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7화
와아아!
아르헨티나의 그물망이 흔들리자 언제 침묵했냐는 듯 붉은 악마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내내 신음소리만 냈던 중계진도 입에 침이 튀어라 소리를 질러댔다.
[오솔 선수 다시 한번 동점골을 넣었어요!]
[방금은 오솔 선수의 집중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골을 노린 덕분에 득점할 수 있었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시죠!]
[고영주 선수의 슈팅도 아주 좋았어요. 보통 공격수들이 처음 슈팅을 배울 때 저렇게 먼 쪽 골대를 노리라고 배우거든요? 그 이유가 지금 나왔습니다. 먼 쪽으로 차면 골키퍼가 공을 쳐냈을 때, 중앙으로 튕겨져 나오면서 아군 공격수가 재차 골을 노리기 쉽거든요.]
[반대로 가까운 쪽을 노리면 골키퍼가 막았을 때, 골라인 밖으로 나갈 확률이 높죠?]
[그렇습니다!]
[아! 아르헨티나 선수들, 부심에게 오프사이드(Offside)가 아니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경기는 곧바로 재개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수비진이 부심 앞에 모여서 오솔의 위치가 오프사이드가 아니었는지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확인차 다가온 주심에게도 확실히 온사이드였다는 걸 알렸다.
주심은 지난 4강전에서 오솔이 넣은 유령골을 의식하고 신중을 기했으나, 이내 부심의 판단을 존중했다. 부심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이다.
“직전에 눈이 마주쳐서 확실히 기억해요. 분명히 온사이드였어요.”
오솔이 부심을 확인했을 때, 부심도 오솔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래서 자칫 애매할 수도 있었던 판정이 확실해질 수 있었다.
삐이익!
결국 판결에 변동은 없었다. 주심의 손은 센터 마커로 향했고, 한국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 속에 있던 고영주는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 와중에 오솔은 자신의 실패마저 계산에 넣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다. 어쩌면 진짜로 이길 수도 있겠어. 하아. 조금만 더 체력이 남았다면 좋았을 걸…….’
그러나 고영주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최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수 교체입니다.]
[멋진 슈팅을 보여줬던 고영주 선수가 빠지고, 21번 박지호 선수가 들어옵니다.]
한국은 놀라운 골을 넣으며 동점이 되었으나, 곧바로 고영주를 빼면서 초반의 기세를 버리고 수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초의 계획했던 걸 철회하고 비기기 작전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최 감독은 승부차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승패는 반반이라고 봤다.
“하아.”
오솔은 살짝 부르튼 입술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다친 거야 문제가 안됐지만, 공격이 꽉 막힌 지금의 상황이 답답해서 버티기 힘들었다.
‘남은 시간은 약 25분.’
우주원을 비롯한 선수들의 한계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물론 그만큼 아르헨티나 선수들도 지쳤다. 문제는 정작 목표로 삼았던 메시가 아직까지도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메시를 막을 수 있을까?’
이후에 한국의 공격은 네덜란드전처럼 오솔의 포스트 플레이를 활용하는 쪽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오늘은 공격 쪽에 호응해줄 선수가 없었다.
덕분에 오솔이 혼자 공을 간수하며 버티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건 공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을 소유하며 시간을 끄는 행위에 더 가까웠다.
“역시…… 전통적인 9번의 역할 외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야.”
치로 페레라는 메모를 하다 말고 볼펜으로 입술을 톡톡 쳤다. 후반전에 들어서 오솔의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솔은 대형 공격수로서 거의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선수였다. 체격이나 활동량, 헤딩, 슈팅, 포스트 플레이를 하면서 동료와 연계를 하는 능력 등이 두루 뛰어났다.
그러나 그 모든 플레이는 결국 동료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혼자서 상대방을 뭉개버리는 슈퍼 크랙은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게 단점은 될 수 없었다. 그는 적어도 9번의 역할은 충실히 행할 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9번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이러한 한계는 같은 공간에서 뛰고 있는 메시의 존재로 인해 더욱 두드러졌다.
[메시가 다시 공을 잡습니다.]
[이젠 두려울 정도입니다. 지켜보는 저조차 이런데, 우리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메시는 언제나처럼 ‘메시’했다. 측면과 중앙을 자유자재로 돌파하며 한국의 수비진을 유린하고, 틈을 벌리며, 송곳 같은 슈팅을 꽂아 넣었다.
[간신히 빗나갔습니다.]
공은 라인을 벗어났으나 데미지는 계속 쌓였다. 특히 수비수들은 한번 돌파당할 때마다 1년씩 늙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메시를 막는 건 그 정도로 많은 심력을 소모하게 했다.
[지금 보시면 메시 선수도 많이 지쳤어요. 돌파 속도도 그렇고, 슛 정확도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끝까지 집중력을 갖고 방어하다 보면 비기는 것까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후반 71분이 지날 무렵, 메시는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측면 수비수를 앞에 두고 안으로 들어오는 척 한 번 접더니, 공을 중앙의 사발레타에게 건넸다. 그러곤 곧장 수비수 뒤로 돌아들어갔다.
측면 수비수의 시선이 좌측의 메시에게 돌아간 순간, 사발레타의 스루패스가 수비수의 우측으로 빠져나갔다.
수비수는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잃고 메시와 공, 둘 모두를 놓치고 말았다.
메시는 가볍게 공을 받았고, 그의 앞에는 불쌍한 골키퍼가 홀로 서 있었다. 벌써 두 번째로 맞이하는 일대일 찬스였다.
[정선우 선수, 앞으로 나옵니다!]
[각도를 잘 좁혔어요! 이제 수비수들이 빨리 커버를 와줘야 합니다.]
메시는 골키퍼를 앞에 두고도 공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여유를 부렸다. 그 모습이 꼭, 너 따위는 무슨 짓을 해도 내 공을 뺏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다행히 메시는 측면 수비수가 커버를 올 때까지도 돌파를 시도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그는 측면 수비수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다!’
측면 수비수가 다가오자 골키퍼가 살짝 안심하는 동시에 몸을 뒤로 물리려 했다. 메시가 그토록 바랐던 방심의 순간이었다.
메시의 발이 발레리나의 그것처럼 우아하게 움직였다. 측면에서 다가오는 수비수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말이다.
촤르르!
우당탕!
삑! 삑!
[아악!]
메시는 그라운드 위에 쓰러졌고, 주심은 슬라이딩 태클을 걸은 수비수에게 다가가 노란 카드를 꺼내보였다.
다행히 위험한 태클은 아니었다. 공의 아래 부분을 노리고 들어갔기 때문에 메시의 발목에 가해진 충격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벌어진 반칙인 건 확실했다. 그 증거로 주심의 손가락은 페널티 마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조금 지나자 메시가 멀쩡한 얼굴로 일어났다. 애초에 태클이 깊이 들어오는 걸 느끼고 대비한 덕분에 크게 다치지도 않았던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얄미운 모습이었으나, 실제로는 공격 기회를 살리면서 부상도 방지한, 아주 영리한 플레이였다.
[메시 선수가 준비를 하네요.]
[정선우 선수의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페널티 킥을 차는 것도 메시였다. 워낙에 프리킥 등 슈팅 능력이 좋은 선수라 페널티 킥도 그가 전담하고 있었다.
뻥!
메시가 찬 공은 왼쪽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키퍼는 뒤늦게 점프했으나 반응이 워낙 느려서 막을 수 없었다. 보고 막기에는 너무 강한 슛이었다.
그렇게 골이 들어갔다.
메시가 한 차원 높은 선수라고 불리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는 오솔과 다르게 말 그대로 혼자 힘으로 경기를 결정지었다.
[아…… 아르헨티나가 다시 3 대 2로 도망갑니다.]
[상황이 좀 답답하게 되었네요. 지금 후반 들어서 우리나라의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최주혁 감독도 수비로 전환한 것인데…….]
[그런데 방금 실점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시 공격을 해야겠죠?]
[예, 결과적으로는 우주원 선수와 고영주 선수를 뺀 결정이 아쉽게 되었습니다. 물론 두 선수가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으니 다른 수가 없었겠으나…… 하아, 아쉽네요.]
새로 들어온 윙어들은 상대적으로 수비력이 돋보이는 선수들이었다. 공격에서 오솔을 뒷받침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일까, 이후로도 경기는 지지부진(遲遲不進), 나아지질 않았다.
대신 경기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아르헨티나가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시간을 끌었고, 한국팀에서는 오솔 혼자 고군분투(孤軍奮鬪)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후반 80분을 넘어가자 불가능해졌다.
-체력이 50%이하로 떨어집니다. 모든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기어이 오솔에게도 한계가 찾아온 것이다.
‘여기까진가…….’
오솔의 포스트 플레이마저 그 위력이 떨어지자, 한국은 공격을 풀어나갈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기 시작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중계진까지 축 처져있을 수는 없었다. 캐스터는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선수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끝까지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기대 이상의 성적, 그리고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이 선수들은 아직 만 20세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5년 뒤, 10년 뒤가 더 기대되는 선수들인 만큼 더 많이 격려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격려가 안 먹히는 사람도 있었다. 안방에서 TV 중계를 보고 있던 여민주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얼굴 가득 땀으로 범벅이 된 오솔을 보며 두 손을 맞잡았다.
남자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 알고 있었기에 저 모습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됐다. 이 정도면 잘 싸웠다.”
같이 응원 중이던 아버지가 한 마디 하셨다. 애써 아쉬움을 삼키는 말투였다. 아무래도 아들이 뛰는 경기다 보니 감정이입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사실 잘 싸웠다는 평가는 백번 맞는 말이었다. 무려 6개 대륙, 24개국에서 참가한 국제 대회였다. 우승을 못한 건 아쉬웠지만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한 성과였다.
그래, 2등도 잘한 거다. 2등도 잘한 거다.
마침 경기가 87분을 넘어설 때쯤 오솔이 공을 잡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상대를 등진 채 공을 잡고 버텼다. 그 모습을 보고 여민주의 가족들이 한 마디씩 했다.
“쟤, 참 잘한다. 저 애가 우리 민국이 후배라고 하지 않았나?”
“그랬던 것 같아요. 민주야, 맞지?”
“네, 맞아요. 오빠의 칭찬이 자자했어요. 축구도 열심히 잘하고 굉장히 성실하대요. 그뿐만이 아니라 되게 착하고, 완전히 바른생활 사나이래요.”
“……민국이가 그런 말을 했어? 녀석 꼭 여자 친구 자랑하듯이 말을 했네.”
여민주가 한창 오솔의 자랑을 하던 중, 경기 시간이 88분을 넘어서면서 갑자기 변화가 시작되었다. 공을 잡고 어렵사리 버티고만 있던 오솔이 갑작스레 돌아서며 홀로 상대 진영으로 뛰어든 것이다.
[오솔 선수, 빨라요! 한 명 제치고, 두 명!]
마지막 남은 체력을 모두 불태울 작정인지, 오솔은 일시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냈다.
드리블이나 개인기는 여전히 어설펐으나, 힘은 여전했고 움직임 역시 막 경기를 시작한 사람처럼 활발했다.
[대단한 돌파예요!]
갓 쪄낸 시루떡 같은 아르헨티나 선수들로서는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오솔을 막아낼 수 없었다.
경기 막판에 펼쳐진 오솔의 돌파는 그를 한 5초 정도, 메시로 보이게 했다.
[슛까지 가져가야죠!]
오솔이 막 슈팅 자세를 취했을 때였다. 수비형 미드필더 페르난도 가고가 급히 막으려다 오솔의 허벅지 쪽을 걷어차고 말았다.
삑!
오솔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어머!”
“저, 저런 썩을 놈!”
페르난도 가도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심판에게 다가가 두 손을 모으며 고의가 아니었다고 빌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꽤나…….
“쟤는 사내놈이 왜 저렇게 예쁘게 생겼냐?”
그랬다. 잘생기다 못해 예뻐 보일 지경이었다. 여민주의 부모님은 욕을 뱉다 말고 멍하니 가고의 얼굴을 구경(?)했다.
“아빠!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요. 우리 솔이가 다쳤잖아요!”
“너무 놀라서 그랬지. 그리고 그 녀석이라면 멀쩡히 잘 일어났구먼, 뭘…….”
“그런데 민주야. ‘솔이’라니? 저 애랑 아니?”
“으, 응. 오빠 보러 축구부 갔을 때 몇 번 봤다가 친해졌어요.”
“그래?”
어머니의 눈에 의심이 깃들었다. 무언가 추궁이 나올 찰나, 여민주는 잽싸게 말을 돌렸다.
“프, 프리킥 찬다!”
오솔과 여민국 등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잔뜩 몰렸고 키커는 중앙 미드필더가 맡았다.
상대적으로 높이에 강점이 있는 상황이고, 지금은 전문적인 프리 키커가 없었기에 한국은 대놓고 헤딩을 노리는 전술로 갔다.
[올렸습니다! 방향이 좋아요! 자, 오솔!]
[헤디이잉!]
해설자의 교성에 가까운 삑사리와 함께 공이 오솔의 머리에 닿았다. 골키퍼가 펀칭하러 나왔음에도 타고난 위치 선정과 점프력 덕분에 오솔이 먼저 공을 따낸 것이다.
‘이건…… 들어갔다!’
오솔은 직감적으로 골이 들어갔다는 걸 깨달았다. 이어지는 알림창은 그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줬다.
-88분 이후에 총 2골을 넣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스킬 레벨 업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조건부 스킬, ‘극장골의 주인공’이 3 레벨이 됩니다.]
-이제 한 골 차이로 지고 있거나 양 팀 스코어가 동점일 때, 경기 시간이 87분을 넘는 순간부터 모든 능력치가 3씩 상승합니다. 효과는 경기 종료와 함께 사라집니다.
-스킬 레벨 업 조건 : 87분 이후 득점에 성공해 이겼을 경우 Lv 4로 상승합니다. 필요한 총 득점수는 세 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