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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1화 (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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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1화

의도치 않은 방송 사고에 캐스터와 해설자는 할 말을 잃었다.

[드, 등…….]

[하하하. 오솔 선수 정말 패기 넘치는 모습이네요.]

방송을 오래 해서 그런지 역시나 캐스터 쪽이 노련했다. 그는 더듬거리며 ‘등신’을 언급하려는 해설자의 입을 막고,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등신이고 나발이고 아예 못들은 것처럼 행동해.’

캐스터의 의도를 읽은 해설자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축구 선수가 흥분해서 뱉은 말은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걸 자신이 언급했다간 바로 방송사고가 되고 만다.

[그, 그렇습니다. 이 선수 이제 겨우 만으로 18살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19살, 아직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네, 그야말로 무서울 게 없는 10대입니다.]

이후 한국팀의 패스는 자연스럽게 오솔에게 집중됐다. 지금 당장은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며,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공격 루트였다. 다른 선택 사항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오솔은 그러한 아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솔 선수 두 명, 세 명의 압박에서 공을 지켜냅니다! 스루패스! 우주원 달립니다. 빨라요! 그대로 슈우웃! 아! 살짝 높았습니다.]

[기회를 놓친 건 아쉽지만, 지금 흐름은 괜찮거든요? 우리 선수들의 기세가 슬슬 살아나고 있어요. 이 모든 게…….]

[오솔 선수가 든든히 버텨준 덕분이겠죠?]

[그렇습니다!]

오솔이 주는 스루패스는 여민국이 시도했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여민국은 거의 30m가 넘는 장거리 패스를 해야 했다. 반면에 오솔은 10m 남짓 떨어진 곳으로 공을 보내면 되었다.

거리는 겨우 3배 차이였으나 난이도는 못해도 10배 정도 차이가 났다.

게다가 중간에 거쳐야 하는 상대 수비 라인도 2개와 1개로 큰 차이가 있었다. 오솔의 패스가 훨씬 더 위협적인 이유였다.

[아! 네덜란드 벤치가 바빠집니다. 아직 전반전이기 때문에 교체는 아닐 것 같고, 아마도 전술에 변화를 주려는 모양입니다.]

네덜란드 감독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터치라인 근처까지 나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모습을 본 최주혁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덜란드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팔을 뒤로 휘젓는 모습만으로 무슨 지시인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지시가 끝난 후, 네덜란드의 수비라인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오솔의 스루패스를 막아 낼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찾아갔다.

‘5미터…… 아니, 10미터인가?’

거의 센터라인 부근까지 올라와있던 수비진이 약 10m가량 후퇴했다. 이제 상대 수비진은 본인들 진영에서 30m 정도 올라온 형태가 되었다.

“휴우. 이제 좀 살겠네.”

한국팀 수비수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수비 라인이 물러났다는 건 곧 미드필더와 공격수들도 그만큼 내려갔다는 걸 의미했다. 덕분에 지금껏 쉼 없이 상대를 막아야했던 수비수들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하하하!”

치로 페레라는 무릎을 내려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혼자서 전황을 바꿨어. 그야말로 영웅적인 활약이야! 하하!”

두세 명의 선수를 거뜬히 상대하는 오솔의 모습은 그로 하여금 고대의 전쟁 영웅을 떠올리게 했다. 최전선에 서서 무인지경(無人之境)으로 날뛰는 오솔의 모습은 그만큼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저건 이미 동양인의 피지컬이 아니야.’

본래도 피지컬이 뛰어난 건 알고 있었으나, 설마 하니 오늘처럼 무지막지한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힘에 모든 포인트를 몰아넣은 탓이었으나, 시스템의 존재르 모르는 페레라로서는 당최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여기가 마지노선이야. 이 이상 물러나면 답이 없어.”

지금도 오솔의 포스트 플레이에 허덕이는데, 이 상태로 골대 근처까지 간다? 그건 ‘제발 헤딩 좀 해주세요.’라며 애원하는 격이었다.

네덜란드는 오솔의 헤딩 득점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친다는 심정으로 경기에 임해야 했다.

“반면 한국은 ‘조금 더 앞으로, 조금만 더……’를 외치겠지.”

경기는 치로 페레라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오솔을 중심으로 어떻게든 더 전진하려는 한국과 그들을 막아내고자 하는 네덜란드의 혈투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한국 선수들도 마냥 편하기만 한건 아니었다. 오솔이 선전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네덜란드의 공격진 4인방은 호시탐탐 한국팀 골대를 노리고 있었다.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했던 전반전이 끝이 납니다.]

전반전까지 1대1의 스코어가 그대로 갔다.

삐익!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전도 역시나 지루한…… 아니,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스물두 명의 선수가 모두 입에서 단내를 내고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오솔의 상태가 특히 심했다. 내내 두 사람 이상에게 시달린 탓이었다.

얼마나 그라운드를 뒹굴었는지 유니폼은 녹색 얼룩이 잔뜩 묻어있었고, 하도 얻어맞은 덕분에 옆구리나 허벅지 뒤쪽 부분이 살짝 부어 있었다.

사실 이것도 오솔이니까 살짝 부은 수준이었지 남들 같았으면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 법한 타격이었다.

-강인함이 1만큼 상승합니다. 강인함 수치가 91(+5)이 됩니다.

‘이거 맞다 보면 맷집이 강해지는 거였냐? 세상에 무슨 온라인 게임도 아니고…….’

오솔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능력이 올랐으니 좋아야 하는데 자꾸만 몸이 욱신거리는 통에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도 치열하게 붙은 게 영 쓸모없는 짓은 아니었다. 무려 90에 달하는 능력치가 오르기도 했고, 그가 지친 만큼 상대도…….

“헉. 헉.”

그래, 상대팀 선수들도 저렇게 지쳐 있었다. 아마 그들도 온몸이 멍투성이일 것이다. 오솔이라고 그들을 신사처럼 대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후반전 중반에 접어들자 오솔과 내내 부딪쳤던 중앙 수비수들은 물론이고, 다른 네덜란드 선수들도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굼떴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오솔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미소 지었다. 드디어 네덜란드 선수들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도 그들의 몸은 축 늘어져있었다. 마침내 정신력으로도 극복하지 못할 만큼 잔뜩 지친 것이다.

‘어디 이번에도 막아봐라!’

파앙!

오솔의 패스가 좌측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조금은 지친 듯한, 그러나 상대에 비하면 여전히 팔팔한 고영주가 쇄도하고 있었다.

고영주는 매번 중앙으로 꺾어 들어갔던 패턴을 버리고 이번에는 측면을 따라 바깥쪽으로 돌파해 들어갔다. 오솔은 그에 발맞춰 전방으로 뛰어들었다.

‘이제는 기회가 많지 않아. 절대로 놓쳐선 안 돼.’

고영주는 달리는 자세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다. 다행히 수비수가 따라붙기 전에 올려서 중간에 커트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크로스의 질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달리면서 찼다는 점도 문제였으나 무엇보다 고영주의 주발이 오른발이라는 점이 컸다.

익숙지 않은 왼발로 올린 탓에 속도와 정확도, 둘 중 하나는 어설플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부족한 부분은 크로스의 정확도였다.

‘조금 짧다.’

이렇게나 낮은 크로스는 곤란했다. 경합해야 하는 수비수들의 키가 있기 때문에 십중팔구는 앞에서 끊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먼저 잘라먹는 수밖에 없어.’

타탓!

크로스가 짧다는 걸 인지한 순간, 오솔의 이동경로가 급격히 바뀌었다. 중앙 수비수 둘의 뒤쪽으로 돌아가다가 돌연 방향을 바꿔 그들의 앞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파앗!

오솔은 몸을 띄우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골대보다 더 외곽에서 시도하는 헤딩이었다. 공이 제대로 움직여줄지 헤딩 직전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지!’

오솔은 최선을 다해 머리를 틀었다. 공의 힘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방향만 절묘하게 바꾸는 테크닉이었다.

오솔의 머리에 맞은 공은 날아올 때 보다 빠르게 골문으로 향했다.

철썩!

‘큭! 젠장!’

안타깝게도 공은 골대 바깥쪽 그물망을 흔들었다. 오솔의 두 눈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중계하던 캐스터도, 해설자도, 그리고 멀리 한국에서 응원하던 축구팬들조차 탄식을 내뱉을 만한 상황이었다.

[아, 아쉽습니다. 조금만 더 꺾였다면 좋았을 텐데요.]

[크로스가 조금 짧았습니다. 그걸 눈치채고 바깥쪽으로 마중 나가는 움직임까지는 정말 좋았는데요…….]

[어? 뭐죠?]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변이 일어났다. 심판이 대뜸 골을 선언하고 센터 마크에 손가락을 갖다 댄 것이다.

[지금 골을 선언한 것 같죠?]

[골이 맞나요?]

[글쎄요? 분명 옆에 그물에 맞은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공이 골대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어리둥절한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라운드 위에도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갑작스러운 골 선언에 거세게 항의했고, 한국 선수들은 오솔을 따라 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격 당시 반대편 골대에 있었던 우주원은 더욱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솔아, 방금 골 맞아? 옆에 맞지 않았어?”

“닥치고 웃어.”

오솔은 웃는 낯으로 복화술 하듯 입술만 달싹거렸다.

“뭐?”

“우리가 기뻐해야 심판도 자기 판정에 확신을 가질 거 아니야. 실제로 들어갔든 아니든 뭐가 중요해. 골이 선언되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어차피 심판은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판정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없다. 게다가 이미 내린 판정을 번복할 수도 없었다.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판정이었겠지만, 축구란 게 원래 그렇다.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에서도 오심이 일어나는 게 축구였다.

‘내가 신의 손을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심판이 잘 못 본거잖아? 난 거리낄 거 없다고. 흐흐.’

여기서 신의 손이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에서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잉글랜드의 골대에 넣은 첫 번째 득점을 의미했다.

당시 마라도나는 점프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손을 썼고, 공은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핸들링 반칙이었다.

그러나 주심은 골을 선언했다. 놀랍게도 주심도, 부심도 그리고 대기심도 모두가 그 순간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이후 마라도나는 곧바로 골 세리머니를 했고, 주심은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이번 일 역시 명백히 주심의 실수였다.

실상은 골대 옆 그물이 찢어지면서 공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지만, 주심이 골이라고 한 이상 이건 누가 뭐래도 골이었다.

혹시라도 경기가 끝나고 오솔이 책잡힐 일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냥 기뻐하는 게 맞았다. 여기서 괜히 양심을 챙기겠다고 나서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역시 경험치는 오르지 않는구나. 확실히 이번 건 오심이었어.’

시스템 역시 이번 판정을 부정했다. 그러나 골은 인정이 되었고, 한국은 2 대 1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재개된 경기에서 네덜란드 선수들은 역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전반전에 너무 많은 체력을 쏟은 탓에 뒷심이 부족했다.

결국 경기는 오솔의 압도적인 활약과 약간의 운이 따라준 덕분에 한국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한국, 강적 네덜란드를 꺾고 4강에 오릅니다. 우리 후배들이 2002년의 기적을 다시 한번 재현해 냅니다!]

[네,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선수들!]

그날 저녁, 연이어 치러진 이탈리아 대 모로코의 경기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모로코 선수들이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를 꺾고 4강에 올라온 것이다.

운 좋게도 한국의 다음 상대는 힘겹게 올라온 모로코였다. 반대편에서는 브라질과 독일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이 붙어서 각각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4강에 올라갔다.

한국 입장에서는 대진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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