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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50화 (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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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50화

‘하긴…… 델피에로나 토티 같은 스타일이라면 모를까. 타깃형 스트라이커는 그렇게 희소한 편은 아니지. 후우, 이렇게 되면 오후에 만날 스페인 팀들을 기대해봐야 하나?’

오솔은 잠시 머리도 식힐 겸 방으로 돌아갔다. 근 5년 만에 복잡한 계약 문제를 들여다봤더니 머리가 아팠다. 한 30분쯤 단잠을 자고 나면 다시 머리가 쌩쌩 돌아가리라.

그는 문 앞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서성이고 있는 우주원을 만날 수 있었다. 우주원은 아무도 없는 방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오솔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환해졌다.

“어디 갔었어?”

“계약 건으로 구단 관계자들을 좀 만나고 왔어요. 그런데 왜 이 앞에 서 있어요? 설마 저 기다렸어요?”

“왜 아니겠어.”

“진짜요? 왜요?”

“일단은 좀 들어가서 얘기하자.”

우주원은 오솔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이 되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일본 신문으로 포장된 납작하고 네모난 물건이었다. 오솔은 두 눈을 깜빡거렸다.

“이게 뭐예요?”

“그거야.”

우주원의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가는 듯했다.

“예? 그게 뭐예요?”

“……그거라고. 왜 예전에 네가 부탁했던 거 있잖아.”

“그게 무슨…… 헉! 서, 설마 그거예요?”

“으, 응.”

오솔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건’을 잡았다. 우주원의 품에 얼마나 들어있었는지 물건 겉면이 아주 후끈거렸다. 확실히 본질 자체가 뜨거운 물건이었다.

오솔은 물건을 챙기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 들고만 있었다.

“아니, 농담이었는데…….”

“진짜 겨우 구했어. 한번 확인해봐. 네가 부탁했던 그 ‘악키’의 데뷔작이야.”

“화, 확인은 무슨…….”

오솔은 혹시나 해서 신문을 살살 풀었다.

“헉!”

표지에는 얇은 민소매 티 하나만 걸친 여자의 상반신 사진이 걸려있었다. 천만다행은 심한 노출이 없었다. 다만 겉에 적힌 일본어와 ‘악키’의 도발적인 눈빛은 이게 어떤 물건인지 너무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걸 지금 주면 어떻게 해요.”

“혹시나 경기력에 문제가 있을까봐 대회가 끝나고 주는 거야. 어차피 나는 바로 일본으로 돌아가니까 주려면 지금밖에 없잖아. 에휴.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겠네…….”

우주원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실제로 20세 이하 대표팀이 끝나면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긴 했다.

우주원은 다시 일본에서 활동하고, 오솔은 이번 시즌부터 유럽에서 뛰게 될 테니 말이다.

“아니, 야동을 주면서 무슨 그런 분위기를 잡아요? 아오, 진짜 미치겠네.”

물론 오솔은 그런 감상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당장은 손안에 있는 DVD가 문제였다. 게다가 그가 생각하기에 어차피 그와 우주원은 다음 올림픽을 대비하는 23세 이하 대표팀에서 다시 만날 확률이 높았다.

“혹시나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누가 물어봐도 내가 줬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알았지?”

“그건 알겠는데, 무슨 2년 전에 농담으로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냥 문득 생각이 나더라고, 아무튼 그거 주려고 계속 기다렸던 거야. 하하. 이제 좀 마음이 편하다. 우리 점심이나 같이 먹을까?”

“알았어요. 이것 좀 숨기고 가죠. 응? 가만, 이거 표지에 비닐 포장이 없네?”

오솔은 셜록 홈즈에 빙의해서 악키의 데뷔작을 자세히 봤다.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물건을 샀을 때 겉을 포장하는 얇은 비닐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살짝 힘을 줘서 DVD를 개봉했다. ‘따각!’ 소리와 함께 너무도 쉽게 물건이 좌우로 갈라졌다.

내부의 모습은 거의 새것과 다름없었다. 거의…… 즉, 완전히 새것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홈즈는 아니, 오솔은 디스크를 들어 올려 조명에 비췄다. 디스크 끄트머리에 지문으로 의심되는 자국이 미약하게 남아있었다.

만약 지금 확인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자신의 지문으로 착각했을 만큼 희미한 자국이었다.

“왜 그래?”

“뜯어진 포장, 디스크에 미세하게 남아있는 지문……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요?”

“무슨 소리야. 설마 내가 그걸 봤다고 의심하는 거야?”

“전 봤냐고 물은 적이 없는데요?”

“뭐, 뭐?”

“목소리가 떨리고 있네요.”

오솔의 추궁에 우주원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그로서는 설마 이렇게 단번에 들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야레야레. 서른의 노련함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결국 우주원은 DVD를 넘긴 것을 후회하며 소리쳤다.

“크흑! 그래, 내가 봤다! 흑…… 그렇지만 딱 한 번뿐이었어. 과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정말로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서 본 거였단 말이야!”

“…….”

“솔직히 내가 이거 구해온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건물 전체가 야릇한 것들로 가득한 곳에 들어가서 40분 넘게 헤매서 사 온 물건이란 말이야. 난 그래, 난 이 물건을 볼 자격이 있어!”

“아니, 내가 뭐라고 했어요? 왜 이렇게 흥분해요?”

“흑…… 젠장, 다 끝났어. 난 이미 더럽혀졌다고!”

우주원은 팔등을 눈에 가져가 우는 척을 시작했다. 그 뻔히 보이는 수작에 오솔은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에휴. 알았어. 소문 안 낼 테니까 진정해요.”

오솔의 호언장담에 우주원은 우는 척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진짜지?”

“그럼 거짓말이겠어요? 됐고, 이거나 도로 가져가요. 그렇게 좋으면서 여기까진 왜 가져 와서…….”

“조, 좋은 게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이었다니까. 그리고 그건 진짜로 너한테 선물하려고 가져온 거니까 네가 가져.”

“중고품을 선물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어라, 설마?”

“응? 왜?”

“집에 이미 엄청 많다거나 그런 거 아니죠? 하하하!”

오솔은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했으나, 어째 그 말을 들은 우주원의 얼굴은 점점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호, 혼모노냐?”

우주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점심을 먹고 오후에 만난 이들은 스페인 구단 관계자들이었다.

당연하게도 프리메라리가 1, 2위를 다투는 두 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접촉해오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유소년 선수를 영입해서 자기들 입맛대로 키워내는 ‘프린세스메이커’파였다. 이제 곧 19살이 되는 오솔은 그들에게는 별로 매력적인 선수가 아니었고, 공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도 그들의 전술에 맞지 않았다.

유소년을 납치하길 좋아하는 바르샤와는 달리, 레알 마드리드는 이미 완성된 슈퍼스타를 영입하는 쪽이었다. 말하자면 먼치킨을 즐기는 프로 현질러 타입이랄까?

레알은 눈이 너무 높아서 S급 선수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최고의 팀에는 최고의 선수들만 뛰어야 한다는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그렇다고 쳐도 연락을 준 구단이 왜 이렇게 적지?’

이 두 팀을 제외하고도 오솔에게 관심을 보이는 스페인 구단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연락을 해온 곳도 대부분 중위권 팀 몇 곳뿐이었다.

여기에는 총 세 가지 원인이 있었다.

바로 돈, 선수 그리고 이미지였다.

일단 가장 큰 걸림돌은 재정 문제였다. 보다 정확히는 빈익빈 부익부를 가져오는 중계권료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라리가는 특이하게도 중계권료 협상을 리그 차원에서 하는 게 아니라 팀별로 각자 진행한다. 각 팀이 경기를 앞두고 방송사와 협상을 진행하는 형식인 것이다.

덕분에 인기가 많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매년 엄청나게 많은 중계권료를 챙길 수 있었지만 다른 팀들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두 팀이 중계권료로 천억 원을 벌었다고 치면, 다음으로 인기 있는 구단들은 그 1/3 수준만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 밑은 다시 절반 수준을, 그보다 더 인기가 없는 팀들은 다시 그 절반밖에 받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레알과 바르샤를 제외한 팀들은 매년 적자를 기록하게 되고, 늘 재정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라리가는 3·4위권 팀이 아닌 한 이적 자금에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중위권 팀들만 연락해오다니, 이건 예상 밖인데…….’

재정 문제가 아니어도 오솔을 꺼릴 이유는 남아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라리가의 구단들도 엄연히 빅 리그의 팀들이었고, 대부분의 팀이 준수한 대형 공격수를 하나씩은 보유하고 있던 것이다.

일단 상위 10개 팀에 있는 공격수들만 해도 파비아누와 바이아누, 포를란, 밀로세비치 그리고 디에고 트리스탄과 밀리토 등등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다.

‘게다가 하위권 팀들도 날 대하는 태도가 뭔가 이상해. 단순히 내 기술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마침 앞에 앉아있던 레알 소시에다드 관계자가 입을 열어, 오솔의 의심을 해소해줬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 이상은 힘듭니다. 후우. 저도 안타깝지만 구단 수뇌부의 결정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레알 소시에다드 관계자는 오솔을 잡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그도 경기를 직접 본 사람이라 오솔의 잠재력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실은 구단 내부의 반응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바로 직전까지 이청운 선수가 보여준 게 있다 보니…….”

마지막 원인이 방금 드러났다.

이청운.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측면 공격수로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발재간 그리고 멋들어진 프리킥을 찰 줄 아는 선수였다.

그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타으로 2003년 여름,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했으나 벌써 두 시즌 째 벤치를 달구고 있었다.

처음 이적했을 때만 해도 차후에 레알 마드리드에 가고 싶다며 야심 찬 포부를 보였으나, 날이 갈수록 상대에게 분석되고 약점이 노출되면서 부진을 거듭하게 되었다.

물론 완전히 실력 미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유럽의 기후라던가 음식, 분위기 등에 적응하지 못해 컨디션이 떨어진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자면 스페인에 처음 진출한 한국 선수가 철저히 실패한 게 되었다.

무려 400만 유로(50억 원)나 들여서 산 선수가 한순간에 애물단지로 변해버렸으니, 스페인에서 한국인 선수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 없었다.

“아마 다른 구단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스페인 쪽도 꽝이었다.

“이걸 어쩐다. 잉글랜드도 안 되고, 이탈리아에 이어 이제는 스페인도 막혀버렸네…….”

조금은 아쉽지만, 아직 낙담하기는 일렀다. 내일 오전에 만나기로 한 독일 클럽들도 있었고, 세금이나 물가가 좀 세지만 프랑스에서도 그에게 꽤 관심을 보였다.

“그 외로는 네덜란드 정도가 그나마 자금력도 있고, 미래도 있는데…… 아마 거긴 날 안 받아주겠지.”

아직 네덜란드 국민들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오솔이 괜히 계속 숙소에만 갇혀 사는 게 아니었다. 혹시나 혼자 나갔다가 불미스러운 일에 엮일까 봐 알아서 조심하는 것이다. 이런 기류 속에서 오솔에게 접촉할 네덜란드 구단은 없었다.

“일단은 내일 독일과 프랑스 구단들을 쭉 만나보고, 그다음에 결정하자.”

아무리 이적이라는 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이렇게 별다른 소득 없이 하루를 끝내자 괜히 속이 헛헛해지는 기분이었다. 오솔은 방문을 열다가 문득, 방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가방에 눈길이 갔다.

‘그래도 아예 허탕만 친 건 아니구나. 어쨌거나 하나는 건졌네. 흐흐흐. 진짜 웃기는 형이라니까.’

오솔은 가볍게 웃으며 침대에 몸을 날렸다. 처치 곤란한 선물이었으나,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는 가방 깊숙이 넣어놨던 DVD를 슬쩍 꺼냈다. 표지에 있는 여배우의 촌스러운 헤어스타일과 화장이 과거로 돌아왔음을 새삼 깨우쳐줬다.

“어차피 DVD 플레이어도 없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챙겨둘까.”

오솔은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유럽이라…….”

전생보다 무려 3년이나 일찍, 유럽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드 모드라던가 페널티 같은 고난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생보다 몇 배나 빠른 성장을 이뤘다.

축구 선수로서는 탄탄대로가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오솔은 달라진 과거-혹은 현재, 어쩌면 미래-에 기뻐할 틈이 없었다.

“돌아가면 무슨 난리가 날지…… 벌써 걱정이구나.”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오솔이었지만 집에 돌아가는 것만큼은 껄끄러웠다.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과연 어떻게 나올지, 과연 집안에 어떤 난리가 날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람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 나도 죽었다 깨어나서 전생의 잘못을 깨닫고 나서야 변할 수 있었는데…….’

달칵!

오솔이 한창 인상을 쓰고 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본능적으로 이불 안에 집어넣었다.

방에 들어올 사람이야 뻔했다. 룸메이트인 여민국이었다. 오솔은 물건 위로 몸을 올리며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 어디 갔다 와요?”

“그냥 근처 구경하면서 기념품 좀 사 왔지. 그러는 너는, 미팅 잘했어?”

“예.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제안은 없었지만 나름 괜찮았어요. 내일 독일이랑 프랑스 쪽을 만나보려고요.”

“참, 감독님께서 너 찾더라.”

“그래요? 무슨 일이시지?”

“누가 찾아왔다고 그러시던데?”

감독이 찾는다는 말에도 오솔이 미적거리자 여민국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불편하게 누워있어? 어디 안 좋아?”

“예? 아, 아니요. 그냥 스트레칭 좀 하는 중이었어요.”

“참나, 대회 끝났다고 벌써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거냐? 몸이 찌뿌듯하면 근처 공원에서라도 몸을 좀 풀어.”

“그, 그래야죠.”

여민국은 가벼운 타박만 남기고, 잔뜩 사 온 기념품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여민주가 원래 가져왔어야 할 물건을 빼버린 덕분에(?) 공간에 여유가 있었다. 오솔은 그 틈에 DVD를 가방 안에 넣고,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럼 전 감독님 뵙고 올게요.”

“그래.”

오솔은 방문을 나서며 여민국의 가방을 힐끗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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