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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6화 (4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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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6화

하프 타임에 쉬었을 텐데도 선수들의 얼굴에 깃든 피곤함은 전혀 가시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몸의 피로가 가중된 듯 눈 밑으로 그늘이 짙게 깔려 있었다. 잠깐의 휴식으로 일부 체력이 돌아왔으나 언제 다시 방전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교체 카드 3장을 언제 사용할지가 중요해진다. 특히 한국은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교체에 더 신중을 기해야 했다.

최주혁 감독은 선수들이 뛴 거리와 현재 상태를 확인하며 누구를, 언제 교체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7경기 연속 출장 중인 오솔은 멀쩡했다. 문제는 좌우 날개로 뛰는 고영주와 우주원이었다.

‘주원이가 많이 지쳤어. 공수를 오가며 많이 뛴 탓이겠지. 그에 비하면 영주는 아직까진 괜찮은데…….’

최 감독은 그동안 양 윙어의 체력 안배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승패가 굳어졌다고 판단했을 때는 최대한 빨리 교체해서 체력적인 부담을 줄였고, 약팀을 만났을 때에는 둘 중 한 사람만 출장시키는 등 어떻게든 휴식시간을 주려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결승전에 이르자 두 선수 다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쉬운 상황이었으나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원래 4-3-3 포메이션에서 측면 공격수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많이 뛰는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프로팀에서도 이 포지션에는 항상 두 명 이상의 선수를 준비해놓는다.

게다가 두 선수 모두 체력이 그렇게까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런 이들을 평소보다 더 많이 뛰게 했으니, 쌓였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이 당연했다.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다면 대비라도 했을 텐데…….’

최 감독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의 원래 목표는 16강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애초에 작년부터 그 목표에 맞춰서 준비해왔고, 다행히 선수들의 선전 덕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16강에서 우크라이나를 만났고, 생각보다 쉽게 이겼다. 뿐만 아니라 8강에서는 기적의 유령골로 네덜란드를 꺾었고, 4강에서는 모로코를 만났다.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무려 세 경기를 더 치렀고, 결승전까지 치면 무려 네 경기를 더 뛰게 된 셈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으나 포지션 특성상 측면 공격수인 우주원과 고영주는 더 이상 뛰기 힘들었다.

‘교체를 하려면 주원이 먼저 해야 하는데…….’

최 감독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다.

지금 당장 교체해야 하는 건 우주원인데, 그를 빼면 우주원의 크로스에서 오솔의 헤딩으로 이어지는 가장 위력적인 콤비네이션이 사라지고 만다.

이는 원래 생각했던 작전을 더는 수행할 수 없다는 걸 뜻했고, 그것은 곧 상대의 숨통이 트인다는 의미였다.

지금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은 최 감독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선택이었다.

사실 이런 고민은 모든 감독이 겪는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주전과 비주전의 차이는 어느 팀에나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최 감독은 제 때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을 이어갔다.

그 사이 메시가 다시 공을 잡았다.

[또다시 메시입니다!]

[긴장해야죠!]

메시는 생각보다 팔팔했다. 수비를 나머지 10명의 선수에게 맡기고 공격만 한 덕분이었다.

사실 이런 식의 플레이 스타일은 보통, 민폐 짓으로 끝이 난다. 축구는 팀 게임이었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일도 생긴다.

특출 난 한 선수가 혼자서 승부를 결정짓는, 정말 경이롭고도 오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메시, 이번에는 드리블 돌파 대신 패스를 선택합니다.]

메시는 사발레타에게 공을 보낸 후 그대로 달려 나갔다. 그는 이미 수십 번의 연습을 통해 정확한 타이밍에 공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자로 잰 듯한 2 대 1 패스에 고영주는 아무것도 못하고 뚫리고 말았다. 하지만 한국도 그리 허술하지 않았다. 측면 수비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메시의 앞을 막아섰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 이번에는 어디로 오는 거지? 역시 안쪽으로 파고들지 않을까?’

수비수가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메시는 리턴패스를 받는 척, 갑자기 공을 발등에 걸치더니 살짝 튕겼다. 공은 캥거루처럼 튀어 올라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비수의 머리 위를 빙그르르 넘어갔다.

‘위라고?’

수비수의 고개가 위로 들린 사이, 메시는 상대의 몸을 벽 짚듯이 짚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그는 추진력을 얻었고, 수비수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위험한 상황이에요!]

순식간에 메시가 골라인 근처까지 도달했다.

놀란 중앙 수비수가 급히 앞을 막아서고, 측면 수비수도 뒤늦게 따라붙었다. 그렇게 막 두 사람의 협력 수비가 시작되려는 찰나.

툭!

메시의 발을 떠난 공이 중앙 수비수의 가랑이 사이로 향했다. 급히 다가오느라 수비수의 다리가 벌어진 걸 노린 플레이였다.

공은 수비수의 오른쪽 발 안쪽에 맞고 튕겨져 나가, 골라인을 향해 데굴데굴 굴러갔다.

‘제기랄. 코너킥인가?’

수비수가 그렇게 좌절할 때였다. 갑자기 메시가 골라인을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무슨?’

메시의 입장에서 왼쪽은 상대 수비수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고, 오른쪽은 나가지 말라는 듯 흰 줄이 길게 그어져 있었다.

보통은 이 상황에서 골라인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공을 몰고 다니던 습관이 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심리적인 제약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공을 몰고 골라인을 넘어가면 바보 같은 행동이지만, 지금처럼 공을 통과시키고 사람만 골라인을 넘어가는 건 창의적인 돌파 시도였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고, 덕분에 메시는 아무런 방해 없이 빙 돌아서 공을 잡을 수 있었다.

여민국과 또 다른 중앙 수비수는 상대 공격수를 마크하느라 중앙에 몰려 있었기에 지금 메시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악!]

중계하는 캐스터조차 뒷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위급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메시는 그 와중에도 여유가 있었다. 그는 골키퍼가 각도를 좁힌 채 자리를 지키는 걸 보고는 공을 왼발로 툭툭 치며 다시 중앙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놀란 여민국이 마크하고 있던 사발레타를 버리고 메시에게 달려갔다. 그는 사발레타를 노마크로 놓는 편이 메시를 자유롭게 놓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툭!

그러나 메시는 그런 여민국의 판단을 비웃듯이 살짝 찍어 차는 패스로 공을 중앙으로 보냈고, 자유의 몸이 된 사발레타는 온몸을 날려 헤딩슛을 꽂아 넣었다.

[아아…….]

베테랑 아나운서조차 너무 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그렇게 한참동안 감탄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만 흘려보냈다.

와아아아!

메시의 상식을 파괴하는 돌파에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붉은 악마와 교민들이 모인 곳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너무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최 감독은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부터 경기를 포기할 것 같았다.

‘큭!’

저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는지 입 안 가득 비릿한 혈향이 번졌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누구보다 처참한 것은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이었다.

“다들 고개 들어! 숨 고르고! 방금은 어쩔 수 없는 골이었다. 그러니 잊어라! 잊고, 지금의 경기력을 유지하는데 집중해!”

시의적절한 독려였으나 그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다시 재개된 경기에서 우주원은 돌파를 하다가 상대의 발에 걸려 낡은 허수아비 마냥 쓰러졌다. 그러곤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부상은 아니었다. 다만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지금까지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보고 완전히 전의가 꺾인 거겠지.”

치로 페레라는 저 선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메시를 언젠가는 싸워야 할 상대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비슷한 종류의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뛰고 있는 그리고 아직 어린 선수들 입장에서는 그 절망감이 더욱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늦기 전에 교체해야겠군.”

경기 중에 정신력을 회복하는 건 베테랑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불굴의 의지와 남다른 신념을 지닌 선수가 아닌 한 그대로 무너질 뿐이다.

과연 한국팀 벤치가 바빠지더니 우주원 대신 다른 선수가 교체해 들어갔다.

페레라는 반전 영화를 스포일러 당한 사람처럼 허탈해졌다. 이제 한국의 공격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게 분명했다.

물론 메시도 지쳤다. 그러나 이대로 그가 빠진다고 해도 한국팀에서 동점골을 넣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좌측에서 뛰고 있는 고영주도 슬슬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솔아.”

고영주는 자신의 몸 상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5분만 지나면 자신도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내내 수비만 하다가 교체될 수는 없다고, 교체되기 전에 딱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된 공격을 하고 싶다고…….

“언제나처럼 스루 패스를 찔러줘. 남은 체력을 모두 쥐어짜서 반드시 골을 넣어 보이겠어.”

오솔은 고영주의 얼굴에 서린 각오를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내내 보였던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평소처럼 멋들어진 개인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체력이 다한 덕분에 긴장이 풀린 건가?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믿어보자.’

우주원이 빠진 이상, 오솔이 믿을 사람은 고영주뿐이었다. 게다가 각오도 대단했으니 팀 동료로서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우측면을 따라 시작된 빌드업은 측면 돌파와 크로스가 아닌, 중앙의 오솔에게 패스하는 형태로 변했다.

[오솔 선수 잘 버티고 있어요.]

오솔은 네덜란드전에서 선보였던 포스트 플레이를 다시 시작했다.

새로 투입된 오른쪽 날개는 오솔이 내려와서 생긴 공간으로 파고 들어갔고, 그러면서 측면에 생긴 공간으로는 오른쪽 수비수가 오버래핑해서 들어갔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습관처럼 좌측을 방비했다.

한국은 벌써 60분 넘게 한 곳으로만 공격하고 있었던 데다가 상식적으로 새로 들어온 선수를 이용하는 게 당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선수들이 한쪽에 몰려들었을 때, 오솔은 고영주의 모습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했다.

그는 우측으로 패스할 것처럼 상대를 속이고, 곧바로 방향을 전환했다. 시야 정면으로 고영주가 쇄도해 들어가는 모습이 잡혔다.

[아! 반대로 줬어요!]

[고영주 선수가 있습니다!]

[고영주 선수, 후반 들어서…… 아니, 경기 시작하고 거의 처음으로 시도하는 공격입니다!]

고영주는 측면을 따라 빠르게 달렸다. 그러나 드리블을 하면서 달린 탓인지 갈수록 수비수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오솔은 전방으로 침투하며 생각했다.

‘지금은 일부러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거야.’

어쩌면 그가 골대 근처까지 올라오는 걸 기다렸을 수도 있었다. 크로스를 올릴 생각이었다면 말이다.

탓!

수비수가 거의 따라잡은 순간, 갑자기 고영주의 몸이 반전했다. 발뒤꿈치로 공을 돌려세우는 개인기, 힐 찹이었다.

몸에 익을 대로 익은 개인기라 위력이 대단했다. 상대 수비수는 완전히 균형을 잃었고, 고영주는 아무런 방해 없이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메시처럼 반대 발을 쓰는 고영주도 지금처럼 안쪽으로 접고 들어올 때 더 위력적이었다.

‘슛? 패스? 아니, 슛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된 고영주는 그대로 슈팅 자세를 잡았다. 그는 이번 슈팅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부심은 어디에 있지?’

관중은 물론이고,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 심지어 주심까지도 고영주의 발끝에 집중하고 있을 때, 오솔은 홀로 부심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 고영주의 눈빛을 봤을 때 이미 그에게 패스할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서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이는 대신에 수비라인과 자신의 위치 그리고 부심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이것이었다.

‘온사이드(Onside)!’

뻐엉!

오솔은 슈팅 소리를 듣는 즉시 공의 궤도를 확인하며 골문으로 달려 들어갔다.

고영주의 회심의 슈팅은 정석대로 먼 쪽 골대를 노리고 들어갔다. 먼 쪽으로 차는 게 정석인 이유는 곧 드러났다.

타앗!

오스카르 우스타리 골키퍼가 간신히 쳐낸 공이 오솔의 코앞으로 튕겨져 나온 것이다. 오솔은 제대로 머리를 댈 새도 없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투웅!

오솔의 안면에 부딪힌 공은 골키퍼의 허리 위로 가볍게 넘어갔다. 조금 모양은 빠졌지만 골은 골이었다.

[고오오오올!!!]

경기는 다시 원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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