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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34화 (3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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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34화

‘이런 젠장! 이제 좀 경기가 풀려가나 했는데, 왜 날 빼는 거야?’

성지훈에게 최주혁 감독은 어차피 이번 대회가 끝나면 더는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최 감독은 선수 시절 경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따로 인맥이 있거나 학벌이 탄탄한 편도 아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우습게 보일만도 했다.

실제로 힘의 경중을 따지면 오히려 감독이 자신에게 잘 보여야 했다. 협회에서 계속 일을 하려면 시키는 대로 자신을 밀어줘야 했으니까.

모두 최주혁 감독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들이었다.

“저 새끼 지금 뭐 하는 거야?”

기자석에서 사진을 찍던 이유리 기자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혹시나 해서 카메라를 들고 있긴 했는데, 설마 하니 이런 장면을 찍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잔뜩 일그러진 성지훈의 얼굴보다 딱딱하게 굳은 최주혁 감독의 얼굴이 먼저 들어왔다. 모두의 앞에서 감독으로서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지금 최주혁 감독이 어떤 심정일지 그녀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제대로 복수해줘요, 오솔 선수.’

지금 성지훈에게 한 방 먹이려면 교체해 들어간 오솔이 뭔가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 * *

‘멍청한 짓만 골라서 하는군.’

오솔은 성지훈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도 전생에 많이 해봤던 짓이라 그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안이 있는 경우에는 더 심하지.’

오솔은 전국의 축구팬들에게 자신이 그 대안임을 알리고 싶었다.

한국팀의 전술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4-4-2를 유지했다. 이미 2 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라 수비적인 4-3-3으로 바꾸기보다는 이대로 공격적인 형태를 유지하고자 했다.

“영주 선배, 공격 시에는 지금처럼 선배가 밑으로 내려가세요. 대신에 수비할 때는 제가 내려갈게요.”

둘 다 체력적으론 문제가 없었으나 아무래도 수비력은 오솔 쪽이 더 나았다. 태클 수준이야 거기서 거기였지만 수비에서는 몸싸움이란 측면을 무시할 수 없었다.

혹시나 공을 뺏고 역습을 한다고 했을 때도 오솔보다는 고영주 쪽이 더 빨랐기에, 이렇게 역할을 나누는 게 타당해 보였다.

“그리고 아까 성지훈한테 했던 패스 있죠?”

“로빙 스루?”

“네, 그거요. 상황 봐서 저한테도 부탁드려요. 제가 도움 하나 올려드릴게요.”

오솔은 그 말을 끝으로 전방으로 향했다.

고영주는 살짝 쳐진 위치에서 좌우로 움직이며 패스를 받으려 애썼다. 상대편 수비형 미드필더, 페르난드스를 따돌리려면 보다 많이 뛰는 수밖에 없었다.

어렵지 않게 패스가 연결되었다. 등 뒤에서 페르난드스가 달려드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몸싸움에 들어가면 공격이 더뎌지고, 그러다 보면 상대의 수비는 점점 더 견고해질 것이다.

고영주는 미드필더에게 그대로 패스를 돌려주고, 부드럽게 몸을 틀어 안으로 파고들었다. 미드필더는 적절한 타이밍에 리턴 패스를 넣어줬다.

페르난드스는 역동작에 걸린 탓에 한 박자 늦게 따라붙었다. 확실히 수적 우위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어디로 주지?’

우측의 우주원이 전방으로 달려 들어가고, 오솔 역시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우주원에게 스루패스를 넣거나 오솔과 2 대 1 패스를 주고받으며 중앙으로 돌파하는 두 가지 방안이 생겼다.

고영주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중앙 수비수들이 급히 튀어나와 오프사이드 트랩을 발동시켰다. 이제 우주원에게 향하는 패스는 막혔다.

그때 밑으로 내려오던 오솔이 수비라인을 따라 좌측으로 크게 돌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센데로스는 뒤늦게 오솔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몸을 꺾었으나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실책이 되고 말았다. 중앙 수비수 두 사람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패스 코스가 생긴 것이다.

‘제발 걸리지 마라!’

파앙!

고영주는 그 약간의 틈새를 뚫고 패스를 성공시켰다. 게다가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조금만 늦었어도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릴 뻔했다. 문제는 공의 속도였다. 급하게 찬다고 그만 발에 힘이 과하게 들어간 것이다.

‘조금 길다.’

오솔은 센데로스의 손을 뿌리치며 계속 달렸다. 공의 속도가 빨라서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따라잡는다고 쳐도 골라인 근처에 다다라서야 슈팅 기회가 올 것 같았다.

‘골키퍼의 위치는? 젠장. 슈팅 각도를 완벽하게 줄여놨군.’

더불어 바로 뒤에는 센데로스가 꽁지에 불이 붙은 황소처럼 돌진해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각도가 없다고 해서 틈이 없는 건 아니지.’

오솔은 순간적으로 골키퍼의 자세를 확인했다. 무릎을 굽히고 양손을 좌우로 살짝 들어 올린 매우 정석적인 자세였다. 골망은 몸통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2002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 전에서 박해진이 넣은 일명 알까기 슛이다. 이것은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골을 넣는 슛으로 골키퍼는 기본적으로 두 다리를 벌리고 있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하게만 찬다면 제때 막아내기 힘든 위치였다.

다른 하나는 골키퍼의 머리 위로 차는 것이다. 앞서 자세를 설명하면서 눈치챘겠지만 골키퍼는 기본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언제든지 몸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럼 양손은? 좌우로 뻗어있다. 이 정도 거리에서 머리 위로 슛을 하면 미리 예상하거나 반응 속도가 야신급이 아닌 이상에야 손을 올리는 사이에 골이 들어간다.

뻥!

오솔의 선택은 두 번째 방법이었다.

공은 빠르게 상대 머리 위로 향했다. 위협적인 슈팅에도 골키퍼는 눈을 감지 않았다. 칭찬할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골키퍼는 내친김에 몸을 뒤로 날리면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공은 반 이상 지나간 후였다. 골키퍼 장갑은 공의 끄트머리만 간신히 건드릴 수 있었다.

철썩!

[골! 골입니다! 대한민국! 한 골 만회하는 데 성공합니다! 오솔 선수, 각이 없는 상황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멋진 마무리를 보여줬습니다!]

[고교 대회에 관심이 없는 시청자분들은 많이 생소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성지훈 선수의 뒤를 잇는 차기 K리그의 스타플레이어로 불리고 있습니다.]

[기록이 대단합니다. 2년 연속 득점왕을 수상했고, 청송고를 우승으로 이끌었군요! 아,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시죠!]

[돌아들어가는 움직임이 아주 좋았습니다.]

[고영주 선수의 스루 패스도 칭찬할만하죠?]

[그렇습니다. 상대 수비 라인을 완전히 꿰뚫는 패스였습니다.]

화면이 다시 바뀌었을 땐, 오솔이 공을 안고 센터 서클로 뛰어가는 모습이 나왔다. 그걸 지켜보는 센데로스의 이마에는 주름이 깊이 파여 있었다.

[우리 선수들 힘이 펄펄 나고 있습니다.]

[이제 한 골 차이거든요. 남은 시간을 고려하면 역전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삑!

휘슬과 함께 다시 경기가 시작됐다. 한국팀은 이전보다 더 강한 압박에 들어갔다. 중원에서 아예 상대가 공을 잡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스위스의 두 공격수는 반쯤 노는 신세가 되었다. 한 명이 밑으로 내려와 소유권 다툼을 도왔으나, 오솔 역시 밑으로 내려간 덕분에 여전히 한국이 더 유리했다.

결국 공은 다시 한국의 차지가 되었고, 후방의 여민국은 그대로 공을 몰고 앞으로 나아갔다. 상대 공격수가 줄어든 덕분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스위스가 중원의 약점을 막기 위해 뭉친 덕분에 측면을 공략하기 한층 수월해졌다.

뻥!

여민국의 발을 떠난 공은 우측면 깊숙이 떨어졌다. 그곳에는 전·후반 내내 침묵했던 우주원이 전력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우주원은 공을 잡기 직전 전방을 확인했다. 오솔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전방에 있는 건 고영주와 좌측 미드필더뿐이었다.

오솔은 수비에 참여하느라 밑으로 내려간 탓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중앙이 너무 두터워.’

우주원의 선택은 높고 빠른 공이었다. 그의 크로스는 상대 페널티 박스를 그대로 지나쳐 반대편 사이드까지 넘어갔다.

좌측 미드필더는 공을 잡고 그대로 슈팅을 시도했다. 그러나 공은 상대 수비수의 발에 맞고 땅에 한번 튕기더니 높이 솟아올랐다.

고영주는 공을 쫓아 바삐 움직였고 그건 상대 수비수도 마찬가지였다.

‘큭! 늦었다.’

고영주는 센데로스에게 잡혀 공을 잡을 수 없었고, 공은 결국 상대편 수비형 미드필더 젤송 페르난드스의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고영주와 경합을 하고 있던 센데로스가 그대로 몸을 날려 같은 편인 페르난드스에게 슬라이딩 태클을 넣은 것이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두 사람은 그대로 엉켜서 넘어졌고, 공은 중원으로 굴러갔다. 한 발 늦게 도착했던 오솔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 기회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놈은 또 이러네.’

오솔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센데로스와 페르난드스를 일별하고, 그대로 슈팅 자세를 가져갔다. 중앙이 너무 뻥 뚫려있어서 이건 차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뻐엉!

철썩!

온몸의 힘이 응축된 슈팅이 스위스의 골망을 뒤흔들었다. 골키퍼가 몸을 날려봤으나 소용없었다. 만회골을 넣은 지 단 5분 만에 나온 동점골이었다.

[골! 또다시 골을 집어넣는 오솔! 정말 대단한 중거리 슛이 나왔습니다!]

캐스터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지는 것이 슬슬 성대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 지금 스위스 선수들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죠?]

[네, 슈팅 직전에 충돌이 있었죠? 우리 선수들이 관여한 것은 아니어서 반칙이 선언되진 않았습니다.]

[그러네요. 스위스 선수들끼리의 충돌입니다.]

해설의 말대로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는 장면에는 같은 팀의 다리를 걸고넘어지는 센데로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페르난드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태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에게 깔린 센데로스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은 듯했다.

오솔은 혀를 찼다.

‘쯧쯧. 조금만 상황이 급박해져도 시야가 저리 좁아지니…….’

수비수에게 침착성과 평정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였다. 위험요소를 모두 고려한 최적의 움직임이 필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센데로스는 그게 부족했다. 그가 압도적인 하드웨어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수비수로 남게 된 데에는 이 같은 이유가 있었다.

결국 센데로스와 페르난데스 두 사람 다 교체되고 말았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한 모양이었다.

허무하게 낭비된 교체 때문에 스위스가 전술적으로 변화할 방법이 없어졌다.

‘조금 더 놀아주길 바랐는데, 아쉽네. 다음에 보자, 다람쥐야.’

오솔은 센데로스의 별명을 부르는 것으로 애도를 대신했다.

이후 경기는 한국팀에게 급속도로 유리해졌다. 수비진에서 든든히 버텨주던 센데로스가 빠진 탓에 오솔을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종료 직전에 있었던 코너킥에서 오솔은 가까운 쪽 골대에서 잘라먹기 헤딩을 성공시켰다. 이번에도 골키퍼 장갑은 주인의 얼굴을 덮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그렇게 오솔은 역전골을 넣는 동시에 이번 대회 첫 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오솔은 골을 넣은 직후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기쁨을 표현했다.

[오솔 선수가 골 세리머니를 할 때는 가까이 가면 안 되겠습니다.]

[네, 확실히 위험해 보이네요.]

한국팀을 응원하는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이유리 기자의 카메라는 다시 성지훈을 노렸다. 교체 직후에 벌겋게 달아올랐던 성지훈의 얼굴은 어느샌가 허옇게 질려있었다.

‘크으~’

이유리 기자는 그 모습을 전리품 삼아 몇 장 찍고 난 뒤, 최주혁 감독의 기뻐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연달아 찍었다.

‘나중에 액자에 담아서 선물해줘야지.’

이유리 기자는 선배들이 들으면 기겁할만한 생각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삑, 삐익!

그렇게 3 대 2로 센데로스의 극과 극의 활약이 돋보인 경기가 끝이 났다.

* * *

삐리리리.

치로 페레라는 멍하니 한 선수를 바라보다 뒤늦게 바지춤의 진동을 눈치채고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통화가 연결된 후에도 그의 시선은 그 선수를 떠날 줄을 몰랐다.

“치로? 이봐, 지금 듣고 있어?”

“어? 어, 어. 듣고 있지 그럼. 어디까지 얘기했지?”

“무슨 일이야? 완전히 넋이 나갔는데?”

“아니야. 멀쩡해. 그런데 왜 전화했어?”

“오늘 바르네타를 보러 간다며 어떻게 됐어?”

“어…… 바르네타는 확실히 빠르고 날카로운 슈팅을 보여줬어. 골도 넣었고.”

“그래?”

“그렇지만 한계도 명확해. 아직 우리 팀에서 뛰기에는 많이 부족한 선수였어. 그보다는…….”

치로 페레라는 어떤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말을 망설였다. 그는 수화기 너머에서 짜증 돋는 목소리가 ‘뭐?’라고 되묻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장기적으로 9번이 될 만한 친구가 있어서 말이야.”

“그래? 어떤 선순데?”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 겨우 30분 남짓만 봤을 뿐이라…… 하지만 신체능력도 좋고, 골 결정력이나 헤딩, 몸싸움, 라인 브레이킹까지 두루 뛰어난 모습이었어.”

“그래? 스위스에 그런 선수가 있었나?”

“한국 선수야. 나이가…… 세상에 87년생이잖아!”

“한국이라고?”

수화기 너머에서 다시금 신경질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치로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종료했다.

‘무슨 심정인지는 동감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때문에 대어를 놓칠 수는 없어.’

치로 페레라는 한국팀의 다음 경기 일정을 확인하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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