할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팀에 대한 책임감도 강해서 동료들의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나서서 지적하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말하자면 함부르크의 군기 반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자꾸만 한 사람과 충돌하고 있었다.
“저놈은 또 저러는군!”
바바레즈는 훈련장 한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구석에서 쉬고 있는 에밀 음펜자가 보였다.
다른 이들은 한창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데 그 혼자 그늘에 앉아 한가로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의 의욕마저 뚝뚝 떨어지는 훈련 태도였다.
그러나 음펜자는 주위에서 쏟아지는 아니꼬운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바바레즈가 침이 튀도록 강조한 마무리 훈련을 대충 시늉만 하고 먼저 퇴근한 것이다. 바바레즈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리 팀 전술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저런 식이면 곤란해. 팀에게 민폐일 뿐만 아니라 선수 본인의 연습도 부족해지잖아. 지금 음펜자는 자기 기량을 갉아먹고 있어.”
확실히 이적은 하더라도 개인 연습은 꾸준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컨디션 조절도 되고, 몸 상태도 항상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러면 한창때야 티가 안 나도, 나중에 서른이 넘어서 힘들어져. 프로 선수라면 은퇴하는 그날까지 자기 관리를 놓아선 안 돼.”
“맞는 말이에요.”
오솔은 회귀하고 한 번도 훈련을 빼먹은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몸 상태를 봐서 괜찮다 싶으면 따로 개인 훈련을 진행하면서 능력을 끌어올리려고 애써왔다. 그는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것까지 두 배로 많은 연습을 해온 것이다.
“내가 봤을 때 너는 잠재력이 있어. 지금처럼만 훈련한다면 분데스리가에서 첫손에 꼽히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노력을 게을리하지 마라.”
“네. 새겨들을게요.”
“다만 이건 기억해. 주전이 되고, 열 골, 스무 골을 넣었다고 해서 자만해선 안 된다는 것을. 진짜 시작은 그때부터야.”
전에 말했다시피 에밀 음펜자는 샬케 04에서 뛸 때만 해도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였다. 만일 그때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기량을 가다듬었다면, 그는 어쩌면 분데스리가를 넘어 EPL이나 라리가를 호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녀석의 재능이 특별하다는 건 인정해. 재능 자체만 본다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지. 하지만 저 위에서 놀려면 특별한 재능은 기본이고, 그 위에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져야 해. 그는 지난날의 성공에 취해 그걸 잊은 거야.”
바바레즈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안타까움이 반씩 혼재되어 있었다. 재능의 소중함을 모르고 낭비하는 음펜자에 대한 분노와 그렇게 사라져 가는 재능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저 정도 재능을 썩히다니, 저러고도 프로라고 할 수 있나?’
바바레즈는 스스로를 재능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프로 데뷔도 당시 2부 리그 팀이었던 하노버 96에서 했다.
2부 리그에 뛸 때도 그보다 뛰어난 선수가 많았고, 1부 리그로 올라오고 나서부터는 그보다 못한 선수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남들보다 배 이상 노력해 왔다. 그러한 노력은 1년, 2년이 지나고 다시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건 프로로 데뷔한 지 딱 10년 만인 2000-2001 시즌이었다. 그해 바바레즈는 만 29살의 나이에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오를 수 있었다.
오솔은 바바레즈에게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무려 15년 동안 프로의 무대에서 뛰었던 선수였다. 자기 관리의 노하우나 프로 의식과 훈련 태도 등 모범이 될 만한 것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경기 내적인 부분에서는 딱히 배울 것이 없었으나 확실히 경기 외적으로는 본받을 만한 점이 많았다.
‘내가 진짜 개차반처럼 살긴 했구나. 나름 프로 선수로 10년이나 뛰었는데 어쩜 이렇게 새로운 것들뿐이지?’
바바레즈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오솔은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부족했을지도 모를 부분을 채워 나가며 시즌 준비에 몰두했다.
* * *
“개인 훈련은 피지컬 위주로 하는 건가요?”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훈련이 팀 단위로 치러지거든. 혼자서 연습하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경우는 없지만, 솔직히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그래서 자유 시간에는 주로 피지컬을 가다듬는 거지.”
마침 이탁수 감독의 훈련 성향이 딱 독일식이었다. 덕분에 오솔은 따로 적응할 필요가 없었다.
“남는 시간에 아무 때나 와서 운동해도 되나요?”
“체력 코치님과 상의해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운동해야 할 거야.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항상 선수의 몸 상태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거든.”
오솔은 바바레즈의 충고대로 체력 코치를 만나러 갔다.
“코치님, 개인 훈련으로 달리기 속도를 올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체력 코치, 마르쿠스 귄터는 오솔의 훈련 계획을 듣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달리기 속도를 올리고 싶다고?
“네. 속도에 중점을 둬서 체력 훈련을 하고 싶어요.”
“이런…… 우리가 네게 원하는 역할이 뭔지는 알고 있지? 솔직히 말해서 지금 네게 필요한 건 스피드보다는 점프력 쪽인데…….”
애초에 오솔을 영입한 이유도 가공할 제공권을 활용할 목적이었고, 팀에서 맡은 역할도 타깃형 스트라이커였다.
“제 역할은 잘 알고 있어요. 힘은 몰라도 점프력은 아직도 보완이 필요한 수준이죠. 그걸 부인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스피드 역시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담 얼마나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려는 생각인가?”
“빠르면 이번 시즌이 끝날 때쯤, 어쩌면 다음 시즌까지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르죠.”
“2년이라……. 이건 감독님께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마.”
“잘 좀 말씀해 주세요.”
마르쿠스 귄터는 그 길로 감독을 찾아갔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흐음. 두 종류의 훈련을 병행하는 게 독이 되진 않을까?”
“근육의 피로도만 잘 조절하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자칫 과부하에 걸리기 쉬워서 시즌 중에는 효율을 내기 힘들 겁니다.”
“그럼 일단은 점프력 위주로 훈련 계획을 짜고, 순발력 쪽은 몸 상태를 봐서 추가적으로 훈련하는 것으로 하지. 이 내용은 내가 따로 선수를 불러서 설명할 테니까, 자네는 토마스-팀 닥터-와 상의해서 훈련을 진행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스피드가 빨라진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체력 코치는 선수들의 근육, 폐활량, 반응 속도 등을 파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선수들의 전술적인 움직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 자네는 잘 모르겠군. 오솔은 생각보다 라인에서 움직임이 좋은 선수야. 속도가 빨라지면 골문 앞에서 더 위협적인 선수가 될 걸세.”
“그 정도인가요?”
“필리포 인자기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거야. 지금보다 딱 두 걸음만 더 빨라질 수 있다면, 그는 인자기의 라인 브레이킹을 선보일 수 있을 거야.”
“그건 진짜 굉장하군요. 인자기라니…….”
필리포 인자기는 일명 ‘주워 먹기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로 위치 선정이 뛰어난 선수였다. 특히나 빈 공간을 찾아내고 적절한 순간에 그 공간으로 파고드는 능력이 기가 막혔다. 당연히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는 것에도 능했다.
전성기 시절, 인자기의 라인 브레이킹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리고 전생에 많이 뛰어다니기는 싫고, 그 와중에 골은 많이 넣고 싶었던 오솔 역시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수비수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적진을 향해 뛰어 들어가는 움직임은 동아시아의 인자기라 불릴 정도였다.
토마스 돌 감독은 지근거리에서 오솔을 지켜보면서 그의 침투 타이밍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네. 우리에게는 당장 눈앞에 다가온 시즌이 더 중요해.”
“물론입니다. 점프력 향상에 중점을 두고 훈련 스케줄을 짜겠습니다.”
이후 토마스 돌 감독은 오솔을 불러 달라진 훈련 내용을 전달했다. 오솔은 얌전히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근육이 피곤하지만 않으면 상관없다는 소리잖아. 그럼 문제없겠는데?’
오솔은 타고난 강인함 덕분에 체력 회복 속도가 남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 전생에는 박싱데이를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였다. 그때 같이 뛰었던 동료들은 오솔을 두고 인간 트롤, 검은 머리의 피콜로라며 감탄했었다. 시즌 중이라고 해서 훈련에 차질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 이제 준비는 끝났어.’
이제는 달려 나가는 일만 남았다.
* * *
이후 함부르크는 인터토토컵 3회전 2차전에서 승리했고, 준결승전 1차전에서도 승리해서 기분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오솔은 함부르크에 남아서 훈련에 집중했다. 인터토토컵은 미리 출전 명단에 포함된 선수만 출전할 수 있어서, 그는 팀에 늦게 합류한 탓에 뛸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친선경기에서는 오솔에게 우선적으로 출장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2부 리그 팀과의 친선경기, 두 경기에서 총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그렇게 다가온 8월.
함부르크 SV는 인터토토컵 준결승전 2차전에서 2 대 0으로 승리하여 종합 3 대 0으로 상대를 꺾고 결승전에 올랐다. 그런데 하필이면 결승전 상대로 올라온 팀이 프리메라리가의 강팀, 발렌시아였다.
토마스 돌 감독은 그 즉시 스태프들은 모아서 8월 일정에 관한 회의에 들어갔다. 모두 모여들자 수석 코치 랄프 줌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8월 일정은 다들 알고 계시죠? 혹시나 헷갈릴 수 있으니까 여기 적어놨습니다.”
줌딕 코치는 모두가 알고 있는 기초적인 것부터 확인했다. 보드에 만든 월별 스케줄 표에는 8월 한 달의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9일 - 인터토토컵 결승전 1차전(vs 발렌시아 C.F. 원정)
13일 ? DFB 포칼 64강전(vs 슈투트가르트 키커스, 원정)
18일 ? 리그 1라운드(vs FC 뉘른베르크, 홈)
23일 - 인터토토컵 결승전 2차전(vs 발렌시아 C.F. 홈)
27일 - 리그 2라운드(vs FC 카이저슬라우테른, 홈)
시즌 시작부터 사흘에서 나흘 간격으로 다섯 경기가 쭉 이어지는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빡빡하지는 않았을 텐데, 인터토토컵 경기가 추가된 게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