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40화
“왜 그랬어요?”
최주혁 감독의 물음에 이유리는 배시시 웃었다.
“원래 기사는 타이밍이거든요.”
“기사로 쓴 것도 아니잖아요.”
“썼어요.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고 출처를 적어서요. 헤헤.”
즉, 본인이 사진을 흘려놓고 그걸 주워서 기사까지 썼다는 소리였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으나 그럼에도 이유리는 아주 당당했다.
“어차피 8강까지 진출했는데 지들이 어쩌겠어요. 그리고 누가 술 마시고 운전하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니잖아요. 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거지.”
묘하게도 성지훈의 인생이 최 감독의 인터뷰를 따라갔다.
“그것보다 네덜란드를 어떻게 상대할지는 생각해 봤어요?”
“그게…… 만만치가 않네요.”
“네덜란드의 포메이션은 4-4-2겠죠?”
“그럴 겁니다. 투톱과 양 날개가 엄청나게 위력적이니까요. 중원에도 빈틈이 없어요. 기껏 활동량이 많은 선수들로 중앙을 꾸렸는데 상대도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이 출장하거든요.”
특히 나이젤 더 용은 왕성한 활동량과 수준급 몸싸움으로 중원을 장악할 수 있는 선수였다. 자칫하면 중원의 주도권을 완전히 뺏길 가능성도 있었다.
최 감독은 이걸 어떻게 깨트려야 하나 계속 고민했으나 마땅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수비적으로 웅크리기에는 상대의 공격력이 너무 강했다.
‘수비와 공격, 양 쪽에서 밀린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젠 진짜로 선수들을 믿는 수밖에 없나?’
최 감독은 전형적인 분석가 타입이었다.
그는 상대의 전략을 확인하고 적절히 대응을 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카운터 전략으로 경기에 임해왔었다.
조별 예선 2승도 모두 상대의 핵심 선수를 노리거나 전술적인 약점을 노리는 플레이로 얻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브라질전은 달랐다. 아무리 분석하고 약점을 노려봐도 소용없었다. 소위 강팀들은 그렇게 쉽게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한국의 약점이 브라질보다 더 컸다는 말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젠장. 내가 조금 더 능력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전략이나 기상천외한 작전을 수립하는 능력이 전무(全無)했다.
8강, 네덜란드전은 그에게도 그리고 선수들에게도 혹독한 경기가 될 게 분명했다.
* * *
어느덧 시간은 흘러 8강전 당일이 되었다.
오솔은 입장을 기다리며 네덜란드 선수들과 나란히 섰다. 상대편에는 그와 비슷한 키의 선수들이 많았다. 과연 세계 최장신 국가다웠다.
‘남은 포인트는 9개…….’
우크라이나전 직후에 레벨이 하나 더 올라서 현재 레벨이 18까지 올랐다. 상황을 보아하니 이번 대회에서 얻는 경험치로 20레벨까지는 쉽게 오를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걸 어디에 투자하지?’
오솔은 상태창을 확인했다.
-오솔(오른발잡이, 왼발 숙련도 29%)
-신체 : 균형감각 68/ 힘 73(+5)/ 반응속도 65/ 순간속도 62/ 주력 70(31%↓)/ 점프력 60/ 지구력 90(20%↓)/ 강인함 90(+5)
-기술 : 개인기 46/ 드리블 46/ 볼터치 51/ 슈팅 52/ 패스 48(8.6%↓)/ 헤딩 64(6.8%↓)/ 스로인 15/ 태클 35/ 일대일 마크 35
단시간에 꽤 다양한 능력치가 올라간 상황이었다. 특히 개인기처럼 자주 사용한 능력은 2씩 올라 있었다. 아무래도 대회라 경험치 보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상대 포메이션은 4-4-2다. 내가 상대해야 하는 선수는 중앙 수비수 둘이 전부야.’
두 명 중 한 명은 중앙을 지키고 있을 게 뻔했다. 즉, 오솔에게는 기껏해야 한 명밖에 안 붙는다는 소리였다. 탄탄한 수비로 상대의 공격만 잘 막아낸다면, 위협적인 반격을 되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발이 느리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상대는 부담 없이 라인을 올리겠지. 흠…… 주력에 투자해서 수비 뒷공간을 한번 노려볼까?’
오솔은 포인트를 모두 주력에 투자할까 고민했다. 주력을 79까지 올리면 페널티도 덩달아 25%까지 떨어진다. 확실히 투자 대비 효과는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계산을 해보곤 곧장 고개를 저었다. 페널티를 줄였다고 해도 주력 수치는 고작 59에 불과했다. 이 정도 속도로는 상대를 떨쳐낼 수 없었다.
‘지금은 뭔 짓을 해도 속도 경쟁에서 이길 수 없어.’
현재 그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탁월한 위치 선정과 헤딩이었다. 지금 단계에서는 스피드를 올려봐야 이도 저도 안 될 것이다.
‘점프력을 올려서 타점을 조금 더 높게 가져갈까? 아니면 헤딩을 올려서 좀 더 정교한 헤딩을 시도해야 하나?’
오솔은 끊임없이 고개를 저었다. 점프나 헤딩, 모두 부족했다. 9개의 포인트를 써봤자 누군가를 압도하기에는 어정쩡한 수준이었다.
고민을 거듭할수록 그의 선택은 ‘힘’ 하나로 귀결됐다. 현재 지구력과 강인함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는 능력이 힘이었다.
73에 스킬의 효과로 +5가 되어 78까지 올라간 힘은 이미 빅클럽 주전 수준을 웃돌고 있었다. 여기에 9포인트를 모두 투자하면 어떻게 될까?
‘그래, 이제는 정면으로 부딪치고 싸워서 압도하는 수밖에 없어.’
오솔의 의지에 따라 힘 수치가 변하기 시작했다.
74…… 75…… 80…… 81…… 82.
마침내 힘들여 모은 9개의 포인트가 바닥나고, 힘이 82까지 올라갔다. 여기에 스킬의 효과까지 적용되면 힘이 무려 87에 달했다. 이전에도 뛰어났던 힘이 순식간에 빅클럽 핵심 선수급이 된 것이다.
피지컬 괴물이라고 불리는 로멜루 루카쿠, 디디에 드로그바, 아드리아누급은 아니었으나, 그 바로 밑까지는 쫓아왔다고 할 수 있었다.
“후우우.”
오솔은 심호흡과 함께 양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천천히 주먹을 그러쥐었다. 온몸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이거…… 재밌겠는데?”
* * *
와아아아!
경기장 가득, 오렌지색 물결이 치고 있었다. 이날 경기에는 관중이 총 2만 명 가까이 들어왔는데, 이 중 네덜란드인은 전체의 60%에 달했다.
과연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대회다웠다. 선수들을 향해 쏟아지는 응원 세례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 때문일까, 네덜란드 선수들은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그들은 마치 전반전만 뛰고 그만둘 사람들처럼 뛰어다녔다.
퍽! 퍼퍽!
“크윽!”
한국 선수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넘어지며 부침을 겪었다. 1만 명이 넘는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네덜란드 선수를 상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영주를 비롯한 주축 선수들은 거의 일주일가량 휴식을 취한 덕분에 체력적으로 밀리지는 않았으나, 기세 자체는 상대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최 감독은 삐죽 자란 턱수염을 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큰일이야. 초반부터 너무 밀리고 있어.’
걱정했던 중원은 물론이고 경기장 전역에서 정신없이 밀리고 있었다. 상대가 얼마나 오래 몰아칠지는 모르겠지만 기세가 무척 매서웠다.
‘조금만 더 버텨라. 아무리 강한 팀이라고 해도 10분이 넘어가도록 계속 공격하는 건 불가능해. 잘만 버티면 공격 턴은 우리에게 넘어온다.’
“마크할 선수 놓치지 마! 정신 차려!”
“왼쪽 간다! 뒤에 조심!”
한국팀은 무려 8분이나 이어진 상대의 첫 번째 파도(wave)를 멋지게 막아냈다.
여민국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댄 데다가 경기 초반이라 네덜란드 선수의 호흡이 조금씩 어긋난 덕분이었다.
어쨌든 이제 한국이 공격에 나설 차례였다. 여민국은 후방에서 공을 돌리며 어떻게 빌드업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었다.
‘중원의 압박이 너무 강해. 어설프게 패스했다간 금방 공을 뺏길 것 같아.’
네덜란드는 수비라인을 바짝 끌어올려서 공격과 수비의 간격을 무척 좁게 설정한 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수비 뒷공간을 공략당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반대로 중원에서의 압박을 가하기는 훨씬 좋았다. 또한 수비진이 공격에 가담하는 것도 그만큼 수월했다.
‘영주나 주원이 쪽으로 단번에 갈까? 수비 뒷공간으로 잘만 연결되면 득점 찬스까지 잡을 수 있는데…….’
성공적인 스루패스와 라인 브래이킹이 몇 번만 반복되면 상대도 수비진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상대의 파상공세도 그만큼 약해질 것이다.
여민국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며 스루패스를 찔러 넣었다. 그런데 중간에 누군가 발을 뻗어 공을 가로채갔다. 중원의 눈치 빠른 미드필더 나이젤 더 용이었다.
“이렇게 어설픈 패스로는 안 되지.”
그는 여민국의 눈동자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귀신같이 포착해서 미리 패스의 길목을 장악했다.
여민국은 몇 번이고 상대 뒷공간을 노렸으나 나이젤 더 용에게 막히거나 혹은 상대의 장신 수비수들에게 끊기길 반복했다.
‘이런…… 패스 코스를 모두 읽히고 있어.’
상대라고 어찌 자신들의 약점을 모르겠는가. 그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되었기에 자신만만하게 라인을 올린 것이었다.
‘네덜란드쯤 되면 이 정도는 당연하다 이건가? 제기랄, 패스가 조금만 더 정교했더라면 뚫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직 여민국에게는 멀리 보는 시야를 뒷받침할 패스 능력이 부족했다. 그는 2년 전부터 조금씩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익혔으나 1차 수비와 커버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장거리 패스를 가다듬을 시간이 부족했다.
상대방 신장을 살짝 넘기면서 동시에 같은 편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로 공을 보내는 건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했다. 단시간에 익히기는 힘들었다.
결국 패스가 실패한 만큼 상대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고, 끊임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한국 수비진에도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전반 17분, 아펠라이의 중앙 돌파에 이은 스루패스가 측면의 라이언 바벌에게 닿았다.
바벌은 준족을 과시하듯 내달리더니 강력한 슈팅으로 단번에 골망을 가로질렀다.
[골! 아…… 골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확실히 자국에서 치르는 대회다 보니 네덜란드 선수들의 파이팅이 대단하네요.]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시죠.]
[아펠라이 선수 진짜 날카롭네요. 여민국 선수가 패스를 위해 살짝 올라간 그 틈으로 파고들었어요. 이때 보시면 순간적으로 공수의 숫자가 대등해졌죠?]
이래서 수비형 미드필더는 첫 번째도 안정감이요, 두 번째도 안정감이었다. 안드레아 피를로나 마이클 캐릭처럼 정교한 중장거리 패스 실력이 없다면 짧게, 짧게 차주는 편이 나았다.
최주혁 감독은 터치라인에 바짝 다가갔다.
‘더 이상 도전적인 패스를 계속하는 건 위험해. 일단은 공을 소유하면서 숨을 돌려야 한다.’
이대로 갔다간 수비진이 완전히 붕괴될지도 몰랐다. 다른 무엇보다 계속해서 패스 미스를 하고 있는 여민국의 멘탈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여민국에게 안정적인 패스 위주로 게임을 진행할 것을 당부했다. 당장은 상대 수비라인을 뒤로 물리는 것보다 수비에 안정감을 찾는 게 중요했다.
아쉽지만 네덜란드전에선 여민국을 공격적으로 써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스위스전 때처럼 영주를 밑으로 내려오게 해서 공격을 풀어가야 하나?’
일단 중앙에서 공격을 풀어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중원에서 나이젤 더 용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 중앙만 갔다 하면 상대에게 공을 뺏기기 일쑤였던 것이다.
‘으음…….’
최 감독은 겉으로는 평점심을 유지하는 척했으나 내심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의 머리로는 지금 상황을 이겨낼 만한 전술적 변화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상대 수비진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던 오솔이 조금씩 중원으로 내려왔다. 물론 완전히 미드필더 위치까지 내려온 것은 아니었으나 대충 1.5선까지는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패스해!”
중앙에서 나이젤 더 용에게 탈탈 털리고 있던 미드필더 입장에서는 구명줄이나 다름없는 등장이었다. 게다가 한국은 아직도 마수걸이 슈팅을 시도하지 못했다. 기껏 전진한 볼을 후방으로 다시 돌리는 것보다는 일단은 한 번이라도 슈팅까지 가져갈 필요가 있었다.
파앙!
공은 오솔을 향해 반듯이 굴러갔다. 뒤에 따라붙은 수비수는 그가 돌아서지 못하도록 단단히 준비했다.
모두의 시선이 오솔에게 모였다.
‘드리블이나 개인기가 높았으면 상대를 속이고 돌파했겠지만…….’
그러나 오솔의 장점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공을 잡고 가만히 버텼다. 수비수는 그런 그를 밀어내려 했으나 오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버틴다. 버티고 만다. 우리 팀 선수들이 올라올 때까지, 상대의 빈틈이 생기는 순간까지…….’
나이젤 더 용이 깜짝 놀라 내려왔다. 오솔은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두 사람을 자신의 등 뒤로 몰았다. 그리곤 두 사람의 힘을 그대로 버텼다.
팍! 파박!
팔이 겨드랑이 아래로 파고들고, 기다란 다리가 끊임없이 공을 노렸다. 그럼에도 오솔이 물러나지 않자 팔꿈치가 옆구리에 박히고, 무릎이 허벅지 뒤를 찍었다. 그러나 오솔은 한 치의 틈도 내주지 않았다.
“맙소사! 저런 포스트 플레이라니! 정말이지 경이로운 피지컬이로군!”
치로 페레라는 네덜란드 선수 두 사람을 상대로 공을 지켜내는 오솔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포스트 플레이(post play).
상대 진영에서 ‘기둥’처럼 우뚝 서서 공을 지키는……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두 명, 세 명이 달라붙게 해서 빈틈을 이끌어내고, 그 빈틈으로 아군이 파고들 때 패스 연계까지 하는…….
포스트 플레이는 그야말로 타깃형 스트라이커의 기본이자 전부였다.
“겨우 이게 다냐?”
오솔은 두 사람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휙 돌아섰다. 존 오비 미켈 식 ‘등지고 딱딱’이 나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뭇 달랐다.
우당탕!
낑낑대며 달라붙어있던 네덜란드 선수 둘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넘어지고 만 것이다.
순식간에 자유의 몸이 된 오솔은 공을 향해 큼직한 걸음을 옮겼다.
뻐어엉!
거의 32m가 넘는 거리에서 찬 중거리 슛이었다. 그것도 방금까지 치열한 몸싸움을 하다가 겨우 두 걸음 내딛고 찬…….
그러나 누가 저 슈팅을 보고 비웃을 수 있을까.
빨랫줄처럼 흰 선이 그어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슈팅을 보고 감히 누가.
철썩!
[골! 골이에요. 오소올, 컥! 쿨럭! 오, 오솔 선수, 기가 막힌 중거리 슛이었습니다!]
오솔은 양팔을 넓게 들어 올리고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그 모습이 흡사 거칠게 포효하는 맹수와도 같았다. 바짝 달라붙은 카메라를 통해 오솔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죽었어! 씨바, 내가 바로 등신(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