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58화 (58/213)

 # 58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58화

“후우우. 좋아. 시작해 볼까?”

오솔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대부분의 선수가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다.

‘새로운 이적생인가?’

‘아직 스무 살도 안 됐다고 하던데?’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볼까?’

같은 포지션의 경쟁자들은 물론이고 전혀 상관없는 포지션의 선수들도 모두가 오솔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이들 중에는 세계 선수권 대회를 챙겨 본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결승전까지 진출해서 골을 넣었다는 말만 들은 상태였다.

‘동료들에게 신뢰를 얻을 좋은 기회야.’

오솔은 선수와 감독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자 각오를 다졌다. 회귀 직후 치렀던 입부 테스트에서 했던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그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페널티 에어리어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그보다 한 뼘은 더 큰 수비수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어서 와, 신입.”

“주장이 제 마크맨이군요?”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 말이야. 네가 아르헨티나전에서 뛰는 걸 봤거든.”

오솔의 상대는 주장이자 벨기에의 철벽 수비수 반 바이텐이었다. 큰 키와 커다란 덩치는 이 선수가 얼마나 터프한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오솔은 등 뒤로 느껴지는 묵직한 힘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네마냐 비디치가 떠올렸다. 단순히 어깨만 마주하고 있어도 온몸에 긴장이 감돌았다.

‘역시 위압감이 대단하네.’

196㎝에 96㎏.

반 바이텐은 신체 수치가 200과 100에 근접하는 괴물이었다. 어쩌면 몸싸움 측면만 보면 세계에서 제일 강한 선수일 수도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최대한 힘으로 부딪치는 걸 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솔의 생각은 달랐다.

‘어디 얼마나 강한지 한번 붙어볼까?’

오솔은 자신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분데스리가 정상급 수비수와 몸싸움을 할 수 있다면 이번 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파앙!

때마침 반 더 바르트의 패스가 오솔에게 향했다. 오솔의 오른발에 자연스럽게 안착하는 절묘한 패스였다.

‘역시 패스의 질이 다르다.’

오솔은 작게 감탄했다. 이렇게 좋은 패스는 회귀를 하고 처음 받았다. 패스의 속도나 강도, 회전, 그리고 방향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오솔은 공을 잡은 상태에서 등과 팔을 이용해 반 바이텐과 몸싸움에 들어갔다. 반 바이텐도 힘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반 바이텐을 상대로 몸싸움을 걸다니, 신입생의 패기가 장난이 아닌걸?”

“몸으로 겪어봐야 아는 타입인가? 그렇게 영리하진 못하네.”

주변의 선수들 모두 두 사람의 경합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실전이었다면 재빨리 협력 수비에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신입의 실력을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한편으로는 힘 싸움에서 반 바이텐이 결코 밀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청도 소싸움을 보는 심정으로 마음 편히 구경할 수 있었다.

팟, 파밧!

오솔은 어깨와 등, 양팔을 이용해서 반 바이텐의 접근을 막았다. 반 바이텐은 어떻게든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오솔은 만만치 않은 힘으로 버텨냈다.

오오!

오솔이 제법 오래 버티자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반 바이텐과 힘으로 맞설 수 있는 선수는 함부르크 내에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버티는 게 고작일 뿐, 그 이상 나아갈 수는 없었다. 오솔의 양발은 땅에 단단히 박혀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젠장. 공을 컨트롤할 틈이 없어.’

몸싸움은 씨름이나 유도처럼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수비수는 상대가 제 몸을 가누지 못할 때 공을 뺏는 게 더 쉽고 안전해서 몸싸움을 시도한다. 반대로 공격수는 몸싸움을 통해 상대의 압박을 견디면서 동시에 공을 컨트롤해 내야 했다.

그래야 몸싸움이 의미가 있었다. 지금처럼 버티기만 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럼에도 토마스 돌 감독은 오솔을 보며 빙긋 웃었다.

‘몸싸움을 제대로 익혔어. 무게중심도 낮게 잡았고, 팔도 아주 적절히 쓰고 있어.’

오솔은 체격과 힘에서 열세를 보였음에도 실제 몸싸움 과정에서는 거의 밀리지 않았다. 이는 낮은 자세로 무게중심을 한껏 낮췄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확실히 오솔은 몸싸움을 할 줄 아는 선수였다.

그러나 반 바이텐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는 거구에 걸맞은 괴력을 이용해서 오히려 상대를 위에서부터 찍어 눌렀고, 그로 인해 오솔은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으으.’

오솔로서는 시간이 갈수록 답답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상대에게 공을 뺏기기 직전에 백패스를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돌 감독과 코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오솔이 반 바이텐과의 힘 싸움에서는 졌지만, 저렇게 대등하게 붙을 정도라면 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다.

“정말 대단하네요. 세르게이도 저렇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겁니다. 이 정도면 새로운 옵션으로 효용 가치가 있겠어요.”

“그래. 아직까지 부족한 면이 있지만 장점은 확실한 선수지. 게다가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플레이가 뭔지 잘 알고 있어.”

“투톱에 알맞은 움직임만 보인다면 합격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음……. 그건 조금 더 지켜보자고.”

공은 돌고 돌다가 반 더 바르트의 중거리 슛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공이 밖으로 나간 잠깐 사이, 칼리드 볼라루즈가 반 바이텐의 옆구리를 툭 치며 물었다.

“그렇게까지 전력으로 상대하면 어떻게 해요. 신입생 기죽게.”

“어쩔 수 없었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거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다음 플레이를 허용하고 말았을 거야.”

“진짜 그 정도였어요?”

“응. 움직임이 상당히 좋아. 이제 18살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상대하고 말았지.”

볼라루즈는 반 바이텐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진심으로 저 신입이 위협적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니엘이 긴장할 정도였다고? 맙소사. 그럼 저 녀석의 몸싸움 실력이 리그 톱 수준이라는 뜻이잖아?’

볼라루즈의 경악에 찬 얼굴을 본 반 바이텐이 머리를 긁적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코치는 적당히 봐주라고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될지 모르겠네.”

코치 입장에서는 몸싸움 외에도 패스나 드리블, 슈팅 능력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싶은 게 당연했다. 그래서 반 바이텐에게 살살 봐주면서 하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이따가 너와도 붙게 될 텐데, 그땐 바짝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자칫 잘못하면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몸싸움만은 로이 마카이나 케빈 쿠라니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세상에…….”

상상 이상의 고평가에 볼라루즈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 * *

이후 오솔은 대놓고 힘 싸움을 하는 대신 연계에 힘을 쏟았다. 한 차례 붙고 나서야 반 바이텐의 힘이 한 수 위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힘 싸움을 벗어나도 반 바이텐의 수비는 막강했다. 아까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기본이고, 돌아서지 못하게 손을 쓰거나 틈이 보인다 싶으면 길게 뻗어오는 다리 등 그는 온몸이 흉기였다.

덕분에 오솔은 자신을 상대해야 했던 수비수들의 기분을 한껏 체험하고 있었다.

‘이런……. 방금은 너무 오래 끌다가 뺏기고 말았네.’

오솔의 연계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늦었다. 지난 2년 동안 원톱으로만 뛰느라 공을 잡고 시간을 끄는 게 몸에 완전히 익은 탓이었다.

청송고는 물론이고 청소년 대표팀도 4-3-3을 썼는데, 여기서 원톱은 사실상 주변에 도와주는 선수가 없는 외톨이 신세였다.

만약 뛰어난 동료들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솔이 공을 잡았을 때 동료들이 시의적절하게 빈 공간에 파고들거나 패스를 주고받을 공간을 점유했을 테니까.

그러나 청송고는 물론이고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오솔이 원하는 타이밍에 연계를 하러 오는 선수는 없었다.

이를 수치로 표현하면 세계적인 수준과 비교해서 무려 2초나 느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솔은 저도 모르게 공을 잡고 2초 정도 시간을 끄는 습관이 생기고 말았다.

2초면 반 바이텐이 오솔을 무너뜨리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이대로는 뚫을 수 없어. 조금 더 빠르게, 공이 오기 전에 미리 판단해야 해.’

지금보다 2초는 더 빨리 공을 처리해야 했다. 논스톱으로 패스를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다행히 현재 함부르크가 쓰는 4-3-1-2 전술은 중앙에 공격수들이 밀집된 형태를 취했다. 덕분에 다른 포메이션에 비해 더 빠르고 유기적인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또 그래야 했다.

당장 공격수만 해도 바로 옆에 바바레즈가 있었고, 살짝 처진 위치에는 반 더 바르트가 언제든지 대기하고 있었다. 기다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쪽!”

“나이스 패스!”

이내 오솔은 연습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반 바이텐의 압박 속에서 패스를 성공시켰다. 토마스 돌 감독은 달라진 오솔의 움직임에 눈을 빛냈다.

‘고개를 돌려서 동료를 확인하는 횟수가 늘었어. 그러면서 패스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고.’

그가 확인한 대로였다. 오솔은 자신의 습관을 파악한 직후, 동료의 위치를 더 자주 확인하기 시작했다. 언제 공이 와도 반응할 수 있게 항상 최신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는 것이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는 곧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동료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수비가 어디를 막는지 등을 파악하고 나면 빈 공간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게다가 등 뒤의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 패스를 연결하기 너무 쉬워진다. 수비가 없는 쪽으로 공을 트래핑해서 자유로워진 상태로 패스하면 끝이었다.

파앙!

또다시 패스가 왔다. 오솔은 공을 받으며 생각했다.

‘반 바이텐이 아까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오솔의 패스가 바바레즈나 반 더 바르트에게 향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반 바이텐은 저도 모르게 중앙을 신경 쓰게 되었다. 이러면 공을 측면으로 받았을 때 반응하기 힘들었다.

오솔은 오른발로 공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세웠다. 이니에스타가 자주 선보이는 하프 턴(Half-turn)을 시도한 것이다.

비록 트래핑과 개인기, 드리블 수치가 높지 않아서 조금 버벅거렸으나 어쨌든 상대를 속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그는 순간적으로 노마크가 될 수 있었다.

뒤에 있던 반 바이텐은 오솔이 슈팅을 시도할 때까지 전혀 막을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뒤늦게 발을 들어 올려서 슈팅 경로를 차단하는 것뿐이었다.

이 모든 게 패스를 받기 전에 상대의 위치를 미리 확인한 덕분이었다.

뻐엉-!

오솔의 왼발이 불을 뿜었다. 왼발 숙련도가 낮은 탓에 슛의 정확도가 높지는 않았으나 발등에 제대로 걸리는 아주 강력한 슛이었다.

골키퍼가 손을 뻗어 봤으나 공은 이미 골망에 들어간 후였다.

철썩~

오오!

짝짝짝!

멋진 장면이 나오자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났다. 그중에는 토마스 돌 감독도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결승전에서 넣은 그 골은 우연이 아니었어.’

돌 감독은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오솔이 넣은 두 번째 골을 떠올렸다. 고영주의 슈팅이 골키퍼에 맞고 튕겨져 나온 걸 안면으로 가볍게 넣은 그 골 말이다.

그는 당시 리플레이를 보면서 오솔의 상황 판단력을 보고 감탄했었다. 끊임없이 자신과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는 ‘성실함’은 자연스럽게 영입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

성실함. 그건 성실함이라는 말 외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나와 상대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이는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고선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체력에는 한계가 있어. 무작정 많이 뛰는 것보다는 효율적으로 뛰어야 해. 그러려면 두 다리보다는 두 눈이 더 바삐 움직여야 하지. 물론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고.’

오솔은 지능적인 선수가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보여줬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어쩌면 그는 이미 완성된 선수일지도 모르겠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