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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5화 (4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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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5화

한국 선수들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공격했다.

수비할 때는 여전히 메시에게 돌파 당하기 일쑤였으나, 공격으로 전환했을 때에는 당한 만큼 되갚아주면서 자신들이 결코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주원의 돌파와 크로스가 돋보였는데, 그동안 꾸준히 출장하면서 기량이 만개한 덕분인지 아르헨티나 선수들도 그를 쉽게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일단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오면 거의 100% 확률로 오솔의 머리에 닿았기 때문에 우주원의 크로스가 더욱더 위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우주원을 비롯한 한국 선수들의 선전은 아르헨티나의 좌측에 선 선수들로 하여금 섣불리 공격에 나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아르헨티나의 공격도 메시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게 되었고, 한국 입장에서는 한쪽 방면만 막으면 되는 상황이라 수비가 한결 수월해졌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메시는 메시였다.

[메시! 공 잡았습니다. 자, 긴장해야죠? 메시, 한 명 제치고, 계속해서 두 명 째 제칩니다.]

메시는 만회골을 넣었을 때처럼 연달아 돌파하려 했으나 득달같이 달려온 여민국의 태클에 바닥을 뒹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잘 끊어줬습니다.]

[우리 선수들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결승전인데도 전혀 겁먹지 않고, 강팀 중에 강팀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어요.]

[슬슬 메시의 돌파에 적응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죠?]

[결국에는 협력 수비를 얼마나 잘 하느냐의 싸움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드리블로 돌파한 직후에는 틈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방금도 여민국 선수가 뚫릴 것을 대비해서 미리 움직였기 때문에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메시의 환상적인 골에도 한국의 수비는 무너지지 않았다.

물론 그가 공을 잡을 때마다 수비진 전체가 휘청거린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을 놓아버린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확실히 메시는 클래스가 다른 선수였다. 그러나 그가 차는 모든 공이 골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경기가 서로 물고 물리는 형태로 변했습니다. 양 팀 다 우측면을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다 보니까 그런 모양새가 된 것 같죠?]

[네, 그렇습니다. 지금 아르헨티나 선수들도 정신이 없을 겁니다. 우주원 선수의 돌파와 크로스, 그리고 오솔 선수의 헤딩이 굉장히 위협적이거든요. 메시의 돌파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라지 않아요.]

[사실 여기서 중계하고 있는 저희도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최주혁 감독이 모두의 허를 제대로 찔렀어요. 이게 바로 전략의 힘이고, 전술의 힘입니다.]

[그 전술들을 멋지게 수행하는 우리 선수들의 저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네, 우리 선수들,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다.’라는 말을 멋지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원래 국가대항전을 중계할 때는 이런 멘트 한 번씩 해줘야 제 맛이었다.

국가대항전은 유일하게 합법적인 편파중계가 가능한 경기 중 하나였다. 게다가 과도한 찬양일색이었으나 그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결승전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공격 전술은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다.

상대를 물러서게 만드는 직접적인 효과도 있었고, 동시에 경기를 관람하러 온 관중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간접적인 효과도 있었다.

한국은 누가 봐도 언더독(Underdog)이고, 상대적으로 약팀이었다. 그들의 명성이나 몸값, 경력은 아르헨티나의 선수들과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국이 수비적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추론이었다. 실제로 한국은 강팀을 만난 모든 경기에서 선 수비 후 역습 체제를 고수했었고, 이번 경기 포메이션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 경기의 양상은 모두의 예상을 완벽히 벗어나 있었다. 웅크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언더독이 탑독(Topdog)을 상대로 제대로 이빨을 세우고 있었다.

약자의 반란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네덜란드 관중들은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으나, 남미와 아시아, 어느 쪽에서 이기든 상관없는 관중들 입장에서는 더 재밌는 경기를 보게 됐으니 나쁠 게 없었다.

“한국의 도박수가 통했군.”

치로 페레라는 재밌게 흘러가는 경기를 지켜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도박수, ‘모 아니면 도.’ 모든 것을 건 운영.

웬만한 담력으로는 선택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특히나 실패하면 엄청난 참패를 당하게 되고, 성공한다 해도 지금처럼 대등한 경기가 펼쳐질 뿐이라면 더욱더 시도하기 꺼려진다.

“선수들을 믿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너무 위험한 결정이었어. 자칫 다섯 골 이상 실점하는 대패(大敗)로 이어질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직접 경기를 뛰어야 했던 선수들에게도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성공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해야겠지.”

한국은 지금 무려 메시가 속해있는 아르헨티나와 대등하게 붙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성공이 아니라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페레라는 순박한 인상의 청년, 메시를 바라봤다.

공을 잡고 내달리는 모습이 꼭 작은 돌풍 같았다.

보면 볼수록 탐이 났다. 그는 고작 18살의 나이에 드리블 돌파와 패스, 위치 선정과 슈팅까지 공격수가 갖춰야 할 모든 기술에 통달해 있었다.

“탐이 나긴 하지만…… 그가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일은 없겠지.”

바르셀로나는 어린 메시를 데려와 매달 천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가며 그의 성장 호르몬 결핍증을 치료했다.

메시는 지금도 169㎝의 단신이었지만, 만약 이때 바르셀로나가 그에게 ‘투자’하지 않았다면 그의 키는 다 자라도 150㎝ 남짓한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물론 바르셀로나가 한 일은 엄연히 ‘투자’였다. 메시에게 그만한 재능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 같은 투자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메시에겐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사건이었다.

사실 이런 사연이 없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바르셀로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단 중 하나였고, 프리메라리가는 물론이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부동(不動)의 우승 후보인 팀이었다.

그곳에 합류하고자 하는 이들은 차고 넘쳤으나, 제 발로 떠나고 싶어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메시의 영입은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페레라의 관심은 다시금 오솔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마침 오솔이 높이 뛰어올라 헤딩을 시도하고 있었다.

“음…… 역시 착각이 아니었어. 이전보다 더 실력이 늘었어.”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좋은 원석(原石)을 발견했다는 흥분에 너무 좋게만 바라보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 것이다. 그러나 오늘로서 확실해졌다.

“대회를 치르면서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어. 이건…… 내 눈으로 봤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군.”

오솔은 조별예선에서 봤던 모습과 네덜란드전의 모습이 달랐고, 네덜란드전과 결승전의 플레이가 또 달랐다. 이전까지는 나이 대비 실력 그리고 성장 가능성이 뛰어난 수준이었다면, 오늘 보여준 모습들은 이미 1군에서 뛰어도 될 만한 수준이었다.

페레라는 수첩을 꺼내 그 안에 적힌 내용을 하나하나 읽었다. ‘오솔(FW)’로 시작하는 메모에는 그의 장점과 단점, 플레이 스타일 등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이제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정보들이지.”

페레라는 곧장 다음 페이지로 넘겨 새롭게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흐흐흐.”

6경기를 지켜보며 적었던 내용들이 휴지 조각이 되었음에도 그는 실실 웃고 있었다.

마냥 원석인 줄 알고 있던 선수가 어느덧 빛을 내고 있었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빛나게 될지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보석이 아직까지 자신들의 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페레라는 어떻게 하면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보석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고민에 빠져들었다.

삑, 삐익!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전반전이 끝났다.

통로로 들어가는 양 팀 선수들의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고작 45분 뛰었을 뿐인데, 일부 선수들은 벌써부터 어깨가 심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빠듯한 일정이라 지쳐 있었는데, 체력 싸움에 들어간 탓에 평소보다 피로가 빨리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한번 바닥을 찍은 체력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다. 하프 타임 동안 휴식을 취해봤자 후반전 10분만 지나면 도로 아미타불이 될 것이다.

다 같이 진흙탕에 들어가자는 최 감독의 작전이 얼추 들어맞은 셈이다.

“일단 바로 보고부터 해야겠군.”

치로 페레라는 구식 폴더폰을 꺼내 들었다. 갱신된 정보를 한 시라도 빨리 구단에 알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선수를 살지도 몰랐다.

그가 속한 리그에서는 비유럽권 선수의 영입 제한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영입 경쟁에 뛰어들기도 전에 손이 묶일 수도 있었다.

“여보세요?”

“감독님 혹시 지금 경기 보고 계십니까?”

“아, 자넨가? 경기야 나도 보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다음 시즌 준비에 바빠서 말이야.”

“전에 제가 보낸 보고서 기억나십니까?

“그 동양인 스트라이커 말이지? 기억나네. 장기적으로 트레제게를 대체할만한 선수라고 적어놨던데, 이건 좀 오버하는 것 아닌가?”

“그 평가들은 모두 잊어주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왜? 오늘 결승전에서 보니 영 아니던가? 그러게 이 사람아,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동양인은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다니까. 딱히 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곳은 인프라부터 리그까지 부족한 것 투성이야. 그런 곳에서는 좋은 선수가 나오기는 힘들지.”

“그게 아니라…… 제가 평가를 잘 못했다는 뜻입니다.”

“응? 그게 그 소리 아닌가?”

“제가 그의 잠재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일전의 보고서는 그를 말도 안 되게 과소평가한 거였어요.”

“과, 과소평가였다고? 그게? 자네 진심인가?”

페레라는 보이지도 않을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벌써 더글라스 파커에게 계약을 제시한 건 아니죠?”

더글라스 파커는 그의 팀에서 노리고 있는 브라질산 플레이 메이커였다. 그렇게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고, 그냥 한번 데려와서 키워볼까 고민하는 정도였다.

“아직이야. 언제쯤 제시할지 그 시기를 재고 있었지. 그런데 정말 그 선수가 그렇게 뛰어난가?”

“우리가 살라예타를 얼마에 데려왔을까요?”

“글쎄. 난 그때 없어서 잘 모르겠네.”

“당시에 75만 유로에 데려왔었습니다.”

75만 유로면 한화로 약 9억 4천만 원에 달했다.

“제가 장담하건대 지금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살라예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는 알 수 없지만 만 18세에 이미 그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는 소리죠.”

“……계속하게.”

“이적료도 없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계약금으로 80만 유로쯤 안겨줘도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엄청나게 헐값에 사는 셈입니다. 그 정도면 거의 공짜라고요!”

“음. 일단은 진정하게. 자네가 그렇게까지 확신한다면 확인할 필요가 있겠군. 나도 바로 경기를 확인할 테니까, 자네는 경기가 끝나는 즉시 접촉하도록 하게.”

“만나서 뭐라고 할까요?”

“자네가 방금 했던 말들을 해주면서 마음에 들었다고 해. 아! 돈 얘기는 미리 꺼내지 말고. 만약 영상을 보고 바로 영입해야겠다는 판단이 들면…….”

치로 페레라는 기대감에 차서 감독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다면 바로 토리노로 불러와야겠지.”

“예! 반드시 마음에 드실 겁니다.”

스카우트에게 두 번째로 기쁜 순간은 지금처럼 자신의 노력이 빛을 발휘하는 때였다. 물론 가장 좋은 순간은 당연히 그 선수가 팀에서 큰 활약을 펼치는 순간이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선수라니…… 이거 갑자기 나도 흥분되는구먼.”

“두고 보십시오. 몇 년 뒤에는 분명 2,300만 유로 이상의 값어치를 할 겁니다.

2,300만 유로(약 290억 원)는 그들이 다비드 트레제게를 모나코에서 사들였을 때 들었던 돈이었다.

“이거 미리 사진부터 찍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 어떤가? 그 선수, 비안코네리가 잘 어울리게 생겼는가?”

“어…… 상당히 남자답고, 터프하게 생겼습니다. 흐음. 예, 그렇습니다.”

내내 칭찬만 쏟아냈던 페레라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가고, 감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축구 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됐지. 생긴 게 뭐가 중요한가. 까짓 거 실력만 받쳐주면 인기는 따라오게 되어있어.”

“그…… 렇죠.”

어째 반응이 떨떠름했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그 즉시 마케팅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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