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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57화 (57/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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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57화

“하나, 둘!”

함부르크에서의 첫 러닝은 뭐랄까, 군대의 구보 같았다.

주장과 부주장인 반 바이텐과 바바레즈가 앞에서 구령을 선창(先唱)하면 선수들이 뒤따르는 모습이 딱 군대였다.

‘군대라고 해봐야 훈련소에서 4주를 경험한 게 전부긴 하지만 묘하게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단 말이지……. 아까 감독님이 보여준 모습도 그렇고, 선수단 전체가 규율을 중시하는 스타일 같네.’

물론 그 와중에도 즐거운 분위기를 이끄는 선수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왼쪽 수비수인 티모테 아투바 같은 경우가 그랬다. 그는 달리다가 은근슬쩍 앞사람의 등을 콕 찌르고 뒤를 돌아보면 모르는 척하는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러다가 군기 반장인 바바레즈에게 걸리면 괜히 앞사람 핑계를 대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포즈를 취했는데, 이때 짓는 능청맞은 표정이 아주 재밌었다.

“하하하.”

“낄낄.”

아투바 덕분에 훈련 분위기가 한층 즐거워졌다.

토마스 돌 감독은 선수들의 얼굴에 핀 웃음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아주 좋군. 선수들의 몸 상태는 어떤가?”

질문을 받은 체력 코치, 마르쿠스 귄터가 팀 닥터에게 받은 사항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이 정도면 양호합니다. 비행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은 오전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좋아. 몸을 충분히 풀어주도록 하게.”

“네.”

코치진은 선수들의 컨디션 회복에 주력했다.

기존의 선수들은 인터토토컵을 치른 직후였고, 오솔도 먼 거리를 이동해 와서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래선지 오전 훈련은 가벼운 러닝과 서로 패스를 주고받는 훈련이 전부였다.

오솔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었다. 패스를 주고받으며 친해질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오솔의 패스 상대는 일본의 국가대표 선수 나오히로 타카하라였다.

“듣기로는 2년 전에 왔다고 하던데, 독일의 클럽은 어때요? 적응할 만해요?”

“조금요. 저, 사실은 영어를 잘 못 합니다.”

타카하라는 독일어는 조금 해도 영어는 할 줄 몰랐다. 반면 오솔은 독일어를 못했기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빨리 독일어를 배워야겠네.’

전생이었다면 남는 포인트로 단번에 독일어를 마스터할 수 있었을 텐데, 확실히 이런 점은 아쉬웠다.

그래도 공을 주고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손짓 한 번 눈짓 한 번이면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타카하라를 제외하면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이 꽤나 많았다.

그중 가장 친해진 것은 장난기 가득한 측면 수비수 티모테 아투바였다.

이 카메룬 출신의 수비수는 키가 191㎝로 측면 수비수치곤 꽤 큰 편에 속했는데 그러면서도 발재간은 만만치 않게 좋아서 순간적인 페이크에 이은 방향 전환이 일품이었다.

게다가 근육이 유연하면서도 탄탄해서 침투 속도도 빠르고, 후방에서 올려주는 얼리 크로스도 위협적이었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아투바는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스타일이었고, 오솔도 허물없이 지내는 데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그래선지 다가온 점심시간, 둘은 어느새 나란히 붙어서 식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럼 토트넘에서 뛰다가 1년 만에 독일로 온 거야?”

“응. 솔직히 잉글랜드 생활이 너무 힘들더라고. 경기도 많고 날씨도 우중충하고.”

“거기가 경기가 많긴 하지.”

총 20개의 팀이 경합하는 EPL과는 달리 분데스리가는 1부 리그에 18개의 팀만 있었다. 팀으로 봤을 때는 고작 두 팀 차이였지만, 이를 경기로 따지면 네 경기 차이였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EPL은 다른 리그보다 컵 대회가 하나 더 있어서 체력적인 부담이 심했다. 이러한 차이는 박싱데이라고 불리는 크리스마스 주간에 더 크게 드러났다.

EPL은 이 일주일의 기간에 평균 세 경기를 치러야 하는 데 반해 독일 팀들은 평소처럼 일주일에 한 경기만 치르고 이후에는 약 한 달간 겨울 휴식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피로도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고작 한 시즌만 뛰었을 뿐이데도 몸이 망가지는 기분이었어. 경기가 몰려 있어서 개인적으로 적응하기 힘들더라고. 너도 나중에 이적할 때 리그 특성에 대해 고려해 보는 게 좋을 거야.”

“고마워요. 유의할게요.”

오후에는 공격진과 수비진으로 나눠서 전술 훈련을 시작했다.

투톱에는 바바레즈와 라우트, 공격형 미드필더의 자리에 반 더 바르트가 섰고, 그 뒤에는 공을 넘겨주는 선수가 한 명 섰다.

이번 전술 훈련은 중앙에서 공격을 하는 상황을 가정했기에 공격 측에 측면 자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라파엘! 이쪽!”

“바로 연결해 줘!”

공격진은 반 더 바르트를 중심으로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려 노력했다. 그러나 맞서는 이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았다.

수비진에는 왼쪽의 티모테 아투바, 중앙에 반 바이텐과 칼리드 볼라루즈, 오른쪽에는 메디 마다비키아가 섰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라파엘 비키가 자리했다.

중앙이야 워낙에 탄탄해서 걱정거리가 없었으나 아투바는 이번에 영입한 선수였고, 마다비키아는 본래 윙어였기 때문에 좌우의 조직력을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토마스 돌 감독은 오솔에게 다가왔다.

“세르게이의 움직임을 잘 봐둬. 그러면 네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을 거야.”

“네.”

그때부터 오솔의 시선은 대머리 아저씨, 세르게이 바바레즈를 좇았다.

‘과연 움직임이 좋다. 노장은 노장이라 이건가?’

노장임에도 여전히 경기에 출장한다는 것, 그것은 신체의 노화를 뛰어넘은 다른 장점이 있다는 걸 뜻했다.

어떤 이는 그것을 경험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지능이라고 했다. 그러나 토마스 돌 감독은 이를 두고 전술 이해도라고 말하고 싶었다.

“세르게이는 동료를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선수야. 게다가 기술적으로도 완성 단계에 접어든 상태지. 주의 깊게 지켜보면 배울 점이 많을 거야.”

바바레즈는 골대 앞으로 쇄도하기보다는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순간적으로 공을 넘겨받고 새롭게 생긴 공간으로 패스를 연결하는 플레이를 즐겨 했다.

아주 가끔씩은 동료의 패스를 받기 위해 골문으로 쇄도하기도 했는데, 발이 느린 탓에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진 못했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묘하게 오솔과 겹쳤다.

‘왜 지켜보라고 했는지 알겠군. 감독님은 바바레즈를 롤 모델로 삼으라는 거구나.’

흔히 말하는 튜터링이었다. 이는 유소년 선수에게 개인 교사를 지정해서 노장 선수의 노하우와 경험을 이어받도록 하는 방식을 뜻했다.

아마 토마스 돌 감독은 오솔이 아직 18살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르칠 게 많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닫게 해줘야지.’

오솔은 이번 전술 훈련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생각이었다.

주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린 선수이자 키워야 하는 선수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선수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저 정도 수준이라면 나도 충분히 상대할 만해. 기회만 잘 살린다면 단번에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을 거야.’

오솔은 이어서 공격진의 다른 선수들을 관찰했다.

이들은 경쟁자이자 동료들이었다. 그들의 특성을 빠르게 파악할수록 실제 경기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높았다.

바바레즈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벤야민 라우트는 전체적으로 조금씩 부족한 선수였다. 속도도 어중간, 테크닉도 어중간, 심지어 골 결정력 역시 좋지 않았다.

‘패스를 읽는 눈이 느려. 그러니 반응도 늦어질 수밖에 없지. 공을 급하게 받으려니 원래도 안 좋은 트래핑이 더 흔들려서 슈팅 자세가 나빠지는 거야. 그래서 공이 골키퍼 정면으로 흐르는 거지.’

오솔은 단번에 그의 문제점을 알아냈다.

결국은 예측력의 부재가 모든 연쇄 작용의 시발점이었다. 라우트가 패스를 읽는 연습을 게을리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힘들 듯했다.

미리 연습된 패턴으로 공격할 때는 꽤나 위협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겠으나 아마도 거기까지일 것이다.

다음은 에밀 음펜자와 나오히로 타카하라가 호흡을 맞췄다.

‘음……. 얘네는 볼 필요 없겠다.’

에밀 음펜자는 전체적으로 짜증을 많이 냈다. 함부르크 생활에 불만이 많다더니 훈련장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 짜증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음펜자는 빠른 달리기 속도와 빠르고 강력한 슈팅을 장점으로 하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에게 동료와의 연계에 중점을 두는 플레이를 하라고 했으니 답답할 만도 했다.

‘확실히 함부르크의 전술에 맞는 선수는 아니야.’

아무리 좋은 선수라고 해도 전술이 자신과 맞지 않으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법이다.

예를 들어 오솔이 역습 위주의 팀에 들어갔다고 해보자. 발이 느린 오솔은 공격 상황에서 아무 쓸모가 없었다.

반대로 측면 돌파와 크로스를 주력으로 삼는 팀에 가면 오솔은 훨훨 날아다닐 수 있었다.

음펜자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 감독이 공격수에게 바라는 모습은 그의 장점을 전혀 살릴 수 없는 플레이들이었다.

‘이건 공격 전술이 철저하게 반 더 바르트에게 맞춰진 탓이야.’

함부르크의 전술은 AC 밀란식 4-3-1-2 전술이었다.

이 전술은 공격 시 ‘1’의 자리에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이 선수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공격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1’의 자리에 선 반 더 바르트에게 주어진 역할은 간단했다. 투톱과 중앙 미드필더 네 사람에게 보호를 받으며 자유롭게 경기를 풀어가는 것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머지 네 사람이 반 더 바르트 한 사람을 위해 일정 부분 희생해야 했다. 이는 에밀 음펜자처럼 자의식이 강한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젠장! 이따위 공격수를 죽이는 전술에서 뛰어야 하다니!’

에밀 음펜자는 샬케 04에서 뛰었던 세 시즌 동안 에베 산(Ebbe Sand)과 함께 분데스리가 최강의 투톱으로 이름이 높았던 선수였다.

게다가 현재 나이도 만 27세로 슬슬 마지막 도약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 활약하지 않으면 차후 몸값이나 대우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매 순간 짜증이 났다. 더 멋진 플레이와 커리어를 쌓아야 할 시간에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만 해야 한다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음펜자는 회심의 슈팅이 빗나가는 순간 애꿎은 잔디에게 발길질을 날렸다.

‘역시 안 되겠어. 조만간 다른 팀을 알아보든지 해야겠어.’

사실 이것은 음펜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솔을 포함한 함부르크에 있는 모든 공격수에게 심각한 문제였다.

공격수가 골을 만지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그만큼 골 감각이 줄어든다는 걸 뜻했다. 골 감각이 떨어지면 그만큼 득점 횟수도 줄어들게 되고, 덩달아 자신감도 하락한다.

자연스럽게 부진에 빠지게 되고, 자칫하면 리듬을 잃고 긴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의 공격수들조차 공격 전술의 핵심인 메시를 제외하면 모두 한 번씩 무득점 행진을 하곤 했었다.

오솔은 눈썹을 긁적였다.

‘이건 좀 위험할 수도 있겠네.’

이를 자연스럽게 넘기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찬스도 놓치지 않는 강한 집중력과 골 결정력이 필요했다.

‘남은 건 타카하라인가?’

오솔은 일본인 공격수의 움직임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이 답답한 느낌은?’

타카하라는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 나름대로 무언가 해보려 했지만 지켜보고 있으면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윽. 이 감각은 왠지 익숙한데?’

오솔은 한참을 끙끙댄 끝에 마침내 이런 감정을 언제 느꼈는지 떠올렸다.

‘젠장! 뭔가 했더니 그거구나. 올림픽 대표팀에서 뛸 때 느꼈던 기분이었어. 으윽, 그 노답 새끼들을 이끌고 금메달을 딴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심부전이 오네.’

타카하라의 움직임에는 2002년 이전까지 아시아인에게 보였던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군더더기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랬다.

나름대로 전술적인 움직임은 좋았으나 득점 찬스에서 퍼스트 터치가 암울한 수준이었고, 단번에 때려야 할 때 한 박자 늦은 판단을 보이면서 매번 막혔다.

뻔히 보이는 걸 못 하니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이번 올림픽에는 좀 실력 위주로 뽑아야 할 텐데…….’

오솔은 벌써부터 3년 뒤의 대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보나 마나 메달을 노리고 모여든 어중이떠중이로 팀이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그때쯤 가서는 그 혼자서도 우승을 견인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건 그거고 답답해서 속이 터지는 건 또 별개였다.

“다음 오솔. 들어가 봐.”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음펜자와 타카하라의 차례도 끝이 났다. 이번에는 오솔과 바바레즈가 투톱으로 합을 맞추게 되었다.

‘자아,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일단은 주전을 확보하는 것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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