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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30화 (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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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030화

오솔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괜히 미친놈처럼 보이긴 싫었다.

-조건부 스킬, ‘극장골의 주인공(Lv 1)’을 습득했습니다.

-한 골 차이로 지고 있거나 양 팀 스코어가 동점일 때, 경기 시간이 89분을 넘기는 순간부터 모든 능력치가 1씩 상승합니다. 효과는 경기 종료와 함께 사라집니다.

-스킬 레벨 업 조건 : 89분 이후 득점에 성공해 이겼을 경우 Lv 2로 상승합니다. 필요한 득점수는 한 골입니다.

“오호! 스킬이 저절로 생기기도 하는구나?”

오솔은 시스템 뉴비라도 되는 양 중얼거렸다. 그가 전생에 얼마나 대충 뛰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스킬의 효과가 궁금했지만, 애석하게도 경기가 거의 끝나기 직전이었다. 단순한 평가전이라 서로 과열된 부분이 없었기에 추가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삑, 삐익!

결국 경기는 일대일로 끝이 났다. 오솔은 입맛을 다시며 디에고 고딘과 악수를 나눴다. 장래에 세계적인 선수로 활약할 사람이니 기념으로 유니폼을 교환하고 싶었다.

“너 정말 끈질기더라. 덕분에 오늘 진땀 뺐다.”

기껏 오솔이 영어로 말을 걸었으나 고딘은 에스파냐어 외에 다른 언어를 쓸 줄 몰랐다. 결국 두 사람은 옷을 벗는 동작을 취함으로써 의사를 전달했다.

고딘 역시 오솔과 유니폼을 나누고 싶었는지 얼른 웃옷을 벗었다. 웃으며 포옹까지 하는 걸 보니 그도 오솔을 인정하는 듯했다.

“그래, 그래. 가보로 간직해라. 겨우 한 골로 날 막았다고 자랑도 좀 하고.”

그렇게 선수들이 아쉬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때, 최주혁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협회의 질책은 벌써 받고 난 후였다. 기술위원장은 또다시 성지훈을 빼면 그땐 자신도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겠다며 감독 자리를 두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최 감독은 명심하겠다고 말했으나, 이전과는 달리 마냥 기가 죽어 있진 않았다. 오히려 그의 두 눈에는 굳은 결심이 깃들어 있었다.

‘두고 보자고,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인 우루과이를 맞아 일대일로 경기를 마쳤다. 경기 내용도 만족스러웠다. 초반에는 조금 흔들렸으나 후반에 갈수록 선수들의 집중력이 점점 더 좋아졌다.

최 감독은 선수들이 상대와 대등한 경기력을 보였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솔이의 수준도 확인했고, 영주도 조금씩 감을 잡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여민국의 발전이었다. 지난 2년간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더 늘었는지 오늘은 우루과이의 공격진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골은 비록 오솔이 넣었지만, 사실 최 감독의 4-3-3에서 가장 핵심은 수비형 미드필더인 여민국이었다.

돌이켜 보면 4-3-3 전술의 시작도 그의 다재다능함을 더 효율적으로 쓰려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얼핏 오솔과 성지훈의 경쟁처럼 보였던 상황은, 실은 여민국을 활용하느냐 아니면 성지훈을 활용하느냐의 문제에 더 가까웠다.

물론 오솔의 실력이 그리고 재능이 부족했다면 아예 고민조차 못했을 내용들이었다.

“감독님, 가시죠. 기자회견 준비 끝났습니다.”

상념에 잠겨있었더니 시간이 빨리 갔다. 어느덧 기자 회견 준비가 끝이 났다.

“그래, 가지.”

찰칵, 찰칵!

언론과의 만남은 감독들에게 큰 스트레스 중 하나였다. 특히나 경기에서 지거나 좋지 못한 결과를 얻었을 때는 더 심했다. 다행히 오늘은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며 비겼으나, 언론의 생각은 달랐다. 역시나 첫 질문부터 성지훈의 이름이 거론됐다.

“성지훈 선수는 물론이고 후반 들어서 선수 교체를 한 명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4-3-3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운영해보고 싶었습니다. 후반전에 어떤 문제점이 발생하는지 확인할 필요도 있었고요. 다행히 이번 경기에서는 상대팀이 더 많은 실수를 해서 비길 수 있었습니다.”

질문 시간이 중간쯤 지났을 때, 이유리 기자가 기회를 잡았다.

“아까 벤치를 보니까 선수단 분위기가 아주 좋던데요?”

“아…… 예.”

“아무리 평가전이라고 해도 팀이 지고 있는데 웃고 떠드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대놓고 성지훈을 저격하는 질문에 기자들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받은 게 있어서 차마 먼저 공격하긴 힘들었지만, 저렇게 누군가 대신 공격해줬을 때는 또 이야기가 달랐다.

주워 먹을 타이밍엔 입이 찢어져라 주워 먹는 게 또 기자란 족속 아닌가.

최주혁 감독은 이유리 기자의 얼굴을 보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 질문의 답변을 생각하기 보단 그 의도를 읽으려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이고, 또래 선수들이 뭉쳤기 때문에 분위기가 자유분방합니다. 우려하시는 부분은 알겠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주의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회견을 마치려는데 기자 하나가 급히 물어왔다.

“잠시만! 성지훈 선수는 다음 경기에 나옵니까?”

“예, 다음 경기부터는 성지훈 선수를 주축으로 팀을 꾸릴 겁니다.”

기자회견은 그렇게 끝이 났다. 최 감독의 대답에 대다수의 기자들이 이번 전술을 일회용으로 인식했다. 이유리가 했던 질문을 기사화하는 기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 * *

이유리는 선배의 차에 타며 투덜거렸다.

“쳇! 기껏 가려운 곳을 긁어줬더니 효자손을 부러뜨리고 도망가네요.”

“그러게 그런 건 왜 물어? 어차피 안 된다고 했잖아. 최 감독이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축구계에서 계속 일하려면 축협 말을 안들을 수 없어.”

“확 그냥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버릴까요?”

“아서라. 달라질 건 하나도 없어. 괜히 너만 한국 축구를 망치는 기레기 소리 듣고 끝난다는데 3만 원 건다.”

“기껏 건다는 게 3만 원이에요?”

“기껏 이라니? 3만 원이면 치킨이 2마리다.”

“그래요? 그 사이 치킨 값도 많이 올랐네요.”

“한 곳에서 슬그머니 천 원 올리더니, 다른 곳도 줄줄이 따라 올리더라고.”

선배는 담배를 꼬나물었다가 후배의 살벌한 눈초리에 도로 집어넣었다.

이유리는 동점골을 터트린 오솔 사진을 보며 물었다.

“어쨌든 전체적인 성적을 생각하면 더 잘하는 선수를 쓰는 게 좋잖아요. 오늘 경기력도 나쁘지 않았고요.”

“인기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 게다가 지금 성지훈은 최신형 스포츠카나 다름없거든, 어떻게든 광고하고 자랑해야 제 몸값을 유지하는 스포츠카 말이야.”

“더 좋은 차가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이 차를 사는데 돈을 많이 썼거든. 중고차로 팔 때까지는 제 가격이 나와야 해. 그리고 오솔이를 쓰지 않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어.”

“이유요?”

선배는 풍선껌을 꺼내 입에 욱여넣었다. 무엇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 몰라도 참으로 우악스럽게 씹어댔다.

“이번에 연맹에서 드래프트 제도를 부활시킨다는 건 알고 있지?”

“네. 아직 발표는 안 났지만 거의 마무리됐다면서요.”

“적용대상이 바로 다음 연도 신인들이야. 그리고 거기에는 오솔이도 포함되거든.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이름을 날려봐, 그렇게 되면 인지도를 바탕으로 외국으로 날라버릴 수도 있단 말이야. 원체 J리그나 이런 데에서 잘 먹힐 스타일이잖아.”

“그래서 일부러 활약할 기회를 뺏는다는 건가요?”

“그래, 성지훈이 몸값도 유지하고, 오솔이도 싸게 들여오고, 일석이조지. 아마 각 구단마다 담합이 끝났을 거야. 이번 연도 유망주는 너희가 가져갔으니 다음 해에는 우리가 우선권을 갖겠다. 뭐 이런 얘기가 오갔겠지.”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요?”

“치킨 값부터 통신료, 영화표 값까지 우리나라에서 담합 없이 이루어지는 게 어디 있던가?”

결국은 다시 치킨 얘기로 돌아왔다. 허무했지만 생활에 밀접한 이야기라 피부에 와 닿았다.

이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분했다. 축협과 연맹의 욕심 때문에 오솔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국민들까지 피해를 보게 생겼다.

“그건 기만이잖아요.”

“분해도 별수 없어. 선수 선발은 감독의 권한이고, 그 감독은 지금 아무런 힘이 없다고.”

“이번에 성지훈을 뺐으니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닐까요?”

이유리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으나 이어지는 카메룬, 폴란드전에서 오솔은 다시 벤치만 달구는 신세가 되었다.

성지훈은 다시 찾은 자리를 뺏기지 않겠다는 듯 죽어라 뛰었다. 상대적으로 약팀들이라 한국팀 경기력은 우루과이 전보다 더 나아 보였다.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역시 성지훈 없이는 안 돼.’라는 말이 나올법했다.

이유리는 가슴을 쳤다.

‘으으. 고구마를 열댓 개는 먹은 기분이야.’

그녀는 폴란드전 다음날부터 다시 파주 NFC를 찾았다. 그곳에서 소집 해제 전, 마무리 훈련을 하는 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볍게 뛰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성지훈은 구경 온 팬들에게 사인을 하거나 같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프로로서 당연히 해야 할 팬서비스였지만, 어째 훈련을 땡땡이치는 느낌이 더 강했다.

‘게다가 예쁜 여자 팬한테는 은근히 스킨십도 하고 있잖아?’

남성 팬에게는 살짝 떨어져서 사진을 찍어 준다면, 미모의 여성 팬에게는 몸을 바짝 붙이고 어깨나 허리에 슬쩍 손을 갖다 대고 있었다. 13년쯤 지나면 논란이 될법한 장면이었다.

‘오솔은 어디 있지? 감독도 안 보이네?’

그녀는 슬그머니 현장을 벗어나 안쪽 건물로 들어갔다. 내부로 침입하기는 힘들었으나 벽을 타고 돌면서 훑어볼 수는 있었다.

‘아, 뭐라도 건지면 좋겠는데.’

그때 건물 뒤편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리는 재빨리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협회에서 압박하고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 원망하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는 완전히 계획에서 제외된 겁니까?”

“그런 거 절대 아니니까 날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라. 본선에서는 반드시 네가 활약하게 될 거다.”

얇은 유리창에 막혀 웅웅 거리는 소리로 들렸으나 간신히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다.

이유리는 슬쩍 내부를 훑었다. 책장 유리 위로 오솔과 최 감독의 모습이 반사되고 있었다. 그녀는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최 감독은 지금은 힘들지만 대회 본선에서는 반드시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내용을 어디 가서 발설하지 말라는 당부도 이어졌다.

잠시 후, 오솔이 나가고 최 감독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어떻게 됐어? 어디라고? 독일?”

‘무슨 전화지?’

이유리는 답답한 마음에 조금 더 바짝 붙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전화 상대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래, 고맙다. ……됐으니까, 그냥 준비만 해줘. 응, 아니야. 괜찮아.”

‘뭘, 준비해달라는 거지?’

“차라리 잘 됐어. 이 기회에 제대로 배우고 오면 좋잖아. 축구를 꼭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괜찮으니까 걱정 마. ……응, 그래. 대회까진 입단속 좀 부탁한다.”

‘배우고 온다고? 이거 설마?’

이유리가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며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있을 때, 최주혁은 전화를 마치며 창문으로 걸어갔다.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좀 쐬고 싶었다.

드르륵.

그 결과 벽에 닌자처럼 붙어있던 이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둘 다 크게 놀라 헛바람을 들이켜야 했다.

* * *

파주 NFC에서 30분가량 떨어진 한적한 카페, 최주혁과 이유리는 그곳에서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말했지만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다 기자님이 전에 하셨던 질문을 믿고 하는 말입니다.”

“걱정 마세요. 저도 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오솔 선수의 팬이기도 하거든요.”

오솔의 팬이라는 말에 최 감독은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감독에게까지 저런 취급이라니, 이유리는 어쩐지 오솔이 불쌍해졌다.

“죄송합니다. 조금 놀라서.”

“……그건 그렇고, 아까 그건 무슨 뜻이었어요? 독일 어디에서 뭘 배우시겠다고…….”

“그것까지 다 들으셨군요. 맞습니다. 지도자 수업을 좀 받아볼까 합니다.”

현재 최주혁 감독이 갖고 있는 자격증은 B-라이선스였다. 이것은 중·고교 선수들, 그러니까 약 18세 이하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증이었다.

“일단은 A-라이선스를 따고 팀을 구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는 힘들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코치로는 뛸 수 있겠죠. 그러다가 기회를 봐서 P-라이선스까지 따 볼까 합니다.”

P-라이선스는 선수 지도법은 물론이고, 구단의 운영까지 총괄하는 자격증이었다. 이걸 따려면 1년간 240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영어로 된 시험과 연구 발표를 통과해야 했다. 이 시기의 한국에는 오직 5명만이 P-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최주혁이 자신의 인생까지 걸었다는 사실에 이유리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생각보다 상대의 각오가 대단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솔직히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탄탄대로를 걸으실 수 있잖아요.”

“민국이도 그렇고, 솔이, 주원이, 영주나 다른 아이들도 더 크게 될 수 있는 애들입니다. 특히 그중에서 솔이의 성장세가 정말 대단합니다. 녀석이라면 나중에 전 세계 축구팬을 사로잡을 만한 선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선수의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감동받은 이유리는 비밀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헤어졌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헤어지기 전, 그녀가 감독의 연락처를 따로 받아냈다는 것이다.

“저, 오늘부로 감독님 팬 해도 되죠?”

알 수 없는 소리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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