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35화 (35/213)

 # 35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35화

그 시각, 오솔은 샤워를 하며 상태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흐흐. 해트트릭이다.’

한 경기만 치렀을 뿐인데도 레벨이 무려 두 계단이나 올랐다. 세 번째 골을 넣는 순간 경험치가 100%를 넘겼고, 경기 종료와 함께 MOM으로 뽑히며 다시 100%를 달성했다.

세계적인 대회인 만큼 고교 대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경험치가 쏟아졌다.

‘거기다가 마지막 골은 극장골이었어.’

89분이 지나고 넣은 골이라 ‘극장골의 주인공’ 스킬도 한 단계 상승했다.

-‘극장골의 주인공’ 스킬이 Lv 2가 됩니다.

-이제 한 골 차이로 지고 있거나 양 팀 스코어가 동점일 때, 경기 시간이 88분을 넘는 순간부터 모든 능력치가 2씩 상승합니다. 효과는 경기 종료와 함께 사라집니다.

-스킬 레벨 업 조건 : 88분 이후 득점에 성공해 이겼을 경우 Lv 3으로 상승합니다. 필요한 총 득점수는 두 골입니다.

‘이제는 제법 효율이 나오겠는데?’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2씩 오르는데다가 최소 2분 동안 지속된다. 경기 막판이면 모두가 지쳤을 시간이었으니 상황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효과는 더 뛰어날 것이다.

레벨 업으로 얻은 포인트 6개는 모두 헤딩에 투자했다.

-헤딩 64(6.8%↓)

덕분에 헤딩도 64에 도달했고, 페널티도 6.8%로 감소했다. 이제 헤딩이 엇나갈 확률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다음 경기부터는 선발로 뛰고 싶은데…….’

오늘은 운 좋게 기회가 많이 찾아와서 해트트릭까지 달성할 수 있었으나, 언제나 오늘 같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출장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선수가 활약할 수 있는 기회도 적어진다. 오늘 오솔은 30분 정도 남았을 때 들어갔으니 평소에 비해 1/3 정도만 뛴 셈이었다.

그럼에도 슈팅 5개가 모두 유효슈팅이었고, 그중에 3골이 들어갔다. 오늘 활약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알게 하는 수치였다.

그러나 오솔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선발로 출전했으면 얼마나 더 넣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경기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선수들의 욕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괜히 빅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이 이름값이 낮은 곳으로 이적하는 게 아니다. 선수에게 충분한 경기 출장이 보장된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다.

‘말하자면 데이트 같은 거지.’

이상적인 연인을 위해 깔끔하게 차려입고 데이트 코스도 완벽하게 짜 놓았다고 생각해보라. 끝내주는 하루를 보낼 완벽한 준비가 되어있는데, 상대에게서 연락이 없다면 어떻겠는가.

출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파에 누워서 감자칩을 집어먹는 선수는 없다. 모두가 언제든지 시합에 나갈 수 있게 몸 상태를 100%로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시즌 내내 벤치만 달궈야 한다? 대부분의 운동선수는 좀이 쑤셔서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오솔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으니 자연스럽게 다음 경기에서는 주전 출장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사흘 후에 있을 나이지리아전의 전술과 선발 명단이다.”

다음날, 최주혁 감독은 오솔의 바람에 제대로 응답해줬다.

나이지리아전을 대비한 훈련이 4-3-3으로 진행되었고, 주축 선수로 오솔과 고영주, 우주원 등이 뽑힌 것이다. 반대로 성지훈이나 이상현은 벤치로 밀려났다.

성지훈이 반발하는 건 당연했다. 앞서 말한 대로 축구선수에겐 시합 출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나 이번처럼 전 세계의 시선이 모인 대회에서는…….

결국 그날 저녁, 최 감독은 다시금 기술위원장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최 감독. 내가 혹시 서운하게 한 거 있나?”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럼 이건 무슨 뜻인가? 허허. 날 엿 먹이려는 게 아니라니 더 당황스럽구먼.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

묵직한 목소리로 상스러운 말을 하니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최 감독은 마른침을 삼키고 침착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나이지리아전에 더 적합한 전술과 선수를 기용하려는 것뿐입니다.”

“이거 아무래도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군. 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나? 멀리 보라고 말이야. 당장 눈앞의 결과보다는 선수의 육성을 우선하라는 말, 벌써 잊었나?”

“죄송하지만…… 전 이번 대회만 보기로 했습니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선수들에게도 좋을 겁니다.”

대비는 충분히 해놨으나 그럼에도 협회와 각을 세우는 순간이 오자 심장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한국에서 축구 관련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담대해지고 싶었으나, 마음과는 달리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단 말이지?”

“네,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군. 지금부터는 대표팀에서 손 떼게.”

“네?”

“그동안 고생했네. 나머지 시합은 이충호 코치에게 맡기면 될 거 같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번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제가 이 팀의 감독입니다.”

“자네는 사람을 참 피곤하게 하는군. 내가 기어이 자네를 잘라야 하겠나?”

“…….”

“좋게 말할 때 내 말 듣게.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자네에게도 좋을 거야. 아직 앞길이 창창한데 축구계에서 계속 일해야지.”

좋게 타이르는 말투에 비웃음이 잔뜩 껴있었다.

최 감독은 기술위원장의 두툼한 턱살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수화기 너머로 구린내가 풍기는 듯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물러가고, 이상한 오기 하나가 우뚝 섰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는 자존심이자 똥고집이었다.

“스위스전, 성지훈을 빼고 나서 3 대 2로 역전했습니다. 경기력은 말로 할 것도 없고, 팀 케미 측면에서도 지훈이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흥, 감독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겠지! 자네 잘못을 선수에게 돌리지 말게!”

“경질이든 뭐든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조별 예선 한 경기, 게다가 이겼음에도 경질이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자들이 소설 쓰기 좋겠군요.”

무슨 용기였는지 위협하는 말이 술술 나왔다.

“제정신이 아니군. 기자들이 그 따위 하찮은 기사 하나 때문에 협회를 적대시하리라 생각하는가?”

“글쎄요. 성지훈 관련 추문이 섞여 있다면 재미있는 소재가 될 수도 있겠죠.”

“기어이 벌주를 마시겠다면야. 좋아. 두고 보세.”

“비록 청소년 대표지만 이들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이들의 청춘을 낭비할 수 없습니다.”

최 감독의 마지막 일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수화기를 들어보니 이미 끊긴 지 오래였다.

“후후.”

막상 지르고 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제 뭘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할 법도 한데, 최주혁 감독의 시선은 오로지 나이지리아의 전술 보고서에만 꽂혀있었다.

* * *

다음날 아침, 성지훈은 훈련장에 나오지 않았다. 발목이 아프다는 핑계를 댔으나 숙소에 찾아가 보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선수단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훈련장에 나온 선수들은 성지훈의 빈자리를 보며 수근 거렸고, 집중력은 한 없이 떨어졌다.

성지훈 패거리들도 이번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 채 헤매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주전 명단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굳이 성지훈과 함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이지리아전이 고작 이틀 남았음에도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훈련이 진행되지 않았다.

“자자! 꾸물거리지 말고 바로 훈련 시작해!”

최주혁 감독은 큰 목소리로 선수들을 일깨운 후, 이충호 코치에게 성지훈을 찾아올 것을 부탁했다. 일단은 성지훈을 불러서 징계를 하든지 병원에 보내든지 해야 했다.

이 코치는 한번 찾아보겠다는 말과 함께 불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성지훈을 찾더라도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제길. 한시가 급한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민국이 팀 전체의 분위기를 빠르게 휘어잡았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성지훈 패거리 중 일부는 따로 놀았으나, 그 외의 선수들은 다음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성지훈이 빠지면서 분위기가 조금 더 밝아지는 효과도 있었다.

* * *

그날 저녁, 이유리 기자는 최주혁 감독을 만나기 위해 대표팀 숙소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성지훈이 훈련에 불참했다는 이야기는 벌써 기자단 사이에 퍼져서 큰 이슈가 된 상황이었다.

감독과의 불화설부터 부상을 입은 게 아니냐는 걱정까지 다양한 의견이 맴돌고 있었다.

그녀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혹시나 최 감독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 해서였다.

아무래도 상대는 협회다 보니 감독 혼자서는 여론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나라도 도와야지.’

최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 외에도 부정한 일을 보면 가만히 넘기지 못하는 그녀 특유의 독종 기질도 이러한 행동을 부추겼다. 그녀가 그렇게 전투력을 키우며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라? 저 사람은?’

숙소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작은 카페, 그곳으로 굉장히 낯익은 남자 하나가 들어갔다. 그녀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분명 청소년 대표팀의 코치로 있는 사내였다.

이유리는 창문 안쪽으로 남자가 누구를 만나는지 관찰했다. 그는 깊숙한 곳까지 걸음을 옮기더니, 문을 열고 안쪽 방으로 쏙 하고 들어가 버렸다. 아쉽게도 상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대표팀 코치가 이 시간에 카페에는 왜 온 거지?’

기자의 촉이 뭔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유리는 최주혁에게 일이 생겨서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고, 그대로 잠복에 들어갔다.

다행히 오늘은 반쯤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나왔기 때문에 옷차림이 비교적 평범했다. 적어도 기자라는 의심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반대편에 위치한 카페의 2층 테라스로 올라갔다. 선글라스를 끼고, 고성능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영락없는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코치가 들어가고 대략 30분이 지났을 때,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함께 걸어 나왔다. 코치와 오늘 훈련을 빠졌다는 성지훈이었다.

‘멀쩡히 걸어 다니네. 부상당했다는 말은 역시 루머였나?’

옷도 훈련복이 아니라 청바지에 흰 티 차림이었다. 신분을 숨기고 싶긴 했는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이유리는 혹시나 해서 그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만약에 대비한 무기가 하나씩 쌓여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들키지 않게 조심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괜히 도시의 전경을 찍는 척도 하고, 핸드폰을 잡고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보여줬다.

다행히 두 사람은 대화에 집중하느라 이유리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이후 코치는 숙소를 향해 걸어갔고, 성지훈은 숙소를 뒤로하고 떠났다.

지는 해와 가로등불이 슬슬 교대를 준비하는 시간대였다.

이유리는 눈물을 머금고 최주혁에게 조금 더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보냈다.

‘첫 번째 데이트와 맞바꾼 미행이야. 결코 놓치지 않겠어.’

그녀는 제법 재능이 있었는지 태어나서 처음 하는 미행이었는데도 들키지 않고 따라붙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쭉 따라가니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한 건물이 나왔다.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된 간판과 우글거리는 사람들, 입구에서 손에 도장을 찍어주는 키 큰 남자까지 이른 저녁부터 이곳은 술기운이 만연했다.

마침 성지훈이 네온사인 아래에 섰다.

찰칵, 찰칵!

이유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꾀병을 부리고 훈련에 빠진 데다 술집인지 클럽인지 모를 곳에 방문하다니, 이 정도면 제대로 벙커에 빠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누가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태연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헉! 뭐야?’

이유리는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다 말고 두 눈을 비볐다. 술집 간판 아래에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성지훈이 꺼낸 것은 겉이 비닐로 된 네모난 종이 갑이었다.

손으로 입구를 툭 치니 길쭉한 담배 하나가 쏙 빠져나왔다. 성지훈은 그걸 입에 물더니 바람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붙였다.

미간을 좁히며 연기를 빨아들이는 모습이…….

‘엄청 익숙해 보이잖아?’

이유리는 카메라에 담긴 장면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국을 대표해서 대회에 참가 중인 선수가 술집에 들러 담배를 피우다니…… 이건 협회가 아니라 협회 할아버지가 와도 실드를 칠 수 없었다.

그녀는 대박을 건졌다는 생각과 함께 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헉헉. 유리 씨.”

최주혁은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했다. 그는 성지훈이 술집 내부에 들어갔다는 말에 깊은 한숨을 쉬더니 길게 늘어진 줄의 맨 끝에 섰다.

“찾아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보니까 아주 사지가 멀쩡하던데요?”

“……부상 같은 건 없었어요.”

“그럼 태업(怠業)인가요?”

“어린 애의 투정이라고 하고 싶지만, 생각보다 많이 나가긴 했네요. 이제는 어떻게든 결단을 내려야겠어요.”

이유리가 막 사진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였다. 성지훈이 옆구리에 여자 하나를 끼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감독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 씨.”

“지훈아.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요. 저 지금 바빠요.”

“이게 시합이나 훈련보다 더 중요한 일이냐? 이래 놓고 경기에 나가겠다는 말이 나와?”

“웃기지 마세요. 이미 이야기 다 들었어요. 절 출전시킬 생각 같은 거 없잖아요!”

술이 좀 들어갔는지 성지훈이 입을 열 때마다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