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3화
9장 머리를 써라!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결승전을 창과 방패의 대결로 예상했다.
아르헨티나에는 메시를 비롯한 걸출한 재능들의 공격 본능이 돋보이는데 반해, 한국은 조별 예선부터 철저한 실리축구, 역습 축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 9골이나 넣은 오솔의 득점력은 놀라웠다. 그러나 리오넬 메시가 보여준 환상적인 움직임은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그래서 모두가 한국이 잔뜩 웅크릴 것으로 예상했다. 진형은 여전히 4-3-3을 유지하되 실질적으로는 4-1-4-1에 가깝게 운영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한국팀을 이끌고 있는 최주혁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 상대는 강하다. 개인기나 드리블 실력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니, 거기서 나오는 공격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겠지.”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라는 강팀을 만났으나 최 감독은 좌절하지 않았다. 이미 조별 예선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좌절을 맛봤었기에 이번에는 그만큼 냉철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브라질전은 다시 생각해도 뼈아픈 패배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시의적절한 예방접종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최 감독은 냉철한 이성으로 상대를 분석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작은 틈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승부의 추는 리오넬 메시를 어떻게 막느냐에 달려있다.”
메시는 2004년-만 17세-에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고 데뷔했다. 구단에서는 그를 호나우지뉴의 뒤를 이을 차세대 판타지스타로 여기고 있었고,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여든 바르셀로나에서도 그는 ‘특별한 재능’이라 여겨지고 있었다.
소위 클래스가 다른 선수였다.
최 감독은 옹기종기 앉아있는 선수들의 얼굴을 한번 돌아본 후, 영상을 틀었다.
“아르헨티나 대 브라질의 4강전 영상이다. 보면 알겠지만 메시는 우측면과 중앙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다. 가끔 가다가 왼쪽으로 자리를 옮길 때도 있지.”
사실상 프리롤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인 포지션은 정해져 있으나 메시는 상황에 맞게 최적의 위치를 찾아 움직였고, 나머지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그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움직임을 보였다.
“터치 라인을 따라 돌파하는 모습을 보면 작은 체구임에도 잘 넘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생각보다 몸싸움도 괜찮고, 균형 감각이 뛰어나지. 무엇보다 몸싸움을 하면서도 공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메시를 막으려면 세 명쯤 연달아서 달라붙거나 반칙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반칙이 아니면 막을 수 없는 선수, 그게 메시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의 돌파가 단순히 사이드를 따라 달리는 원 패턴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최 감독은 멈췄던 영상을 재생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골 장면이다. 측면으로 가는 척 중앙으로 파고들어가는 모션이 보통 자연스러운 게 아니야. 또 왼발잡이라 접고 바로 때리기 때문에 슈팅도 한 박자 이상 빠르지.”
메시의 왼발에 걸린 공이 반대편 골대 아래쪽으로 절묘하게 떨어져 내렸다. 정확도도 뛰어났지만 슈팅 파워도 대단했다. 작은 체구에서 나왔다고 보기 힘든 강슛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죽을상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대책을 알려줄 테니까.”
대책이라는 말에 선수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스페인도, 브라질도 막지 못한 선수를 대체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일단은…… 포기하지 말라는 말부터 하고 싶다. 아마 경기에 들어가면 메시가 있는 우측면, 우리 입장에서는 좌측이겠지. 이곳은 상대에게 끊임없이 공략당할 거다. 안타깝게도 당장은 메시를 막을 방법이 딱히 없다. 지금까지처럼 체계적인 협력 수비로 대항하는 수밖에 없지.”
이 무슨 ‘포기하면 쉬워.’식 결론이란 말인가. 선수들이 황당해하려는 찰나 최 감독의 어조가 바뀌었다. 그의 어투는 아까보다 진취적으로 변했고, 목소리에는 힘이 넘쳐흘렀다.
“그러니까…… 메시에게 돌파당할 각오를 미리 해둬라. 결승전에서 우리는 열 번…… 아니, 어쩌면 스무 번이 넘게 뚫릴지도 모른다.”
어차피 남들도 다 털렸고, 우리도 막을 수 없으니 멘탈이라도 유지하라는 소리였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었다. 진짜 대책은 지금부터였다.
“결승전에서는 최종 수비 라인을 30m까지 올릴 생각이다. 그리고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한다. 절대 상대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지 마라. 우리의 목적은 메시가 미드필드까지 내려와서 공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두 명, 세 명을 연달아 돌파하게 해라. 한 번 공격할 때마다 이 녀석을 무조건 30m 이상 뛰게 해야 한다.”
최 감독은 메시가 출전했던 모든 경기를 분석하던 중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메시의 활동량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뛰면서 할 건 다 한다는 게 문제지만…….’
어쨌든 메시가 조금 뛴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는 남들보다 더 많이 걸었고, 최고 속도로 달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즉, 순간적인 폭발력이 강한 스타일이었다.
이렇게 에너지를 꾹 모았다가 터트리는 타입은 매 공격에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그만큼 막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후반에 접어들면 메시를 막기가 더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머지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은 더 커진다. 메시의 부실한 수비 가담을 나머지 선수들이 분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건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으니 단점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진짜 단점은 바로 작은 체격에 있다.’
폭발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그만큼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메시는 169㎝의 키에 67㎏의 몸무게, 상당히 작은 체구였다.
그렇기에 기본적인 체력 자체가 남들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효율적으로 뛰면서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일정이 빡빡한 대회는 처음이겠지.’
하다못해 월드컵도 기본적으로 4에서 5일의 휴식시간이 보장되는데, 이번 대회는 길어야 4일 휴식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휴식을 취했겠으나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메시는 스페인전과 브라질전을 모두 출장했었다. 이번 결승전까지 생각하면 약 8일 사이에 3경기를 뛰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강행군이었다.
그래서일까?
최 감독은 대회가 지속될수록 메시의 활동량이 점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조별 예선에서는 8~9㎞쯤 뛰었는데 16강, 8강이 되면서 활동량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마침내 브라질 전에서는 7㎞ 초반 대까지 떨어졌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건 그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우리 팀의 장점은 결국 체력이야.’
한국이 다른 강팀들을 상대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 체력이었다. 기술이나 전술은 밀려도 체력만큼은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체력 싸움으로 가려면 이전처럼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같이 뛰고, 압박해서 상대의 입에도 단내가 나오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라인을 올리고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주문했다. 그는 4-1-4-1로 물러서는 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4-3-3을 선보이려 했다.
“이번 경기, 무슨 일이 있어도 체력 싸움으로 끌고 간다. 그러니 한 번의 돌파, 한 골의 실점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마라. 같이 진흙탕을 구르는 게 우리 목표고, 그 와중에 몇 골을 먹히더라도 후퇴는 없다.”
선수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흘렀다. 감독의 의지는 잘 알겠으나 실질적으로 2골 이상 벌어지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아르헨티나 감독이 재밌는 소리를 했더구나. 모두 들어봤지?”
“네…….”
“부정한 방법으로 올라온, 자격이 없는 팀…… 우리가 그런 팀이냐?”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부정의 말이 튀어나왔으나 메아리치듯 두서가 없었다.
최주혁 감독은 선수들의 얼굴을 2초씩 들여다보며 자신의 각오를 전달했다. 그들의 속에 있던 자긍심에 불을 지폈다.
“우리는 결승까지 오면서 정말 많은 팀들을 만났고, 끝내 이겨냈다. 강팀을 만나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경기력만은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그런데 X발, 뭐? 세계의 벽을 느끼게 해준다고? 우리를 상대하는 게 수치스러워?”
팡!
최 감독은 손바닥으로 보드판을 후려쳤다.
“X까라 그래! 지들이 그렇게 잘났어? 지들이 하는 축구가 그렇게 대단해?”
늘 냉철하고 점잖은 모습을 보이던 최 감독의 입에서 욕설이 나왔다. 붉어진 얼굴과 거친 언사, 뜨거운 두 눈은 선수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세계의 벽 따위, 얼마나 높은지 알지 못한다! 그래선지 자꾸만 ‘약팀이니까 수비적으로 가야 한다, 실리 축구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나고 오기가 생긴다!”
드디어 선수들의 눈에도 분노가 어렸다. 아르헨티나, 바르셀로나, 메시라는 이름값에 겁을 먹기보단 모두의 악역이 된 현재 상황에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다. 한 골 먹히면 두 골 넣는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할 생각이다. 여기에 불만 있는 놈 있나?”
“없습니다!”
이번 대답은 스물두 명의 입이 딱딱 맞았다. 깊은 울림이 있는 대답이었다. 선수들 역시 가슴속에 만만치 않은 각오를 새겼음이 분명했다.
“욕심을 가져라. 이왕 결승까지 왔으니,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까지 가는 거다!”
“네!”
욕심을 버리라는 말, 여기까지 왔으니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하자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이들은 겁 없는 10대들이다. 호승심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최 감독은 선수들 면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에 누구보다 불타오르는 오솔이 있었다.
‘결국엔 네가 해줘야 한다. 부탁한다, 솔아. 네 명예를 위해서도, 우리 팀의 명예를 위해서도 한 방 제대로 먹여줘라.’
* * *
시간은 직장인의 주말처럼 빠르게 흘러 어느덧 결승전이 열리는 7월 2일이 되었다.
이날 위트레흐트의 할헌바르트 경기장에는 2만 명이 넘는 관중이 운집해 브라질과 모로코의 3, 4위전을 관람했다.
경기는 브라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관중은 3, 4위전 이후에도 계속 늘어서, 결승전이 시작될 즈음에는 거의 2만 5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다행히 오늘은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결승전을 찾아왔다. 그래선지 한국 선수들을 향한 야유도 한층 줄어들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선발 명단입니다. 골키퍼에 정선우, 수비에 오웅수…… 중원에 여민국 ……마지막으로 공격진에 고영주, 오솔 그리고 우주원이 나옵니다.]
[전형적인 4-3-3 진형이죠? 조별예선부터 강팀이나 대등한 상대를 만날 때마다 꺼내 든 전술입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철저히 막아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아직까지는 어느 누구도-심지어 한국의 중계진까지도- 한국팀이 어떤 각오로 나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다음은 아르헨티나의 선발 명단입니다. 골키퍼에 오스카르 우스타리, 중앙 수비수에 가브리엘 팔레타, 에세키엘 가라이 ……중원은 페르난도 가고와 후안 마누엘 토레스, 그리고 로드리고 아르추비가 맡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주장인 파블로 사발레타가 서고, 투톱은 구스타보 오베르만과 리오넬 메시입니다.]
[조별 예선에서 만났던 브라질과 같은 진형입니다. 4-3-1-2이죠. 전술적인 움직임 자체도 비슷합니다. 투톱 모두가 마치 윙어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며 경기를 풀어가는 형태죠. 다만 브라질과 다른 것은 공격의 핵심이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있는 사발레타 선수가 아니라 18번 리오넬 메시라는 점입니다.]
파블로 사발레타는 나중에 주로 오른쪽 수비수로 뛰게 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며 공수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전술 이해도가 뛰어나고 위치 선정에 능해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메시의 빈자리를 적절히 메워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지만 수비적인 역할을 맡은 셈이다. 피를로를 마크했던 박해진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웠다.
그는 리더십과 카리스마도 대단해서 청소년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그가 맡아야 할 선수는 한국팀의 주장인 여민국이었다.
덕분에 이번 경기에서도 여민국이 후방에서 풀어주기는 힘들어 보였다.
[역시 주의해서 봐야 할 선수는 공격수인 리오넬 메시겠죠?]
[그렇습니다. 바르셀로나 소속이고, 이번 대회 4골로 오솔 선수 다음으로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공격은 사실상 이 선수의 발 끝에 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공은 한국이었다. 오솔은 공을 미드필더에게 보내고 위로 올라갔다.
[우리 선수들, 브라질전의 패배에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겁니다.]
미드필더에게 갔던 공은 다시 전방의 고영주에게 갔고, 그는 삼각형을 그리며 올라가던 오솔에게 논스톱 패스를 찔러줬다.
[엇? 공간이 열렸죠?]
오솔은 골키퍼가 살짝 방심한 틈을 이용해 그대로 슈팅 자세를 가져갔다.
[슛이에요!]
뻐어엉!
골키퍼가 깜짝 놀라 방어 자세를 취했을 땐 벌써 공이 골문 앞까지 다가온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