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9화
10장 계약합시다.
결승전 다음날.
이날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따로 관광하며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
오늘 일 문제로 바쁜 것은 오솔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혼자만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여민국이나 우주원 등도 유수의 구단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다만 이적료 관련 문의는 해당 선수의 소속 구단에 그리고 계약 관련 문의는 선수의 에이전트에게 가고 있었기에 선수는 비교적 신경을 덜 쓰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계약을 끝내면 천천히 에이전트를 구해봐야겠어. 혼자서 이 많은 사람들과 스케줄을 조율하는 건 완전히 중노동이야.’
오솔에게는 변변찮은 핸드폰조차 없어서 더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히 같은 방을 쓰는 여민국이 자신의 것을 쓰라고 빌려줘서 연락에 차질이 없었다.
오솔이 그렇게 그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커피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회색 수염이 드문드문 드러난 중노인이 반갑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오솔 선수. 저번에 인사했던 유벤투스의 스카우트 치로 페레라라고 합니다.”
치로 페레라는 따로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았다. 오솔이 이미 영어에 능통하다고 말해놨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늘 서로의 조건을 확인하고, 조율이 끝나는 대로 구단의 전문 변호사가 계약서를 작성해서 날아올 것이다.
어차피 오솔도 법적 대리인-부모-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계약은 한국에 돌아가서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곧바로 괜찮은 국제 변호사가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오솔은 자신이 비록 영어에 능통하긴 했으나 법률 지식에는 무지했다. 계약 전에는 반드시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야 했다.
“반갑습니다. 오솔입니다.”
아직 이름 앞에 어떠한 수식어도 붙지 않았다. 굳이 붙이자면 한국이나 청송고라는 명칭이 붙겠으나 계약을 앞두고 의미 있는 수식어는 아니었다.
치로 페레라는 오솔의 소개를 듣고 곧바로 숨은 뜻을 알아차렸다. 자신에게는 현재, 소속 구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계약 시 더 좋은 조건을 달라는 거였다.
‘자기의 장점이 뭔지는 알고 있구나. 선배들에게 조언을 들은 것일까? 아니면 혼자 생각했나? 뭐가 되었든 생각보다 야무진 편이군. 하긴 그렇지 않았으면 에이전트도 없이 계약하겠다고 하진 않았겠지.’
치로 페레라는 오솔의 태도에 호감을 느꼈다. 이후에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고, 그는 어째서 자신이 연락했는지 밝히기 시작했다.
“저는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부터 오솔 선수를 지켜봤습니다. 아스날의 센데로스를 압도하는 모습 아주 잘 봤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회를 치르며 점점 더 발전하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치로 페레라는 말을 조심했다. 오솔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네덜란드전이나 아르헨티나전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느라 조금 진땀이 났다.
오솔은 티 나지 않게 시간을 확인하고, 슬슬 본론으로 넘어갔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는 본격적으로 계약 얘기를 해볼까요?”
“좋습니다. 일단 기본 계약서를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치로 페레라는 가방에서 영문으로 된 계약서를 꺼내 보였다. 오솔은 이미 전생에 영어 능력(1급)을 구매해놨기 때문에 기초적인 회화는 물론이고, 읽고 쓰는 것에도 문제가 없었다.
치로 페레라는 계약서를 짚어 보이며, 주요 골자(骨子)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은 2005년 7월 1일부터 2008년 6월 30일까지, 총 3년입니다.”
“계약금은 얼마죠?”
“일단은 40만 유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40만 유로면 5억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지금 오솔의 입장에서는 매우 큰 금액이었으나, 실제 실력이나 시장 평가에 비해서는 조금 적은 편이었다.
“제가 아직 소속사가 없다는 건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원래 자유계약의 경우 계약금 시작 금액은 8만 유로-1억 원-입니다. 40만 유로면 일반적인 경우보다 5배나 더 많은 금액입니다.”
“제가 알기로 존 오비 미켈 선수의 이적료가 1,600만 파운드라고 하던데요? 그 선수, 이번 대회에서 어디까지 올라갔죠?”
1,600만 파운드면 한화로 230억에 이르는 큰돈이었다. 게다가 이 계약은 이미 대회 시작 전인 6월에 체결된 내용이라 대회의 성적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 선수와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존 오비 미켈 선수는 이미 노르웨이의 륀 포트발에서 자신이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저는 이미 스위스와 우크라이나, 네덜란드 같은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골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골을 넣었죠.”
“제가 말한 건 유럽 리그에서 얼마나 적응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알아보니까 지난 2년간 한국에서도 이 시기를 전후로 한 컵 대회만 출전하셨더군요. 초여름 그리고 가을에는 제대로 뛸 수 있겠지만 아직 겨울에도 그만한 기량을 보인다는 보장이 없잖습니까.”
K리그는 봄에 시작해서 초겨울에 끝이 나는 춘추 대회였다. 학교에서 치르는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부상의 위험 때문에 겨울에 대회를 치르는 일은 없다.
반면 유럽은 유소년 리그도 보통 1부 리그와 비슷한 일정대로 진행된다. 유럽의 유망주들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프로리그에 대한 적응력을 기른다.
“그리고 존 오비 미켈을 영입한 곳이 첼시임을 잊어서는 안 되죠. 지금 첼시는 돈을 물 쓰듯이 쓰고 있어요. 존 오비 미켈이 좋은 선수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가치가 1,600만 파운드나 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격차가 너무 큽니다. 그의 몸값이 열 배로 뛰었다고 해도 160만 파운드입니다.”
그러니 나도 계약금으로 23억 원 정도는 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유로로 치면 180만 유로였다.
유벤투스가 처음에 제시했던 40만 유로는 오솔이 보기에 너무 양아치 같은 조건이었다. 오솔은 계약금으로 최대 180만 유로를, 못해도 최소한 120만 유로는 받아내고 싶었다.
“제가 원하는 금액은 이 정도입니다.”
“음…….”
치로 페레라는 십여 초 동안 고민하더니 한숨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오솔 선수에게 제시할 수 있는 계약금의 최대치는 80만 유로가 전부입니다.”
80만 유로면 고작 10억 원에 불과했다. 이는 오솔의 최소 기준치에 5억 원이나 모자란 금액이었다. 오솔이 막 무언가 항의하려 할 때, 치로 페레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대신 주급을 조금 더 올려드리겠습니다.”
“흠. 좋습니다. 그럼 이제 주급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죠.”
계약서에 적혀 있는 주급은 2천 유로였다. 연봉으로 치면 1억 3천만 원 정도였다. 오솔은 계약서를 힐끗 보더니 슬쩍 밀어냈다. 이따위 조건은 거들떠도 보기 싫다는 뜻이었다.
“설마 이 정도 조건을 제시하진 않겠죠?”
“물론입니다. 이건 일반적인 경우고, 오솔 선수는 상황이 좀 다르죠. 현재 1군에서 제일 적게 받는 선수가 4천 유로 정도입니다. 원래는 6천 유로를 제시하려 했으나, 계약금을 줄이는 대신 2천 유로를 더해서. 8천 유로를 드리겠습니다.”
오솔의 미간이 살짝 접혔다. 주급이 2천 유로 올라봐야 1년으로 치면 고작 1억이었다. 3년 계약을 해도 3억 5천 정도였다. 본래 최소 계약금으로 15억 정도를 생각했는데, 이대로 계약을 하면 1억 5천 정도는 손해를 보는 셈이었다.
‘정말로 이 정도가 한계인가?’
게다가 주급도 마음에 안 들었다. 8천 유로면 주급으로 천만 원 정도를 주겠다는 소리다. 연봉으로 치면 5억 2천만 원 정도였다. 계약금이 깎인 걸 감안하면 실제 연봉은 4억 정도였다.
주급 8천 유로…… 이는 오솔을 후보 선수로서 영입하겠다는 뜻이었다.
‘하긴 지금 1군 공격수는 미어터질 지경이니 당연히 후보로 영입할 수밖에 없겠지만…….’
현재 유벤투스는 작년에 영입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주축으로 세계 제일의 공격진을 보유하고 있었다.
주전 경쟁이 얼마나 심한가 하면 즐라탄에 밀려서 ‘판타지스타’ 델 피에로 선수가 벤치에 앉아있을 정도였다.
타깃형 스트라이커인 다비드 트레제게는 제 자리를 지켰지만, 유벤투스의 심장이자 10번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가 벤치 신세가 된 것이다.
그들 외에도 아드리안 무투, 파브리치오 미콜리, 마르셀로 살라예타까지 그야말로 스트라이커의 대풍년이었다.
‘뭐, 이것도 1년만 지나면 끝이지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후, 유벤투스는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인해 전력이 반으로 뚝 떨어지게 된다.
칼치오폴리 스캔들은 구단의 단장인 루치아노 모지의 승부조작이자 여론조작 혐의가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일로 유벤투스는 지난 04/05 시즌과 05/06 시즌의 우승 기록을 박탈당하고, 승점 9점 삭감과 함께 2부 리그로 떨어지게 된다.
이에 월드 클래스 선수들은 유벤투스에 실망하여 떠나가는데, 감독인 파비오 카펠로가 먼저 레알 마드리드로 가고, 수비진의 파비오 칸나바로도 그를 따라간다.
잠브로타와 튀랑은 바르셀로나로, 아드리안 무투는 피오렌티나로 떠나고, 즐라탄과 비에이라는 많고 많은 팀 중에 굳이 인테르로 가서 욕을 먹는다.
그렇게 정확히 1군 멤버의 반이 팀을 떠난다.
‘만약 트레제게까지 나간다면 한 1년 정도는 꾹 참아보겠는데, 걔는 안 나가잖아?’
그의 말처럼 놀랍게도 2부로 떨어지고도 기존의 선수 중에 무려 반이나 팀에 남았고, 그중에는 특급 골잡이이자 오솔의 잠재적인 포지션 경쟁자, 다비드 트레제게도 있었다.
트레제게는 프랑스의 국가대표 공격수인 데다가 은퇴할 때까지 프로에서 445경기를 뛰며 227골을 넣은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이중 유벤투스에서 뛴 기록만 봐도 242경기 138골이었다. 경기당 0.57골씩 넣은 셈이다.
만약 유벤투스로 이적한다면 트레제게가 이적하는 2010년까지는 주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여기로 이적할 생각은 없으니까.’
주급도 불만스럽고, 경쟁자도 강해서 출전 보장도 안 된다. 게다가 이탈리아 리그는 인종차별이 심하기로 유명했다.
‘거기는 흑인 선수에게도 인종차별적인 구호를 부르는 인간들로 가득한 곳이잖아. 내가 가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거야.’
그를 향한 인종차별은 두렵지 않았으나, 차후에 여민주와 가정을 꾸릴 걸 생각하면 이탈리아에 둥지를 트는 게 꺼려진다. 오솔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 제 미래를 보고 영입하는 거 아닌가요? 경기 출장을 보장하지도 못하면서 주급도 겨우 8천 유로에 불과하다고요?”
애초에 갈 마음이 없었음에도 오솔은 계속 협상을 진행했다.
‘그래야 대충 시세를 짐작할 수 있지.’
오솔이 전생에 진출했던 곳은 EPL이 한창 떠오르던 시기의 첼시였다. 시기도 2005년과 2008년으로 3년이나 차이가 났다.
그렇기에 지금은 각 구단이 얼마나 지갑을 열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기 전에 어떤 구단에서 얼마나 줄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후우. 좋습니다. 그럼 1만 유로는 어떻습니까? 이게 우리 구단에서 후보 선수에게 줄 수 있는 최대 금액입니다.”
‘오케이. 후보에게 줄 수 있는 한도는 1,200만 원이구나. 흠, 생각보다 적은데?’
오솔의 생각대로 주급이 다른 리그에 비해 적은 건 사실이었으나 치로 페레라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현재 세리에A는 방만한 경영으로 서서히 자금난이 심각해지고 있었고, 고액 연봉자가 많은 유벤투스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 시즌에는 아스날에서 패트릭 비에이라 선수를 영입할 계획이라 여유 자금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주전 출장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세리에A의 다른 구단으로 임대 보낼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만약 임대를 가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여기에 출장 보너스나, 득점 보너스, 혹은 승리 보너스 등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오솔은 일단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습니다.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새로 작성된 계약서를 좀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잠시 기다려주세요.”
치로 페레라는 바뀐 계약 내용을 팩스로 받아 건네줬다. 오솔은 내용을 다시 한번 눈에 담은 후, 서류 봉투에 담았다. 흥분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치로 페레라는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느꼈다.
‘이거 좀 이상한데…… 분명 아까 협상할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계약할 기세였는데, 지금 표정만 봐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잖아?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군.’
그는 감히 유벤투스를 상대로 짤짤이를 하는 신인 선수가 있을 거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 * *
오솔은 이후에도 다른 세리에A 구단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그중에는 대뜸 돈가방을 보여주며 계약을 하는 즉시 이런 가방을 두 개 더 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물론 계약서를 확인해보면 정작 주급은 형편없이 적은, 양아치 같은 곳이었다.
오솔은 그런 곳은 바로 제치고, 진심을 보이는 구단 몇 곳을 상대로 제대로 줄다리기를 하며 자신의 몸값을 확인했다.
그 결과 대략적인 시장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세리에A 구단은 대체로 이적 기간 3년에 계약금은 80만 유로에서 120만 유로를 제시했고, 주급은 최대로 올린 것이 1만 3천이었다. 1만 3천 유로면 한화로 약 1,600만 원, 연봉으로 치면 8억 3천만 원이다.
‘문제는 이런 곳은 미드필더진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강등권 팀이라는 거지. 여기서 뛰었다간 오히려 내 평가만 떨어질지도 몰라.’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봤다시피 오솔은 아직 혼자서 무언가를 보여주기에 부족한 선수였다. 그가 활약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동료들이 필요했다.
게다가 웬만한 이탈리아 팀에는 적어도 하나씩은 수준급의 타깃맨이 존재해서 오솔을 원하는 중위권 팀도 없었다.
피오렌티나에는 루카 토니가 있었고, 리보르노에는 루카렐리가, 우디네세는 이아퀸타, 키에보는 아마우리, 레체에는 부치니치가 포진한 상태였다.
이미 타깃맨은 포화 상태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