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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38화 (3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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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38화

축구에는…… 아니, 모든 스포츠에는 분위기라는 게 있다. 단순히 전광판만을 보고 ‘2 대 2니까 대등하다.’라고 말하기 힘든, 그런 묘한 기세가 있다.

흔히 말하는 상승기류를 타는 팀은 번뜩이는 플레이가 평소보다 더 잘 나오며 쉽게 지치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뛰면서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지금 한국팀이 그랬다.

최주혁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기세를 탔어.’

한국팀은 이미 상승기류에 올라탄 상태였다. 동점을 기록한데다가 여민국은 미켈과 비등비등한 수준으로 붙고 있었다.

반면 나이지리아는 손발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뻔한 패스조차 서로의 호흡이 맞지 않아 놓치곤 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자 슬슬 나이지리아 측 벤치가 바빠졌다. 자신들의 공격 패턴은 막혔는데 상대는 여전히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이고 있다. 이럴 때는 선택을 해야 한다. 새로운 공격 패턴을 꺼내든지 아니면…….

‘수비형 미드필더를 넣는구나. 중원을 두텁게 가져가면서 수비에 집중하려는 속셈이야.’

최 감독은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리기 위해 괜히 코를 긁는 척했다. 이 상황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넣는다는 건 공격할 의지가 없다는 소리였다.

‘다음 상대가 스위스라 그런 선택을 한 모양인데…….’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한국은 1승 1무가 되고, 나이지리아는 2무가 된다. 그런데 다음 경기에서 나이지리아가 상대해야 하는 팀은 스위스였고, 한국이 만나는 상대는 브라질이었다.

여기서 나이지리아가 스위스를 이기고, 한국이 브라질에게 진다면 나이지리아가 1승 2무로 한국을 제치고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기회가 오면 골을 넣고, 최소한 비기는 작전으로 가려는 거로군.’

나이지리아는 좌우 날개를 뒤로 물리며 진영을 4-5-1로 변환했다. 여전히 미켈이 앞으로 나와 있었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내려온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미켈을 자유롭게 놔둘 수는 없지.’

최 감독은 공이 밖으로 나간 사이에 여민국에게 달라진 작전을 전달했다.

밀착 마크.

상대가 어디로 움직이든 계속 따라붙으며 귀찮게 하라는 지시였다.

“안녕. 우리 아까 하던 거 계속 할까?”

“젠장. 그만 좀 떨어져라!”

미켈은 어떻게든 여민국을 떨쳐내려 했고, 여민국은 결코 미켈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 에이스를 막아낸 효과는 바로 체감되었다. 나이지리아의 공격이 좌우 측면 돌파로 단순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빠르다고는 하나 개개인의 기량에 의존할 뿐, 팀원 간에 콤비네이션을 활용하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혼자 시도하는 돌파는 두 사람 이상이 펼치는 협력수비에 너무도 쉽게 막혔다.

[우리 선수들, 철벽 수비를 보여줍니다!]

이쯤하면 서로 2 대 1 패스라도 주고받을만한데 이들은 끝까지 개인플레이에 집중했다.

미켈이 있었을 때는 그렇게도 무섭던 이들이 순식간에 오합지졸이 되고 만 것이다. 그동안 미켈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맡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내가 나서야 해.’

미켈은 아까보다 더 조급해져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니었다. 여민국을 떨쳐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공을 잡기만 하면 절대 안 뺏길 자신이 있는데…….’

미드필드 지역은 사방이 뚫려있기 때문에 1.5선에 서는 것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잠깐의 틈만 생기면 되는데, 아주 잠깐만…….’

미켈은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 속 거북이처럼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그는 상대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언젠가는 자신을 놓치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다.

‘지금이다!’

미켈은 여민국이 잠시 다른 곳을 보는 사이, 공을 가진 팀원에게 달려가며 패스를 요구했다.

팀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미켈이 패스를 맡는다면 결정적인 기회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파앙!

‘좋아. 잡았다…… 앗!’

미켈이 막 공을 잡으려는 찰나, 누군가 그의 옆구리를 밀치며 끼어들었다.

짧게 깎은 검은 머리카락, 짙은 일자 눈썹, 여민국이었다.

“이제 이 공은 제 겁니다.”

“큭, 안 돼!”

여민국은 빠르게 튀어나와 공을 끊어먹었다. 미켈은 어떻게든 그를 막으려 했으나, 여민국은 이미 그를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서로의 팔이 엮이고 풀리며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공은 여민국의 발을 떠나 전방으로 길게 이어졌다. 측면 수비수 뒷면으로 돌아들어가는 고영주를 노린 절묘한 스루패스였다.

[고영주, 고영주! 슈우웃!]

[아! 골키퍼 펀칭!]

[잘 찼는데, 상대도 잘 막았네요. 정말 아쉽습니다.]

[그러나 아직 공격이 끝난 건 아닙니다. 집중력을 유지해야죠.]

[코너킥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 우주원 선수가 찰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원은 코너킥을 찰 것처럼 달리다가 외곽에 나와 있는 고영주에게 슬쩍 패스했다. 골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있던 선수들의 긴장이 살짝 풀어졌을 때, 고영주는 공을 다시금 우주원 앞으로 굴렸다.

“올려!”

코너킥보다 조금 더 가까운 위치,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타이밍에 크로스가 올라왔다. 오솔은 곧바로 뛰어올랐고, 수비수들도 본능적으로 따라 뛰었다.

그러나 공은 회전이 조금 덜 들어갔는지 오솔에게 닿지 않았다. 골키퍼를 포함한 모든 선수가 바깥쪽 라인을 따라 흐르는 공을 바라봤다.

파파박!

그곳에는 약속된 플레이에 맞춰 뛰어 들어오는 여민국이 있었다. 그는 달려오는 자세 그대로 뛰어올라 공에 머리를 갖다 댔다.

철썩!

와아아아!

역전골이 들어갔다.

스코어는 이제 3 대 2가 되었다.

‘진다고, 우리가?’

미켈을 비롯한 선수들 대부분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1무 1패가 된다. 스위스전을 이긴다고 해도 1승 1무 1패였다.

반면 한국은 2승이 된다. 브라질전에서 진다고 해도 2승 1패, 조 2위는 기본적으로 확보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16강에 올라가지 못한다?’

나이지리아 벤치가 다시 바빠졌다. 그들은 지친 미드필더를 빼고 새롭게 공격수를 투입했다.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어떻게든 공격해서 동점 혹은 역전까지 가야 했다.

실점에 대한 걱정은 지워냈다. 1점 차이로 지든 2점 차이로 지든 골을 넣지 못하면 어차피 16강에 가지 못한다.

“막아! 어떻게든,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

육탄방어(肉彈防禦).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필사적인 만큼 한국 선수들도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선수들은 강력한 슈팅 앞에서도 급소를 가릴지언정 몸을 피하진 않았다.

뻐엉!

‘큭, 아파 죽겠네. 공은 어디 갔지?’

이처럼 아픔은 뒷전이고 공의 행방이 더 중요했다. 집중력이 한껏 올라왔다는 증거였다. 중앙 수비수의 몸에 맞고 튕겨 나온 공은 측면의 우주원에 굴러갔다.

최주혁 감독은 그 모습을 보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역습이다! 달려!”

우주원은 뻥 뚫린 공간을 향해 발을 놀렸다. 수비수 하나가 급히 막아섰으나 치고 달리기로 단숨에 돌파했다.

파바박!

공격수 셋과 수비수 셋, 더 이상 수적으로 불리하지 않았다.

‘그 소리는…… 나를 겨우 한 명이 막고 있다는 뜻이지.’

우주원이 크로스를 올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감겼다.

골키퍼가 쳐내려고 나오다가 주춤했다. 꺾여 들어가는 각도가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지금 튀어나가 봤자 제때 쳐내지 못할 것 같았다.

오솔은 나름 경합을 하려고 달라붙는 수비를 가볍게 튕겨내며 몸을 띄웠다. 잔뜩 지친 수비수는 ‘극장골의 주인공’ 효과로 더욱 강해진 오솔의 힘을 견뎌낼 수 없었다.

철썩!

[골! 오솔의 쐐기 골이 들어갔습니다!]

[네, 상대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 버리는 골이었습니다.]

[한국, 강합니다! 우리 선수들, 대단합니다!]

해설과 캐스터가 감격에 겨워하는 사이 오솔은 우주원을 들어 올리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다.

“이 괴물 같은 놈 아직도 이럴 힘이 남아있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니까 가만히 좀 있어 봐.”

골을 넣고 즐거워하는 한국 선수들 뒤로 허탈해하는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보였다. 아직 한 경기가 남아 있었으나 그들의 대회는 벌써 끝이 난 듯했다.

삑. 삑, 삐익!

한국이 2승으로 16강에 한발 먼저 다가갔다.

해당 경기의 MOM은 여민국이 뽑혔다.

오솔은 조금 아쉬웠으나 납득했다. 여민국이 공수에 걸쳐 활약한 것과 끝내 골까지 넣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나야 뭐 골도 두 개 넣었고 끝나고 레벨도 하나 올랐으니까.’

오솔은 두 경기 만에 5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로 올라섰다. 한국은 16강 진출이 확정된 거나 다름없었으니 득점왕에 가장 가까운 선수로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포인트를 좀 아껴둘까?’

포인트를, 그것도 겨우 3개를 아껴서 뭐에 쓰겠냐마는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했다.

‘진짜 강팀을 상대로 득점을 올리려면 상대의 약점을 잘 공략해야 해.’

마침 진짜 강팀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가 다음 경기에 기다리고 있었다.

‘브라질이라…… 16강이 확정된 상태에서 만나게 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오솔은 브라질과의 경기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다.

* * *

한편 한국팀의 경기를 지켜봤던 치로 페레라는 아쉬움이 듬뿍 담긴 눈으로 여민국을 보고 있었다.

‘단순히 중앙 수비수인 줄만 알았는데 6번에서도 뛸 줄 아는 선수였잖아? 게다가 미켈을 상대로 대등한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대단한데?’

그래서 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비유럽권 선수를 둘이나 영입할 수는 없는데…… 게다가 말이 통할지도 의문이고.’

공격수는 사실 말이 잘 안 통해도 그럭저럭 뛸 수 있었다.

공격적인 패스는 보통 침투하는 선수를 보고 후방에서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보다는 서로의 움직임을 읽는 눈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수비는 달랐다. 마크하는 선수가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세트 피스 상황에서도 골키퍼와 수비수는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수비는 실시간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언어가 통해야 했다.

‘게다가 6번은 딱히 필요도 없잖아. 이미 그 선수의 영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니까.’

여민국이 비록 준수한 잠재력을 보이는 선수였으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오솔이 더 탐이 났다.

‘문제는 슬슬 다른 녀석들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거지. 로소네리(Rossoneri) 녀석은 벌써 나타났군.’

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이미 타깃이 겹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회가 끝난 후에 만나기로 했지…….’

선수 숙소에 연락을 넣었으나 당장은 대회에 집중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대회가 끝나면 보자는 답변이 나왔다.

‘아시아인이라 그런지 개인의 영달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군. 그런 성격도 마음에 들어.’

오솔의 속셈은 몸값이 한껏 올라갔을 때 한 번에 만나려는 것이었으나, 치로 페레라는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 덕분에 비교적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 * *

F조의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최약체로 평가받던 한국이 2승으로 조 1위가 되어 16강 진출이 확정된 것이다.

이유리 기자를 비롯한 언론은 이 소식을 발 빠르게 전했다. 이 소식은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조금씩 화제가 되고 있었다.

[아침뱃살 : 님들 축구 보셨어요?]

[아인트호갱 : 요즘 축구해요? 비시즌 아닌가?]

[폭스짱짱맨 : K리그는 리그도 아니냐? 뭔 비시즌 타령이야.]

[아인트호갱 : 그걸 보는 사람도 있음?]

[폭스짱짱맨 : 어휴. 해축빠들 진짜 진절머리가 난다.]

[아침뱃살 : 아니, 싸우지들 마시고…… 20세 이하 FIFA 선수권 대회 보셨냐는 얘기였어요.]

[아인트호갱 : 그게 뭐임? 먹는 거?]

[폭스짱짱맨 : 꼬꼬마 유치원 같은 건가?]

[축협개객기 : 우리나라 축구의 문제점이 여기서 보이네. 지금 우리 선수들은 국위 선양 한다고 밖에서 죽으라고 뛰고 있는데, 정작 축구 좋아한다는 사람들조차 관심이 없으니…… 쯧쯧.]

[아침뱃살 : 여기 기사 링크예요. 우리나라 현재 상황이 스위스랑 나이지리아를 이기고 2승으로 16강 확정된 상태래요.]

[폭스짱짱맨 : 오, 웬열? 성지훈 나가리 되고 끝난 줄 알았는데, 키야. 여윽시 폭스의 희망 고영주다. 그새 골을 넣었네.]

[아인트호갱 : 이 새끼, 폭스빠였네. 고영주는 개뿔. 오솔인가 뭔가가 골을 제일 많이 넣었구먼. 그리고 스위스 자체가 약팀인데? 보니까 3패로 광탈할 거 같다. 나이지리아도 뭔 듣보잡들만 있고……. ㅋㅋㅋ 다음 경기에서 브라질 만나면 개털리게 생겼다.]

[폭스짱짱맨 : 야이 호갱 새끼야. 한판 붙자.]

[아침뱃살 : 스위스나 나이지리아도 강팀인데 한국 선수들이 잘해서 이긴 거예요. 경기 보셨으면 바로 아실 텐데…… 그리고 오솔 선수 엄청 잘해요. 고교에서 뛸 때도 골을 진짜 밥 먹듯이 넣었거든요. 제가 봤을 때는 이번 대회에서도 득점왕도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인트호갱 : 네. 이상 오솔 본인 피셜이었습니다.]

[축협개객기 : 득점왕은 에바지. 이번에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에 리오넬 메시 있는 거 모르심? 지금 당장은 득점 선두지만 곧 따라 잡힐 거라고 봄.]

[미남성지훈 : 성지훈 없이는 힘들지. 어떻게 16강까지는 갔나 본데, 아마 이게 한계일 거다.]

[아인트호갱 : 지훈이니?]

<미남성지훈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아침뱃살은 혼란스러워진 채팅방을 나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오솔이 얼마나 선전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조롱에 괜히 가슴이 아팠다.

“나쁜 놈들…… 솔아 힘내! 응원할게.”

그녀는 나머지 일정을 확인하며 오솔의 득점을 기원했다. 그때 밖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주야. 밥 먹어라. 어라? 뭐 하고 있었니?”

“응, 오빠 다치지 말라고 기도했어요.”

“어이구 예쁜 우리 딸. 어서 밥 먹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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